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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성 탄 준 비
글 : 이 클라우디아(해인) 수녀
<성 베네딕도 수녀회>
우리의 삶이
아무리 바쁘고 고단하더라도
12월엔 그분을 기다려야 하리,
어린이로 오시는 구세주 예수님을...
죄로 얼룩진 남루한 마음
어둠에 익숙하여 드러내기 싫은 모습
더는 망설이지 말고
빛으로 오시는 아기 앞에
눈물로 무너지는 환희를 맛보아야 하리.
사랑이신 예수님이 사랑으로 태어났기에
집이 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온 인류를 가족으로 힘차게 끌어안으며
우리 모두 하나 되어야 하리.
눈 속에 묻혀서도 일어서는 보리처럼
우리의 언 가슴에 푸른 희망을 키우며
어린이로 어린이로
맑아져야 하리.
얼음 밑에서도 쉬임없이 흐르는 냇물처럼
있는 그대로의 겸허함으로
우리 모두 이웃에게 기쁨이 되어야 하리.
올 해도 많은 이들이 님을 진정 웃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부활의 기쁨으로 열매 맺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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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자료 >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 - 제2부
- 주교회의 2014년 춘계 정기총회 승인 -
2 ) ‘주일 미사’의 의미와 규정
주님의 날을 경축하고 주님의 성찬을 거행하는 것은 교회 생활의 중심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177항). 그리하여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경축하는 주일은 보편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무 축일로 지켜야 하며(교회법 제1246조 1항), “신자들은 주일과 그 밖의 의무 축일에 미사에 참례할 의무가 있다.”(교회법 제1247조)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주일 성찬례는 모든 그리스도교적 실천의 기초가 되기에 중대한 이유로 면제되거나 본당 신부에게 관면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찬례에 참여할 의무가 있습니다(교회법 1245조). 또 만일 이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중죄를 짓는 것이라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말하고 있습니다(2181항). 곧 주일 성찬례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과 그분과 교회에 충실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주님의 날에 함께 모여 성찬례를 거행하는 관습은 사도 시대 초기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이 습관적으로 그러듯이 우리의 모임을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합시다”(히브 10,25). 3세기에 쓰인 「사도들의 가르침」(Didascalia)에서는 다음과 같은 권고가 나옵니다. “주님의 날에는 모든 일을 그대로 두고 부지런히 집회에 달려가십시오. 그것이 하느님에 대한 당신의 찬미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날에 함께 모여 생명의 말씀을 듣고 영원히 지속되는 하느님의 양식을 받아먹지 못한 사람들은 하느님께 어떤 변명을 할 것입니까?” 이에 역사적으로 교회와 신앙에 대한 박해시절에도 많은 신자들이 숱한 어려움에도 주일 성찬례에 참여하여 주님의 말씀과 몸을 영하는 지고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이를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맞서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만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집회에 가서 나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주님의 만찬을 거행하였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주님의 날」, 46항에서 인용).
2 . 주일 미사 활성화를 위한 노력
‘신앙의 해’를 지내면서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인 전례’(전례헌장, 10항), 특히 성찬례가 신앙의 경축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믿음의 문」, 9항)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신앙의 해 공지를 통해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신앙의 신비와 새로운 복음화의 원천인 성찬례 안에서 교회의 신앙이 선포되고 기념되고 강화되기에 모든 신자는 주님의 참다운 증인이 되기 위하여 성찬례에 적극적으로 효과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참여하도록 초대받는다고 하였습니다(공지 IV.2. 참조). 그럼에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총회 의안집이 진단한 대로 오늘날 전례 거행은 형식화되고, 예식들이 거의 습관적으로 반복되며, 깊은 영적 체험이 부족하여,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대신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의안집, 69항 참조). 오늘날 주일 미사 전례 거행의 위기를 극복하고 모든 신자들이 앞서 이야기한 전례헌장의 가르침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우리 교회 구성원들이 다 함께 노력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1) 주일 미사 준비에서 사제와 신자의 노력
미사의 준비와 거행에서 사제의 태도와 역할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전례는 사제의 노선과 방향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사제가 어떻게 자신의 고유한 역할과 관련해서 준비하고, 전례 봉사자들과 신자들을 교육하고 배려하는지에 따라 공동체의 미사 전례는 크게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미사 전례의 분위기에서 주례 사제의 태도는 크나큰 영향을 줍니다. 이에 대해 「미사 경본 총지침」은 “사제가 성찬례를 거행할 때에는 하느님과 백성에게 정중하고 겸손하게 봉사해야 한다. 또 자기 태도와 동작을 보이고 거룩한 말씀을 전하여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생생한 현존이 스며들게 하여야 한다.”(93항)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구별 토론에서 사제들은 성실한 강론 준비와 최대한 정성스럽고 경건하게 미사를 주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경문을 최대한 또박또박 읽으면서도 적당한 속도로 읽는 것이 중요하며, 신자들을 향해 야단치거나 화내기보다는 위로와 용기를 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 강론, 철저히 복음 중심의 강론을 해야 하며, 미사 전례에 집중하여 정성을 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일 미사 활성화를 위해서 사제들이 해야 할 노력 가운데 신자들은 마음에 와 닿는 강론, 복음 중심의 강론을 원한다는 의견을 가장 많이 제시했습니다. 이어서 미사 전례에 집중하여 정성을 다하며, 미사 때 신자들을 야단치지 않고 오히려 위로하며, 미사 전에 일찍 성전으로 나와서 신자들을 환대하며, 기도하고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사제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어서 여러 가지 전례 외적 환경으로부터 전례 분위기를 유지할 것과 주례 사제마다 달라지는 전례 방식에 대해 혼란스럽다는 의견을 제기하는 신자들도 있었습니다.
사제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 개인의 의견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우선으로 두어야 합니다. 자신을 전례 행위의 중심으로 삼으려는 모든 시도는 사제의 신원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사제는 무엇보다 다른 이들을 위한 종이므로 주님의 손에 맡겨진 순종적인 도구로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지가 되도록 언제나 노력하여야 합니다. 이는 특히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어떤 것도 피하면서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예식에 일치시켜 이를 충실하게 따르면서 전례모임을 이끄는 겸손으로 드러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하였듯이, 사제직은 사랑의 직무,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착한 목자의 직무입니다(「사랑의 성사」, 23항).
주일 미사 전례를 위한 신자들의 준비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신자들은 내적인 마음가짐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성실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주님을 온전히 만나기 위해 집에서부터 성경을 봉독하고 공복재를 지키고 옷차림을 단정히 하며, 최소한 10분 전에 성당에 도착하는 것 등입니다. 또한 미사 중에는 전례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 1월호에 제3부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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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대림(待臨)과 겨울(冬)의 길 위에서...
글 :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신부>
어느덧 올해도 대림의 길 위에 있다.
지난 한해도 바쁘고 분주하게 일상과 존재가 움직여지곤 하였다.
가끔씩은 문득 삶과 일들의 일상을 떠나
기도의 집에서의 머물음으로 다소의 고요함을 갖기도 하면서...
기도의 집 창가로 보이는 들판은 가을걷이도 끝나고,
이제는 텅 비어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까지 있던
야산의 고구마순 밭들도 조용하다.
띄엄띄엄 초겨울 배추 농사를 마무리하던
부지런한 농부들도 시린 손등 부벼 가며,
가을을 지금은 다 거두어들이었다.
겨울을 맞는 과수원 담장 가에는 빈 볏단들이 쌓이고
시레기, 무우말렝이들이 시골집 마을 담벼락에 줄로 엮어졌다...
산에도 들에도 이제는 겨울이다.
올해는 첫눈도 11월에 내리고,
어느덧 비대신 눈이 내리는 겨울의 길 위에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힘듦과 어려움을 만나고,
우리들 자아와 마음속에서 머무는 그리움과 아픔을 보기도 하며,
고통과 슬픔을 마주 대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생은 완전하지 않고,
살고 존재하는 것들도 언제나 미완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하게 살아 내거나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우리들 자아의 어둠과 아픔을 겪으며 괴로움을 갖기도 한다.
잘 살고 기도하며,
제대로 헌신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난 한해도 한 세월 서성이며 살고 지내오다가
벌써 대림의 길 위에 있다.
한번 뿐인 생애와 목숨, 잘 가꾸고 살며 드려가야 하고,
오롯해야 할 소명, 진실하게 기도해 가야 하는데...
다시 찾아온 겨울의 길 위에 어느덧 눈이 내려 쌓였다.
올해도 이 겨울 속에서 바람 불고 눈 내리는 추운 날들을 지나고,
어느 날은 춥고 시린 시간을 지나며 밤이 더욱 깊은 겨울,
유난히 짙은 새벽의 어둠,
찬바람이 생의 언덕위에서 그침 없이 불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다가온 대림의 시기를 순화(純化)의 시기로 맺어가야 한다.
쇄신과 새로움의 계절로 맺어가야 한다.
그리고 행복한 겨울이어야 한다.
하늘 향한 땅 위에서 사람들 함께
하느님과 세상의 일들을 추구해 가며...
종종 다가오고 맞이하는 가슴속 복된 영혼은
날마다 그분께로부터 오는 과(過)한 은총이고
오로지 그분의 자비와 사랑인 것을 ...
겨울이 찾아온 세상과 이 땅은 대림이다.
겨울의 길 위에 있다.
이제 이 땅위로 눈은 점점 더 쌓여가고
겨울은 점점 더 깊어지리라...
성탄절의 종소리 함께 옷깃을 모으고 손잡으며,
마음과 영혼의 매무새를 바로 한 채
기도와 사랑을 더 드려 가리라.
하늘의 영혼을 향하고, 마음의 새로움을 찾으며...
대림절의 길 위에서
오늘도 제단 앞에 무륿 꿇은 채
우리와 나의 죄 많음과 어두움을 봉헌하며 기도드린다.
몸 맘 영혼의 송구함인 채
오늘도 나는 여기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묵주알 굴리면서
대림과 겨울의 길을 걸어간다.
- 신부님의 '영성의 물가‘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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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일 / 인권 주일 / 사회교리 주간
2016. 12. 4
마태오 3. 1~12
♠ 복음 공부 - 세례자 요한의 출현
<참된 제자가 되는 길> 마태오는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모습보다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세례보다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로서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마르코는 “죄를 용서하는 회개의 세례(1.4)로 죄를 용서해주기 위함을 명시한다.
* 1~3절 : 저자는 세례자 요한을 예수님의 선구자로 본다. 예수님이 청년이 되고 27년경 요한은 유다 광야에 나타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한편 요한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라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이 말은 하느님의 통치 즉 다스림이라는 역동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성경을 현실과 연관 시키는 방식에 있어서 당대의 ‘꿈란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그들 자신의 현 상황에 이사야 예언 말씀을 적용하고 있다.
* 4~12절 :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고하고, 강물에 온몸을 담그는 침례 방식으로 세례를 베풀면서 그동안 지은 죄를 고백하는 가운데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겠다는 다짐 아래 일회적으로 시행되었다. 요세푸스는 요한이 유다인들에게 올곧은 삶을 살아가며 이웃에게는 정의를 행하고 하느님께는 경건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세례운동을 펼쳤다고 소개한다.(유다 고대사,18.117) 이를 거부하면 ‘독사 자식들’이라는 거친 표현으로 심판에 초점을 맞추어 부각되는데 독설을 듣는 대상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로 한정하고, 세례자 요한은 회개했음을 나타내기 위해 세례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회개에 수반되는 올바른 삶을 살 것을 촉구한다. 사람들을 과실수로 비유하여 열매 맺기를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심판을 받기 때문이고, 유다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긍지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통념을 깨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도끼가 파괴와 심판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세례자 요한은 ‘물’이 매체가 되는 반면, 뒤에 오실 분은(예수님)‘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고 제시하는데, 이 세례로 시작된 새 생활이 어떤 결실을 맺는지에 따라 심판(불)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신발을 들고 다니는 것은 종이 주인을 섬기는 천한 일 중 하나로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받으러 오신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대우하고 있음을 밝힌다. 12절의 알곡과 쭉정이 이야기는 25장 31-46절의 최후 심판 때 악한 자로부터 선한 자를 분리시키는 양과 염소 이야기와 같은 의미이다.
♠ 복음 요약 : 기원 후 28년쯤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헤로데가 갈릴레아의 영주로 있을 때에 예루살렘에는 한나스와 가야파가 대사제로 있었던 그 시기는 하느님께서 막 개입하려는 엄숙하고 결정적인 때다. 하느님의 말씀이 유다 광야에 있는 즈카리아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하여라.” 예언자 이사야의 말이다. 고대 임금이 행차할 때 임금이 안전하게 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을 정비해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사야의 예언대로 세례자 요한의 소리는 이스라엘이 기다리고 있던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를 성실하게 하라고 하신다. 이를 두고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맞이하고자 길을 닦는 사람이라고 전하고 있다. 우리는 성탄을 앞두고 그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 길을 곧게 내어야 한다. 현시대의 여러 가지 사건에 대응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의 “새복음화”노력과 사회교리의 실천이라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 대화 방향 : ①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사실 하느님은 우리가 찾아내게 될 그 길을 통해 우리를 만나러 오실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길을 곧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② 요한의 설교는 양심성찰을 권고한다. 그러면 대림시기에 우리는 삶 안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며, 주님의 길을 잘 준비하기 위하여 어떤 마음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나누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신약성경 주해 루카복음 (바오로의딸 출판사. 한남성서연구소 공동계획 유충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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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일 / 자선 주일
2016. 12. 11
마태오 11, 2~11
♠ 복음 공부 - 예수님의 정체와 증언
* 2~6절 : 세례자 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 마태오는 복음서 전반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강조한다. 세례자 요한이 풍문으로 들은 바도 ‘예수님이 하신 일’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2)이라고 기술한다. 그 일의 대표적 행위는 5절에서 예수님의 정체성과(5절) 연관하여 세례자 요한의 정체성을 찾는다.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 강변에서 예수님의 메시아 신분을 이미 알고 있었다(3.14-15). 그러나 마케루스 성채에 갇혀 죽음이 가까왔음을 느끼자, 그는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 (초대 교회에서 종말론적 구원을 가져오리라고 기대되는 인물을 가리키는 용어 즉 메시아)이신지 물어보게 한다. 요한은 의구심이 생기고, 착잡한 심정으로 죽기 전에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오실 분은 ‘심판자’로 여겼는데(3.11-12), 8-10장에서 자비로운 행적을 보이셨기 때문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yes, no의 분명한 대답없이 다만 ‘제자들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자기 스승에게 전하도록 이른다.’ 이 말씀은 구약의 이사야서 예언들을(29,18-19;26,19;35,5-6 등)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 시대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여 주심으로써 입증하시며(5절),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을 믿으면 행복하다’는 말씀이 이어진다.
* 7~11절 : 세례자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 제자들이 예수님의 증언을 전하러 간 사이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극찬하시는 질문을 한다. 군중에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느냐?’ 요르단 강변의 줄기식물을 통칭하는 갈대는 부러지기 쉽고 줏대 없이 흔들리기도 쉬운 유약한 인간을 빗대면서(12,20참조 이사 42,3),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에게 헤로디아와의 혼인이 옳지 않다고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고하다 수감된 행적을 떠올리게 한다. ‘고운 옷차림’은 세례자 요한이 엘리아처럼 행색을 했던 것과 대비시켜 광야에서 예언자의 삶을 살아온 그는 임금이 아닌 예언자임을 부각시킨다. 교부들은 그가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인물로 오시기로 된 메시아와 가장 가까이 있었고, 주님의 오심을 알리는 사자였으며, 태 안에 있을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께 세례를 주며 대면했다는 점을 거론한다. 말라 3,1에서도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러 온 예수님의 사자라는 사실을 명시한다. 이처럼 세례자 요한이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 보다 더 크다” 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따라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제자는 사람들 가운데 큰 인물인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크게 될 거라고 전망한다. 즉 요한은 예수님이 가르친 하늘나라의 길에는 미치지 못하고, 요한과 예수님의 차이를 분명히 하려는 의도로 누가 큰 인물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이 다스리는 새 시대에 속해 있느냐가 중요하다﹒
♠ 복음 요약 : 세례자 요한이 수감 후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로 시작하여 예수님의 정체성과 요한의 정체성을 찾는다.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시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확인하려 한다. 어쩌면 요한만큼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히 알고 있던 그에게 잠시 믿음의 어둠을 겪은 듯하다.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너희가 보고 듣는 것’ 곧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이다. 이사야 예언서의 성취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인 메시아이심을 입증하신다. 이어서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는 말씀은 요한에게 보다 오히려 우리들을 향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묻는 우리를 위한 응답으로 들린다. 군중이 떠난 후, 예수님은 요한을 극찬한다. 요한은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고, 성경에 기록된 사자이며, 그가 바로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인물이다. 그 요한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은 군중에게 “너희는 세례자 요한을 알아보았느냐?(7절)”라는 묻는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이를 나는 알아볼 수 있을까? 지금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그들 안에서 ‘오실 분’이 와 계심을 알아볼 수 있을까? 대림 3주일은 장밋빛 초를 밝히고 이 세상에 오실 주님을 미리 체험하고 그 기쁨을 이웃들과 나누기를 권하면서 자선주일로 사랑으로 오신 주님을 그리고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 대화 방향 : ①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라”-내가 입교시 가장 인상, 또는 감명 깊었던 말씀, 체험을 나누고, 지금 신자들에게서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들을 무엇인지요?
② 내가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흔들렸을 때는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했는가...?
③ ‘오실 분’을(성탄) 기다리는 나의 준비는...? (영적, 육적)
♠ 참고 문헌 : ▪ 마태오 복음 (이우식 지음 / 바오로딸 출판사, 한남성서연구소 공동기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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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일
2016. 12. 18
마태오 1, 18~24
♠ 복음 공부
* 18절 : 옛 이스라엘 관습에 따르면 처녀는 결혼한 다음에도 숫처녀로 그냥 친정에 눌러 살다가 일 년쯤 지나 시가로 옮겨간 다음에 비로소 성생활을 시작했다. 18절의 ‘약혼하다’라는 동사는 결혼은 했지만, 아직 부부생활은 하지 않는 그런 상태를 가리킨다. 루카 역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했을 때의 상태를 두고 ‘청혼했다’고 한다.
* 19절 :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는 요셉이 공적으로 이혼 절차를 밟아 마리아를 소박했어야만 의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공적인 이혼 절차를 포기하고 ‘남 몰래 마리아를 소박하기로 결정한’ 요셉은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불의한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을 일컬어 의롭다 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는 마리아가 어떻게 해서 아기를 갖게 되었는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적인 이혼 절차를 밟지 않은 요셉이야말로 의로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 20-22절 : 마태오는 ‘예수’라는 이름을 나름대로 풀이하여 ‘그는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할 것입니다.’라 한다. 통속적 어원 풀이로 ‘예수’는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마태오는 구약의 예언이 예수 사건으로 성취되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도식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것이 이른바 성취인용문이다. 이 성취인용문은 ① 예수 사건 이야기 ② “주께서 예언자들을 시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고정적인 도입구, ③ 구약성경 인용문, 이렇게 세부분으로 짜여 있다.
* 23-24절 : 예수는 단지 다윗의 가계에 속하는 다윗의 아들 메시아일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의 영으로 창조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께서 실제로 ‘임마누엘’이라 불린 적은 없다. 그러나 임마누엘은 실명이 아니고 예수의 정체를 드러내는 존칭이다. 히브리어 임마누엘을 풀이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라는 뜻이다. 그러니 예수를 일컬어 임마누엘이라 한 것은 그분이야말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드러내셨다는 뜻이다.
♠ 복음 요약 : 족보에서는 예수의 정체를 밝혀 ‘아브라함의 아들이요, 다윗의 아들이신 … 그리스도’라 하였다. 이제 예수의 잉태와 탄생 이야기에서는 어떻게 해서 그분이 다윗의 아들이 되셨는지 그 까닭을 설명한다. 예수가 비록 요셉의 친 아들은 아니지만 합법적인 아들인 까닭에 다윗의 후손인 요셉의 가계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마태오는 예수께서 다윗의 후손이 되신 까닭을 밝힐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그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수태되었다고 한다. 또한 성령으로 수태되신 그분의 실명 예수를 풀이하여 ‘그분은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라 하고 또한 그분의 존칭 임마누엘을 풀이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 한다.
♠ 대화 방향 :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그 말씀대로 사람이 되시는 데에는 성모님의 순종이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순명은 인류를 구원하는 위대한 일을 하였지만 결혼하지 않은 처자가 잉태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용기가 아니고서는 말씀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이 생각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도, 용기 있는 인간을 통해서 그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이룰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200주년 성경 주해서 <성요셉 출판사> ▪ 보득솔 <청년성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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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성탄 대축일
2016. 12. 25
요한 1, 1~5. 9~18
♠ 복음 공부
* 1~2절 :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곧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곧 하느님이셨다. 예수님께서는 한 처음에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 3절 : 모든 것이 창조될 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함께 게셨으며 모든 창조물들이 그분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으며 모든 생명의 시작은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다.
* 4. 9~10절 : 그리고 직접 그분이 땅으로 내려 오셨다. 어둠속에 뒤덮인 땅에서는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셨지만 아무도 그분이 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함께 이 세상 천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생명의 주인이심을 깨닫지 못하였다.
* 11절 : 그분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이 창조하신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 12~13절 :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세례 받고 그분의 품안에 의탁해서 살아가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것을 인장이라고 표현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에페소서 1,13-14)
* 14절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우리들은 이미 삶속에서 그분이 베풀어 주신 그분의 영광을 여러 번 보았고 체험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분 안에서 진정한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우리는 비록 사도요한과 제자들처럼 곁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지는 못했지만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피부로 느끼고 있다.따라서 우리도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우리 삶 여정에서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것이다.
♠ 복음 요약 : 요한 복음 1장은 창세기 1장과 함께 읽으면 더욱 이해가 간다. 우리는 천지창조때 이미 하느님과 함께 계신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다. 교부들은 이렇게 읽고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요한 8,39)라는 말씀을 우대인들은 이해를 못했지만, 우리는 이해 할 수 있다.
♠ 대화 방향 :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 직접 내려 오셨다. 성모님께 가브리엘 천사가 방문했고 가브리엘은 이를 성모님께 알렸으며 성모님은 순명하셨다. 2000년동안 내려 온 이 성경을 그대로 믿지 않은 개신교 목사들은 예수님은 요셉성인과 성모님이 낳았으며, 성경에 나온 사촌 형제들을 친형제로 주장하며 그들은 믿지 않았다.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밝혀졌다. 예수님의 시신을 덮었던 수건의 피에서 모계 유전 23개 염색체만이 존재한다고 밝혀졌으며, 과학자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고 놀라워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지만 예수님께서 성령에 잉태되어 잉태되었다는 것에 대한 구절에 대해 예수님을 신성시하기 위해 꾸며 낸 얘기라고 평가를 내렸다. 과학적으로 남성의 도움없이 여성이홀로 잉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여러 차례의 실험을 거쳐 동일한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타났을 때 ‘과학적 입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사람의 유전체(genome)는 46개의 염색체로 구성된다. 46개의 염색체는 22쌍의 상염색체와 1쌍의 성 염색체로 구성된다. 성 염색체는 XY(남성), XX(여성) 등 성을 구별하는 염색체이다. 이 같은 염색체의 결합이 있어야 아이가 탄생한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과학적 상식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방송매체인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National Geographic Channel)이 최근 스페인 오비에도 성당에 보관돼 있는 '예수님의 얼굴 수건' (Sudarium of Oviedo. )이 묻어 있는 피를 전문연구소에 의뢰해 DNA를 분석한 결과 혈액형이 AB형이라는 것과 함께 모친 쪽으로부터 이어받은 22개 염색체와 남성(XY) 염색체 1개 등 23개만이 추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부친 쪽으로부터 받게 돼 있는 23개 염색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 속에 모계의 유전자만 발견됐다는 것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됐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피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검사는 백혈구가 살아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사람이 사망한 후에는 유전자 염색체 검사를 할 수 없다. 사후 2천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피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요, 피 속 유전자 검사에서 모계 쪽 염색체만 발견됐다는 것 또한 기적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평가다. '예수님의 수건'은 요한복음에 처음 기술돼 있으며, 현재 오비에도 성당에 보관돼 있는 손수건이 2천년 전 그 손수건이라는 것에 이견을 다는 학자는 없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예수님 탄생의 기쁨이 나의 소중한 기쁨이 된 성탄의 체험을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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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녀님의 훈화 말씀 >
“가난한 자는 진복자다”
김 데레시아 (성자) 수녀님
가난한자는 진복자다. 마니피갓은 성모님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F.B. 나름대로의 실천 덕목이 있어야 한다. 그 실천 덕목으로 완덕에 이르는 길은 헌장에 나와 있는 “또 하나의 예수가 되어야 한다.”를 핵심으로 잡아 가난을 실천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행복 선언에서도 말하고 있는 가난 속에 겸손 순명이 포함 되어 있다. 교황님께서 한국에 4박 5일 동안 머물러 계시면서 강조하심은 가난이었다. ‘막대한 부 앞에서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고 있다.’고 하셨으며, 우리 한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의 핵심이다.” 라고 덧붙였다. 교회가 부유한자의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찾아 나서야한다. 고 하셨으며 실천을 보인 분이 교황님이셨다. 그것이 바로 아나윔의 정신이라고 저희들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 이것이 마음의 가난이다. 가난에는 물질적인 가난과 영적인 가난이 있다. 먹을 것도 없는 구걸할 수밖에 없는 실질적인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이다. 성경 행복선언에서 말하는 것은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영적인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것들은 아나윔 정신이 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겸손한사람이며 형제들의 복음 나눔 속에 바로 아나윔 정신이 녹아 있어 기뻤습니다. (38.09‘) 물질적인 선물을 하고 싶어도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나윔의 작은 실천이다. 내 마음이 영적으로 가난해져 내 자신의 모습을 있는 대로 받아드리는 삶이 되어야 한다. 내 자신을 내려 놓아야 한다. 이런 마음을 성모님의 노래(마니피캇)에서 발견 할 수 있다. 성모님의 노래는 엘리사벳의 말씀에 응답하는 노래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응답하고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었으니 행복하십니다. 그러자 아기가 뛰놀았다. 마리아는 자기 자신이 비천함을 알고 있었다.’ 모든 만세가 나를 복 되도다 일컬으리라.‘ 바로 응답이 행복의 비결이다.
오늘 복음은 나병환자 유다인 9사람과 사마리아인 한명도 예수님께서 낳게 해줄 것이라고 응답하고 갔다. 믿었으니 낳은 것만으로 9사람은 만족했다. 그걸로 끝났다. 구원은 없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낳게 해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이것이 아나윔이다.
정말 아나윔 정신은 불편한 점이 있을 때 받아들였을 때 아나윔이다. 내 자신 생활 속에서도 어려움이 닦치거나 불평이 있을 때 받아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한 사람이 된다. 받아드리지 못할 때는 걱정의 삶을 살게 된다. 자기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이 회개이다. 만족하지 못한 상태로 행복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현재 만족하지 못하는 나의 상태 와 뭐하면 좋겠네 라는 상태에 내가 억매이고 있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은 작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큰행복만 바랍니다.
불행한 사람은 행복의 조건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 순간부터 행복하게 된다‘ 고 링컨은 말했다. 우리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본인들이 나쁘지 않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사실 행복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남이 나에게 큰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해 주셨기 때문에 처녀가 잉태를 했다. 내가 하는 일은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소유하려는 욕심을 잉태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아 하느님이 잉태할 수 있도록 내 자신이 노력 했을 때 ’아나윔 정신‘ 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연설 중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위에서 상처받는 것은 좋은 배려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이 모두를 마치 자기 소유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없든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 인격 가치를 몰라준다고 인간 손상이며 치욕이라고 실망하고 자존심을 상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인격적 모욕과 치욕을 잊어버리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향해 공격적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내 뺨을 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보다 하인을 더 배려하는 것이다. 우리가 부당한 취급을 받을 때 조용하고 평온한 자세로 있는 것이 참 가난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가난은 소유욕과 권리 주장의 모든 영역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기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은 있는 것으로 만족하자. 예수회 신부님은 건강보다 질병 ,부유보다 가난을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선택하신다. 그게 바로 ‘아나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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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월례회의 스케치 >
팜필로 형제님의‘다미안 까페’에서
월례회의를 갖다...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서기보 권 토마 (순)
* 참석인원 : 12명 (수녀님 + 전주 4분 서울 5분 안산 2명)
* 자비의 특별희년기도, 묵주기도(전국조정, 영광의 신비- 각 지구별로 지향), 가정방문기도
* 코이노니아 : 성경 봉독(루까 21,5~19), 묵상, 묵상나눔
* 김데레지아 수녀님 : 아나윔정신 – 요즈음 사태를 보면서 가난의정신이 필요한 시대이다. 믿는다는 것은 현재에 있다. 오늘 이 순간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권력 지배욕을 지향 부자되려는 욕심. 사람들은 사랑을 남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타락을 이끌어왔다. 이러한 것에 얶매이는 것은 돈, 권력으로 얶매여있는 것은 내가 거짓말쟁이이고 해방되지 않는 상태이다.
-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는 가난을 통해 겸손해지고 순명함을 모범으로 보여주심이고 자유로움이다.
빈곤, 걱정 - 하느님으로 채워져야 하고 멋있게 살아야한다. 사람답게 살아야 하기에, 아나윔 정신을 창설자신부님이 강조하신 것입니다. 버림은 가난이고 미래의 자양분이 된다. 가로수낙엽을 보면서 은행잎을 보면 쥐 죽은 나무에서도 어느 날 싹이 든다. 낙엽은 땅에 가서 거름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가난해진다. 나의 가난이 예수님을 만나는 토양이 됩니다. 요즈음 의류를 너무 많이 버린다는 것입니다. 전쟁이후 독일인은 기워입는 모습을 통해서 성장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안락한 생활 - 아이를 키운다 – 없는 사람이 잘 베풉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안락하게 산다- 염려해 준다- 없는 것으로 불편한 것을 이겨낸다.
-온전한 겸허란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노란 단풍나무는 미래를 위한 토양이 되고, 열매는 우리에게 준다. 이것이 겸손이다. 겸손하게 내려놓는다. 하느님께 돌리고 감사하는 마음- 자녀들이 잘 못하더라도 부모님을 모습을 통해 달라질 것입니다.
-현재의 삶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 -자기가 원하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한다는 것을 버린다. 부족한 것을 받아들였을 때 그것이 오히려 풍요롭다. 불편한 것을 받아들였을 때에... 내일의 사욕을 위해 축적하는 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것들을... 사계절의 나무를 통해서 하느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아나윔 바로 성서형제회의 정신이다.
* 효주아녜스 – 수녀님 말씀을 듣고 - 갱년기에 들어가면서 주위에 신경쓰여지는 일, 내가 내려놓아야하는 일들을 생각해봅니다- 내가 편하게 살려고 했던 일이 후회됩니다. - 기회를 주었는데 벅차다는 느낌이 듭니다... - 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교만이라고 느낍니다. 성숙히 살려고 합니다.
* 시간의 재촉을 받아서 몇 사람의 기록은 남기지 못했다.
* 쓰면 바로 내 것이라는 말을 듣고 느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에쿠아도르에서 내려다보시는 느낌을 봅니다.
* 미카엘 - 하늘에 아우를 보내면서 죽음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 나머지는 강의 내용이라 생략했다
* 팜필로 - 건강하지 못한 상태 – 파키슨 초기 증세 – 충격 속에서 삶 - 인간적인 고뇌 속에서 성서형제회야말로 현대판 아나윔이라는 생각이 든다 - 당장 표면에 들어나지는 않지만, 우리의 잠재의식을 깨어내려는 언어(미카엘형제) 우리는 충분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봅니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 삼종기도
1. 본명성인…기도
2. 안건
- 월례회의 순서조정 / 월례회의 운영 / 이웃돕기 방향 모색 / 월례회의 장소 / 동계묵상회 기도운영
- 지구별 보고 / 회의록 낭독 / 출석 : 차기조정봉사자 / 월례보고서 : 카톡으로 제출하기 바람.
- 안건 세부사항
✔ 50주년기념 상임위원을 중심으로 내용정리 – 피정 제안
✔ 관련 신부님. 수녀님 자문을 구하자.
✔ 효과적인 회의 안건 : 시간 제약을 두어서 5분 이내로 발언
✔ 코이노니아 체험나눔을 중심으로 정리해서 발표하자.
✔ 묵상나눔은 예의있게 합시다.
✔ 묵상은 집에서, 나눔은 회의장소에서 합시다.
✔ 영적나눔과 안건토론 어느 것에 시간 할당을 많이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 주제를 미리 정합시다.
✔ 성지신부님의 의견을 듣고 집중적으로 토의해야한다 - 임원들 중심으로 1일, 1박2일
✔ 12월 2째주 월례회의를 당산동에서 아침 일찍(9시경) 특별히 50주년을 중점 토론
✔ 2017년묵상회 - 천호성지 1박2일 6만원 프로그램 조정 성극(주제는 미리 정한다.)
✔ 월례회의 장소 서울.안산에서 주로하고, 전주는 가급적으로 배제하는데 합의했다.
✔ 팀보고 - 월례보고서는 그 달이 끝나는 날에 정리하여서 게시판에 올린다.
- 새로운 팀 구성 소식 : 서울 목동 김 데레시아 수녀님 협조에 의해 자매님들로 구성됨.
- 3시 자비의 기도
*** 회의도중 팜필로의 따님과 손녀가 오셨다.
그 이후 여러가지 의견개진이 있었으나,
서울 촟불시위로 인하여 서툴러서 회의장소를 빠져나갔다.
그날 타고 간 지하철역은 온통 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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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6년 10월 입출금 내역
일자 | 내 용 | 수 입 | 지 출 | 잔 액 |
9 /30 | 전월 이월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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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8,389 |
9 /26 | (서울 당산동) 산상수훈 팀 F·B | 50,000 |
| 1,598,389 |
10 / 4 | (전주 효자4동) 파티마 팀 F·B | 30,000 |
| 1,628,389 |
10 / 7 | (서울 당산동) 로고스 팀 F·B | 30,000 |
| 1,658,389 |
10 / 7 | (전주 서신동) 그리스도폴 팀 F·B | 30,000 |
| 1,688,389 |
10 /12 | (전주 효자우전) 성모마리아 팀 F·B | 30,000 |
| 1,718,389 |
10 /28 | (안산 원곡성당) 자매님 팀 F·B | 32,000 |
| 1,750,389 |
10 /31 | 사회복음화 지원금 (전주 교도소) |
| 50,000 | 1,700,389 |
10 /31 | 예수그리스도 수녀회 후원회비 |
| 30,000 | 1,670,389 |
10 /31 | <기쁜소식지> 인쇄비 (11월호) 및 주소라벨지 |
| 186,400 | 1,483,989 |
10 /31 | <기쁜소식지> 발송 우편요금 (11월호) |
| 55,600 | 1,428,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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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48,389 |
월간 입출금 합계 | 202,000 | 32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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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이월금 (통장 잔고) | 1,483,389 | |||
봉헌금을 보내주신 형제자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입금할 계좌 : 농협 352-1096-7951-13 이정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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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소식란 >
♠ 12월 < F·B 봉사자 월례회의 > 모임 안내
<봉사자 월례회의> 모임을 다음과 같이 갖고자 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일시 : 2016년 12월 10일 (토) 오전 11시, 묵주기도로 시작해요...!
※ 장소 : 안산 원곡 성당 – 안산역 또는 초지역에서 하차한 후, 택시 타고 성당까지 이동.
※ 안건 : ① 각 지구, 팀별 현황 보고 ( 팀 월례보고서, 지구 월례보고서를 2부씩 작성, 발표, 1부 제출)
② 동계 묵상회 준비
③ 기타 안건 협의
※ 참가 대상 : 각 지역, 각 팀 봉사자 (교구 및 팀 말씀선포자) 형제자매님 (각 팀 1명 참석 요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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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의 겨자씨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어느날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왕은 공중의 보석 세공인을 불러 지시했습니다.
"내가 승승장구 할 때,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할 수 있도록, 힘들 때 절망에 빠지지 않고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반지에 경구를 새겨 만들어라"
아름다운 반지를 만든 세공인은 정작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긴 고민 끝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왕자는 잠시 상념에 잠기더니 말했습니다.
“This too shall pass away.”
세상이 내게 주는 많은 기쁨과 힘겨운 시련 중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지혜로운 한마디....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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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를 군인으로 내모는 추문이 온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유럽인들이 삶에 기쁨과 희망을 주는 복음의 진선미를 다시 찾도록 기도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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