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사람 참 잘 맞을 것같은데...싶어도 다들 배우자에게 바라는 자기만의 기준과 기대가 있어서 중매하기가 참 힘들다.
중매해본 사람이 느끼는 이 어려움을 스포츠샵 하시는 분도 마찬가지로 느끼셨을 것같다.
자신의 실력이나 shot making이 어디로 진화할 지 모르는 초보분들의 경우 가격대나 라켓색깔이 적당하면 달다쓰다 하지 않고 권하는 대로 사간다. 마치 순수의 시대에 나오는 첫사랑처럼 이런저런 조건 따지지 않고 내 소유의 첫라켓이란 로망에 들떠 첫라켓과 평생 함께 할 것같은 풋풋한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대개의 첫사랑이 그러하듯 평생 잊지는 못하지만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그러다 이 라켓 저 라켓 두루 겪어보신 소위 쬐끔 치시는 분들에게는 순수의 시대는 가고 소위 라켓병 거트병의 시기가 도래하여 숱한 연애 편력을 통해 자기만의 고유한 조건들을 하나하나씩 더 추가하면서 꽤 까다로워져 아직껏 싱글 탈출을 못하고 있는 경우처럼 아직 자기 라켓을 못찾아 헤매는 경우가 허다하다.
잔소리하는 아내의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가정을 이루지 않은 총각분들의 경우 상당부분의 가처분소득을 라켓과 줄 실험에 온전히 바치면서 지름신에 경배하는 것을 테니스에 대한 구애로 여기는 등 어째 위태위태해 보인다.
새로운 라켓 정보를 접하면 반드시 손에 넣어 잠시잠깐의 사랑을 나누어보지만 곧 아니다싶은 마음에 다시 어딘가에 있을 나의 반쪽을 찾아 나서고 언제 철들까?하는 지인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바람둥이란 나쁜 평판을 얻는 대신 스포츠샵 단골이 되어 꾸준히 출시되는 새 라켓들과의 상견례를 치르느라 분주하다.
고객의 손에 익었지만 노후되거나 단종되어 그 라켓과 스팩이 비슷한 것을 권했는데도 아닌 것같다며 이 줄 저 줄 바꿔 매어보다 몇 번 밖에 안 친 라켓 중고로 내놓겠다면 괜히 미안하다.
고객의 달라진 상황이나 새로운 요구에 부응해 즉, 손목이나 어깨, 엘보 부상으로 해서 팔에 무리가 가지 않는 가볍고 덜 단단한 라켓을 권하거나 반대로 샷에 파워가 부족한 것이 라켓 무게나 발란스에 있다고 보는 고객에게 묵직한 라켓을, 있는 힘껏 뻥뻥 쳐도 아웃은 안되는 걸 원하는 고객에게는 빵 작고 촘촘한 dense string bed를, 게임스타일을 후위에서 하는 스트로크에서 전위플레이로 바꾸려는 고객에게는 발리하기 좋은 헤드 사이즈 큰 것을 자기 클럽 고수가 권했다고 해서 영 아닌 라켓 찾거나, 시합 나갔더니 잘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어떤 라켓 들고 치더라면서 자기도 함 바꿔보겠다는 사람 달래서 말리고 십수년전 명품이었던 라켓 고집하는 사람을 위해 중고장터를 뒤져주고, 페더러라켓 나달라켓처럼 유명선수들 라켓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바그다티스가 결승갔다고 피셔를 다시 바볼랏을 갈아타는 사람들의 허영과 비위를 적당히 맞춰주고 (베르다스코가 뜨자 그가 드는 테크니파이버 라켓이 동대문 샵에서 동났다는 얘기) ......
신혼 초 사랑싸움마냥 몇 번의 텐션 미세조정 끝에 한 라켓에 안착하게 된 드디어 그 '라켓'을 찾게 된 분과 테니스샵하시는 분과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거트 매는 담담하지만 지속적인 관계로 이어진다. 물론 남의 아내를 탐하듯 다른 라켓으로 시타 몇 번 쳐보라고 곁눈질하게 만드는 일을 아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그 고객분에게 지나는 가벼운 바람에 그친다는 걸 확인하고 파워가 실린 안정적인 샷으로 잦은 승리를 안겨주는 라켓과 happily ever after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게임 도중 불상사인 줄 끊어 먹는 일에 대비해 라켓을 두자루로 할 지 세자루로 할 지만 결정해주면 내 손에 꼭 맞아요! 내 맘에 꼭 들어요하는 쾌재를 부르며 만족해하는 고객을 보고 어찌 아니 기쁘랴! 그리고 동호인이 선수들처럼 여섯자루 여덟자루 장만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단종이라는 슬픈 미래에 대비해 복제라켓을 넉넉히 재어 두는 정도로 이해를 구하면 장사속으로 팔아먹었다는 쓸데없는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것같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이 동화의 마지막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가? 이혼이든 사별로 돌싱이 된 경우 나만의 라켓을 찾아가는 그 지난한 시도가 되풀이 되는데...... 라켓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불황 중 다행이라하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