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런 선생이 말년에 거치하며 여생을
보냈던 화실이다
들어가는 입구
진도의 최고봉 첨찰산은 쌍계사와 운림산방을 감싸고 있다
정상에는 봉화대가 남아있다
허련선생님 생존에 작품할동 하시던곳
바나나 나무
전시관 앞
연못
산감나무에 홍시가 있어
공원조성시 빡빡하게 심어진 나무가 별로없어
여백미가 최고로 많은 잔디 공간이다
허련 선생의 작품
운림산방은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남화(南畵)의 대가이던 소치(小癡)허련(許鍊)이 만년(晩年)에 기거하며 작품을 제작하였던 곳으로, 사랑채인 화실의 당호(堂號)이다. 허련이 49세 때인 1857년(철종 8)에 귀향하여 건립한 것이다.허련은 시(詩), 서(書), 화(畵)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칭송되었는데, 20대에 대흥사(大興寺)초의선사(草衣禪師)와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워 남화의 대가가 되었다. 특히 헌종의 총애를 받아 임금의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으며, 왕실 소장의 고서화(古書畵)를 평하기도 하였다. 허련은 고부 현감(古阜縣監)을 거쳐 무과에 합격하고 관직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대표작으로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 「완당선생해천일립상(阮堂先生海天一笠像)」 등이 있고, 『몽연록(夢宴錄)』 등의 저서가 있다
남도진성
조선시대 왜구 노락질을 막기위해 수군과 만호를 배치하여
조도해협과 하의도해역을 관할하였다
첫댓글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좋은 곳 다녀오셨군요..
좋은곳 다녀오셨네요
첨찰산 다녀온지도 몇년 지나버렸네요
덕분에 추억소환 합니다
늘 건강하시길요
가끔은 자연과함께 하심이 여유롭습니다
집에있기 답답하니 가까운 중심사 만연산
데크길 자주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