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 情] 아리랑/오케스트라 연주 & photo by 모모 수계
모스크바 콘서트 오케스트라, 지휘 :금난새
https://youtu.be/R1 rGTHAaAYs
음악 편집:체칠리아
우리가 고궁에 대해서 잘 알 듯 하나
모르는 게 많이 있지요
얼마나 자세하게 이해를 주셔서
이렇게 옮겨 함께합니다
다시 한번 역사의 옛길을 가 보실까요
게시물 저자이신
유 래영 님의 작품을 옮겨 봅니다
조선시대 고궁인 창덕궁(昌德宮)과 창경궁(昌慶宮) 관람 후기
한국만이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다
어느 칼럼을 보니 동아시아의 일본과 중국과 한국 중에서 몇백 년 전의 전통 궁궐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중국은 모택동 시절에 홍위병들이 무고한
시만들을 수천만 명을 살육하면서 궁궐을 불 질러 버려서 대부분 소멸되고 북경의 자금성
하나만 남아 있다고 하며, 일본은 2 차대 전시 미군에 의한 두 차례 도쿄 대공습으로 거의
전부 파괴되었고 교토시에 궁궐이 남아있다고 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6,25 전쟁에도
불구하고 경복궁, 종묘사직, 창덕궁, 창경궁과 4대 문 안에 궁궐들이 온전하게 보존되여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어 궁궐의 참다운 모습은 한국만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재 사랑은 대단하다
어느 중국인이 중국 유튜브에 올린 글을 보면 한국인은 어머니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국립 박물관이나 고궁을 돌아다니면서 역사학적인 설명을 하여 애들이 자라면서 스스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데 중국에는 이런 전통 교육문화가 전혀 없다고 하면서 우리도
한국을 본받아서 애들 때부터 역사교육을 시키자 하는 내용을 보았다, 이런 내용을 공감을
하면서 나도 궁궐과 한국의 서울에만 있는 조선 왕들의 풍수지리설에 의한 묏자리를
보고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군 출신들은 역동적인 문회는 익숙할지
몰라도 정적인 문화는 관심이 없지만 나이가 들었으니 새로운 문화를 접해보고 싶다
한국의 궁궐의 모습을 보고 감탄을 했다
사실 임금님들이 거주하셨던 경복궁이나 다른 궁궐들은 차를 타고 지나가기만 했지
실제로 관찰하고 느끼기 위하여 혼자서 고궁을 관람한 것은 처음이다, 속된 말로
관광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는데 아는 것이 없으니 먼저 다음 백과사전이나
창덕궁을 검색을 해보니 각종 자료와 사진이 많이 있기에 몇 번 보고 방문을 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웅장하고 규모가 상상을 압도했다, 화려한 단청은 절에서만
하는 것으로 알고 ㅜ있었는데 궁궐에도 했으며 소나무 기둥과 궁궐의 배치나 규모에서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으며 앞으로 시간을 내서 전부 가보고 싶습니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연결되어 있다
저는 처음에는 연결되어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고 창덕궁만 다녀왔는데 연결되어 있다고 하여
다시 창경궁을 다녀왔는데 가보니 창덕궁 비원으로 입장료(5,000원)를 받는 반대쪽에서
창경궁 입장권을 팔고 있었다, 서울시에서는 창경궁과 종묘가 90년 만에 연결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창경궁에서는 (02-762-4868) 전혀 낭설이라고 하면서 보려면 나가서
다시 입장을 하라고 하여서 이번에 같이 보지 못했다, 관람시간은 해설사의 설명을
포함하면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예약을 해야 돼서 단독으로 돌아보았는데
창덕궁은 약 1시간과 창경궁은 30분 정도 소요가 되었다
관람료는 얼마나 하나?
기본 관람료는 3,000원이고 65세 이상은 주민등록증을 지참하면 무료이고 창덕궁
후원은 누구나 새로 5,000원의 입장권을 끊어야 하며 항상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약을(3668-2300) 해야 하며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가는 방법은 안국역
3번 출구에서 400m 정도이며 종로 3가에서 걸어가도 10분이면 갈 수 있다
관람을 하게 된 배경을 보면
내년이 우리 충구회가 소위로 임관한 지 50주년이 돼서 아주 뜻깊은 행사를 하기 전에
금년에 붐 조성을 겸한 오프닝 세리머니(Opening Ceremony)의 일환으로 동기생들이
부부동반으로 10월 중순에 가을 소풍 개념으로 관람을 하고 종로에서 단합대회를 하자는
충구회 이철성 회장님의 제안으로 이번 회원님들이 탐방하기에 앞서서 제가 진행요원
으로서 고궁과 식당 등을 예약하는 등 필요한 부분을 준비하고 행사 착오가 없도록
사전답사를 하기 위하여 다녀오고 나서 카페에 올리고자 자료를 준비하였습니다,
실제로 관람을 해보니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실제로 와서 보니 부끄러움이 앞서는데 서울에 40년을 넘게 살면서 서울의 고궁 명소는
한 번도 가보지 않고 국내여행이나 해외여행만 다녔으니 그 무지함에 창피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버스 한번 타보고 오면 될 길을 70대에 처음 오게 되니 한심합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면서 한 번도 와보시지 않은 분은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나 부인과 같이
관람을 하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인터넷에
검색해서 지식을 쌓은 다음에 보시면 더욱 뜻깊은 관람이 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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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昌德宮)의 단아한 모습
창덕궁을 갈려면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서 현대건설 사옥을 지나서
조금만 더 가면 창덕궁이 나오는데 안국역에서는 약 400m 정도로 가까운 거리이다
창덕궁 돈화문(昌德宮 敦化門)은 창덕궁의 정문이다. [1] 대한민국의 보물 제3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창덕궁 완성 7년 후인 태종 12년(1412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지금의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광해군 원년(1608년)에 완공한 것이다. [2] 이때의 모습이 현재까지 남아있어,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으로 유일하게 정면이 5칸 규모로 되어 있다.
돈화(敦化)는 '교화를 돈독하게 한다'는 뜻으로 '임금의 큰 덕으로 백성을 돈독히 교화한다'는 의미이다.
사적 제122호. 창덕궁은 1405년 태종 때 건립된 조선왕조의 왕궁이다. 처음에는 법궁(法宮)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지만, 이후 임금들이 창덕궁에 머무는 것을 선호해왔고
특히 임진왜란 이후 법궁인 경복궁이 복구되지 못하면서 창덕궁은 고종 때까지 법궁의 기능을
하였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왕실 생활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왕이 거주하는 궁궐 이래서 조그만 배수구에도 전부 돌을 깔아서
궁궐의 품위를 높이고 조그만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썼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이다. '인정(仁政)'은 '어진 정치'라는 뜻이며, 인정전은 창덕궁의 법전(法殿)이
된다. 법전은 왕의 즉위식을 비롯하여 결혼식, 세자 책봉식 그리고 문무백관의 하례식 등 공식적인
국가 행사 때의 중요한 건물이다.
창덕궁 인정전(昌德宮仁政殿)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이 외국의 사신을 접견하고 신하들로부터
조하를 받는 등, 공식적인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임진왜란 후 경복궁 근정전 대신 정전으로
사용되었다 창경궁의 명정전과 이궁 역할, 동궁으로 사용되었다. 1985년 1월 8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225호로 지정되었다.
인정전의 부속 건물로 건물 기둥은 소나무라고 하며
전체적인 건물구조가 맞기에 아주 품위가 있어 보인다
저위에 임금이 앉아서 회의를 하면 신하들은 자기 직급에 따라서
정 1 품부터 정 9 품까지 만조백관이 회의에 참석을 한다고 한다
인정전과 부속 건물의 단청이 아름답다
인정전 안에는 정면에 임금님의 용상이 있고 그 뒤에는 나무로 만든 곡병과 곡병 뒤에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라는 병풍이 있다. 병풍에는 음양을 뜻하는 해와 달이 있으며 이는
다시 왕과 왕비를 상징한다. 그 아래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우리나라의 동, 서, 남, 북, 중앙의
다섯 산을 가리키며 이는 국토를 의미한다. 이것은 임금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창덕궁 선정전(昌德宮 宣政殿)은 평상시 임금이 신하와 일상 업무를 논하던 편전이다.
1985년 1월 8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14호로 지정되었다. [1]
희정당은 왕의 집무실인 편전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순종의 접견실로 사용되었다.
1917년 11월 10일 창덕궁 화재로 인한 재건 작업이 진행되면서, 희정당을 포함한 일부
전각에 벽화로 장식하는 작업이 1920년대 추진되었다. 희정당의 동・서벽에는 김규진이
그린 금강산 그림 두 점이 장식되었다.
진선문을 뒤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몇백 년의 역사를 가졌다
뒤에 보이는 건물이 현대건설 사옥으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모양새이다
'진선(進善)' 뜻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한 말(善)을 아뢰다(進)'이고 다른 하나는 '훌륭한
사람(善)을 추천한다(進)'이다. 즉, '훌륭한 인재들을 모으고, 이들이 임금에게 선한 말을 아뢰어
좋은 정치를 하기 바란다'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
진선문 앞에서 인증 숏을 찍었는데 오늘 고궁을 관람한 일은 대단히
잘한 일로서 앞으로 역사탐방을 계속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창덕궁을 관람하러 온 외국인들이 한복을 입고 오기에 기념 촬영을 했는데 이제 한복은
글로벌화되여서 외국인들이 한국 방문 시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을 방문 시에는
멋스러운 한복 착용이 필수라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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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昌慶宮)의 풍경
창덕궁과 창경궁은 같이 있으나 입장을 하려면 각 각 3,000원의 요금을 내야 하나
65세 이상은 무료로 관람을 할 수수가 있는데 단 주민증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연결이 되어 있는 줄 몰랐는데 두 궁궐이 연결이 되어 있음을 알고
다시 혜화역으로 관람을 했습니다, 동시에 두 군데를 관람하기에는 어느 쪽으로 가도
무방하지만 저는 혜화역에서 내려서 창경궁 - 창덕궁을 관람하고 종로로 나오면
뒤풀이 장소가 많이 있어서 이코스를 선택하였습니다
창경궁은 일본 놈들이 1909년에 조선의 정신을 훼손하고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는데 우리 정부가 1984년에 동물원을 과천 대공원으로 이전하고 복원하였는데
동물원이 있던 자리는 소나무를 많이 심어서 자취가 없어졌는데 저도 어릴 때 서울
외갓집에 오면 외삼촌들이 창경원 동물원을 몇 번 와서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본래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지은 수강궁이었다.
그 후 1483년 수강궁 자리에 별궁인 창경궁을 건립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16년 다시
세웠다, 1909년 일제가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으며, 1911년에는 박물관을 짓고 창경원으로
격을 낮추어 불렀다. 1984년 일제가 철거했던 문정전과 월랑 등을 복원하고 정비하면서 다시 이름을
창경궁으로 환원했다. 이 궁궐의 전체적인 배치는 창덕궁처럼 지형의 높고 낮음을 그대로 두고
꼭 필요한 곳만을 골라 집터를 잡고 정원을 꾸민 것이 특징이다. 사적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창경궁 명정문 및 행각(昌慶宮明政門─行閣)
보물 제385호.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명정문은 창경궁 외전의 중문이며 행각은
문의 좌우로 연결되는 회랑이다. 1484년(성종 15년) 창경궁 건립 당시 지은 것으로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 중건했다. 회랑 중 남쪽과 북쪽 일부분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던 것을 1986년에 복원했다.
숭문당(崇文堂)은 글자 그대로 문(文)을 숭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왕의 경연(經筵)을 벌이던 곳으로, 특히 영조는 성균관 유생이나 종친들을 접견하고,
유생들을 시험했다. 때로는 주연(酒宴)을 베풀어 그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숭문당의 창건 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으며, 순조 30년(1830년) 화재로 불탄 것을 그해
가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숭문당 현판과 내부에 걸려있는 일감 재자(日監在玆)라는
현판은 영조의 어필이다.
창경궁에서 소나무 사잇길로 창덕궁을 갈 수 있는데 갈려면 별도로 3,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사진은 위가 창경궁이며 아래가 창덕궁으로 당일 저는 65세 이상이기에
무료로 관람을 하면서 받은 입장권입니다
창덕궁과 창경궁 답사를 마치고 회식장소인 종로로 나오는데 이씨조선 26대 고종 왕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이 살았던 집이 운현궁이라고 하며 오래전에 KBS에서 "용의 눈물 "로 방송이 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살림집인데 너무 크고 웅장했는데 그 시대의 권력을 생각해본다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는 1894년에 설립된 교동초교라고 해서 들어가 보았다
9,24일 사전답사를 다녀왔는데 방송국 촬영이 있었는데 왕세자로 분장한 아역배우 모습
창덕궁 정문 앞에 참여한 소리패 어르신들의 모습으로 촬영 열기가 대단했다
첫댓글 우리의 얼이 담기 아리랑과 함께
옛 고궁들을 설명을 곁들여 사진을 게시해 주셔서
'촬영해주신 유래영 작가님과 우리 양때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 고궁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10월의 첫 문이 열렸네요
한달 내내 건강, 행복 기원합니다^^
네...
음악이 딱 어울릴 것 같아서 함께 했어요
우리 역사에 한 페이지 아주 훌륭하지요
저기에서 함께 하시분 이신데
게시물 하나도 빈틈없이 올려서 함께 하셔요
이렇게 옮겨 함께해도 부족함이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겁니다
함께 공유한다는 것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이른 시간 눈을 떠서
건너와 보니 본문에 표기가 잘못 되어서
수정 하면서 다녀갑니다
휴일 푹 쉼하셔요
도지현 시인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