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머리에 이고 섬진강을 허리에 두른 전남 구례땅. 발 시린 계곡물과 낚시나 물놀이(래프팅) 하면서 힐링하기 좋은 강, 그리고 녹음 무성한 훤칠한 산. 구례는 이런 자연조건을 두루 갖춘 명품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구례가 간직한 강, 산, 들, 계곡은 생태계의 보고다. 특히 섬진강은 오밀조밀한 물줄기를 따라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간다. 동서남북에서 흐르는 물길은 저 남해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구례 섬진강 래프팅#자연을 품에 안은 고색창연한 절집
상쾌한 들바람을 마시며 섬진강을 따라간다. 구례구역이 있는 읍내에서 문척교를 건너 죽마리로 방향을 잡는다. 오산(해발 531m)으로 가는 길이다. 오산의 오(鰲)는 ‘자라’를 뜻한다고 한다. 지리산을 마주보는 자라 모양의 산이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리 높지 않은 이 산 중턱에는 사성암(四聖庵)이란 절집이 있는데 원효, 의상, 도선국사, 진각국사 등 4명의 고승이 이곳에서 수도했다 해 사성암이라 불린다.
이름만 봐도 범상치 않은 절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진각국사가 참선했다는 좌선대를 비롯해 도선국사가 풍수지리를 연구했다는 도선굴,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다는 마애약사여래불 등 고승들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다섯 개의 작은 불상이 있는 약사전으로 오른다. 푸른 구례 들녘과 치맛자락처럼 흘러가는 섬진강, 그리고 넓고 큰 지리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가슴이 탁 트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도 아름답다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일몰을 못 본 게 아쉽다.
일몰은 섬진강을 물들이며 순천 쪽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사성암 외에도 오산 여기저기엔 풍월대·망풍대·배석대·낙조대·신선대 등 비경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사성암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매우 가팔라서 일반 차량은 통행이 어렵다. 사성암 휴게소에 주차를 하고 암자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휴게소에서 암자까지는 5.4㎞.
화엄사 각황전다음으로 간 곳은 천년고찰 화엄사다. 읍내에서 5㎞ 거리에 있다. 544년(백제 성왕 22년)에 연기 조사가 창건한 절로 경내에는 국보로 지정된 각황전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재와 20여 동의 부속건물이 앉아 있다. 일주문을 지나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천왕문이 나오고 보제루(普濟樓)와 대웅전, 그리고 동 서로 두 개의 탑이 서 있는데 그 위로 웅장한 각황전이 자리하고 있다.
각황전은 현존하는 목조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내부는 하나의 방으로 이뤄져 있으며 천장은 우물 정자 모양이다. 각황전 앞뜰에 서 있는 석등(국보 제12호)은 통일신라시대 불교 중흥기의 유려한 조각예술을 보여준다.
절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노고단까지 오르는 길은 이맘때가 가장 아름답다.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는 7㎞, 천왕봉까지 가는 지리산 종주길은 32.5㎞에 달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다.
#온몸에 생기를 불어넣는 지리산 봉우리
지리산으로 향하기 전 산수유마을(산동면 위안리)에 잠시 들러본다. 때가 때인지라 산수유꽃은 볼 수 없지만 대신 편안한 모습의 마을 전경을 바라보며 발 담그고 놀기 좋은 계곡이 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지리산에서 내려온다.
봄이면 산수유꽃이, 가을이면 산수유 열매가 마을을 온통 노랗게 붉게 물들이지만 여름도 나름대로 멋있다. 우리나라 산수유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이 마을에서 나오는데 산수유밭만 30만평이니 그 넓이를 미뤄 짐작할 수 있겠다.
산동면 소재지인 원촌마을 위쪽에는 물줄기가 우렁찬 수락폭포가 있다. 마치 하늘에서 은가루가 쏟아지는 듯한 폭포수를 맞으면 신경통, 근육통, 산후통에 효험이 있다 해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구례10경에 들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 폭포는 지리산 깊은 골에서 굽이굽이 흘러온 물줄기가 높이 15m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데 소리만 들어도 땀이 싹 가신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넓은 암반은 물맞이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어른 네댓 명이 한꺼번에 들어서도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노고단 들머리의 천은사이 여름 지리산 등반은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해서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에 몸을 싣는다. 이 나라에는 수많은 길이 있지만 산악을 낀 길은 그 품격이나 미학이 한층 돋보인다. 지리산의 한 줄기인 노고단길도 그중 하나. 노고단길은 천년고찰 천은사를 지나면서부터 그 진면목을 보여준다.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은 아흔 아홉 고개의 저 옛 대관령길을 연상시킨다. 나무숲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마시며 20분쯤 오르면 노고단(1,507m) 들머리의 성삼재에 닿는다. 성삼재에서 내려다보는 저 아래 골짜기 마을이 운무에 덮여 신비롭다. 하늘은 더없이 파란데 산과 들은 안개에 휩싸여 또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다.
성삼재를 넘는 길이 열린 후 한층 가까워진 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으로 꼽힌다. ‘한국의 알프스’답게 언제 찾아도 독특한 풍광을 보여준다.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이자 북쪽으로 심원계곡과 뱀사골을 끼고 있고 남쪽으로는 화엄사 계곡과 문수 계곡, 피아골 계곡과 닿아 있다.
노고단은 또한 야생화의 보고다. 어떤 사람들은 ‘구름 위 꽃밭’ ‘하늘의 화단’이라 부르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철따라 온갖 꽃들이 피어나 자연생태를 연구하려는 학자들도 많이 찾는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어른 걸음으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성삼재에서 길은 남원, 함양 방면으로 열려 있다. 이쪽으로 쭉 내려가면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심원마을을 거쳐 뱀사골로 가게 된다. 반야봉과 노고단이 감싸 안은 심원마을은 해발 750m의 산협에 자리하고 있다. 고도가 높아 한여름에도 모기가 없다는 청정마을이다. 마을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태고 적 모습 그대로다. 지리산 도로가 뚫리기 전(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오지 중 오지였지만 지금은 승용차가 마을 안까지 들어간다. 심원마을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피서지로 유명한 뱀사골이 나타난다. 반선~와운마을~요룡대로 이어지는 코스는 담과 소가 어우러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피아골
뱀사골 반대편에는 지리산의 또 다른 웅장함을 보여주는 피아골이 숨어 있다. 이곳도 여름에는 꽤나 붐비는 곳이지만 인적 없는 호젓한 공간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피아골의 옛 이름은 피밭골. 옛날부터 이곳에서 곡식의 하나인 피를 많이 가꿨던 데서 유래했다. 지금도 피아골 입구에 직전(稷田)이란 마을이 있어 이 유래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거하고 있다.
피아골계곡 초입에 들어선 연곡사에 잠시 들른다. 절집 특유의 고즈넉함이 온몸을 감싼다. 연곡사는 543년에 화엄사의 연기조사가 창건한 고찰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법당이 소실됐지만 동부도, 북부도 등 국보 2점과 보물 4점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절 마당에서 올려다보는 지리산은 헌걸차다. 사철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지리산의 위용은 언제 봐도 기개가 넘친다.
절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쉬엄쉬엄 오르노라니 별세계에 와 있는 듯하다. 길은 직전마을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계곡의 아름다움은 연주담, 통일소, 삼홍소, 피아골산장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이곳들은 직전마을에서 1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피아골은 우리 역사의 아픔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빨치산과 군인들이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수많은 사람이 피아골에서 희생 당했다. 피아골에서 나와 섬진강을 끼고 달리다 구례읍 못미처에 이르면 운조루(토지면 오미리)를 알리는 입간판을 보게 된다. 조선 영조 때(1776년) 유이주(柳爾胄, 1726~1797) 선생이 지은 반가(班家)로 현재 그의 10대손이 살고 있다. 옛날에는 솟을대문 좌우로 붙어 있는 행랑채만 각 12칸이나 됐을 정도로 웅장했다고 한다.
구례오일장구례읍내에서 15분 거리인 자연드림파크(naturaldreampark. co.kr )도 새로운 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식품공방, 물류센터, 영화관, 펜션, 북카페 등 식품 시설과 각종 문화체험 시설이 한데 모인 복합문화단지다. 이곳에선 우리밀과 쌀을 원료로 만든 유기농 팝콘, 무항생제 닭으로 만든 팝콘치킨, 우리밀 라면과 만두, 막걸리 등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한다. 날짜가 맞는다면 닷새마다 서는 구례 오일장(3, 8일)에도 가보자. 장날이면 읍내 분위기부터 떠들썩한데 요즘에는 채소와 과일들이 장터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는 길
대중교통: 서울(남부터미널,1일 7회 왕복운행), 광주, 부산에서 구례행 버스 이용. 구례공용버스터미널(061-781-2730)에서 피아골행 버스 수시 운행.
열차: 용산역에서 KTX 이용, 구례구역에서 하차.
자가운전: 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순천완주고속도로(27번) 구례화엄사 나들목-구례읍. 대전통영 고속도로 함양 나들목-88고속도로 지리산 방면-남원 나들목-19번국도-구례. 구례에서 수기리행 버스(06:00~18:50, 1시간 간격운행 / 45분 소요)를 타면 수락폭포로 갈 수 있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갈 경우 곡성 나들목에서 곡성읍을 거쳐 17번 국도와 18번국도, 19번 국도를 번갈아 타고 구례로 가면 된다. 대구-광주대구고속도로-남원교차로-구례IC-화엄사(소요시간 약 2시간 20분) 여행문의: 구례군 관광안내소 070-8816-2030
•숙박
운조루 인근 하룻밤 묵어가기 좋은 한옥집인 곡전재(010-5625-8444)와 해주 오씨 집안의 고택 쌍산재(010-3635-7115)가 있다. 쌍산재는 안채, 사랑채, 별채, 건너채 등과 선조들이 공부하던 서당채에서 구들장 체험을 할 수 있다. 고택의 멋이 물씬 풍기는 이 집은 높은 돌담과 대나무숲이 길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가족 단위의 여행객은 더케이지리산가족호텔(061-783-8100)이 좋고 피아골, 화엄사 쪽에 민박집이 다수 있다. 자연드림파크 내 다양한 평형의 휴펜션(061-783-2200)이 있다. 예약 필수.
•맛집
섬진강가에 매운탕과 어죽을 내놓는 식당이 더러 있고 화엄사 인근에도 산채정식, 더덕정식 맛이 좋은 식당이 있다. 지리산북부(뱀사골)사무소(063-625-8911), 남부사무소(피아골)(061-783-9100), 연곡사(061-782-7412)
/ 한국아파트신문 김초록 여행객원기자
첫댓글 구경잘 하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오성이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