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감 유치희 영세불망비(縣監兪致喜永世不忘碑)는 아래 비석군에서 9번이다. (9) 유치희(兪致喜)는 1864년(고종 1) 11월 2일에 과천현감으로 부임하여 1866년 12월 5일까지 재임하였다. 1867년 건립된 그의 선정비는 비신 53×20×105㎝, 기단 100×60×25㎝ 크기에 대리석 재질이다. 비의 전면에 “현감 유후치희 영세불망비(縣監兪侯致喜永世不忘碑)”라 쓰여 있다. 소재지는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이다
| 과천 역대현감 비석군(歷代縣監碑石群)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 온온사(穩穩舍) 입구에는 과천현감 15명의 선정비가 남아 있다. 과천 신도시가 건설되기 전 비석거리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겨왔다. 일부에서는 선정비에 관해 조선 후기에 매관매직으로 벼슬을 얻은 고을 사또의 환심을 얻어 높은 세금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백성들이 세운 것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으나 과천의 선정비는 지방관이 현직을 떠난 후 지방민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므로 선정의 뜻을 깎아내릴 일은 아니다. 과천시 중앙동사무소 뒤편에는 과천관아의 객사였던 온온사(穩穩舍)가 있다. 중앙동사무소 경내(과천시 관문동 107-2), 온온사 입구에는 역대현감비석군이 있다. 역대현감비석군은 본래 비석거리에 있었다. 비석거리는 비선거리라고도 불렸고, 관문동에서 문원동으로 향하는 옛 국도(현 시민회관 앞 근처)에 있었다. 신도시 개발을 위해 도로를 정비하면서 과천초등학교 옆으로 이전되었고, 다시 온온사 입구로 옮겨졌다. 역대현감비석군은 병자호란 때 관악산 바위굴에 은거하면서 청군과 싸운 현감 김염조(金念祖: 1586~1652)를 비롯하여 1928년 변성환(邊星煥) 구장(區長)의 비석까지 모두 15명의 선정비를 모아 놓은 것이다. 15기의 비석 중 14기는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고, 가장 후대인 변성환의 것만 담장 밖 우측에 별도로 놓여 있다.
이곳에 있는 비석의 명칭은 다양한데, 그중 8기가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3기가 선정비(善政碑), 2기가 거사비(去思碑), 인정비(仁政碑) 및 자선비(慈善碑)가 각각 1기이다. 거사비(去思碑)는 감사·수령이 갈려 간 뒤에 그 선정(善政)을 추모하여 백성들이 세우던 비를 말한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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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제 경북대학교 교정의 야외박물관에 있는 유명악, 유척기 선조님들의 비석군을 보고 와서 그런지 더욱 실감이 납니다. 자료공유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아,
어느새 경북대에 내려가셨군요
직접 목사공-문익공 부자선정비를 보시고
ㅎ ㅎ
예,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학술대회가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다음에는 현풍에도 가보려고 합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현풍이라면
혹시 빨간마후라 유치곤장군 호국기념관에 가시는 것은 아니신지..?
그쪽에 석빙고도 있고 비각도 있다고 해서요.
아하
그러시군요. 좋은 성과를 기대하겠습니다
목사공 석빙고가 남아있지 않아서
평소에 생각하기로,
건립연대로 보아서 "청도 석빙고"가 가장 유사한 형태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경북대 야외 박물관의 목사공의 석빙고비 건립연대는
"1714년 숭정후 갑오11월(崇禎紀元後甲午十一月),
청도 석빙고 건립연대는 1713년 조선 숙종 39년(癸巳)로 추정,
현풍 석빙고는 1730년 숭정 기원후 2경술11월(崇禎紀元後二庚戌十一月)
경주 석빙고건립연대는 1741년 조선 영조 17년(, 辛酉). "
참고로
청도 석빙고 사진을 붙여 두겠습니다
좋은자료 감사합니다.저희 화수회밴드에 링크 걸어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탐방해야 할 선조들의 유적 리스트에
메모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지방관이 현직을 떠난 후 지방민들에 의해 세워진 선정비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자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