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에 매주 이종찬 회고록을 연재하는 코너가 있다.
2015년 1월 5일자의 내용에서 1979년 12.12사태 당시의 수도경비사령관을 중장이라고 적어 놓았다.
지금은 수도방위사령관(옛 수도경비사령관)을 중장으로 보임하지만 그 당시에는 소장으로 보임하여 내용을 수정하여야 한다.
12.12사태 당시의 수도경비사령관은 장태완 소장으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소장)보다 군의 선배였다.
이 당시 공수특전사령관(특전사령관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특수전사령관으로 호칭함)은 정병주 소장으로 전두환 소장이나 장태완 소장보다 군의 선배로 이 두 장군은 정병주 사령관을 형님으로 불렀다.
전두환은 정병주 사령관 휘하에서 제1공수특전여단장을 지냈으므로 직속부하로도 근무하였다.
12.12사태 당시에 직접 참가한 신군부측의 최고 선임자는 국방부 군수차관보(중장)인 유학성이다.
차규헌 군단장(중장), 황영시 군단장(중장)도 신군부측에 섰으나 전투교육사령관(중장, 전교사령관 또는 교육사령관이라고 호칭함)은 협조하지 않아서 강제 예편되었다.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핵심 보직인 보안사령관, 특전사령관, 수경사령관(지금은 수방사령관)이 소장에서 중장으로 한 계급 높아진 것이다.
이 당시 정호용 50사단장은 12.12사태에 가담하지 않았으나 전두환, 노태우의 절친한 동기라고 하여 신군부측에서 바로 특전사령관으로 영전시켰다.
정호용은 육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내무부장관을 지냈다.
유학성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고 국회의원 지역구인 경북 예천에 여객기 수요도 없는 예천공항을 억지로 만들어 놓았으며 안동, 예천, 문경지역에서 이용하는 고객이 없어서 결국은 문을 닫고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혔으나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황영시는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였고 차규헌은 교통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2.12사태를 일으킨 신군부측의 장성과 장교들이 내란죄로 처벌받고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국민의 뜻에 따른 결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첫댓글 연금까지 바라고 있지는 않았겠지요,ㅎㅎ
이종찬은 국회의원, 사무총장, 원내총무, 정책의장, 안기부장을 역임한 육사 출신의 군인으로 백사 이항복의 후손이자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손자이고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의 종손자이기도 하지요.
수경사 훈련 빡씸다. 방독면 쓰고 단체 복싱뭐 이런거 ㅎㅎ , 옛날 서울 마장동 터미널 수경사 헌병 순찰 자주 나왔는데 헌병
일행중 한명은 여자 헌병이었는데 휴가 나온 군인 한 명이 여 헌병의 검문에 대들다가 혼 나는걸 보적이 있슴다 ㅎㅎ. 군대이야기 ㅎㅎㅎ
여자 헌병은 처음 들어보는 얘기입니다.
@단사표음 청량리역,마장동터미널은 강원권역의 관문역할을 하던 시절이라 유동인구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어요 ㅎㅎ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마장동 터미널은 상봉동으로 이사를 갔었고 그 터에는 지금 홈플러스,동대문구청이 들어섰네요^^
@雲 門 서민들 전부 자동차가 없던 시절은 터미널이 북새통이었지요. 대구 북부정류장도 그랬었지요.
@단사표음 당시 민정당 국회의원이었던 권영우씨가 대표였었는데 경기여객 대단했슴다^^
강원도 주요노선 거의 꽉 잡고 있었슴다^^
1인 1차 시대이니 그 시절 정류장 북새통이 추억으로만 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자료 읽으면 잼있어요, 그 시절 연상도 되구요, 별로 오래되지도 않은 세월인데 참 지난하게 느껴집니다.
격동의 시대라고,,너무나 많은 것이 순식간에 변해버렸네요,
@文 柾 선생님 정말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저희들 국민학교 다닐때 소달구지 흔히 보며 살았고, 수도 전기 그 무렵에 다 들어왔는데 세월이 참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너무 많이 달라졌고 더구나 이제는 전후세대가 전부 결혼해서 차세대가 자릴 잡기 시작햇으니 우린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ㅎㅎㅎ 국제시장 할아버지 처럼,,,꽃분이네 팔아라 ~~~~~~~
감사합니다. 그냥 편하게 보고 갑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