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스틸 대표이사·일본교우회장
최상영(경영69) 교우
개인적 성취를 넘어서 사회와 상생하는 삶 추구
재일교포 3세인 최상영 교우는 일본에서 영스틸을 창업해 굴지의 철강무역회사로 키워냈다. 성공한 기업인에 그치지 않고 한일 민간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재일교포의 권리 증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교우회에서 2009년 특별공로상과 ‘올해의 교우상’을, 2018년에는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받았다. 올해 명예박사를 수여받으며 교우에게 주어지는 영예를 모두 얻었다. 지난달 명예박사 수여식을 앞두고 최 교우를 만나 재학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삶의 궤적을 들을 수 있었다.
풍요롭고 알찬 재학시절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떤 연유로 모교에 입학하게 되었을까. 와카야마 지역 한인사회의 대표 역할을 하던 그의 할아버지는 조국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6·25가 터지자 아들 둘을 유엔군 지원병으로 참전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가정환경 속에서 청소년기의 최 교우는 60년대 초 일본 언론에 보도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 소식에 큰 관심을 가졌다. 민족을 위해 세워진 학교라는 점이 좋아서 모교를 선택했다는 최 교우는 4년의 재학시절을 다양한 활동으로 채웠다. 수영에 남다른 재능이 있던 최 교우는 국가대표 수영선수로도 활동한 바 있다. 모교에 재학 중인 재일교포 유학생을 모아 ‘호동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모교에 있는 동안 서로 도우면서 최대한 많이 배우고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작은 조직이었는데, 점차 타 대학 학생들도 참여하면서 전국적인 조직이 됐죠.” 4·19혁명에 감명 받았던 그는 데모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모교에서 특별한 인연도 맺었다. 평생의 반려자인 박귀원(불문70) 교우를 만난 것이다. 최 교우는 졸업하자마자 아직 학업을 마치지 못한 박 교우를 데리고 일본에 돌아가 결혼식을 올렸다. 박 교우에게 생활이 안정되면 꼭 다시 복학시켜주겠다던 약속은 20여 년이 지나 지켜졌다. 박 교우는 2001년 졸업했다.
기업 이익뿐 아니라 사회적 공헌이 중요
졸업 후 최 교우는 가업인 건축업을 잇는 대신 철강회사에 입사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재일교포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인과 똑같이 해서는 한국인의 존재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일본인보다 더 많은 시간 열심히 일했습니다.”
최 교우는 20년 간 다녔던 직장이 도산하자 철강무역회사 영스틸을 창업해 현재 연매출 6000억 원을 상회하는 큰 회사로 키워냈다. 그는 기업의 이익창출에 못지않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 공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해왔다.
“제 부모 세대는 파친코 운영이나 고리대금업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차별받고 억압받았죠. 외국인이라도 훌륭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일본 사회 내에서도 한국인과 일본인이 상생하며 발전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 교우는 한일 민간 교류에 가교 역할을 자처한 것은 물론 재일 민족학교 네 곳에 장학금을 후원해 다음 세대가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04년에는 재일교포들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해 재외국민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12년부터는 재일본 대한체육회장을 맡아 일본 내 우수한 체육 인재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일본에서도 고대정신 이어가
최 교우는 일본에서도 모교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글로벌 인재 장학금, 국제화 기금, 미래노벨상 기금 등 다양한 발전기금을 기부했고, 2002년부터 올해까지 22년 동안 일본교우회장을 역임하며 해외교우회의 수장으로서 모범적인 활동을 펼쳤다. 2003년부터 시작된 와세다대학교우회와 고대교우회의 교류협정도 최 교우가 힘쓴 덕분이다. 또한 모교 럭비부 선수들이 럭비 명문인 와세다대학 선수들과 함께 훈련받을 수 있도록 전지훈련 비용을 대기도 했다. 이후 모교 럭비부 선수들의 기량이 눈에 띄게 좋아졌으며, 매년 모교-와세다 친선 경기를 치르고 있다.
“아버지께서 항상 돈은 더럽게 일해서 벌고, 쓰는 것은 깨끗한 데 쓰라고 하셨어요. 열심히 땀 흘리며 벌어서 좋은 곳에 쓰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거죠. 그 좋은 곳이 제게는 모교입니다. 졸업한 뒤에도 모교에서 배운 고대정신은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이번 명예박사 수여에 대한 소감을 묻자 최 교우는 “부족한 제게 왜 박사학위를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모교에 많은 일을 하라는 뜻에서 준 거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라며 사회적 환원을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지원 편집장
모교 발전과 교우 화합에 기여한 공로 인정받아 명예박사 수여
해외교우회 본보기 제시
후배들을 위한 아낌없는 지원
최상영(경영69) 교우가 지난달 22일 모교 백주년기념삼성관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날 행사에는 김병철·염재호·정진택 전 총장과 승명호 교우회장, 최 교우의 수여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69동기회 교우들, 일본의 가족들과 교우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최 교우는 영스틸을 경영하며 철강 무역으로 한일 경제 교류에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과 2009년 상공의 날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바 있다. 재일본 대한체육회장으로서 체육 인재 발굴과 다양한 후원 사업을 펼치며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최 교우는 일본교우회장에 선임된 이래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조성에 꾸준히 힘을 보태고 있으며, 와세다대학과 모교의 우호 관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모교는 작년 최 교우를 모교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김동원 모교총장은 “최상영 일본교우회장님의 뜻을 따르며 모교도 미래 사회에 공헌하는 인재를 양성하는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최 교우는 “제가 기업이나 사회에 이바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룬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진실한 마음으로 기부를 이어 가겠다”고 답했다.
박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