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산 지역 부륵배기 -> 갈월동
간뎃말 -> 동빙고
아랫골 -> 서빙고
간 골 -> 이태원
새나룻터 -> 이촌동
개건넛말 -> 한남동
귀바위골 -> 효창동
구텁바우 -> 후암동
종 로 지역 청석골 -> 청성동
회나무골 -> 괴 동
비앗골 -> 관수동
갓전골 -> 입 동
소금골 -> 염 동
신댓골 -> 신대동
마전골 -> 태평로
갓전골 -> 종로3가
두다릿골 -> 종로5가
이처럼 왼쪽의 원래 지명은 바로 우리의 조부모세대까지그대로 음성으로 불렸던
것이며 문자로 기록된 것이 절대 아닙니다..또한 그지역 고유 문화나 음식들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이지 결코 대륙의 문화근처에도 갈수는 더욱 없지요
그러던것이 일제에의해 이렇게 구획정리가 되고 개화기초 저희들이 한자명칭으로
바꾸어 표기했습니다. (그것도 몇번에 걸쳐)
계속 보겠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 에나오는 한성의 풍경
동쪽으로 양양에 이르기 540리
서쪽으로 풍천에 이르기 600리
남쪽으로 해진에 이르기 980리
북쪽으로 여영에 이르기 1470리
동북으로 경원에 이르기 2190리
동남으로 동래에 이르기 870리
서남으로 태안에 이르기 390리
서북으로 의주에 이르기 1140리
이것은 당시 조선의 수도를 가르키는 것으로서 한반도를 가르키는 것이
절대 아니며 당시 제국의 수도가 얼마나 큰 것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시 서양 오랑캐들은 도시국가 조차 갖추지 못한 때입니다..
그증거를 보겠습니다..
양양->고조선때부터 군 이었으며 웅주,포주,양주라는 대륙측 지명으로 불렸다고
"중국 지명사전" 에 나와있다고 합니다.
풍천->이곳은 물이 풍부한곳. 즉 황하 서쪽 지역을 가르킨다고 합니다..
해진->세종실록지리지 에 해진군은 전라도에 있는 땅으로 백제의 인진도군이며
신라가 무안으로 바꾸었다가 뇌산 땅에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뇌산"이라고 하는것은 대륙 호북성 뇌산현 이었다가
지금은 무한 위쪽 안육이란데서 찿을수 있다고 합니다..
여영->"세종실록" 지리지 "길주목" 편에 여영은 삼해양 이라 하여 여진족에게
빼앗긴것을 고려 장군이 되찿았다고 하는데요.이것은 한반도에서는 도저히
일어날수 없는일입니다..이렇듯 일제가 아무리 편집을 해도 어딘가는
헛점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경원->조선조 태종때 알타리족 추장 동맹가첩목아 가 이지역의 패권을 차지했다고
알목하 또는 오음회 라고 불렀다는데 이것은 몽고 쪽을 가르키는 말이지
한반도는 절대 아닙니다..
동래->이곳은 "세종실록지리지"에서 경덕왕때 양주의 관할아래 두었다고 했는데
이곳은 맨위 양양에서 밝혔듯이 중국 지명사전에서 하남성 지역을 가르킨
다고 합니다.
태안->이것은 보통 대륙의 태백산자락을 말하는것입니다..
의주->"고려사 지리지"에 이곳의 아랫쪽에 "마자수"라는 강이 흐른다고 하는데
이강은 개마고원 지역에 위치한 것이지 한반도와는 무관합니다..
이렇듯 일제가 아무리 날조를 해도 어딘가 허점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지면 관계상 조선의수도인 한성에 국한해서 자료를 올렸지만
위의 두가지 예를 통해서 지금 한자화 되어있는 지명들이 얼마나 허구인지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유적지또한 한반도가 대륙의 변방인만큼 그들과
비슷한 유적지는 있게 마련입니다. 일제시대에는 이땅에 대대적인 토목공사가
오랜세월에걸쳐 조직적으로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얼마전 뉴스에서 대륙지방에 있는 신라인
들의 유적지가 발견된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큽니다..유물들 또한
중요자료들이 이미 오래전에 발굴된것인 만큼 그들이 그걸 실제발굴 했는지
어디서 가져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또한 풍습은 그곳의 풍습일 뿐이지
역사가 될수 없고 역사의 중요한 진실은 장소를 통한 고찰입니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태조왕건이나 전에 방영되었던 태조 이성계 는
이렇듯 일제가 만들어 놓은 각종 서적들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리 에게 마치 이역사가 진실인양 받아들여진 겁니다.
이제 전반적인 모든것에 대한 대검토가 절실히 필요할때가 온것같습니다.
혹시 이글로 인하여 오해가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