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의 말레이시아, 아각아각
연남동에서 동남아 음식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두 군데가 떠오른다. 툭툭누들타이 그리고 소이연남. 물론 두 곳 다 훌륭한 식당이지만 태국음식은 어딜 가나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선뜻 추천하진 않게 된다. 게다가 소이연남은 웨이팅이 길어서 더운 날씨에 마냥 기다리기란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추천하는 곳! 바로 아각아각이다. 이곳은 말레이시아 음식점이다.
동남아 음식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말레이시아에 대한 실례. 먹어보면 전혀 다르다. 내가 추천하는 메뉴는 뇨냐 락사, 나시 르막, 아얌 고랭 세 가지다. 뇨냐 락사는 얼핏 보면 짬뽕 같은 비주얼인데 코코넛 밀크가 들어가서 국물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처음 먹을 땐 빨간 국물과 코코넛 밀크의 조합이 어색할 수 있는데 먹을수록 천천히 중독될 거다.
나시 르막은 코코넛 밀크를 넣고 지은 쌀에 매콤한 삼발 소스, 반숙 계란 등을 함께 비벼 먹는 일종의 비빔밥. 나시 르막의 밥과 뇨냐 락사의 국물을 함께 먹어도 궁합이 좋다. 마지막으로 아얌 고랭은 말레이시아식 전통 허브와 향신료에 재워 풍미를 더한 닭튀김이다. 짜장면 먹을 때 탕수육 시키는 기분으로 아얌 고랭 하나 정도는 주문하자. 이렇게 하면 밥, 면, 고기 최강 조합으로 말레이시아 투어를 다녀올 수 있다.
아각아각
웨이팅할 시간이 있다면, 파롤앤랑그
파롤앤랑그는 디저트 카페다. 경의선숲길공원 끝자락에 있기 때문에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홍대입구역에서 도보 12분). 그래도 연인과 손잡고 공원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거다(잡을 손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 파롤앤랑그의 메인 메뉴는 파이다. 바삭한 파이, 그 안에는 크림이 층층을 이루고 있어서 한입에 크림과 파이를 먹으면 형형색색의 풍미가 부처님 오신 날의 연등 행렬처럼 차례차례 들어온다.
예를 들어 옥수수 파이에는 옥수수 크림, 오트밀, 커스타드, 옥수수가 층을 이루고, 홍시 파이에서는 감크림, 곶감, 커스타드, 호두, 홍시가 층을 이룬다. 가격은 8,500원이라 비싼 편이지만 한 번쯤 먹어보는 걸 추천한다. 늦게 가면 원하는 파이를 못 먹을 확률이 100퍼센트이기 때문에 이왕 갈 거면 오픈런 해 보자. 웨이팅이 길기 때문에 매장에서 먹는 건 힘들 수도 있다.
파롤앤랑그
전주식 물짜장을 서울에서, 원숭이반점
평생 전주에는 딱 한 번 가봤다. 나는 여행을 가기 전에 ‘먹킷 리스트’부터 만드는데 그때 원픽은 물짜장이었다. 예전에 <나 혼자 산다>에서 데프콘이 물짜장을 먹는 걸 보고 마음 한켠에 언제가 먹고 말겠다는 다짐 비슷한 것이 생겼다. 하지만 전주 여행 직전에 조금 더 찾아보니 물짜장의 프리미엄 버전 같은 ‘된장짜장’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고 결국 된장짜장을 먹었다. 붉은색 양념 때문에 자극적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고소하고 달콤하고 약간의 얼큰함도 있다.
사실 그 당시엔 엄청 맛있게 먹지는 않았는데(날이 더웠다) 서울로 돌아오니 가끔 그 맛이 그리웠다. 원숭이반점은 2021년 5월에 정식 오픈을 한 곳으로 이름은 덜 알려졌지만 가서 먹어보니 꽤 괜찮다. 메뉴가 다양하고, 매장은 깔끔하고 다양한 중국 전통주를 취급하고 있어서 시간 날 때마다 메뉴 하나씩 클리어하고 싶은 곳이다. 고량주 하이볼, 공부가주 하이볼, 한라산 하이볼처럼 여름에 마시기 좋은 산뜻한 술도 있다.
원숭이반점
마포구의 이탈리아, 알척
알척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팬시하지 않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작은 레스토랑. 알척의 장점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한국화하지 않은 맛. 알척은 오스피탈리이타 이탈리아나(이탈리아 상공회의소 지정 정통 레스토랑)라는 인증서를 받았다. 이탈리아 음식과 와인 문화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식당에게 주는 인증서다.
이탈리아 대사관, 이탈리아 식음료 전문가에게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하기 때문에 이 인증서가 있다면 이탈리아 본토의 맛을 내는 곳이라고 믿어도 좋다. 아란치니, 깔라마리, 아페롤 스프리츠 등 한국식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잘 팔지 않는 메뉴가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이탈리아에 가본 적 없는 사람은 진짜 이탈리아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시칠리아가 제2의 고향인 나 같은 사람은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고향이 많다).
두 번째 장점은 주말에도 네이버 예약이 가능하다는 것. 토요일에는 예약이 되지 않는 식당이 많은데, 예약 없이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나 같은 INTJ에게는 특장점이다. 수요일에는 2명당 와인 1명 콜키지 무료인 것도 좋은 점이다. 알척(Al choc)은 취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에 여행 간 듯 오는 주말에는 알척에서 기분 좋게 취해보자.
알척
인생 첫 어복쟁반은 여기서, 우주옥
어복쟁반은 소고기 육수에 고기, 각종 채소, 버섯이 들어가는 북한 요리다. 평양냉면을 자주 먹어봤다면 어복쟁반이라는 메뉴를 자주 봤을 텐데, 이 요리가 가격이 조금 센 편이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7만 원이나 8만 원 정도 하는 곳이 많다 보니 ‘오늘은 입이 심심한데 어복쟁반이나 먹어볼까’ 할 수 있는 메뉴가 아니다.
우주옥의 어복쟁반은 3만 3,000원으로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고, 2인이 먹기에 딱 적당한 양이다. 어복쟁반과 함께 평양냉면, 녹두전도 반드시 함께 시키는 걸 강하게 강하게 추천한다. 녹두전은 고기가 크게 씹히고 두꺼운 스타일이다. 술은 기본으로 시켜야 하니 소주도 함께 시키자.
우주옥
연희동 군만두 최강자, 오향만두
연남동, 연희동 부근에는 훌륭한 중식당이 많다. 그들은 각자 잘하는 필살기 메뉴가 하나씩 있는데, 만두 영역에서는 오향만두가 단연 일등이 아닐까 싶다. 맛있는 만두에 대해 말할 때는 화려한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만두피가 쫄깃한지, 두께는 적당한지, 만두소와 육즙은 충분한지 따지면 된다. 오향만두의 만두는 모든 분야에서 만점에 가까웠다. 홍대입구역에서 오향만두까지는 거리가 좀 있는 편이다. 만약 오향만두까지 갔다면 근처에 있는 에브리띵 베이글이라는 베이글 맛집에도 들리자.
디에디트에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곳도 추천할 만한 곳이다. 또 근처에 프로토콜 로스터즈라는 카페가 유명하다. 주말에는 웨이팅을 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바글거리는 카페다(카페에서 웨이팅을 하다니? 싶지만 분위기가 좋긴 하다). 프로토콜 로스터즈에 웨이팅을 걸어두고 오향만두에서 선만두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연희동의 랜드마크 ‘사러가 마트’에서 쇼핑을 하자.
오향만두
[여기가 프로토콜 로스터즈. 비정기 휴무일이 있으니 인스타그램에서 스케줄을 확인하자.(https://bit.ly/3AgCR2U)
오늘 소개하지 않은 식당도 많다. 언급을 하지 않는 게 아쉬우니까 줄줄이 읊어보겠다. 피자는 OBPC, 로쏘1924, 치킨레게치킨을 추천한다. 감자탕은 김치가 맛있는 송가네감자탕, 콩비지가 들어간 영동감자탕이 좋다. 다양한 전통주와 한식을 먹고 싶다면 두루미, 일본식 돼지꼬치가 먹고 싶으면 락희돈, 라멘을 먹을 거라면 사루카메, 함흥냉면은 청송냉면, 삼계탕은 연희녹두삼계탕, 칼국수는 연희칼국수, 진주냉면과 육전은 하연옥으로 가면 된다. 아직도 더 남았는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