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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6일 오늘의 역사
2020년 방탄소년단 흑인인권운동 캠페인 BLM(Black Lives Matter)에 100만$ 기부
2019년 시인 김혜순 『죽음의 자서전』으로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수상
2018년 만취여성 성폭행한 스타 강사 브록 터너에게 징역 6개월 선고한 애런 퍼스 캘리포니아주 판사 주민소환투표로 해임
2009 한국 월드컵 본선 7회 연속진출 확정
2009년 범민련 전 의장 강희남 목사 자살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의 초대 의장(남측본부)을 지낸 강희남(89) 목사가 2009년 6월 6일 오후 전북 전주시에 있는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 목사는 1990년대 통일운동에 앞장섰던 대표적 친북성향의 재야운동가로 1990년대에 범민련 남측본부 초대의장을 맡아 활동해왔다. 하지만 이 단체는 연방제 통일 지지,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내세우고 있어, 1997년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지난 1994년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당시에는 범민련 남측본부 대표단을 이끌고 방북 조문을 기도해 구속되기도 했었다. 강 목사는 통일운동과 함께, 이라크 파병에 대한 반대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강 목사는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와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등에서도 활동했다. 특히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에는 정부가 대북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05년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 출범식
전국 47개 고등학교 학생회가 주축이 된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한고학련)가 2005년6월6일 공식 출범했다.
한고학련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각급 고교 학생회장 등 50여명이 모여 출범식을 개최했다. 한고학련은 출범 선언문을 통해 “역사의 전환기마다 대한민국 개혁에 이바지해 온 고등학생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고교 학생회의 바람직한 운영을 통해 고교생의 의견을 모아 내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명목적인 활동에 그치고 있는 고교 학생회의 제자리 찾기를 도모하고 고교생의 권익을 보호, 증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고학련은 전날 서울 방화동 국제청소년센터에서 첫 대의원 대회를 열고, 중앙대 사대부고 3학년생 김백건(18)군을 초대 의장으로 선출했다.
이 단체는 “대입제도, 학교급식 등 학생생활에 밀접한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했으나, “학생 권익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활동을 배제하겠다”며 정치 편향성을 갖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05년 남미 볼리비아 카를로스 메사 대통령 전격 사임
3주째 계속된 볼리비아 시위의 참여 인원이 8만여명으로 늘어나고 대통령궁 습격 위협까지 받자, 메사 대통령이 TV연설을 통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볼리비아에서는 천연가스 등 에너지 산업을 외국기업들이 장악, 국부 유출과 그 에 따른 빈곤 악순환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100% 국유화를 통한 ‘에너지 주권 회복’을 요구해왔다.
카를로스 메사 대통령은 방송인 출신의 정치인이다. 그는 1953년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예술사학자였다. 라파스와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볼리비아 영화사학자가 됐다.
이후 그는 저널리즘으로 전공을 바꾸어 라디오 뉴스 해설가와 TV 앵커로 활약하다가 TV뉴스 제작업체를 설립해 백만장자가 됐다. TV 유명세를 발판으로 2002년 무소속으로 부통령 후보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듬해인 2003년 2월, 당시의 곤살로 데 로사다 대통령이 소득세 부과 법안을 제출했다가 격렬한 반정부 시위에 부닥쳤다. 메사 부통령은 로사다 대통령의 시위 강경진압에 반발했고, 한달 뒤 로사다 대통령이 미국으로 망명하자 대통령직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메사 대통령 역시 취임 이후 천연가스 개발 문제로 거의 매일 시위에 시달렸다. 그는 2004년 6월 천연가스 관련법 처리를 둘러싼 국민투표에서 승리했으나, 급진주의자들이 천연가스 사업의 국영화를 주장하면서 연일 반대시위를 벌이자 결국 사임의사를 표시했다.
2004년 슈뢰더 독일 총리,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행사 참석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전후 독일 지도자로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슈뢰더 총리는 6일 오후 3시30분(현지시각) 노르망디의 아로망쉬에서 열린 공식 기념식에 참석한 데 이어, 오후 6시30분에는 캉 전쟁기념관에서 프랑스·독일 기념식을 가졌다.
슈뢰더 총리의 참석은 유럽의 화해를 상징한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대체로 많다.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공동 보조를 취하면서 부쩍 가까워졌다.
독일 내에서도 뉴스 전문 채널 N24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7%가 슈뢰더 총리가 기념식에 참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60세 이상의 고령층에서는 참가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20%에 달했다.
하지만 독일 내에서도 엇갈리는 반응이 있다. 슈뢰더 총리가 연합군 묘지에만 헌화하고 노르망디에 있는 독일군 묘지에는 들르지 않는다는 우파 언론들의 보도로 논란이 거세지자, 벨라 안다 정부 대변인은 슈뢰더 총리가 영국 및 영연방군 전사자들과 독일군 전사자가 같이 묻힌 묘역을 방문해 헌화하고 독일군 무명 용사 묘에도 헌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슈뢰더 총리는 “나는 독일군 300여명을 포함해 8개국 전사자가 묻힌 묘역을 갈 것이며, 그곳에선 모두가 추모심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슈뢰더 총리의 부친도 2차대전에서 전사했다.
2003년 일본 자위대 유사(有事)법제 통과
2003년 6월 6일 노무현 대통령 일본 국빈방문 1시간 전 유사(有事)법제가 일본 국회에서 통과됐다. 일본 참의원은 이날 오전 10시쯤 본회의를 개회, 토론과정을 거쳐 자민당 등 연립 3당과 야당까지 가세한 90% 가량의 압도적인 다수로 이를 가결했다.
유사법제는 일본이 무력공격을 받았을 경우 자위대와 주일미군의 국내 출동과 작전을 원활히 하기 위해 일본 국내의 행정적 지휘·협조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골자로, 일본으로서는 안보상 필요한 국내법 정비에 해당한다. 일본의 경우 헌법에서 무력의 보유·행사를 포기하고 미국에 안보를 일임해 왔기 때문에 ‘법의 공백상태’로 남아 있었던 부분이다. 유사법제는 ‘공격’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률 자체만으로는 외부에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런 법률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미사일이라도 쏴서 실질적인 전쟁상태가 되면 ‘초법적’인 명령이 난무할 것이고, 그게 더 위험하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전쟁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 태세가 정비되지 않았던 일본이 앞으로 최소한의 방어전쟁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점에서 한국이나 중국 등 주변국들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군사대국화’ 경향과 관련해 우려를 표시해 왔다. 특히 미·일 협력을 통한 일본 안보가 강화되면 될수록 동맹국과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금지한 평화헌법과의 괴리는 점점 커져 결국 개헌론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점도 주변국의 경계심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001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세계신문협회(WAN) 수석 부회장 선임
1999년 세계 최소형 2백56메가D램 개발
일본 도시바와 미국 IBM, 독일 지멘스가 대량생산이 가능한 세계 최소의 256메가D램을 공동으로 개발했다고 1995년 6월 6일 발표했다. 256메가D램은 삼성전자도 개발에 성공했으나 양산체제용으로 공동개발에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사가 개발한 256메가D램의 면적은 2백85.5㎟로 신문 1천 쪽 이상의 정보를 기억할 수 있으며, 미국의 공동전자기기기술위원회(IEDEC)가 1995년 여름 정한 표준규격에도 부합되는 것이다. D램은 퍼스널컴퓨터나 게임기에 쓰이는 반도체 기억장치로 현재는 4메가비트와 16메가비트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번 개발로 2백56메가D램 시대가 열렸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
1995년 남아공 흑인노동자 5만명, 노동법개정 요구 시위
1994년 중국 여객기 추락 160명 사망
1994년 6월 6일 오전 8시12분쯤 승무원 14명과 승객 1백46명이 탑승한 중국 국내선 서북항공 2303편이 이륙 직후 8분 만에 공중폭발해 서안 남쪽의 장안현 농촌지역에 추락,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기에는 중국인 150명 외에 미국인 2명, 이탈리아인 6명, 스위스인과 홍콩인이 각각 1명씩 탑승하고 있었다.
사고는 온전한 시체가 60구에 불과할 정도의 대형 참사였다. 추락한 여객기는 러시아제 투폴레프154 서북항공 2303편 항공기로 산서성 서안공항을 이륙, 남부 광동성 광주시로 비행할 예정이었다. 이날 사고는 중국 역대 항공사고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했다. 사고는 연 20% 씩의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던 중국 항공산업에 경종을 울려 중국 정부는 뒤늦게 안전점검과 정기정비에 나서는 등 부산을 떨었다.
1993년 전기운 중국 전인대부위원장 의회지도자로는 처음 우리나라 방문
1993년 카르피오, 과테말라 의회에서 새 대통령에 선출
1993년 6월 6일 과테말라 의회 특별보궐선거에서 라미로 데 레온 카르피오가 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로써 그동안 헌정중단 사태를 겪어온 과테말라는 다시 민주통치로 복귀하게 됐다.
과테말라 의회로부터 전폭적인 신임을 받아 대통령에 선출된 라미로 데 레온 카르피오 신임 과테말라 대통령은 지난 1985년 과테말라에 민정이 들어선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까지 줄곧 인권검사로 활약해 온 인권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이다.
32년 간의 군부통치에 종지부를 찍으며 지난 1985년 출범한 제헌의회 의장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86년 부통령 후보로 나선 적이 있으며 1988년 당시 비시니오 세레소 대통령에 의해 4년 임기의 대통령 직속 인권검사로 발탁, 연임해왔다. 대통령 측근으로 있으면서도 군부의 잔학 행위 등에 대해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카르피오는 전임 호르헤 세라노 대통령의 강력한 비판자였는데 세라노가 1993년 5월 25일 비상통치를 선언하고 자신을 가택연금하자 곧바로 지붕을 통해 탈출, 다음날 세라노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그는 또 지난 1990년 국제적으로 말썽이 된 2건의 인권침해사범에 대한 수사를 통해 현직 군대령과 대통령 경호원을 기소하는 배짱을 보이기도 했다.
1991년 소련 KGB, 히틀러 참모 헤스관련 1941년 비밀문서 공개
1989년 김영삼 민주당 총재 소련방문 중 허담 북한 조평통위원장과 회담
1987년 중국-몽골 국경협정 체결
1983년 중국. 제6기 전인대 개막
1982년 이스라엘, 레바논 전면침공 아라파트 PLO 의장 1만5천 지지자와 함께 망명
1981년 인도 열차 추락 사고 5천여명 사망
1976년 카터 미국 대통령 후보. 주한미군 철수계획 발표
1967년 이집트, 수에즈 운하 봉쇄
1966년 미국 우주비행사. 2시간 5분동안 우주유영
1962년 요르단 아랍권 5개국 아랍 경제통합협정 조인
1961년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 사망
1961년 국가재건비상조치법 공포
1956년 제1회 현충일
1949년 경찰, 반민특위 습격사건
1949년 6월 6일 오전 8시 30분쯤 윤기병 당시 중부경찰서장의 지휘로 중부서 및 서울시내 각 경찰서에서 차출된 경찰 80여명이 남대문로 2가에 있는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청사 앞에 도착, 삼엄한 포위작전에 들어갔다. 이들은 우선 출근길의 특위 조사관들을 연행, 무기를 압수한 뒤 청사에 난입했다. 경찰은 특위 조사관들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하면서 책상 위의 서류를 찢었다. 직원 주소록 경비전화 자동차 4대 등도 압수했다.
반민특위는 일제 치하에서 친일 부역자를 단죄하고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1948년 10월 23일 발족했다. 반민특위는 출범 초부터 친일세력의 심한 반발에 부딪쳤다. 해방직후 발족된 새 경찰의 50%이상이 일제 경찰 출신들이었고 이들이 반발세력의 중심이었다. 친일파 세력을 집권 기반으로 한 이승만도 반민특위가 눈에 가시였다. 이승만은 노덕술, 최연 등 심복인 경찰간부들이 특위에 체포되자 특위 해체를 추진했다.
이 사건은 그날로 뜨거운 정치문제가 됐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이 사건을 계기로 결정적으로 약화돼 결국 석달 후인 1949년 9월 22일 와해되고 말았다.
1946 졸업가 제정(윤석중 작사 정순철 작곡)
1944년 연합군,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작
2차대전 중 독일의 히틀러는 1944년 봄부터 영국 남부 해안에 수십만명의 연합군이 몰려들고 다량의 무기와 탄약, 보급품 등이 쌓이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자 상륙지점을 예측하는 데 골몰한다. 상륙일자도 오리무중이었다. 상륙 저지 역할을 맡은 롬멜은 “악천후로 연합군이 1주일 이내에는 상륙할 수 없다”며 전선을 비우고 생일을 맞은 아내 품으로 달려갔다. 당초 6월 5일로 예정됐던 상륙이 하루 연기될 정도로 1944년 6월은 25년 이래 최악의 악천후를 기록했다.
6월 6일, 마침내 ‘D-데이’가 결정됐다. 작전명 ‘오벌 로드 작전’. 아이젠하워가 연합군 총사령관을 맡고 몽고메리가 상륙을 지휘했다. 상륙지점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6월 5일 늦은 밤, 40개 사단의 연합군 16만명과 2000척의 함정이 영국을 출발했다. 상륙용 주정(舟艇)도 4000척이나 됐고, 전투기 만도 1만1000대나 돼 7초 간격으로 이륙했다.
6월 6일 새벽 0시15분, 낙하산 부대가 해안 뒤편에 떨어진 데 이어 새벽부터는 독일군의 완강한 저항을 뚫고 상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히틀러는 이때까지도 진짜 공격이 따로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병력보강을 주저하고 있었다. 연합군은 독일군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 전세를 역전시켰지만 피차간의 피해가 너무 컸다.
1937년 수양동우회사건 발생
수양동우회 사건(흥사단 사건) 안창호 등 동우회원 150여명 치안유지법 위반혐의 투옥(1941.11.17 최종재판에서 전원 무죄판결)
1933년 최초의 드라이브인 영화 미국 뉴저지 윌슨가에서 상영
1928년 중국 국민혁명군(북벌군), 북경 입성 시작(19일 완료)
1926년 6.10만세운동 계획 탄로(천도교인사 다수 체포)
1918년 조선총독부 토지조사사업 완료
1916년 청나라 원세개(위안스카이) 사망
“손문의 입, 황흥의 두다리도 원세개(위안스카이) 뱃속의 꿍꿍이는 따라잡지 못하네.” (20세기 초 중국 민간에 유행한 노래가사). 이렇듯 거대한 땅 중국을 통치하려는 야망을 품었던 그가 1916년 6월 6일, 제제(帝制)의 부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만성 피로와 요독증으로 사망했다.
중국 허난 성 샹청[項城] 지방의 군인 지주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탁월한 재능을 지니기는 했으나 젊었을 때는 학문보다 운동에 더 뛰어난 재주를 보였고 쾌락을 탐닉했다. 이런 그가 이홍장이 지휘하던 안후이군(安徽軍)에 들어가면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882년 일본의 조선 침략을 막기 위해 조선에 파견되었고 이에 군사·경제면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 1885년 조선 주재 총리교섭통상사의로 임명됐다. 청일전쟁의 패배후 새로운 군대의 육성이 시급한 문제가 되었고 이 일이 원세개에게 맡겨지자 그의 정치적 위치가 크게 높아졌다. 1901년 직례성 총독에 임명, 후에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중국 근대화와 국방계획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던 중 신해혁명의 물결이 만주족을 위협하자 청조는 원세개를 나라의 분열을 막고 평화롭게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간주, 결국 원세개가 중화민국의 초대 대총통으로 취임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뒤 원세개는 중국 내의 모든 세력을 단결시키고 중앙정부의 지도력을 강화한다는 취지하에 제제(帝制)를 부활시켜 황제가 되려고 했다. 이런 그의 야욕에 반대파는 물론이고 지지세력인 보수파 관료와 군부 내에서까지도 불만을 일으켰고 결국 그는 총통직에서조차 물러나야했다.
1901년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1949-66) 수카르노 출생
1891년 캐나다 초대 총리 존 맥도널드 사망
1884년 안남,`후에`조약으로 프랑스 보호령
1884년 기독교청년회(YMCA) 창설
1882년 한국-영국 수호통상조약 조인
1882년 인도 봄베이. 태풍과 해일 10만여명 사망
1875년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 출생 - 1929년에 노벨문학상 수상
1868년 영국의 남극 탐험가 로버트 스코트(-1912) 태어남
1850년 무선통신 개발로 190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출생
1844년 기독청년회(YMCA) 창설
1832년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담 사망
1799년 러시아의 시인 푸쉬킨 출생
1592(조선 선조 25) 이순신과 이억기 당항포 해전에서 적선 26척 완파
1395(조선 태조 4) 한양부를 한성부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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