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caf.or.kr%2Fart500%2Fkoyounghoon%2Fgallery3%2Fimages%2Fg12.jpg)
그림들이 80년 초부터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보시겠어요?작가들의 작품세계는 그리 많이 변하지는 않는 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caf.or.kr%2Fart500%2Fkoyounghoon%2Fgallery1%2Fimages%2Fg8.jpg) Stone 82620/1982/60x44/Acrylic on Newpapers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caf.or.kr%2Fart500%2Fkoyounghoon%2Fgallery1%2Fimages%2Fg12.jpg) Stone Book 8531/1985/26x38x4/Acrylic on Book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caf.or.kr%2Fart500%2Fkoyounghoon%2Fgallery2%2Fimages%2Fg2.jpg) Stone Book 8535/1985/142.5x98.5/Acrylic on Paper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caf.or.kr%2Fart500%2Fkoyounghoon%2Fgallery2%2Fimages%2Fg9.jpg) Stone Book 8811ㅡC/1988/118x166.5/Acrylic on cloth.Paper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caf.or.kr%2Fart500%2Fkoyounghoon%2Fgallery3%2Fimages%2Fg4.jpg) Cycles of Life/1989/119.5x167/Acrylic on cloth.Paper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caf.or.kr%2Fart500%2Fkoyounghoon%2Fgallery3%2Fimages%2Fg17.jpg) Dinner/1991/120x167/Acrylic on cloth.Paper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caf.or.kr%2Fart500%2Fkoyounghoon%2Fgallery3%2Fimages%2Fg25.jpg)
Sumptuous Life/1991/120x167/Acrylic on cloth.Paper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caf.or.kr%2Fart500%2Fkoyounghoon%2Fgallery3%2Fimages%2Fg40.jpg) Monument for the 20C/1992/85x118.5/Acrylic on cloth.Paper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caf.or.kr%2Fart500%2Fkoyounghoon%2Fgallery4%2Fimages%2Fg2.jpg) 환풍기 위의 날개/1997/111x111/Mixed Media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caf.or.kr%2Fart500%2Fkoyounghoon%2Fgallery4%2Fimages%2Fg5.jpg) 가방과 날개/1998/53x53x160/Mixed Media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kcaf.or.kr%2Fart500%2Fkoyounghoon%2Fgallery4%2Fimages%2Fg38.jpg) 세월속에서/1998/120x85/Acrylic on Paper,cloth
샐러리맨/1998/93.5x177/Acrylic on Paper,cloth
약력 고영훈 1952 제주출생 1976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982 동대학원 졸업 + 개인전 + 1976 대호다방, 제주 1982 DR.Center. 서독 1983 F.T.M.H.C 서독 1985 두손갤러리, 서울, 데화랑,동경 1986 데화랑, 동경 / "86화랑 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1987 두손갤러리, 서울 / "87화랑미술제, 호암갤러리, 서울 1988 일랜브론델 화랑, 파리 / 두손 갤러리, 서울 1990 브론델∥ 갤러리, 파리 1991 두손 갤러리, 서울 / 공간화랑, 부산 FIAC 그랑팔레, 파리 1992 토탈 미술관, 서울 1993 일랜브론델갤러리, 파리 / 마리사 델레화랑, 뉴욕 1994 살라마 카로 갤러리, 런던 / 쿤스트 헨델 프랑스 자콥 갤러리, 암스테르담 1995 데이비드 클라인 갤러리, 버밍햄 / 마리사 델레 갤러리, 뉴욕 조엘 캐슬러 화인 아트, 마이애미 1998 가나아트 센터, 서울 2000 가나보브르 샐러리, 파리 + 단체전 + 1986 제 42회 베니스 비엔날레, 이탈리아 1996 바젤 아트페어, 스위스 2000 크리스티 경매전, 록펠러센터, 뉴욕 + 작품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요꼬하마 비즈니스 공원, 루네빌미술관, 프랑스 안네시스문화원, 숭전대학교, 토탈미술관, 호암미술관, 베아트릭 여왕 콜렉션(네덜란드), 디트로이트 현대미술연구소 -------------------- 평론가의 글을 빌어읽어볼까요?제가 일일이 읽어드리지 못하는 것은 죄송합니다.
○○가상과 실재 - 2차원 속의 오브제 -정준모 (미술평론가) 어린시절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던 기억 중에 노래를 부르며 뛰다가 노래가 끝나면 그 순간 당시의 동작 그대로 일시 정지했다가 다시 노래를 시작하면 구르고 내딛던 놀이가 있었다. 고영훈의 작품을 이야기하려는 서도부터 엉뚱하게 어린 시절의 별 의미도 없는 기억을 새삼 등장시키는 것은 고영훈의 작품에서 바로 "정지된 시간" "일순 멈추어 버린 한순간"을 포착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마치 영화에서 정지된 각각의 화면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동작으로 연결되듯이 "찰라"를 놓치지 않고 우리 앞에 제시한다. 그리고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문득 우리는 이세상 어딘가에 던져져 있는 돌멩이에 불과하고 앞으로 어디에 닿을지 모를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이 엄습함을 이내 느끼고 섬뜩하기까지 한 것이다. 여기서 돌은 그냥 우리 발뿌리에 채이는 평범한 돌이며 우리 자신인 까닭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돌은 하나의 완충작용을 하며 꾸미지 않은 자연의 산물인 돌멩이와 인간의 다른 점이라고는 사실 아무것도 없이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인간을 돌멩이로 치환시킨 것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움직이는 것은 정지해 있는 것의 연결동작이라는 사실 그리고 삶의 나날도, 인생도 하루하루, 한 순간 순간의 조합에 불과하다는 어쩌면 초월적이며 신비한 감마저 느끼게 하는 엄숙함, 숭고함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더더욱 뒷받침해주는 것이 다름아닌 그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 책이다. 여기서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선이라 할 지식의 결집이 다름 아닌 책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의 그림에서도 충분한 지지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돌의 배경, 고통을 안고 서있는 새의 박제들에게 밀려 뒷전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실인즉 인간의 지식, 인간이 쌓아올린 교만의 탑인 지식을 대신하여 돌과 책은 인공과 자연의 대비를 강하게 암시하면서 초자연적인 거대한 생명력, 종교적 경건함에까지 통할 수 있을 엄숙한 화면을 우리 앞에 제시하는 것이다. 게다가 완벽하다는 표현이 걸맞는 극도의 수공적 노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사실적 현실의 모습으로 인하여 비정한 현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지식의 보고라 할 책더미로, 때로는 자연의 가장 원천적 형태인 돌의 모습으로, 요즘에 들어서는 새의 깃털, 역사학자의 구두 따위가 사진인지 그런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고영훈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사실적 기법으로 묘사된다. 이렇게 묘사된 그의 작품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상상을 초월하는 극사의 수법으로 인하여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사실 그가 1974년 처음으로 그의 고향의 구멍숭숭 뚫린 현무암-그의 고향은 남쪽 제주이고 그가 서울에 발을 들여놓은 건 홍익대학에 진학하고 나서이니 아직도 그에게서 바다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을 화면 가득히 하나만 극사의 기법으로 그리기 시작 한 이래 약 20여년에 이르도록 한자리에서 무던하게 붙어 앉아 한사람의 그림쟁이로서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일관해 온 작가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린 것과 그려진 결과에 대해 현실적인 존재물로 인식하도록 고도의 장치를 항상 작가는 해 놓는 까닭으로 보는 이들은 그의 신기(?)에 가깝다 할 묘사력 때문에 거기서 감탄하고 거기서 머물기를 여전히 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고영훈 스스로의 참 모습, 작업에 대한 사색과 자연에 대한 철학은 뒷전으로 물러나 정면에서 제대로 보아줄 이를 만나본 적이 없는 전인미답의 원시림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대개 우리 미술계의 비평의 풍토가 "한가지 방법론으로 유사한 주제를 1∼20년간 지속해온 작가"가 있다면 "자기세계를 확립하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기 일만 해 온 작가"로 또 "계속해서 변모하고 재료나 방법론에서 넘나듬의 진폭이 큰 작가"들에게는 "새로운 조형이론과 방법론을 모색하는 실험정신"을 높이 사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평적 문구의 어디쯤에 고영훈은 있는 것일까. 고영훈의 작업은 일견 아무런 변화없이 20여년을 이끌려 온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항간의 많은 이들에게 "뭔가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은 결코 타당한 것은 아니며 그리고 이러한 지적의 원인은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그의 사실적 기법이 더더욱 완결해져감에 따른 "숨막힘"이거나 "흠 잡을 데 없는, 후벼파도 들어갈 여지가 없는 사실력"에 기인하는 것이란 사실이다. 즉 그는 너무나 완벽하게 기계적인 카메라의 눈으로 잡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대상을 묘사함으로서 보는 이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어김없이 제거해 버리는 관객에 대한 몰인정이 그 동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정으로 그의 철저한 사실력에 가위들린 관람객들은 그의 화면에서 지난 20여년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아니 보고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지적이다. 그의 최초의 "돌그림"과 대학 4년 때 급우들과 가졌던 "종횡전"에서의 돌 그림은 그냥 돌 하나가 황당하게도 화면에 가득차 벽에 걸려 있는 꼴이었다. 그리고 돌 밑에 신문지나 책들이 등장하고 "그려서 만든 오브제"에 한계를 체험하고 직접 입체작업을 해내던 시절 그리고 다시 평면으로 돌아와 예의 돌과 책 이외에도 일상의 폐품들이나 새의 날개, 깃털 등이 등장하면서 인간이 대상을 재현하기 위해서 발명한 사진이라는 매체까지 동원시키기까지의 과정들은 "질리게 하는 사실력"에 비해 눈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 최고의 화가는 황룡사의 벽화인 "노송도"를 그렸다는 "솔거"라 할 것이다. 그의 신기에 가까운 묘사력은 참새가 날아와 앉으려다 부딪힐 지경이었다 하니 옛이야기의 부풀림을 접어두고 이해한다 해도 대단한 묘사력이었을 것이란 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얼마 전가지만 해도 굳이 플라톤의 "미메시스"라는 용어를 동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재의 대상과 얼마나 근사하게, 유사하게 묘사해 내느냐가 그림에 있어서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어왔다. 이런 종래의 미적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는 대단히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이다. 이 점은 자신도 인정하는 대목이긴 하지만 그의 소위 "극 사실주의"화풍에 처음 입문하던 시절만 해도 사실적인 그림은 더군다나 젊은 청년화가가 이러한 화풍에 눈을 돌린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진부한 미술이라는 인식과 함께 당시의 한국적 환원주의로 일컬어지는 미니멀리즘이 화단의 큰 줄기를 이루던 시절 그는 용감하게도 또 다른 자기의 길을 모색하게 되는데 당시 그를 전후하여 이러한 일에 뜻을 모았던 이들이 그나마 한국미술이 조금이나마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여지를 마련하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변방에서 진부한, 기능공 같은 작업에나 몰두하던 고영훈은 이제 화단의 본류에 진입한 듯 보인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변방에, 주변에 서성거리기를 원할 뿐 본류에 진입하기를 한사코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편집광적 성격과 작업성격상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그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 만이 그를 괴롭힐 것이 뻔하기 때문에서이다. 평면에서 3차원적 입체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인간은 많은 연구를 해왔다. 장치를 고안해 내어왔다. 그러나 한계는 항상 아무리 3차원적인 느낌을 망막을 통해서 인식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평면에 불과한 것이라는 자신이 논 덫에 자신이 걸리고 마는 모순을 언제나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점 고영훈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그를 입체작업으로 전환하게 하는 동인이 되기도 하였으나 언제까지나 가상의 실재, 실재보다 더 사실적으로 만든다하더라도 그 한계는 언제나 가상이 실재일 뿐이라는 한계는 못내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는 이제 불가사의 한 힘. 즉, 만물을 창조한 조물주의 위대함에 대한 경배로 전환되고 있는 듯 한데 이것이 다름 아닌 그의 작업의 또 다른 변화의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 듯 하다. 요즘의 작품들, 부유하는 깃털, 잘려나간 새의 깃털 등이 사진이라는 매체 위에 떠다니게 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초기의 "머리로 그리던 시절"에 대한 반발과 그의 타고난 성실성-어찌보면 우둔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으로 바깥 세상에 신경쓰지 않고 골방같은 작업실에서 작업해 온 "손으로 그리는 그림"으로 출발하여 "자연과 인공", "앎의 덧없음" 따위에 천착하던 시절로부터 "가상적 오브제에서 실재의 사물"로의 시절을 거쳐 이제 "자연에 대한 경배"즉 그리고, 만들고 다 해보았으나 어디까지나 가상의, 허구의 세계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듯 이젠 삶의 때가 끼인 장갑이나 끈적끈적한 삶의 체취가 물씬 밴 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적인 면모를 머금은 화면으로 온기가 흐르기 시작하고 있다. 그의 철저하게 계산되고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작업과정은 더더욱 완결성을 더해가고 있지만 점차적으로 도전의 대상, 창조라는 욕구가 절대적인 한계에 이르면서 낳게 되는 반사작용 같은 것으로 인간미, 주변의 삶, 그리고 우리의 삶 같은 일상적인 것들로 그의 자연에 대한 일말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불혹지년에 이르른 그의 태도도 점차 그의 심신이 있게 해 준 정통과 그의 생을 일구어 온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점철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적 허상의 세계는 우리가 살고, 부대끼는 보다 현실적인 세계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고영훈의 가상의 세계는 상상의 세계이거나 꿈의 세계이고, 그의 그림앞에 서면 너무나 생생해서 꿈처럼 느끼지 못할 뿐 온갖 애환이 서린 현실에서 그는 가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을 유도해내고 있다. 그에게 속은 관객들은 어이없이 속아넘어간 점에 씁스레하면서도 가상과 실재사이에서 어리둥절해 하며 재미있어 하는 것이다.
-----한젬마의 그림이야기 --빌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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