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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사랑으로 기업을 무르는 구속자
룻기 4:1-12
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에게는 말론과 기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1:1,2).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은 여호수아 때에 각 지파와 각 가문의 대표에게 분배되었습니다.
“너희는 또 기업의 땅을 나누기 위하여 각 지파에 한 지휘관씩 택하라”(민 34:18).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수 18:10).
예를 들면, 유다 지파의 경우,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러합니다.
[
20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러하니라
21 유다 자손의 지파의 남쪽 끝 에돔 경계에 접근한 성읍들은 갑스엘과 에델과 야굴과
22 기나와 디모나와 아다다와
23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
24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
25 하솔 하닷다와 그리욧 헤스론 곧 하솔과
26 아맘과 세마와 몰라다와
27 하살갓다와 헤스몬과 벧 벨렛과
28 하살 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댜와
29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
30 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
31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32 르바옷과 실힘과 아인과 림몬이니 모두 스물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었으며 …
](수 15:20-32)
그 이후로 각 가문의 땅은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엘리멜렉 역시 조상으로부터 땅을 물려 받았고 그 땅은 엘리멜렉이 죽으면서 당연히 두 아들의 몫으로 상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두 아들마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문의 기업의 땅은 가장 가까운 친족의 순서를 따라 먼저 나오미의 두 자부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두 자부 중 하나인 오르바는 모압 땅으로 돌아갔기에, 이제 기업의 땅에 대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며느리는 룻 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엘리멜렉 가문의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친족으로는 보아스보다 앞선 다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즉, 촌수로 엘리멜렉에게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한 사람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보아스가 자기 발치에 누운 룻을 그의 옷자락으로 펴서 덮을 때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참으로 나는 기업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룻 3:12-13).
그리고 집에 돌아온 룻에게 시어머니 나오미는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고 확신을 준 것입니다. 즉, 나오미는 보아스가 어떤 방법으로든 합법적으로 룻을 자기 아내로 삼을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이제 그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베들레헴 성문이 열리고 성문 앞의 광장에 장사하는 사람들과 성읍 장로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 사회의 성읍은 매우 좁은 길에 집들이 세워져 있고 모든 장사와 공식적인 법적 처리는 전부 성문 앞 광장에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새로운 소식을 접하였고, 특히 성읍 대표인 장로들은 백성들을 만나 법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왕이 그 성읍을 방문하여 성문 광장에서 직접 백성들의 송사를 맡아 다스리기도 했습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면 이곳에서 가르쳤습니다. 그곳에는 장로들을 포함한 성읍의 유력한 자들을 위한 의자가 할당되어 있었습니다. 보아스도 유력한 자였기 때문에 그를 위한 의자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성문 광장은 성읍의 장터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이처럼 성문 광장은 성읍 백성들에게 있어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따라서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갔다는 것은 두 가지 일에 대한 법적 판결과 증인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두 가지 일은 엘리멜렉의 땅을 사서 무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엘리멜렉의 대를 잇기 위해 엘리멜렉의 며느리인 룻과 결혼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 거기 앉았다는 표현은 그가 유력한 자로서 그곳에 마련된 자기 자리에 앉았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그는 다른 여러 장로들보다 더 유력한 자였음이 확실합니다.
아무튼 지난 밤에 사랑하는 룻과 결혼을 약속한 보아스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성문으로 올라가서 그 기업 무를 자를 찾으며 기다립니다. 보아스는 그를 만나면 그가 엘리멜렉의 땅을 무를 수 있는지 확인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보아스가 하고자 하는 일이 맘에 드셨는지 신속하게 그 일이 형통하도록 도우십니다.
룻기 4장 1절을 보면,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고 진술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마침’은 룻기 2장 4절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룻 2:3-4).
우리는 2장에서 보아스와 룻의 만남은 철저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고 마침 보아스는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서로 만나게 되었던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보아스가 베들레헴 성문 앞에 나아가자 마침 엘리멜렉의 기업 무를 그 사람이 보아스의 앞을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날 그 사람이 성문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또한 오더라도 수많은 인파 가운데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병이 들어 침상에 누워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먼 곳으로 출타 중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성문에서 기다리니 ‘마침’ 그 사람이 보아스 앞을 지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사건이 발생하였기에 ‘그렇구나’하고 본문을 읽지만 성문 앞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장사꾼들과 인파를 고려할 때 보아스는 대단히 운 좋은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이 보아스를 기뻐하사 별 다른 고생을 하지 않고 곧바로 그 기업 무를 자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보아스가 그 사람을 부릅니다.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이 말은 그와 해결할 어떤 문제를 놓고 정식 재판을 받자는 일종의 재판 청구 요청입니다. 그러자 그가 와서 보아스 곁에 앉았습니다. 보아스는 성문에 앉아 있는 성읍 장로 10명을 청하여
“당신들은 여기에 앉으라”
고 부탁하니 그들도 그곳에 앉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종의 작은 법정이 열렸습니다. 판결할 장로들이 있고 여러 증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장로들의 판결은 서기관에 의해 공식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베들레헴 성읍을 위해 남게 될 것입니다.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말을 합니다.
“우리의 형제 엘리멜렉이 살아 있을 때 그는 땅을 가지고 있었소. 이제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에게 그 소유의 권한이 있소. 나오미가 그 땅을 팔려고 하는데 당신이 사겠소? 당신은 엘리멜렉에게 가장 가까운 기업 무를 자라오. 여기에 여러 증인들과 성읍 장로들이 있으니 엘리멜렉의 땅을 사려면 사기 바라오. 만일 당신이 무르려면 무르지만, 무르지 않는다면 내가 무르겠소.”
나오미가 남편 엘리멜렉의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고 친족 구속자(고엘)를 찾아 팔려고 한 것은 일단 생계를 위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또한 친족인 기업 무를 자에게 먼저 팔아야 하는 모세의 법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그 땅은 계속 가문 중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무개가 대답합니다.
“내가 무르리라.”
아마도 보아스가 이 대답을 들을 때 그의 눈과 표정은 당혹스러움 때문에 흔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룻을 사랑하였기에 철저하게 모든 것을 대비하였습니다.
한편, 여기서 무른다는 뜻은 엘리멜렉의 땅을 그 아무개가 사서 그 가문의 땅으로 남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나오미가 너무나 가난하여 땅을 팔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니 일단 먹고 살 수 있도록 돈을 마련하고 주고 그 땅의 소유권은 그 아무개에게로 넘어갑니다. 물론 나오미가 살아 있는 동안 그 땅을 되찾을 돈이 생기면 그녀는 아무 때든지 돈을 주고 자기 땅을 사면 됩니다. 만일 돈이 없으면 오직 희년이 되어서야 그 땅은 엘리멜렉의 가문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엘리멜렉의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면 그 땅은 희년이 되더라도 땅을 산 사람에게 영구히 속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땅을 산 사람의 기업은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지금 이 아무개는 나오미가 과부라는 것을 알고는 땅을 사고자 했습니다. 이는 희년이 얼마나 남아있었는지 본문이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희년이 지나면 그 땅은 영구히 자기 것이 될 것을 계산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줄 모압 여인 룻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사실, 그는 매우 계산적이고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룻기 4장 6절을 보니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겠노라”고 말합니다. 그의 이 말은 그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인지를 드러냅니다.
그 아무개가 엘리멜렉의 땅을 무르겠다고 하자 보아스는 차분하게 더 분명한 정보를 알려줍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아무개님, 한 가지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 있소.”
“아, 그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나오미의 땅을 사려면 율법에 따르면 엘리멜렉의 아들들이 다 죽었고 그 아들 중 한 사람의 아내인 모압 여자 룻이 살아있는데 그 여인을 아내로 맞아 들여야 하오. 그리고 그 아내로 하여금 엘리멜렉의 대를 이을 자녀를 낳아주어야 하오. 그래야 그 땅이 엘리멜렉의 가문에 계속 남게 될 것이오.”
이 말은 그 아무개에게 있어서는 엘리멜렉의 대를 잇기 위해 모압 여인 룻과 결혼해서 그 여자의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뜻이고 나아가 그 땅을 사더라도 그 여자가 낳는 아들이 소유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결국 나오미의 땅을 꿀꺽 삼켜 먹을 수 없게 된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땅을 사서 룻과 그 아들에게 주어야 하니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정확한 정보와 법을 통해 사정을 알게 된 그 아무개가 대답합니다.
“나는 무르지 않을 테니, 당신이 무르시오. 나는 절대로 내가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겠소.”
그 아무개는 하나님의 선한 율법 정신과는 반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율법을 이용하려는 극한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드러냈습니다. 그가 신속하게 구속주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이유는 재산상의 손해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는 룻에게 관심이 없었고 또한 그의 형제 엘리멜렉의 대가 끊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아쉬움이 없었습니다. 나아가 고엘 제도를 설정하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자비의 법 정신은 전혀 안 중에도 없었습니다.
이때 이 답변을 들은 보아스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 답변이 그 아무개의 입에서 나올 때 보아스는 너무나 좋아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 아무개는 고엘의 우선권을 보아스에게 넘깁니다. 그리고 그 우선권을 보아스에게 넘기는 계약을 한 것이 바로 그 당시의 규율에 따라 자기 신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준 행동입니다. 이 행동에 대해 룻기 저자는 특이한 설명을 부연하고 있습니다.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룻 4:7).
룻기 저자는 “확정하기 위하여”라고 말했는데, 이는 신을 벗어 이웃에게 주는 행위가 계약을 비준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로 말하면 집을 살 때 공인 중개사 앞에서 양 측이 도장을 찍고 사인하는 것이라고 보면 하자가 없겠습니다.
즉, 그 아무개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우선권이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모든 증인들 앞에서 본인의 신을 벗어 보아스에게 줌으로 그 권리를 보아스에게 공식적으로 넘긴 것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모세의 율법을 보면, 기업 무를 수 있는 사람이 그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것은 가장 교활하고 이기적이고 악한 행동이라고 여기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 양도 과정에 망신 중에 망신을 주는 행위가 요구되어 있습니다. 즉, 모세 율법은 가능한 기업 무를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친족이 어려움을 당할 때 가장 가까운 친족이 돕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즉, 가난하고 불쌍한 과부와 자녀들을 챙겨주고 돌보고 공급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는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 정신은 신약에서도 정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아무튼 고엘에 대한 모세의 율법을 살펴보면 기업 무를 권한을 넘기는 것에 대해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
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7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8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
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10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신 25:5-10)
즉, 모세의 법에 따르면 나오미와 룻은 둘 다 베들레헴 성문에 있다가 그 아무개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지 않을 경우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 사람은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 이 같이 침 뱉음을 받아 마땅하다’라고 외칠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업 무르기를 거부한 그 사람과 그 집은 평생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는 오명을 갖고 살아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룻기에서 나오미와 룻은 가장 가까운 기업 무를 자에게 율법을 통해 기업 무를 것을 강요하기 보다는 사랑과 자비를 베풀 사람을 ‘우연히’ 만나 그가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자인 것을 알게 되고는 그의 발치에 누워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룻 3:9)라고 말하면서 “이는 당신이 기업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즉, 나오미는 분명히 보아스보다 앞선 친족이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룻을 위한 기업 무를 자를 보아스를 택하고 룻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두 과부는 기업을 무르지 않는 그 아무개에게 가서 침을 뱉으며 신을 벗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억지로 기업을 무르게 하는 것보다는 참된 사랑과 희생 정신으로 기업을 무를 참된 구속주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만일 룻이 이기적이고 사랑이 전혀 없는 사람과 결혼했다면 어떠한 삶이 살았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매들이여!
남편을 택할 때 믿음에 의해 빚어진 성품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 감시하는, 매우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그 아무개를 만나 가장 불운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택하지 않고 다른 우상들을 택하여 그 우상에게 인생을 던집니다. 하지만 그 우상들은 참된 구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우상들은 율법을 사용해서 자기에게 걸려든 사람들의 피까지 빨아먹은 후 내뱉을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자들은 계산 상 이득이 오면 결혼을 하려 하겠지만 그 마음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구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참된 사랑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구속만이 영원한 연합과 감사와 복락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아무튼 그 아무개는 율법을 악용하는 부패한 인간 및 악한 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마음 중심은 자기 밖에 모르기 때문에 언약이라는 굴레를 씌운 후에는 신속히 악독하고 이기적인 정체를 드러낼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과 언약을 맺고 결혼한 여인은 비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 정신과 정반대로 율법을 악용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하게 여기며 싫어하십니다.
욥기에 등장하는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욥이 부요하였을 때는 욥의 친구로 있었지만, 욥이 궁핍해지고 비참하게 되자 욥을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고 판단하는 교만한 자리에 서서 도리어 욥의 가슴에 가장 아픈 비수를 꽂습니다. 이때 그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사용하여 이러한 무자비한 짓을 합니다. 이에 욥은 하마터면 그 세 친구들 때문에 하나님을 저주할 뻔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으로 예수님을 정죄하고 미워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처형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 정신과는 정반대로 미움과 교만에 갇혀 지극히 겸손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업신여기고 자기들의 기준으로 정죄하였습니다.
이처럼 그 아무개와 같은 사람들은 내 눈에 들보가 있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잣대인 율법으로 자기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판단하고 재단하고 정죄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늘 자기 의와 자기 유익을 위해 주의 율법으로 자기 자랑을 하며 자신을 드러내지만 남을 향해서는 주의 율법으로 판단하고 재단하고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단 한 순간이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5-4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도다 (갈 5:13-14)
안타깝게도 우리 인간들은 죄로 인해 부패함으로써 지독히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이 다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죄악 됨을 인정하고 회개함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란다면 주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생명과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이에 우리가 주께서 주신 생명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령을 따라 새생명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율법의 강령인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에는 언제나 아무개와 같은 죄성 때문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위기 앞에서 포기하는 사랑은 언약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결혼은 언약적인 사랑이기에 결코 위기 앞에서 포기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혼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자주 이러한 상담을 받습니다.
“이 남자를 제가 어떻게 사랑하나요? 너무 고약하고 문제가 많아요.”
그러면 저는 성경으로 답변합니다. “자매님은 결혼과 함께 언약적 사랑을 하기로 했기에 그 남자가 당신 남편이니까 그래서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주께 하듯 부군에게 순종하십시오.”
또한 형제가 상담합니다.
“이 여자를 제가 어떻게 사랑하나요? 너무 머리가 나쁘고 답답해요.”
그러면 또 다시 성경으로 답변합니다. “형제님은 언약적 사랑에 의해 그 여인을 당신의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무조건 아내를 위해 생명 바쳐 사랑하십시오.”
보아스와 룻의 사랑은 언약적인 사랑으로서 그 아무개의 난관 앞에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결코 포기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개혁주의는 성도의 견인을 믿습니다. 즉, 하나님과 아들의 언약 가운데 우리를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어떠한 우리의 죄성이라는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막히거나 포기될 수 없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4-35)
아무튼 그 아무개의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이제 보아스와 룻과의 결혼은 율법적으로나, 사회-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의 진행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엘리멜렉에게 더 가까웠던 친족이 신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주자 보아스가 자신 있게 장로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선포합니다.
[
9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룻 4:9-10)
사랑하는 여러분!
결혼의 성립은 하나님과 증인들 앞에서 언약을 맺어야 됩니다. 물론 결혼의 본질은 그 아무개처럼 법으로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보아스처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언약이 없는 결혼은 거짓 결혼입니다. 그리고 언약 후에는 서로가 결혼한 부부라는 것을 이 세상 어디에서도 숨겨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를 향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향한 무조건적인 주의 희생적 사랑을 알게 되면서 감사와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세례를 받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내 된 주의 백성의 결혼 언약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때 증인으로는 성삼위 하나님이 계시고 이미 거듭난 주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의 백성들 앞에서 세례를 베풀어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새언약 가운데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롬 10:9-11)
이처럼 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고백한 후 세례를 받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 사람들은 그 이후 주님과의 연합 관계를 감추어서는 안 됩니다.
[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딤후 2:11-13)
[
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눅 12:8-9)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결혼은 단 둘의 비밀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언약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 역시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세례로 공개되어야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인 것입니다.
놀랍게도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은 숨겨진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 사건이 숨겨진 사건이라면 우리의 믿음 역시 숨은 믿음이 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복음의 비밀을 온 세상에 공식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
23 (아그립바 왕이여)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행 26:23, 26)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그러므로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참 신자들마다 언제 어디서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를 드러내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숨기는 것은 부부가 서로의 관계를 숨기는 것과 같으며 사실 이보다 더 비겁하고 위선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반면, 보아스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룻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를 위해 그의 모든 삶을 던질 것을 맹세한 것처럼, 우리 주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자기 아내로 인정하시며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지셨고 지금도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수고하며 희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사람으로써 우리의 맏형입니다. 따라서 룻과 같은 우리를 얼마든지 구속하여(Redeem) 주십니다.
주께서는 태초부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자 우리를 죄값으로부터 그리고 죄성으로부터 구속하기 위해 친히 섭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자기 몸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고 사셨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룻에게 있어서 구속자는 룻에게 기업을 주기 위해 철저하게 법을 지키면서 참으로 신실한 사랑으로 땅 값을 치르고 땅을 사고 나아가 그녀를 아내로 삼은 보아스입니다.
룻과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있어서 영원한 구속자는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고 나아가 생명 주시기 위해 부활 승천하셔서 장래 부활과 함께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을 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율법을 마음과 입과 삶으로 완전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러므로 룻을 향한 보아스의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신부된 주의 백성이 받게 될 구원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제 보아스의 선포를 들은 모든 백성과 장로들 역시 성문 앞에서 선포합니다.
[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아마도 이 선포를 할 때 그 자리의 백성들과 장로들은 추수의 곡식들을 하늘로 던지며 환호성을 외치면서 선포하였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보아스의 마음을 아는 충실한 종들이 보아스와 룻이 마침내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중대한 재판에서 승리했을 때 우리 및 우리 주변의 같은 편들은 환호성을 부르짖으며 춤을 춥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려고 하는데 큰 장애가 있다가 그 장애가 사라지고 마침내 결혼의 성사가 공식적으로 가능하게 되면 결혼을 하는 두 사람 및 주변의 친지들은 기뻐 환호성을 치며 덩실 덩실 춤을 춥니다. 지금 장면이 그러한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뱀에서 속아서 죄를 지음으로 비참에 떨어졌을 때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복음은 여자가 뱀에게 속아서 인류를 망쳤지만, 여자를 통해 한 씨가 태어나 인류를 망하게 한 그 뱀의 머리를 쳐서 멸망시킬 것이라고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그런데 그 씨가 이 세상에 오도록 쓰임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의 입에서 터져나옵니다.
그 이름은 라헬과 레아, 그리고 다말입니다. 이 세 사람은 결혼을 통해 자녀를 낳음으로 메시아의 약속을 이룬 복된 여인들입니다.
베들레헴 성문의 모든 백성과 장로들은 룻에게 복을 빌며 룻이 이스라엘의 집을 세우고 메시아가 오실 유다 지파의 대를 이어준 다말과 같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베레스를 말합니다.
즉, 룻이 자녀를 낳되 베레스와 같은 자녀를 낳기를 축복한 것입니다. 베레스는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야곱이 죽으면서 유다에게 왕족의 예언과 먼 훗날 메시아의 예언을 남겼는데 그 예언을 유다의 뒤에서 곧바로 이어 준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 성문의 장로들과 백성들의 축복은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선포된 축복으로서 이는 정확하게 메시아의 대를 이를 자녀가 룻에게서 나게 될 것을 축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룻기를 볼 때 이러한 큰 그림 속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보아스와 룻의 작은 만남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적인 경륜을 이루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하나의 조각이었습니다. 그 조각이 하나님의 큰 그림에 끼워질 때 하나님의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어 마침내 완성될 것입니다. 물론 그 완성은 가장 중요하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마침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심이요, 오셔서 하나님의 예언대로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께서 하와의 그 씨로 오셔서 마귀의 머리를 때리신 참 메시아인 그리스도인 사실을 알며 이제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와 왕으로 계신 그분께서 반드시 가장 적절한 때에 재림하셔서 모든 죄와 저주와 마귀들과 그것에 속한 모든 것을 불못을 던지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 어마한 우주적 차원의 사업과 온 인류를 위한 가장 중대한 일에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게 되면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의 장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있습니다. 자녀가 자라나면서 믿음의 자녀들이 되는 것은 부모의 가장 큰 복입니다. 이는 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셔서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위대한 도구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자라난 그들은 보아스에게 주어진 성문 백성과 장로들의 축복처럼 이 시대에서 그들이 있는 곳에서 유력하여지고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유명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보아스가 낳은 먼 훗날의 후손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러한 복을 무한하게 누리던 자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영원하고 참된 진정한 구속자를 맞이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에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할 일은 그 구속자를 그들 평생에 믿고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이 땅의 교회는 무너질 것이고 다른 세속적인 사상들과 돈과 쾌락과 세상의 초등 학문의 이념이 이 시대 및 우리의 자녀들을 삼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땅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서지 못함으로써 온 땅이 지옥 자식들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아는 모든 친족들과 이웃들에게, 그리고 특히 우리의 귀한 자녀들에게 영원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십자가의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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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말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