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이중성 Duality of the Gospel (벧전2:4~9)
논지/ 예수님은 겸손히 순종하는 자에게는 머릿돌, 교만히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거치는 돌이 된다.
목표/ 나는 말씀을 듣는 이들이 믿는 자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머릿돌 위에 멋진 집을 짓도록 돕겠다.
우리는 집을 짓는 자입니다.
마치 영국 전래동화의 아기돼지 삼형제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각각 지푸라기, 나무, 벽돌로 집을 지었습니다.
그 재료의 견고성에 따라서 쉬 날아가기도 하였고, 견고히 버티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원류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믿는 이들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재료들은 불로 시험을 받을 것인데 이후의 잔존여부에 따라 상이 다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터 위에 집을 세울 것이냐 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모래 위에 세운 집과 반석 위에 세운 집을 비교합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은 홍수가 날 때에 떠내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것으로 세운 공든 탑도 더 심하게 무너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세운 집은 그 때에도 든든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함을 입은 '산 돌'이라고 말씀합니다(4절).
그런데 이 '산 돌'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산 돌'을 믿음으로 잘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모퉁이돌, 즉 기초석이 되어서 튼튼한 집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산 돌'을 거부하는 자들은 오히려 부딪쳐서 걸려 넘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이 세상과 영원에 이르는 인생이라는 집의 튼튼한 근거로 삼고 있습니까?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이제 여러분의 믿음과 그 행위에 해당되는 금, 은, 보석으로 아름답게 집을 지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별하신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예배하고(예배자), 세상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자(전도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영광, 우리에게 평화, 세상에 복음이 되길' 기도합니다.
첫댓글 (관찰) 1. 같은 ‘산 돌’이 순종 여부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나요?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해석) 2. 왜 예수님을 인생(지금부터 영원까지)의 집에 머릿돌로 삼는 것이 중요할까요?
집을 지을 때 기초가 든든해야만 그 위에 짓는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수고를 제대로 보상 받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예수님을 인생의 기초석 삼아야 합니다.
(적용) 3. 예수님이 인생의 머릿돌(기초석)으로 삼았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름다운 집을 제대로 지어야 합니다. 좋은 재료로 정성껏 지어야 합니다. 그 좋은 재료가 예배자로, 전도자로서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입니다.
536장 죄 짐에 눌린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