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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달라진 흥천사의 모습에 “정화 이후 시비가 그치지 않았던 흥천사가 사하촌을 깨끗이 정리하는 등 대단한 불사를 했다”며 감탄했다.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
신도 2명에서 2500가구로
도량 정비, 시민선방 개원
지역사회 큰 기여
각종 복지시설 계속 건립
조계종과 태고종 간 분규로 오랫동안 방치되던 서울의 유서 깊은 고찰이 이제는 서울을 대표하는 명찰로 탈바꿈하고 있다. 주지 정념스님이 취임한 지 2년 만이다.
서울 돈암동 흥천사는 참선체험공간인 ‘삼각선원’을 지난 14일 개원했다. 한옥 건물 2채로 조성된 삼각선원은 문화예술인들의 쉼터이자 서울 시민들에게 불교를 알리고 수행을 권하는 도심 속 선방으로 활용된다. 개원식에는 조계종 제3교구본사 신흥사 조실 무산스님, 중앙종회의장 향적스님, 양승태 대법원장, 이재오.주호영 국회의원 등 종단 내외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흥천사의 높은 위상을 보여줬다. 아울러 지난 10일에는 경로잔치를 열어 성북구 관내 노인 1000여명에게 점심공양을 대접하고 생필품을 선물했다. 한편 흥천사는 삼각선원 외에도 어린이도서관과 다문화가족센터 등 지역주민을 위한 복지시설을 내년 봄까지 건립할 계획이다.
불사가 마무리되면 서울 강북지역의 포교중심도량으로 거듭날 흥천사지만, 그간 우여곡절도 많았다. 삼각산 기슭에 위치한 흥천사는 1395년 조선 태조 이성계가 둘째부인이었던 신덕왕후 강 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원찰이다.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興天寺(흥천사)’ 편액이 걸린 대방과 고종이 복원한 지장전 등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하다. 그러나 불교정화운동 당시 대처승이 자리를 잡으면서 조계종은 반세기 동안 실질적인 운영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특히 전 주지가 무단으로 토지 매각을 시도하면서 존폐 위기까지 몰렸다.
양양 낙산사 복원의 주역인 정념스님이 문제의 실마리를 풀었다. 2011년 6월 주지에 임명된 스님은 전 주지가 건설사와 맺은 토지매매 계약을 백지화하면서 한 고비를 넘겼다. 이어 경내를 점유해 살던 주민들과 원만한 보상합의를 이루며, 사격에 걸맞게 가람을 일신했다. 그해 10월 거주승과 인수절차를 마무리하며 흥천사는 반세기만에 종단의 품으로 돌아왔다. 흥천사의 ‘귀환’은 종도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불교정화운동의 혼란 속에서 잃어버린 공찰(公札)을, 종단으로 귀속시킨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이다.
정념스님이 부임할 당시 흥천사 신도는 단 2명이었다. 변화의 속도는 놀라웠다. “종무소에 책상은커녕 볼펜 한 자루도 없던 절”이었지만 어느새 신도 수가 2500가구로 늘었다. 도량을 말끔하게 정비하고 가족중심의 신행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지역의 신뢰감을 높인 덕분이다. 매년 개최하는 대규모 경로잔치도 주민들에게 믿음을 줬다. 일찌감치 불사금의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신도들의 편의를 돕는 동시에, 쇄신입법의 핵심인 사찰 재정 투명화에 솔선수범했다. 정념스님은 균형과 조화,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생태공간이 흥천사의 청사진”이라며 “서울 시민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휴식처로 복원하겠다는 처음의 원력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흥천사의 ‘일취월장’은 불교의 미래라고 불리는 수도권포교의 귀감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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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주지 정념스님이 흥천사의 역사와 사진이 담긴 책자를 총무원장스님에게 전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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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한 삼각선원 및 흥천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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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선원 입구에서 원장스님 일행이 현판을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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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가 새롭게 문을 연 삼각선원. |
[불교신문2947호/2013년9월21일자]
첫댓글 흥천사가 새롭게 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도심 포교가 다시 살아날 듯 합니다..^^.. 정념스님께서.. 애를 많이 쓰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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