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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꽃향기를 맡으면 꽃사람이 되지”
작은 희망을 노래하는 이해인 수녀
수녀원 입회 60주년 기념 단상집
우리 시대의 시인 이해인 수녀가 1964년 수녀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 2024년에 이르기까지 60년간 품어온 이야기를 담은 책 《소중한 보물들》이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다. 어머니의 편지부터 사형수의 엽서까지, 첫 서원 일기부터 친구 수녀의 마지막을 배웅하며 쓴 시까지, 수녀원의 고즈넉한 정원부터 동그란 마음이 되도록 두 손을 모았던 성당까지, 열정 품은 동백꽃에서 늘 푸른 소나무까지 그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이 책은 이해인 수녀가 인생의 노을빛 여정에서 생각을 정리하며 쓴 단문, 칼럼 그리고 신작 시 열 편을 추려 엮었다. 법정 스님과의 일화, 김수환 추기경의 서간문, 신영복 선생의 붓글씨 등 하늘나라로 떠난 인연들과의 추억담이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10대 초등학생부터 90대 어르신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며 나눈 덕담, 수녀 공동체부터 독자 공동체까지 기쁨과 슬픔을 껴안으며 나눈 정담, 편지 수천 통부터 작은 선물 수천 가지를 주고받으며 나눈 진담도 펼쳐놓는다. 피사체의 빛과 그림자를 아름답게 담아내는 정멜멜 사진작가가 2022년 11월부터 2024년 4월까지 이해인 수녀와 동행하며 찍은 사진을 실어, 독자를 수녀원의 반짝이는 일상으로 초대한다.
꽃씨 한 알이 꽃을 피우기까지 그 꽃씨가 품은 향기를 오롯이 알긴 어렵다. 이해인 수녀가 처음 선보이는 단상집도 그러하다. 책장을 펼쳐야 비로소 그 안에 깃든 참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펼쳐 읽는다는 건 어둑한 마음에 꽃물을 들이는 일,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삶에 희망을 슬며시 들이는 일, 지금 내 곁에 가만히 머물며 내 등을 도닥이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맑은 경험일 터이다.
목차
첫말 /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1 글방의 따사로움
작은 시인의 작은 기쁨
해인글방
책갈피
등불
사랑의 도구
새 시계
환대에 관하여
꽃구름
시인의 몫
편지 골목길과 편지 창고
말씀 뽑기 통
평상심
열두 알의 편지
방명록
식물 키우기
손님맞이
조금의 노력만으로도
기쁨 발견 연구원
글방 단상
2 생명의 신비로움
꽃향기를 맡으면 꽃사람이 되지
동백꽃을 사랑하며
태산목
민들레 홀씨
솔방울
한 평 꽃밭
텃밭
나무들의 이사
노수녀님의 감탄사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잎사귀
만세선인장
다육이
목화
생명 단상
3 수도의 향기로움
언제나 동그란 마음으로
성모상
우리 집
이별학교 학생이 되어
장독대
종탑
뒷모습
언덕방
수도원의 복도와 층계
층계 위 구름다리
창
성당
작은 종
수도 단상
4 생활의 부드러움
안아주기, 사랑하기
수평선을 바라보며
조가비
앵무새 인형
등긁이
책이 주는 많은 것
이름 부르기
신발을 신으며 배우는 겸손
나무토막
지팡이
돌멩이
길에서 주운 돌
생활 단상
5 추억의 아름다움
맑은 물에 닦이고 깎이듯
좋은 말씀 수첩
어머니의 편지
빗자루 카드
언니 수녀님의 편지
김수환 추기경님의 엽서
인두
꽃 골무
단추
88번 손수건
아버지 사진을 볼 적에
첫 서원 일기
오빠가 보낸 수석
장영희 교수의 시계
사형수의 목각
사형수의 엽서
민들레의 영토
여권 사진
반지
추억 단상
끝말 / 시가 될 사람
부록 / 열 편의 시
상세 이미지
저자 소개
저 : 이해인 (李海仁)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삼 일 만에 받은 세례명이 ‘벨라뎃다’, 스무 살 수녀원에 입회해 첫 서원 때 받은 수도명이 ‘클라우디아’이다. ‘넓고 어진 바다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뜻을 담은 이름처럼, 부산에 있는 바닷가 수녀원의 ‘해인글방’에서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수십 년간 폭넓은 독자층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시는 교과서에도 여러 편 수록되어 있고 전국의 산과 공원에 수많은 시비로도 새겨져 있다.
수도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기도와 시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수녀 시인.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필리핀 성 루이스 대학 영문학과와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부산 성 베네딕도회 수녀로 봉직중이다. 1964년 수녀원(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 1976년 종신서원을 한 후 오늘까지 부산에서 살고 있다.
1970년 『소년』지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한 이후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시간의 얼굴』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작은 위로』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작은 기쁨』 『희망은 깨어 있네』 『작은 기도』 『이해인 시 전집 1· 2』 등의 시집을 펴냈고, 동시집 『엄마와 분꽃』, 시선집 『사계절의 기도』를 펴냈다. 산문집으로는 『두레박』 『꽃삽』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기쁨이 열리는 창』 『풀꽃 단상』 『사랑은 외로운 투쟁』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시와 산문 을 엮은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등이 있다. 기도시 그림책 『어린이와 함께 드리는 마음의 기도』, 동화 그림책 『누구라도 문구점』을 냈다. 그밖에 마더 테레사의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외 몇 권의 번역서 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짧은 메시지에 묵상글을 더한 『교황님의 트위터』가 있다. 그의 책은 모두가 스테디셀러로 종파를 초월하여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초·중·고 교과서에도 여러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제9회 새싹문학상, 제2회 여성동아대상, 제6회 부산여성문학상, 제5회 천상병 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1976)를 펴내고 “고독의 진수를 깨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을 호명하며 우리 곁에 다가온 수녀는 수도자임에도 꾸준히 대중적인 인기를 이어가는 비결에 대해 ‘일상과 자연을 소재로 하는 친근한 시적 주제와 모태 신앙이 낳아준 순결한 동심과 소박한 언어 때문’일 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넘치는 사랑과 정갈한 자기 반성이 읽는 이까지 물들이고, 일으켜 세우는 수녀 시인. 수녀는 시집 『작은 위로』에서 가슴에 빗금을 그으며 내리는 빗줄기를 보고 “진정 아름다운 삶이란 떨어져 내리는 아픔을 끝까지 견뎌내는 겸손”임을, “함께 사는 삶이란 힘들어도 서로의 다름을 견디면서 서로를 적셔주는 기쁨”임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하면서/사실은 용서하지 않은/나 자신을 용서하기/힘든 날이 있습니다”라는 고백도 털어놓았다.
이해인 수녀의 시를 읽다보면, 우리가 왜 시를 찾고 시를 읽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해인 수녀는 지상의 모든 대상들과 “기도 안에서 만나고, 편지로서 만나고, 그리움으로서 만”난다. 그리하기에 수녀의 시는 기도로서, 편지로서, 그리움으로서 다가온다. “뒤틀린 언어로 뒤틀린 세계를 노래”한 시들이 줄 수 없는 “위안, 기쁨, 휴식, 평화”를 주기에 종파를 초월하여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또한 이해인 수녀는 악기의 소리로 시를 쓴다. 우리가 불안해하지 않고,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감동과 전율로 그녀의 시를 읽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리듬에는 “사기(邪氣)”도 “불화”도 없다. 오묘한 화성의 조화, 부드럽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가득하다. “평생을 죄지은 자, 상처받은 자들을 감싸 안아 성모 마리아의 마음으로 사랑해온 수녀님의 순결한 영성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소리다. 그리하여 수녀의 글을 받는 이들은 “행복하다.”
한편 이해인 수녀는 어머니 1주기(2008년 9월 8일)를 기념한 열 번째 시집의 원고를 탈고하자마자 뜻밖의 암 선고를 받았다. 곧바로 대수술을 받고 잠깐 동안의 회복 기간을 거쳐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한 이해인 수녀는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아픈 걸 다행으로 생각”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이같은 마음은 열 번째 시집 『엄마』에 잘 담겨 있는데,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해인 수녀에게 선물로 주신 도장집, 꽃골무, 괴불주머니 등 어머니의 유품 사진들과 잔잔한 사연을 함께 담고 있다.
시인으로서 40년, 수도자로서 50년의 길을 걸어온 이해인 수녀는 오늘도 세상을 향해 시 편지를 띄운다. 삶의 희망과 사랑 의 기쁨, 작은 위로의 시와 산문은 너나없이 숙명처럼 짊어진 생활의 숙제를 나누는 기묘한 힘을 발휘한다. 멀리 화려하고 강렬한 빛을 좇기보다 내 앞의 촛불 같은 그 사랑, 그 사람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는 ‘조금씩 사라져가는 지상에서의 남은 시간들’, 아낌없는 사랑의 띠로 우리를 연결 짓게 한다.
책 속으로
좋은 시란 천 사람이 한 번 읽는 시보다 한 사람이라도 천 번 읽는 시다. 수도 생활, 수행자 삶 자체가 시와 비슷하다. 내게 시는 수도자의 삶을 압축해 표현하는 사랑의 기도다. 사계절의 삶을 언어로 풀어내는 노래다. 독자들의 편지를 읽다 보면 시는 작은 위로, 작은 기쁨, 작은 러브레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시인은 삶에 시를 채워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언어의 천사다. 사제처럼 아름다운 노력을 하는 삶 속 예술인이다. 남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예민하게 관찰하는 것. 그것이 시인의 몫이다. 나는 성당에서, 침방에서, 정원에서 그리고 글방에서 시를 빚는다. 나는 한 편의 시처럼 죽었으면 좋겠다.
--- p.33 「시인의 몫」중에서
누가 말했다. “수녀님은 식물을 잘 키우시는 것 같아요.” 내가 응대했다. “글방에 햇빛과 바람이 들어와 잘 자라는 거예요. 글방의 좋은 조건에 사랑의 눈길을 조금 보탠 것뿐이에요.” 애착이 강한 사람은 자기가 키운 식물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겠지만, 나는 식물을 키우면 분가시켜 누군가에게 선물한다.
언젠가 미국 애틀랜타에 사는 독자 회림에게 글방 앞의 분꽃 씨를 선물했다. 그는 자기 집에 분꽃 씨를 심고 나서 분홍 분꽃이 핀 사진을 내게 보내주었다. 식물을 공유하는 것은 생명을 공유하는 것. 갖는 기쁨보다 선물하는 기쁨이 더 크다.
--- p.45 「식물 키우기」중에서
기쁨 발견 연구원인 내 취미는 참으로 풍성하다. ‘글로 말로 누구를 기쁘게 해줄까?’를 구체적으로 궁리하는 것. 좋은 시나 글귀를 모아 맛을 들이고 만나는 사람에 맞춰 나눠주는 것. 나뭇잎, 꽃잎, 돌멩이, 조가비, 빈 병, 솔방울, 손수건 들을 모아 예술성 있게 작은 선물을 만드는 것. 다양한 스티커를 이리저리 구성해 고운 카드를 만드는 것. 아름다운 풍경이나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말을 잊지 않고 적어두었다가 되새김하는 것. 꽃나무 이름을 찾아 공부하는 것. 식물도감에서 꽃나무 이름을 찾지 못했을 때 물어서라도 알아내는 것. 누군가가 내게 무얼 갖고 싶다는 표현을 하면, 잘 기억했다가 어느 순간 깜짝 선물로 주는 것. 모두가 기쁨을 찾는 ‘기쁨이’가 되도록 내 기쁨을 나눠주는 것.
--- p.51 「기쁨 발견 연구원」중에서
수녀원에 떨어지는 솔방울은 어찌나 깨끗한지! 종소리를 들으며 우리와 함께 기도해서 그런가? 수녀원 입구 언덕에 솔방울이 모여 있네.
나는 아픈 다리를 다독이며 바구니를 들고 솔방울을 주워 담네. 솔방울을 코에 대고 솔숲 향기를 느끼네. 조가비를 지니고 있으면 바다를 지닌 것 같고, 솔방울을 지니고 있으면 산을 지닌 것 같네.
--- p.67 「솔방울」중에서
인생의 이별학교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모든 것은 언젠가 다 지나간다는 것을, 삶의 유한성을 시시로 절감하며 지금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결국 많이 감사하고 자주 용서하는 일이라는 것을, 잘되지 않더라도 의식적으로 옆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깊고 넓은 사랑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어느 날 찾아올 진짜 마지막 이별을 순하게 맞이하는 길이라고 말이다.
--- p.101 「이별학교 학생이 되어」중에서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이 화해와 용서다.
언짢은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하거나
듣기 좋은 말을 하거나
기도하는 것은 위선이다.
오늘 용서할 일을
오늘 용서할 때 평화가 찾아온다.
--- p.121 「수도 단상」중에서
간혹 백사장에 가서 조가비를 주워온다. 바닷물이 묻은 조가비를 햇볕에 말린 뒤 거기에 시구, 단어, 기도문을 적거나 그림을 그려 글방에 온 손님들에게 선물한다. 또 조가비에 예쁜 스티커를 붙이기도 하고 성서 말씀을 쓴 종이를 조가비 안에 붙여 선물하기도 한다. 조가비를 줍는 마음으로 오늘도 내 일상의 해변에서 숨은 보물을 찾아내리라.
--- p.131 「조가비」중에서
하트 시계를 보며 시간을 생각해본다. 오늘을 살아간다는 건 결국 순간 속 영원을 호흡하는 것이다. 언젠가 지상의 여정을 마쳐야 함을 시시로 절감하며 겸손해지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은 무한한 사랑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다.
--- p.181 「장영희 교수의 시계」중에서
결국 사람들이 사는 곳이
더 중요하다는 걸
거기가 바로 구원의 장소라는 걸
왜 이리 늦게야 아는 것인지
--- p.215 「어떤 생각」중에서
출판사 리뷰
언제나 동그란 마음으로 60년간 간직한 이야기
누구에게나 비밀 서랍이 있다. 다만 이 책을 쓴 저자의 비밀 서랍은 닫혀 있지 않고 언제나 열려 있다. 그 서랍 안에는 조가비와 돌멩이, 편지지와 색연필, 엽서와 손수건 등 손님에게 나눠줄 선물로 쓰일 사물들이 들어 있다. “선물은 돌고 돌아 결국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빛난다고 생각”(9쪽)하는 그이기에, 평생 가진 것을 나눠주려고 서랍을 비우고 채우길 되풀이한다.
어느 사형수는 그에게 편지를 받고 “이모님, 모두 제게 회개하라고 하는데 제 안의 맑은 마음을 꺼내라고 한 분은 처음입니다”(35쪽)라는 답신을 썼고, 어느 독자는 그에게 받은 “글방 앞의 분꽃 씨”(45쪽)를 마당에 심어 분홍 분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그가 건넨 작은 선물에 울고 웃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값비싼 보석이 아니라 차갑지 않고, 값진 정성이라 뭉근한 온기가 느껴지기 때문이겠다.
그리하여 그가 살아온 흔적과 그가 건넨 눈빛은 시라고, 그가 손가락을 굽혀 쓴 한 줄은 외로운 희망을 외롭지 않은 곳으로 인도하는 시라고 세상은 말한다. 《소금꽃나무》의 저자 김진숙 선생은 “스물여섯 살에 해고되어 벌판에 홀로 선 듯 외롭고 막막할 때”(43쪽) 그의 시를 읽으며 위로를 받았고, 한 초등학생은 그의 책을 읽고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자”(53쪽)라고 다짐했다.
이렇듯 모든 사람에게 꽃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한 시인, 이해인 수녀가 60년간 모은 이야기를 담은 책 《소중한 보물들》이 출간되었다. 인생의 여정을 정리하며 낡은 일기장을 들추며 쓴 글, 친구와 마지막 작별인사한 뒤 침방에 돌아와 쓴 시, 앞치마 안에 넣어둔 메모지를 꺼내 적은 기록, 일간지에 연재한 칼럼 일부를 공글려 엮었다.
1964년 수녀원에 입회해 “언제나 가난한 마음으로 별빛을 씹고 바람을 마시면서 사는 마음 착한 ‘아이’이고”(193쪽) 싶던 그가, 지금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이 되어“부족하나마 시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고, 기도를 멈추지 않는 자그마한 엄마”(191쪽)가 되길 겸허히 소망하며 꺼낸 〈첫말〉은 이것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8쪽)
어쩌면 우리가 잊은 소중한 것들의 목록
책의 차례는 혹 우리가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을 되짚는다. 일일이 나열하면 셀 수 없기에 추려서 총 5부에 나누어 담았다. 책의 사진은 2022년 11월부터 2024년 4월까지 정멜멜 작가가 이해인 수녀와 동행하며 찍었다.
1부 〈글방의 따사로움〉은 1997년 가을 처음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열 평짜리 해인글방에서 하루를 보내는 이해인 수녀가 만난 사람들의 사연, 글방에 자리한 사물들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는 자신을 “기쁨 발견 연구원”(51쪽)이라 칭하며, “조금의 노력만으로도 살며시 행복이 피어나는 소리”(49쪽)를 기억하며, 작은 시인으로 사는 작은 기쁨을 들려준다.
2부 〈생명의 신비로움〉은 환우 수녀가 일군 한 평 꽃밭부터 태산목, 만세선인장, 목화까지 자연에서 배우고 터득한 지혜를 공유한다. “솔방울을 지니고 있으면 산을 지닌 것”(67쪽) 같다니, “꽃향기를 맡으면 꽃사람이”(91쪽) 된다니, 흰나비에게 “조그만 풀포기도 기억해주니 고맙구나”(191쪽)라고 속삭이는 문장은 육중한 일상에 펼쳐진 아늑한 그늘 같아서 우리를 묵상하게 이끈다.
3부 〈수도의 향기로움〉은 고(故) 박완서 소설가가 아들을 잃고 마음의 회복을 경험한 언덕방부터 성당, 구름다리, 종탑까지 수녀원의 풍경을 스케치하며 동그란 마음을 그린다. 수녀원 생활도 인간사라 언짢은 일이 있는데, 그때 “오늘 용서할 일을 오늘 용서할 때 평화가 찾아온다”(121쪽)라고 한다. “작은 천사가 되려면 큰 포기를 할 줄 알아야”(121쪽) 삶의 언덕길을 숨 가쁘게 오르내리지 않을 수 있겠다.
4부 〈생활의 부드러움〉은 광안리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는 일부터 매일 겸손한 마음으로 신발을 신는 일까지 나의 하루를 안아주고 사랑하는 즐거움을 술회한다. “살아 있다는 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자 이름이 불리는 것임을 다시금 생각하며”(139쪽)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안녕을 빌어주는 마음의 예쁨을 생각해보게 한다.
5부 〈추억의 아름다움〉은 어머니의 유품부터 문인들과의 일화까지 맑은 물에 깎이고 닦이는 돌처럼 추억도 시간이 흐르며 아름다워짐을 이야기한다. 5부 말미의 〈추억 단상〉은 수도 청원기 시절, 투병 시절을 거쳐 노년 시절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을 시간순으로 풀어놓으며 여운을 남긴다. “언제나 만남은 짧고 이별은 길다.”(197쪽)
아픔을 아프지 않게 껴안는 환대의 책
이해인 수녀는 〈끝말〉에서 “단순히 수녀가 쓴 글이라서 점수를 후하게 준 것일까. 그래서 관심과 조명과 인정을 받은 것일까. 내가 수도원 밖에 있었다면 독자의 사랑을 그리 오래 받지 못했을 거란 동료들의 말이 정말일까”를 자문한 적이 있다고 썼다. 이번 책에 실린 신작 시편 중 한 편인 〈그리움〉에서 “일생의 화두가/ 언제나 그리움이어서/ 삶이 지루하지 않고/ 내내 행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움’을 ‘행복’으로 치환한 시를 쓰는 시인에게 어떤 명함이나 직함이 필요할까.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환대’, 아픔을 이겨내는 방식은 ‘명랑’, 시에 담는 주제는 ‘작은 위로’. 그러하니 그가 쓴 글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그는 시와 산문으로, 작은 사랑이 목말랐던 우리의 심장에 따스함을 들여놓았다. 우리는 그의 글을 통해 꽃잎 한 장에도 무게가 있듯 사랑에도 무게가 있음을 알았고, 그래서 기꺼이 사랑의 무게를 겪으며 삶의 근육을 단단히 키울 수 있었다. 그러하니 그는 우리 시대의 든든함 버팀목이리라.
백 번 치는 종소리보다 한 번 치는 종소리가 마음속 깊이 울려 퍼지는 순간이 있듯, 《소중한 보물들》의 한 문장이 독자를 울리기도 할 터이다. “지극히 절제된 울음만 조용히 안으로 삼키다 보니 아무런 체면 없이 큰 소리로 우는 이들이 때론 부럽기도”(191쪽) 했다는 그의 티끌 없는 고백에 가슴 시리기도 할 터이다. 그러다 “묵언 수행하는 꽃들의 침묵만큼 분위기를 명랑하게 만드는 즐거운 수다쟁이”(88쪽)가 필요하다는 문장을 읽고 입꼬리를 올리기도 할 터이다. 독자는 이 책을 보물찾기하듯 읽다가 결국 알게 될 터이다. “아픔도 소중한 선물”(121쪽)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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