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상은 심상이라 했다. 첫인상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이 대략 보인다. 심상이 좋은 사람 주변엔 사람이 많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부담이 없어서일까. 좋은 인상은 살아온 세월과 함께 온다. '인상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인생을 잘 살았다는 의미로 들린다.
2) 연년생 남매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가 되자 걱정이 앞섰다. 두 녀석의 대학 학비를 남편 혼자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생활비가 부족하진 않을까? 불안했다. 일자리를 알아보니 경력단절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그 과정을 마치게 되면 초등생 돌보미나 베이비시터, 요양보호사 등은 가능했다. 여태 집안 살림하고, 자식 키우고 했으니 그 정도 일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 식구들이 모두 집에 있는 날, 나의 구직계획을 털어놓았다. 모두 반대였다. 남편은, 남의 자식 키우다 아프거나 사고가 나면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들은 초등생 돌보미는 하지 말라 했다. 엄마는 늘 화난 사람 같아 보여 아이들이 엄마를 싫어할 거라 했다. 딸까지 한 몫 거들었다. 엄마가 그 아이들을 우리 어릴 때처럼 엄하게 대한다면 그 애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했다.
4) 내 인상과 성격이 좋지 않다는 소리였다. 어쩜 한결같이 마음을 콕 찌르는 말만 할까. 식구들의 응원을 은근 기대했는데 서운한 감정이 훅 올라와 상기되었다. 내가 궁지에 몰렸다 여겼는지 남편이 거들었다.
"너희들이야말로 실망이다. 엄마의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거야. 머리가 컸다고 엄마에게 함부로 말을 하니 듣는 아빠, 기분 나쁘네.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건 좋지만 듣는 사람 감정도 헤아려야지."
5) 마음이 편치 않았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삐쩍 마른 몸, 광대뼈엔 안경을 걸치고 있다. 곱고 편안한 인상은 결코 아니었다. 웃음기라곤 하나 없는 무표정한 얼굴, 자식들 말대로 비호감이었다.
6) 자식들이 성인이 되자 길고 긴 육아가 끝났다. 다음 인생을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남편 퇴직이 얼마남지 않았고 노후준비도 하지 못했다.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으며 나는 구직준비를 했다.
7)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라 했던가! 요양병원에 간호조무사로 취업하자마자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제 가장이다. 세상에 나가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스스로가 변해야 함을 절감했다. 환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직원이 되어야 나와 가족이 사는 길이었다.
8) 일은 힘들지 않은데 사람이 힘들었다. 병원관계자는 모두 친인척이었다. 수간호사가 실세였다. 나는 보수를 많이 받고 싶어 야간근무를 택했다. 그 시간대가 사람들과 접촉하는 시간이 적어 마음도 편했다. 야간간병인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내 업무는 간호조무사에서 간병인으로 바뀌었다.
9) 환자들은 대개 노환으로 인한 질병을 갖고 있지만 다 그런 건 아니었다. 뇌졸중으로 입원한 중년 여환자가 나를 힘들게 했다.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고 괜한 일로 시비를 걸었다.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었다.
10) 소등되어 깜깜한 입원실, 그 환자는 늦은 시각임에도 창밖 불빛을 내다보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아 그러냐' 물으며 내가 다가가자 가다렸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직원들을 데리고 제품공장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았는데 막상 쓰러져 자유롭지 못한 몸이 되니 지난 세월이 한스럽다 했다. 나를 힘들게 한 자신에 대한 변명일까. 내가 인생을 이해할 만큼 살아온 나이로 보였을까!
11) 어느 날은 아들 또래의 청년이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다. 교통사고수술을 받고 이제 물리치료를 하기 위해 이곳으로 입원했다. 친구들이 한 번씩 오갈 뿐, 보호자는 보이지 않았다. 병실이 적적했다. 다행히 긍정마인드를 가진 씩씩한 청년이라 마음이 놓였다. 병실에 들어가면 내게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을 도와달라 했다. 나는 아픈 자식 대하듯, 그를 기꺼이 도왔다. 육 개월이 지나자 청년은 퇴원했다. 내게 고맙다 했다. '인상이 참 좋다.'는 말도 했다.
12) 정현종 시인에게 들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병실에 누운 사람들 모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었다. 환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속마음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일이었다. 그 일이 최고의 돌봄이고 치유를 돕는 일이라 믿었다.
13) 외모가 볼품없어도 인간 도리를 올바르게 실천한다면 선한 인상과 심상을 가진 자 되지 않을까!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성찰로 타인을 대한다면 마음이 맑아지고 얼굴 또한 평안해 보일 것이다.
'어머,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내가 제일 듣고 싶은 말이다. 행복이 성큼 다가오는 순간이다.
첫댓글 폰 카톡이 모두 나가버려서 한 참 고생 했습니다. 그러니 카페도 탈퇴가 되었더란 말입니다.
아뭏튼 오랜만이에요 글 잘 봤어요 수고 했습니다.
시은 님 수고하셨어요.
인쇄합니다.
제가 올린 글의 단락을 짓지 못했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수정하는 과정에서 파일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죄송하지만 까페 글을 그대로 인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