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소설] [단편] 이가 아파요

[초록빛수정:)]

[단편] 이가 아파요
















written by.초록빛수정:)









"요즘은 이가 자주 아프단 말야."




참 바보 같게도.

때 이르게 돋아난 사랑니가, 안 그래도 예민한 나의 신경을 톡톡 건드리다 못 해 바늘로 깊숙하게 찌르고 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나는 이 저주 받은 치통에 몸부림 쳐야 합니까. 오 주여.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고통 중 하나가 치통이라던데. 그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중인 나.







흐릿한 구름들 깨끗이 개어지고 모처럼만의, 날씨 참 화창한 오후였다.


갓 끓여놓은 커피 포트에서 흘러나오는 진득한 모카 냄새가 콧가를 살살 자극한다.

얼마 전 찾아갔던 히치콕의 코코아 위 잔뜩 매끈하게 놓인 크림이 생각난다.




사각사각. 진료 일지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써나가는 카운터의 간호사 언니.

꾸벅꾸벅. 치료받으러 오셨다가 볕 좋은 날에 춘곤증 이기지 못하고 꾸벅이시는 돋보기 할아버지 한 분.

네모진 사각 안경 속에 눈 숨기시고, 부시럭거리는 잿빛 신문 뒤적이시는 중년의 중절모 아저씨.

느지막히 나타난 이마 위 여드름 만지다 책 들여다보고, 다시 여드름 만지는 대학생 언니.

그리고, 가방에서 참고서 한 권 꺼내어 풀다 말다를 반복하는, 내가 봐도 참 할 일 없는 나.


MP3를 가져올 걸 그랬지.





대기실은 모두들 잠 들어버린 공간처럼 따스하고 조용했다.

오후 햇빛만이 하늘빛의 천을 타고서 모래알같은 수면 가루를 뿌리듯 고요하게 소로로 흐를뿐.

화사한 감 적지않게 발라놓은 은은한 파스텔빛 벽지가 제법 보기 좋다.






'학교 마치고 바로 치과 가.'




우리집 공포군주, 어머님 말씀을 높이 받들어 교복도 못 갈아입고 학교 근처 치과를 찾았다.

난생 처음 와 보는 곳이지만. 나쁘진 않겠지, 라는 기대 하에.

인상적인 치과 이름에 끌린 걸까.

'햇살 가득한 치과'. 진짜 햇살이 가득할지, 가득하지 않을지는 보면 알겠지 뭐.






아담하게 지어진 건물에 큼직하게 트인 창문에 노란 햇빛이 쏟아지고 있다.


하얀 피켓 울타리를 두른 창틀 위 조그만 두 애플민트 화분.

누가 더 높게 자랄까 내기라도 하는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대도 없이 길쭉하게 솟아있다.

그들의 가지를 뚫고 자란 조그만 잎에 뻗은 잔잔한 잎맥 사이 사이를 비춰내는 창 너머 햇살.


노란 물 들은 창 너머로 보이는 벚나무 가로수 밑 분분히 눈이 떨어지는 모습들.





병원 카운터 한 구석을 차지한 낡아보이는 까만 오디오에서 어쩐지 옛 잉크 냄새가 물씬 난다.

고요한 도서관에 혼자 있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포근히 젖어있는 흙같이 고운 쪽빛 냄새.

귀에 꽤 익숙한 트럼펫 소리. 적당히 묵직하게, 마치 커다란 돌덩이를 지고 있는 듯한 소리들이다.

아아. 그래. Chet Baker였던가. 어쩐지 익숙하다 했지.




참고서를 덮어 가방에 넣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음울한 그의 노래에 천천히 박자를 맞추어 가는 동안,

별 소식이 없던 진료실에서 나지막이 내 이름이 흘러 나온다.




"문근영씨. 들어오세요."


"네."




진료실은 넓고 환했다.

네 개의 의자 중 빈 의자를 찾아 몸을 뉘이자 간호사 한 명이 다가와 수건 비슷한 것을 목에 두른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상냥한 간호사의 말투에 고개를 끄덕이곤.


무언가 눈요기 할 것을 찾던 내 눈은 진료실 앞, 직사각형의 거대한 유리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료 할 동안 환자가 심심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창문 너머로

손바닥만하게 줄어든 사람들은 참 바쁘게도 제 길을 걷고 있다.



도보 위에 남겨진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은 언젠가 또 지워지겠지.

발라놓은 시멘트 위에 짖궂게 발자국을 남겨보지만,

언젠가 또 그 위에 회색의 시멘트가 부어지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길에 시멘트를 붓고, 또 발자국을 남길테지.





구불히 지어진 뇌의 철학길을 눈보다 훨씬 더 작은 세포들이 줄 지어 가는 동안

아지랑이 피는 봄볕에 내놓은 샛노란 병아리를 보듯.


한없이 노란 빛으로만 보이는 햇살과 그 뒤편의 나무들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지.






















"음……."


"일어나셨어요?"




두 눈 깜박깜박. 간호사인가? 하얀 가운을 입은 여성이, 까만 테 안경을 코에 걸치며 웃는다.

깜박 잠이 든 모양이다. 눈꺼풀을 비비고 몸을 일으키려니 어깨를 가볍게 눌러준다.





"날씨가 좋으니까 잠이 솔솔 오죠?"


"…치료는요?"


"아직 덜 끝났어요. 조금만 기다릴래요?"




아- 벌리고 있는 입이 아파서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더니,

싱긋. 눈가를 구부리며 밝게 웃음.


'제 이름은 임수정이에요.' 가운 위에 까만 실로 촘촘하게 박혀있는 이름을 가리키며 웃는다.




환자에게 저런 눈웃음 쳐도 되는 건가.

성격 좋은 여고생 같은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도 왼쪽 가슴을 누군가 가볍게 툭 친 듯한 느낌.







그건 그렇고. 다른 간호사들은 어디로 간 걸까. 진료실에 홀로 누워있다는 것에 괜히 어색해졌다.

아까 그 여자는 원장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도통 나오질 않고, 사람들도 없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쑥스러움에 고개를 두리번거려보는데 원장실에서 그녀가 걸어나온다.




"다른 간호사들은 근처 분식집 갔어요."


"네?"


"배고프다네요."




배 근처를 툭툭 두드리며 다시 방그레 웃는 그 얼굴은, 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창으로 쏟아져내리는 오후의 봄 햇살이 그녀의 고운 안경 끝에 살포시 내려 앉은 것처럼.

왜 그렇게 그녀의 얼굴이 빛 나 보이는 걸까.

멋쩍게 아랫턱을 쓱 만지자 '침 안 흘렸어요.' 라며 또 눈을 곱게 구부린다.










보면 볼수록 고운 눈매를 가진 사람이다. 아니, 곱다기 보다는 다정한 눈매라고 하는 게 더 옳을까.

이를 치료하는 도중에 가끔 이가 아파 눈썹을 찡긋거릴 때마다 미안하다며 살짝살짝 웃어주는 눈매.

무엇이라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발간 홍채가 든, 정이 묻어나는 매력적인 다갈색 눈동자.

오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을, 자신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흥얼거리는 것도.



무엇보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부드러운 민트 허브향이 비누향과 섞여 정신을 아찔하게 하고 있다.

어깨를 조금 넘는 까만 머리칼이 나의 이마에 닿을 듯…말 듯. 아슬아슬하게, 긴장된다.


새근새근… 한 층 조심스러워진 그녀의 숨소리에 오르락내리락거리는 마음.





눈이 부시다.

다시 잠이 들 것 같은 날씨.




아스라이. 아지랑이. 그것들이 피어오르는 사이 꿈 같은 시간들이 조심스럽게 또 빠르게 지나간다.


스멀거리며 발 끝부터 잠식해가는 깊다란 늪에 빠진 것처럼, 헤어나오기가 여간 벅찬 게 아니다.

코 끝에 느껴지는 진한 봄 햇살 냄새. 곱게 핀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진 작은 산모퉁이와 같이.


산뜻하고, 또 상쾌하게. 한편으론 매혹적인 기분들.

















"아야야."


"당분간은 조심하세요. 밥 먹기도 힘 들 거예요."


"…언제쯤 다시 와야해요?"




길게 여운이 남는 목소리.


그녀와 만난 시간은 10여분도 채 안 되는데 어느 새 깊이 빠진 듯 갈색 눈동자가 하염없이 내게로 스며든다.

갓 봄비 내린 촉촉한 봄 기운에 마음이 모두 사르르 녹아 최면에 걸린 건 아닌지.

온 몸, 온 마음으로 느껴지는, 살랑거리는, 아니…유연하게 흐르는 봄바람이 무척 따스하다.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수줍은 내 맘을 알아차린 듯,

카운터에 서서 깨알만한 글씨로 진료일지에 무어라 끄적이던 그녀는 다정하게 웃어준다.


고르게 난 눈썹 밑을 따라내려와 곱게 드리워진 그녀의 긴 속눈썹이 살며시 닫히고 열릴 때.

또 다시 피부와 마음 안으로 스며드는 그녀의 작은 행동들. 모습들. 발간 입술이 그리는 호선.




"일주일 후에 오시면 돼요."




일주일. 아. 멀고도 먼 시간. 너무 길게 느껴지는 시간. 세상의 시계 바늘을 돌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봄바람을 탄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혹시나 그녀의 귀에 들리고 있는 건 아닌지.




"네…. 안녕히계세요."


"안녕히가세요."




안녕. 안녕 … 돌아서기 아쉬운 발걸음만 묻어나는 그 길목.




"아참! 깜박하고 말씀 못 드린게 있는데."


"네…?"


















"내일 당장 오실래요? 전 그게 더 좋은데."







아아.


투명한 유리창을 비집고 들어오는 노란 햇살이, 이 작은 곳을 가득 비출 때.

다소곳이 선 애플민트의 잎들이 하늘거릴 때.

당신의 다정한 갈색 눈동자가 그 햇살 안에서 고요하게 웃고 있을 때.




'햇살 가득한' 우리들.













내일은, 좀더 가까워져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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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굉장히…오랜만에 찾아뵙는 초록빛수정:) 입니다.

한달도 훨씬 더 된 것 같네요. 저번에 제 소설을 읽어주신 분은 아실테지만,

이 아이디는 OneFineDay를 빌린 것이구요. 원이는 아직 팔 깁스 상태입니다;

그냥 가볍게 부러진 정도인 줄 알았는데 뼈가 잘 붙질 않아 꽤 심각하다고 하네요.

사실 깁스인 것 때문에도 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학업에 열중하느라고

컴퓨터를 할 시간이 많이 없어요 ^^; 그래서 원이나 저나,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점에 굉장히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T^T 이해해주셨으면 좋겠구요.

저번에 제가 적었던…주저리에서 잠깐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팬픽을 처음 쓴 게 아니고, 순수 소설방엔 처음 올린다는 이야기였답니다 ^^a;

그리고 코멘트 남겨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기분이 참 좋았답니다~ ^^

이번 허접소설도 그냥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리 고쳐봐도 예전 것과 별 다를게 없는, 아니; 더 나빠진 것 같네요;;


클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론 더 자주 오도록 노력할게요. 항상 행복하세요!

[클로냥]

와아~소설 묘사를 참잘하셨네요. 막 작은 행복들이 통통 튀는 듯한..따뜻한 기분..수정언니같은 치과의사 있다면...이 다 썩게 할꺼에요. ㅋ 앞으로도 건필하세요!

[편히보내주는길]

ㅋㅋㅋ ㅋㅋㅋ 재밋군요! 제가 제일싫어하는 치과의사가 수정님이라니......하지만! 수정님이라면 당장이라도 이빨뽑으러 갈껍니다!!!

[와방수정乃]

꺄악+_+ ;; 좋아요 너무-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