일 시 ; 2024. 2. 18(주일) - 사순절 첫째 주일 - (2017년 7주)
제목; “참된 친교는 무엇입니까?”(친교12)
성경; 행 2:42-47(p.190) (시 16:11, 260<194>, 191<427>, 621)
<예배의 부름> (시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I.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며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 평화가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지난 14일 수요일 성회(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을 시작으로 2024년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금년 2024년 부활절이 3월 31일(주일)인데, 교회에서 “특별새벽기도회” 등 특별한 행사가 없지만, 이미 보내드린 “사순절(Lent) 일람표”를 사용하여 개인 경건과 영성 훈련에 힘쓰므로,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좋은 그리스인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 사순절(Lent) 유인물 보며 말씀 나누고
금년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제자 공동체”를 이룩하기 위해 교회의 5대 사명인 “예배, 교육, 친교, 봉사, 선교” 중 “친교”에 중점을 두고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첫 번째 말씀으로 “참된 친교의 원리”(행 2:42-47)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말 “친교”(親交)는 ‘친할(가까울) 친(親)’+‘사귈(주고받을) 교(交)’의 합성어로 ‘친밀하게 사귐, 또는 그런 교분’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친교”는 이런 일반적인 친교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세상에서의 친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친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는 것이며, 이와 더불어 이웃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1. “친교(교제)”의 원어적 의미 : ①코이노니아 : 교제, 협조, 관대, 참여 등, ②콜라오 : 아교로 붙이다, 밀착하다, 더부살이하다, ③하베르 : 함께 묶다, 결합하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2. “참된 친교(교제)”란? : ①서로 마음으로 동정하고 사랑하며 연합하는 것, ②서로 선물이나 기부금 등 물질을 나누는 것, ③서로 연합하고 함께 하는 것, ④서로의 생명을 나누는 것입니다.
II.
오늘은 지난 번과 동일한 본문 말씀이지만, 구체적으로 참된 친교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이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제자 공동체”인데,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 교회의 주인도 하나님이시요, 내 삶과 우리의 가정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주일의 주인도 하나님이시요, 예배의 주인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오늘 우리가 나누게 될 친교의 주인(주체)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교회에서의 친교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교회는 세상의 친목 단체와는 전혀 다른 친교를 하게 되는데, 먼저 세상에서의 친목 단체의 친교에 대해서 살펴보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에서의 친교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세상 친목 단체의 친교
1) 친목(親睦)이란?
“친목(親睦)”은 ‘친할 친(親) + 화목할 목(睦)’의 합성어로, ‘서로 친하여 화목함’이란 뜻입니다. 또 ‘특정 집단에서 개인들끼리 친해지기 위한 행위와 그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친목을 나누기 위한 목적의 모임과 계’를 각각 ‘친목회, 친목계’라고 합니다. 친목 관계가 있으면 서로 친해져서 인맥 관계가 생겨 서로 친해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가족, 친지, 친구 간의 친목을 다지는 행위는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장해야 할 행위이며, 애초부터 인맥을 위해서 만들어진 자리에서 서로 친목을 다지는 행위를 친목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친목 도모가 잘 이루어지면 해당 집단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이점이 있지만, 과도해지면 집단이 폐쇄적으로 굴러가게 되면서 파벌이 생기고, 종국에는 파벌에 끼지 못한 사람들이 허탈감을 느끼면서 다른 집단으로 이적하게 돼 신규 인원의 유입을 방해하게 됩니다. 이것을 ‘친목질’이라고 하는데,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상에서는 이 친목이 ‘친목질’로 악화되어 커뮤니티가 깨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으므로, 많은 네티즌들은 친목이라는 말을 들으면 몸서리를 치기도 합니다. 단, ‘친목질’은 그 친목이 폐쇄적인 쪽으로 굴러갈 때 사용하는 단어이므로 단순한 친목 행위와는 엄연히 구별됩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개인주의의 강세로 친목 자체를 꺼림직해 하고 죄악시 여기는 시선이 생기고 있습니다.
2) 친목(親睦) 단체의 종류 :
개인적인 친목을 넘어 사회로 확장된 친목 단체를 ‘사회 친목 단체’라고 하며, ‘친목을 도모하여 구성원의 화합을 통해 사회공공성을 지향하는 단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 친목 단체의 이름이‘동호회, 향우회, 동창회, 친목회, 계, 동아리’등으로 불리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친목 단체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협적입니다.
예를 들면 ‘등산 동호회’는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며, ‘호남 향우회’는 호남 사람들의 모임이며, ‘해병동지회’는 해병대 출신 사람들의 모임이며, ‘고대교우회’는 고려대학교 출신 사람들의 모입니다.
3) 세상 친목 단체의 목적과 한계
세상의 친목 단체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 친하게 화목하게 지내자는 목적으로 모입니다. 그런데 이런 목적으로 모이다 보니 ‘끼리끼리의 문화’가 생겨나고, 앞서 말한 ‘친목질’이 발생하여 자기 친목 단체만 옳고 바르다는 이기적이고 편협적이 됩니다. 또 같은 친목 단체 안에서도 파벌이 생기고 싸우게 됩니다.
동호회나 향우회, 동창회, 친목계 등이 그 목적 대로 서로의 친목을 다지든지 하면 좋은데, 어떤 정치적인 이익이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친목 단체를 이용하기도 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합니다. 우리가 ‘회식’이라고 하는 모임의 주목적은 친목 도모이지만, 의미가 변질되어 요즘은 ‘친목이 필요없는 사람들이 회식을 좋아한다 카더라’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친목 단체의 한계입니다. 자신의 취미, 고향, 학교 등에 따라 모이다보니 매우 편협적이고 폐쇄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모임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이해 관계나 정치적인 권력이 개입하게 되면 싸우게 됩니다.
2.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친교
이상에서 살펴본 세상 친목 단체는 자신의 유익과 친교를 위한 필요를 따라 가입하고 모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친교,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의 친교는 이런 세상적인 친교와 분명히 다릅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 교회의 예배드리는 모습과 친교를 보여주는 말씀으로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 공동체의 친교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참된 친교의 주인(주체)은 하나님이십니다.
지난 번에 살펴본 대로 오늘 본문 42절 “교제”가 바로 ‘친교’를 의미하는 헬라어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라는 낱말인데, 성경에서 말하는 “친교”는 이웃과의 만남과 교제라는 일반적인 친교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는 것이며, 이와 더불어 이웃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친교(교제), 곧 ‘코이노니아’는 ‘입으로만 사랑한다, 교제한다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동정하고, 관대하게 대하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선물이나 기부금 등 물질을 나누면서, 서로 연합하고 함께 하는 것인 동시에 서로의 생명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친교, 교제는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주며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도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실제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므로 자신의 사랑을 확정하셨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2-14)
실제로 우리 주님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므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사랑의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우리의 모든 친교의 주인(주체)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고, 죄로 말미암아 깨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하나뿐인 아들, 자신과 동등한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심으로 깨어졌던 관계, 즉 친교를 회복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목숨을 내어놓고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친교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6-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시면서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시고 참된 친교를 이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친교의 주인이심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성도들은 사랑도 나누고, 물질도 나누고, 생명까지도 나누는 이런 코이노니아의 본래의 의미를 회복해야 합니다. 성도의 생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성도들 간의 참된 친교(교제), 코이노니아입니다. 목숨을 내어주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 안에서 서로 교제함으로 서로의 짐을 나눠지고 위로와 격려가 되며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던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참된 친교를 나누며,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고 확장시켜 나가는 성도가 됩시다.
2) 하나님이 주인(주체) 되시는 참된 친교(교제)는 어떻게 완성될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의 본문은 참된 친교(교제), 곧 코이노니아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① 참된 친교는 경건한 예배를 통해 이뤄집니다(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왜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문제의 장(場으)로 전락하고 맡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답변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만,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예배’입니다. 진정한 예배의 능력 상실로 인하여,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지 못하기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질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초대 교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42절은 초대 교회의 예배 모습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모이면, ①“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설교와 교육, ②“서로 교제하고”=교제(코이노니아), ③“떡을 떼며”=성찬과 애찬, ④“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기도, 즉한 마음으로 합심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특별히 마지막 “힘쓰니라”(프로스카르테룬테스)는 ‘머무르다’, ‘충성하다’, ‘굳게 계속하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에 마음과 몸을 다 바쳐 매진한다’는 뜻입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주변의 살기등등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여서 참으로 열심히 모였고, 설교 말씀을 듣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고 기도하는 일, 즉 예배에 온몸으로 매진했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예배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친교의 주인도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은혜 충만한 ‘예배 공동체’가 되고 ‘친교 공동체’가 되려면, 하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잘 배우고, 그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열심을 다하여 예배드리고 찬양을 올려드릴 때 아름다운 예배와 친교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우리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기를 꺼려합니다. 희생을 강요하는 예배는 지금의 현대인의 체질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찬양할 때, 박수칠 때 힘껏 하십시오. 그 찬양 속에 임마누엘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 말씀 들으면서, 기도드릴 때 “아멘” 하십시오. 그러할 때 놀라운 역시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참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회복, 즉 친교가 이뤄질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존(비전), 꿈이 없는 예배를 통하여서는 결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예배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설교에 아멘 하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고, 열심히 기도하므로, 은혜 충만한 경건한 예배를 하나님과의 온전한 친교를 이루고 놀라운 역사와 권능을 날마다 체험하는 삶이 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② 참된 친교는 사랑의 나눔과 섬김, 돌봄을 통해 이뤄집니다(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44-45)
앞서 참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온전한 친교를 이룬 성도는, 이제 이웃과도 온전한 친교를 이룩해야 합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교인들은 입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또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나눠주므로 교회 안의 형제 자매들과 온전한 친교를 이룩한 “나눔과 섬김의 디아코니아 공동체”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제자 공동체”인 우리 하존교회가 이런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가 잘 이뤄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눈을 돌려 교회 안의 친교가 교회 밖으로 확산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봉사, 나눔과 섬김’으로 번역되어지는 헬라어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라는 말은, 우리가 식당에 갔을 때,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식탁에서 시중을 드는 것’, 즉 웨이터/웨이트리스(waiter/waitress)를 의미하는 말이며, 이에 더하여 ‘사랑에 찬 섬김의 수행’이란 뜻으로 사용되어집니다. 그리고 이 단어에서 집사(deacon/deaconess)가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친교가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초대 교인들은 어둠의 세력으로 인하여 잊어버리고 있었던 관계성의 회복을 되찾고,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일에 열심을 다하였습니다. 44-45절 말씀대로,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는”, 참된 친교와 나눔의 공동체를 이룩했습니다.
신학자 존 패턴(John Patton)은 ‘돌봄’이란 ‘기억’이라고 했습니다. 잊어버렸던 것을 기억해 냄으로 돌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묘사의 특징 중 하나도 자기 백성을 (끝까지)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기에 그냥 내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기억하시고 돌봄과 같이, 또 초대교회의 성령 충만한 그들의 아름다운 나눔과 섬김, 돌봄의 모습을 통하여 이제 우리도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했던 모습을 말씀을 통해 기억해 냄으로써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오해를 벗어버리고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를 돌봄으로 칭찬받는 교회가 됩시다.
③ 참된 친교는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정성스런 음식을 나누므로 이뤄집니다(42,46).
“서로 교제하며”(42),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46)
우리 옛말에‘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는데, 친교 역시 음식을 나누면서 더 깊어지고 좋아집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헤어지면 집으로 돌아가서는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면 참된 친교를 이뤘습니다. 그들은 성전 안에서나 밖에서나 진정한 교제가 있었던 ‘코이노니아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이 친교 공동체, 즉 코이노니아 공동체는 우리 하존교회가 이룩해야 할 목표 중의 하나입니다.
‘친교’ 혹은 ‘교제’를 의미하는 헬라어 ‘코이노니아’는 참으로 중요한 단어입니다. 계속해서 말씀드리지만, 코이노니아는 그저 인사나 하고, 악수를 나누면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코이노니아의 헬라어 원래 의미는 그보다 훨씬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헬라어 ‘코이노니아’는 ‘마음의 교제, 시간의 교제와 더불어 물질이 부족한 이웃에 대한 구제 헌금과 물질의 나눔, 감옥에 있는 이웃을 위한 헌금, 선교에 봉사하는 이웃을 위한 헌금, 더 나아가 자신의 생명까지도 나눠주면서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하존교회가 이러해야 합니다. 주중에도 교회에 자주 모이고 함께 중보 기도하고 음식을 나누며 교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서 같이 청소하면서 교회를 깨끗하게 하는데 많이 동참해야 합니다. 또 선교 헌금을 통하여 우리 주변의 교회와 이웃들을 돕고 섬기는데 더욱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날마다 같이할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입니까?바로‘사랑’입니다. 사랑에 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초대교회 공동체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역사, 곧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식어졌던 차가운 마음에 사랑의 불이 불붙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사랑이 이들의 마음을 날마다 하나로 묶는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또한 사람의 마음을 가장 뜨겁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 열기는 어떤 것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초대교회가 바로 그 사랑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사랑은 그 어떤 사람들의 마음도 하나로 묶어 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와 인종, 그리고 국경까지도 초월하여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회복은 교회를 아름답게 합니다. 또한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져 가는 세상에 교회가 사랑을 회복하여 성도들의 마음이 사랑으로 하나됨으로 무너져가는 교회의 위상을 다시금 세우고,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교회가 됩시다.
* 진정 가족이다 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하고 껴안아 주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서 말씀 드린 ‘사도들의 말씀을 들으며 은혜 충만한 예배 공동체, 사랑의 나눔과 섬김, 돌봄이 있는 디아코니아 공동체, 사랑이 충만한 진실된 친교를 나누는 코이노니아 공동체’ 등 세 가지는 교회를 형성하는 세 가지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통 교회의 세 요소를 헬라어로 ‘디다케,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라고 말하는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말씀의 가르침, 친교, 섬김(나눔)’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 교회의 기본 요소인 세 가지가 매우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④ 참된 친교는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선교를 통해 열매를 맺습니다(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
초대 교회 성도들은 참으로 진실 되고, 성결한 삶, 그리고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므로, 주변의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교회에 출석하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성령의 임재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게 된 예루살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자기의 재물과 재산을 팔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순결하고 기쁜 마음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함께 식사하며, 예배하고 기도함으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으며,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감을 샀습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 성도들의 경건은 고아와 과부 등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어서 당시 백성들 모두에게 인정과 칭송을 받았습니다(약 1:27). 그리고 교회는 날마다 부흥 성장해 갔습니다.
이와 같은 초대 교회 분위기는 당시 총독이었던 플리니우스(Plinius)가 트라얀(Trajan) 황제에게 보낸 서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박해로 인해 비밀리에 모이는 기독교 공동체를 은밀히 조사해 본 후에 ‘그들은 법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는 모든 조사를 통해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윤리적 삶이 칭송받을 만했음을 로마의 정치가로서 입증시켜 주었습니다. 이처럼 성령 충만한 성도는 세상의 법을 초월해서 살게 되므로 온 백성의 칭송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백성들에게 욕을 당합니다.
제가 늘 말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비결은 교회와 성도들에 관해서 ‘좋은 소문’이 나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소문이 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교회 성도들이 정직하고 진실하며 사랑과 나눔이 넘치는 성실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으면 안됩니다. 강남의 대형 교회의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했지요.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리숙하다는 소리 들으면 그 교인은 제대로 된 교인’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양보하고, 베풀고, 나누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교회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할 때 그 교회는 좋은 소문이 날 것이고 그 칭찬받는 성도들을 바라보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좋은 소문 나는 교회의 성도들은 교회가 좋은 소문이 나기 위해서 세 가지 자랑을 해야 합니다. 늘 말씀드리지요 ‘하나님 자랑, 교회 자랑, 목사 자랑’하면 교회는 좋은 소문 나고 부흥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 교회 장로님, 안수집사님, 권사님, 집사님,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최고’ 라는 소문과 칭찬하는 소리가 나게 되면, 초대 교회처럼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하존교회를 출입하는 모든 분들이 정말 편안하게 신앙생활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우리 교회가 많이 부족하고, 가야할 갈 길이 멀지만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나누므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합시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두 가지에 직면하게 되는데, 하나는 사탄(마귀)의 세력들과의 영적 전투이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선교(전도)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므로 생명을 살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온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으므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늘어갔듯이,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파주 시민들로부터 칭찬받고, 우리 교회가 좋은 소문이 나므로, 우리 교회가 생명을 살려나가는 구원의 방주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합시다.
III.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참된 친교, 코이노니아는 ‘입으로만 사랑한다, 교제한다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동정하고, 관대하게 대하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선물이나, 기부금 등 물질을 나누면서, 서로 연합하고 함께 하는 것인 동시에 서로의 생명을 나누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참된 친교, 코이노니아는 ① 경건한 예배를 통해, ② 사랑의 나눔과 섬김, 돌봄을 통해, ③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정성스런 음식을 나누므로 이뤄지며, ④ 이 참된 교제의 결과,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선교를 통해 열매를 맺는다 고 말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친목 단체와 다른 점입니다. 세상 친목 단체는 자신의 유익과 관심에 따라 모여서 서로 친교하는 것이지만, 성경에서의 친교는 하나님이 주체가 되시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친교하는 것입니다. 어떤 파벌이나 파당이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 성경, 교회에서 말하는 친교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D.L. 무디가 시카고에서 집회를 할 때 이야기입니다. 운동장에서 야외 집회로 하는데 강단에 올라선 무디는 하늘을 향해서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베드로 선생님, 거기 하늘 나라에 장로교인이 몇 명이나 됩니까?” “장로교인은 한 명도 없다.” “그래요. 그러면 감리교인은 몇 명이나 됩니까?” “여기는 감리교인도 없다.”
“아니, 그러면 침례교인은 얼마나 됩니까?” “침례교인도 없다.”
“그러면 거기는 도대체 누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있습니까?” “여기는 회개하여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만이 있는 곳이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파를 따지는 곳이 아닙니다. 서로가 다르다고 다투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면서도 서로 다투고 시비하다가 하늘 나라에 가면 주님의 얼굴만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기 싫어하던 사람과도 얼굴을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어 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리 믿는 사람들끼리 하나가 되지 못한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참된 친교와 화해를 이루지도 못하면서 천국에서 가서 주님 앞에 설 명분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교회 안에서 참된 친교를 이뤄가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구체적으로 몇 가지 제안을 합니다. ①교회 들어오시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샬롬’이라고 인사해 주시길 바랍니다. ②만약 새 가족이나 자주 출석하지 못하는 분이 오셨다면 모든 교인들이 다 찾아가서 인사하고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③교회 내에서의 호칭은 ‘형님, 누나, 언니’ 등 세상적인 호칭이 아니라 ‘장로, 집사, 권사, 형제, 자매’ 등 직분 중심으로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④교회가 하는 모든 예배, 전도, 선교, 봉사 등에 더욱 열심히 참석해서 자연스럽게 친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이웃들과 서로 사랑하며 참된 친교, 코이노니아를 이룩하고 천국에서 완성될 그 날을 바라보며 소망 중에 달려갑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친교는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예배를 통해, 서로 필요한 물질을 나누는 사랑의 나눔과 섬김, 돌봄을 통해,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정성스런 음식을 나누므로 이뤄집니다. 그리고 이 참된 교제의 결과,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선교를 통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주인(주체)이 되시는 참된 친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고, 생명을 살리고,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나눠주는성도님들 다 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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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8일(주일) 주일 2부예배 facebook 실시간 송출한 동영상 url 주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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