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지구여행 - 오스트레일리아 내륙 탐험 제가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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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1.07. 19:53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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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지구여행
오스트레일리아 내륙 탐험
제가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1606년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던 네덜란드 배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토러스 해협에 도착했고, 타스만도 1644년에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태즈메이니아에 도착하였다. 당시의 탐험가들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이렇게 큰 땅인 줄 몰랐고 아마도 중간에 바다로 갈라져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였다. 영국의 제임스 쿡은 1770년에 오스트레일리아 동해안에 도착하여 영국 땅임을 선포하였고, 1801년 영국 해군 플린더스(Matthew Flinders, 1774~1814)는 3년에 걸쳐 배를 타고 이 대륙을 한바퀴 돌았다. 그 뒤 내륙 탐험도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계속 실패하였다.
1851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멜버른에 내륙탐험위원회도 생겼다. 이 위원회에서는 빅토리아 주 경찰관인 버크(Robert O’Hara Burke, 1820~1861)를 탐험 대장으로 뽑고, 부대장에 랜델즈(George James Landells, 1825~1871), 의사 베커(Ludwig Becker, 1808~1861) 그리고 윌즈(William John Wills, 1834~1861), 킹(John King, 1838~1872) 등 모두 19명의 남자로 구성된 내륙 탐험대를 조직하였다.
1860년 8월 20일은 멜버른에서 탐험대가 떠나는 날이다. 말 23마리, 낙타 25마리, 짐마차 3대, 소총 37자루 등을 준비하여 북으로 향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 1840년에 세워진 스완힐(Swan Hill)에서 길 안내자 그레이(Gray)가 합류하였다. 날씨는 점점 거칠어지고, 문명인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땅으로 들어섰으며, 원주민들이 사는 곳에 당도하게 되었다. 거기서 일부 탐험 대원들끼리 불화가 생겨서 부대장 랜델즈와 의사 베커를 돌려보내고 젊은 윌즈를 부대장에 임명하였다.
탐험대는 끝도 없는 모래밭을 지나 메닌디(Menindee)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탐험대를 둘로 쪼개었는데, 대장 버크는 여덟 사람을 이끌고 예정대로 탐험 길에 나섰고, 대원중 라이트(Wright) 일행을 메닌디에 남게 하여 멜버른에서 지원대가 오면 같이 오라고 했다. 늪지대와 사막을 지나서 버크 일행은 중간 보급 기지인 캠프 65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도 메닌디로부터 지원대가 오면 함께 오라고 브라에(William Brahe) 외 4명을 또 남겨두었다. 그 후 버크는 윌즈, 킹 등과 함께 북으로 계속 항진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 내륙 탐험
오스트레일리아 내륙 탐험은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왜냐하면 탐험 팀이 완벽하게 출발지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탐험대 본진이 멜버른을 떠난 지 3개월 지나서 후속 지원대가 라이트가 있는 메닌디에 도착했다. 그들은 메닌디에서 대기중이던 일행과 함께 다음 약속 장소인 캠프 65로 달려 나아갔다. 한편 버크 일행은 계속 북진하여 클론커리(Cloncurry) 북쪽까지 올라가 캠프 119 근처의 강물이 짜고 밀물과 썰물이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가까이에 바다가 있다는 것이 확인 된 것이다. 1861년 2월 11일 그들은 태평양의 한 부분인 카펀테리아(Carpentaria) 만 부근까지 다가갔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 바다를 보지 못 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의 일기에 빽빽이 우거진 나무와 늪에 가로막혀 바닷물에 발을 담그지 못하고 돌아섰음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들은 6개월 동안 온갖 어려움을 뚫고 2,640㎞을 걸어서 목적지 부근에 도착한 사람들이다.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다시 그곳을 출발하여 쿤지(Coongie) 호수까지 내려왔는데 그레이가 숨을 거두었다. 한편 캠프 65에서 기다리고 있던 브라에는 북쪽의 버크 일행이나 남쪽의 라이트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 하였다. 기다림에 지친 브라에는 약속한 3개월보다 1달이나 더 지나자 멜버른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짐을 싸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메닌디의 라이트와 그 지원대가 캠프 65 남쪽 176㎞ 지점에서 원주민들에게 가로막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브라에는 음식을 땅에 묻고 버크에게 전하는 글을 적어두고 그곳을 떠나고 만다. 내용은 Dig 3FT NW(북서쪽 3피트 아래를 파라). 브라에가 떠난 지 약 10시간이 지난 후 탐험대의 공격조인 버크와 윌즈, 킹이 캠프 65에 당도 하였다. 카펀테리아 만을 떠난 지 126일째이고 멜버른을 떠난 지 8개월, 그들이 걸어온 길은 무려 3,840㎞나 되었다.
서로 어긋난 10시간은 버크 일행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만약 캠프 65에서 기다리고 있던 브라에를 만났더라면 모두 함께 멜버른에 무사 귀환하였을지도 모른다. 불과 10시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버크 일행은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바로 브라에 뒤를 쫓았으나 결국 만나지 못하고 길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죽음이 다가옴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힘이 빠진 윌즈는 버크와 킹에게 나를 두고 그냥 가라고 부탁했다. 이것이 윌즈의 마지막이었다.
조금 더 걸어간 버크도 살아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마지막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탐험을 끝냈다. 그렇지만 더 헤쳐 나갈 힘이 없다.”라고. 버크는 그 자리에 남았고 혼자가 된 킹만이 비틀거리며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갔다. 얼마 뒤 멜버른의 탐험 위원회는 구조대를 만들어 탐험대를 찾기 시작하였는데, 어느 원주민 마을에서 뼈만 남아 죽어가고 있는 백인을 발견하였다. 그는 킹이었다. 모기 목소리로 “제가 마지막 생존자입니다”라고 말하는 ….
[네이버 지식백과] 오스트레일리아 내륙 탐험 - 제가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대단한 지구여행, 2011. 8. 1., 윤경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