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에 관한 시모음 17)
갈대꽃 사랑 1 /박덕중
갈대는 한없이
흔들리고 싶네
몸부림치고 싶네
바람의 품에 안겨
흐느끼고 싶네.
江門밖 오지 않는
바람님
갈대는 한밤중
서럽게 서럽게
풀벌레 되어 우네
갈대 /홍관희
모랫바람 설치는 늙은 강마을
소문도 없이 갈대의 울음이 온 마을을 적셨다
강변에 큰 길이 뚫리면서
서둘러 길떠난 사람들 돌아오지 않고
우리의 노래는 앞산에 부딪혀 돌아오곤 하였다
반딧불 잡으려고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자라
서울식 반딧불 잡으러 떠나버린 마을
녹슨 삽과 호미가 하나 둘 버려져 쌓이는 강변에는
무덤처럼 을씨년스런 바람만 잉잉거리고
해거름이면 아이들이 강물에 돌을 던지며 신났다
모랫바람 아우성치는 어지러운 강마을
큰길 밀고 들어온 고무공장이 마을을 삼키자
우리의 외길 인생은 갈 곳이 없어졌다
다발로 묶여 트럭에 실려나가는 갈대
그 울음만이 갈대밭에 낭자하게 깔려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버리고 싶은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이던가
갈대의 울음소리에 빨리 눈뜨지 못한
어눌한 우리의 지난 세월이
강물에 휘감기며 허물을 벗고 있었다.
갈대의 고백 /송암 김관형
신록이 짙은 왕성한 계절 꽃바람 속에
늪에서 신나게 솟아 무성한 갈대
암팡지게 자라 공간을 실컷 휘젓지만
알토란 열매가 풍성한 가을이 왔는데도
서슬 이는 서리 발에 매 말라 흔들린다
창백한 달빛이 아련히 내리는 밤이면
지난날의 바람이 꿈결 같이 사라져
갈대밭에 숨어 우는 바람소리마저 서럽다
해맑은 하늘에도 먹구름이 끼고
비오는 날엔 풀과 나무가 더욱 활기차다
숨결은 나름대로 웃고 슬픈 일이 생긴다
황혼이 어스름 노을에 갈대처럼 된다고
시름에 젖은 궁색한 마음이 아련할지라도
피땀적시면 소망의 열매가 여무는 가을에
목마른 숨결도 꿈이 익어 풍만해 진다.
갈대(을숙도) /전성호
느즈막이 머리에 흰 수건을 덮고 고백한들
맑은 하늘 아래에선 치욕이다
푸른 꿈 이미 지난 시간 속에 묻혀도
남은 시간은 하늘 위해 노래해야 한다
물꼬챙이 푸르게 자랐던 강가,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한줄기 홀몸이 될 때까지
햇빛 부스러기 하나 뿌리친 적 없었다
상류로 강바람 불 때에도, 물결 일어나는 대로
기다림과 평정 속에서만 살았다
뒤슬뒤슬 헛웃음치며 지내온 날들이
내 푸르름을 읽고
기억되기를 원했던 것조차
부끄러운 청하늘만 가까이 와 있다
나는 나대로 길이 있을 거라고
웅성대는 바람소리에
하얀머리 굼실굼실 답한다
나는 찬 물가에서 몸을 비빚대며
어둠 속으로 걸어갈 때
하늘 갈매기 문자를 바라보는
을숙도는 서쪽 큰 별 뜨기만 기다린다
갈대와 억새 /정연복
젊음이 아직
꽃 피어 있을 때는
남자는 억새 비슷하고
여자는 갈대 같다.
세월의 강물 따라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남자는 갈대를 닮아가고
여자는 억새에 가까워진다.
남자는 차츰 여성화
또 여자는 남성화를 거치면서
둘 다 하나의 성숙한
사람으로 완성되어 간다.
비 내리는 갈대숲에서 /홍수희
내가 흔들려도
너는 흔들리지마라
네가 흔들려
나 덩달아 흔들리고 있으니
내가 흔들려
너 덩달아 흔들리고 있으니
비에 젖은 생각들이여,
인제 그만 휘청거리고 싶다
갈대밭의 봄 /염을열
4월, 순천만
갯벌 위에 펼쳐진 갈대밭
모내기 끝난 무논처럼 새순이 파랗다
흔들리는 것이 본성인 갈대
숨 새근대는 아직은 어린 몸
갯벌을 딛고 바로 서는 연습 중이다
성긴 갈대 사이
따스한 햇볕이 녹아들고
검게 드러난 바닥이 시선을 끈다
게 짱뚱어들 부산하고
도요새 검은머리갈매기는 외출 중인데
휘어진 갯골에서 반사된 햇살이 눈부시다
지난가을 흰머리 날리며
온몸 흔들어 신나게 춤출 때
데크 위 관광객들 박수로 화답했다
지금은 숨죽이는 어린 갈대
팔다리에 힘이 실려 하늘로 키를 세울 때
갈바람의 음률에 맞춰 한바탕 뜨거우리라
갈대 /김 림
무딘 칼날에도 마음을 베이고
실날같은 바람에도
기우뚱 몸이 기울던
나는
갈대였습니다
한번에 제 몸 꺾지도 못하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바람결에 삶이 기우는
가만,
만져질 것 같은 바람에
몸을 기댔습니다.
센 소리를 휘감아
저만치 가는 바람
힘없이 배웅하고 돌아섭니다
잘 가라고,
부디 잘 가라고
선 자리에서 평생을
슬픈 손짓만 내젓는
나는
갈대입니다.
지조의 갈대 /박태강
하늘 거리는 억새
흔들 거리는 갈대
머리 맞대고
와시락 와시락 소리내며
나라 잃은 서러움
몸으로 느껴
세찬 북풍에도
견디어 온
투사들
마음을 모아
연약한 몸 흔들어
일어서는 애국심
머지 않은 날
잃은 나라
봄은 다시 찿아 오려만 !
갈대 독서법 /이소율
눈부신 섬진강 물이랑도
어제의 물방울이 아닌 것을 읽은 갈대
맨 먼저 서두른 일은 마음을 소각하는 일이었다
지리산 칠백 리 휘돌아 나온
섬진강 강물에 머리를 감고 감아
다시 써도 지워지지 않는 갈대의 모진 이력
눈보라에 뺨 맞아도 울대에 꽃심을 가두어
흔들릴 뿐 생각하지 않는다
허리 휘면 휘는 대로, 목이 꺾이면 꺾이는 대로
노래 할 뿐 기도하지 않는다
뱀사골 골골 사연 몰아 온
섬진강 물살이 지어낸
수만 장 물소리 설법을 터득한 갈대
맨 먼저 서두른 일은 꿈을 지우는 일이었다
돌아보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떠나는 물방울들
언젠가는 바다에 이른다는 것을 읽었기에
갈대는 처세를 궁리해본 적이 없다
뭇 생명을 품어 안는 것이 의무라는 듯
삶에 조바심치지 않는
섬진강 갈대 도서관 문동이들
갈대 /허정인
백발이 되었어도
살랑이는 사랑스러움,
어떻게 살았느냐
물었더니
바람과 벗이 되어
욕심을 버렸노라 답하네.
갈대들의 합창을 듣노라니 /신성호
가을햇살이 쏟아지는 갈대밭
소슬바람이 쉼없이 불어 온다
쉬이익 하며 스치는 바람소리에
사각사각 갈대들은 장단을 맞춘다
갈대밭은 한바탕 음악회가 열리고
지나가던 갈매기도 한 음(音)을 더하니
나 또한 즐거운 콧노래가 절로나와
"아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혼자만의 낭만과 사색에 빠져 본다
하늘은 진한잉크를 뿌려 놓은 듯
온통 한가지로 해맑은 쪽빛하늘이라
이모양 저모양의 흰구름들은
보기좋게 구색을 맞춰 떠 있으니
갈대밭과 쪽빛하늘 흰구름이 하나되어
너울대는 물위에 비춰진 그 모습은
한폭의 수채화요 보기좋은 명화(名畵)로다
이 좋은 만추(滿秋)의 아름다운 가을날에
흐드러진 갈대들의 합창을 듣노라니
한없는 기쁨이요 지절(之節)의 환희로다
갈대의 시 /김선태
황량하다고 너는 소리칠래
버릴 것도 추스를 것도 없는 빈 들녘
바람이 불면 외곬으로 쓰러져 눕고
다시 하얗게 흔들다 일어서는 몸짓으로
자꾸만 무엇이 그립다 쉰 목소리로 오늘도
그렇게 황량하다고 너는 소리칠래
소리쳐 울래.
외롭다고 너는 흐느낄래
만나는 바람마다 헤어지자 하는 겨울
지금은 싸늘히 식어버린 사랑이라고
메마른 어깨마다 아픔으로 서걱이며
떠는 몸짓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오늘도
그렇게 외롭다고 너는 흐느낄래
흐느껴 울래.
갈대가 손짓하는 가을 /박소정
깊고 파아란
가을 하늘이 손짓 하길래
코스모스 꽃바람에 동승하여
갈대숲에 여행을 갔습니다
백로도 왜가리도 우아한 날개짓에
개울가에 사뿐히 내려앉는 좋은날
만나고, 걷고, 이방인들 속에서
평범한 일상이 추억으로 남고
맑은 하늘에 흰구름 뭉게뭉게
은빛 갈대는 마음을 흔들어 놓고
노을이 전하는 가을엽서 한통에
저무는 일몰을 바라보며
아쉬운 하루를 어둠속에 보내고
돌아서는 발길은 미련만 남았으니
가을은 누구나 낭만과 사색을 안고
멀리 떠나보는 보헤미안 여행입니다
갈대 /초야 박상종
언제나 고개를 숙이는
어리숙한 모습을 사랑하려 한다
바람이 불어오면 쓰러질 듯
일어서는 너를 사랑 하려 한다
세찬 비 바람에 몸이 닳고
뼈가 으스려져 갈 아픔이라도
뭇네 일어서 버리는
너를 사랑 하려 한다
진흙탕 속에 네몸이 갇히고
숨이 막혀와도
가난한 이의 아픔을 너는 아는지
일어서는 너를 사랑 하려 한다
발길에 체인채로 몸이 부서져
뉘인체로 고개를 떨구고 선
일어나지 못하는 너를
진정으로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