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청소년 탈선과 만혼(晩婚)사상
오늘날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탈선문제는 우리사회에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부모를 칼로 찔러 무참히 살해하고, 병들고 치매에 걸린 노모를 학교 운동장에 내어다 버리는가 하면, 자신의 학교 은사의 등을 칼로 찌르고, 돈 몇 만원을 얻으려고 다수의 연약한 부녀자들을 죽여 암매장하는 등의 패륜적 행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지상에 대서특필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와 같은 심각한 일탈(逸脫) 행위들은 일시적이거나 단편적인 현상이 아니라, 현 시대의 젊은이들에게서 광범위하게 목격되어지는 탈선행위의 극단적인 연장이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곧 우리의 후대를 이끌어 갈 사회의 주류이기 때문이다.청소년 탈선의 원인에 관하여 정부나 사회의 각종 기관 또는 단체에서 다각적인 분석을 하고 있지만 나는 모든 청소년들이 짊어지고 살아가는 실질적인 고민(苦悶)에 그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현대사회의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무한한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앞서나가는 자와 뒤쳐지는 자가 확연히 구별되는 적자생존의 구조에서, 모든 사람들은 도태되지 않으려고 부단한 경쟁의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사회발전을 위한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청소년들은 이러한 무한 경쟁의 긴장관계 속에서 또 다른 커다란 고민에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性)에 관한 고민이다. 조물주는 인간이 육체적으로 10대 중반에 성을 자각(自覺)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구조는 청소년들이 제때에 그들의 본능적인 성을 제도적인 틀 안에서 구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졸업, 직업, 경제적 자립 등이 결혼을 위한 충분조건으로 인식되고 있고, 따라서 일반적으로 이러한 충분조건 들이 실현되었을 때 이미 그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접어들게 된다.
그러면 성을 자각하게 되는 10대 중반부터 결혼하기 전인 30대 전후까지 현 시대의 청소년 및 청년들은 성에 대한 본능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성에 대한 본능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들은 도색잡지나 포르노물에 의존하게 되고, 환락가를 전전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성적 본능을 이용한 유흥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으며, 청소년 탈선의 상당 부분이 이와 연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학원폭력, 절도, 강도와 같은 청소년 범죄의 대부분은 가난에서 기인한 생계형 범죄라기보다는 유흥비 조달을 목적으로 한 향락성 범죄의 유형을 띠고 있다. 학원폭력, 절도, 강도와 같은 극단적인 탈선에 이르지 않더라도, 청소년들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향락문화라는 외부환경에서 결혼 전까지 성에 대한 본능을 억제하기 위하여 부단한 고민과 번민(煩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을 성에 대한 고민과 번민 속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을까? 나는 우리 선조들의 조혼 사상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우리 선조들은 자녀들을 10대 중반에 결혼시킴으로써 본능적인 성의 번민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10대 중반에 결혼한 청소년들은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또한 한 남자의 부인으로서, 본능적인 성적 욕구에 대한 번뇌함 없이, 자아실현을 위해 매진할 수 있었다.
고부간 갈등과 만혼사상
조혼사상의 장점은 다른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혼 사상은 심각한 가정불화의 원인 중 하나인 고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이점은 다음의 예에서 비추어볼 때 자명해진다. 14살의 여자아이를 며느리로 맞이했다고 가정해 보자. 시댁 부모들은 며느리를 친딸처럼 양육할 것이며, 며느리는 어려서 부터 시가 집 식구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가며 자연스럽게 시가 집 일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에 나갈 것이다. 또한 한 남자의 부인으로서, 앞서 언급한 대로, 본능적인 성적 욕구에 대한 번뇌 없이, 학업의 정진, 보람찬 직장 생활 및 경제적 독립을 향해 매진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만혼으로 인해 35세에 낳은 아들을 30대 초반에 결혼시켰다고 할 때, 부모들은 이미 70대를 바라보게 된다. 나이가 많은 며느리가 늙고 병약한 시부모와 생활하면서 깊은 정을 주고받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시부모와 며느리 간의 소원(疏遠)한 관계는 단지 이에 그치지 않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조부모와 손자와의 관계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며, 이로 인해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개념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가족의 단편화와 가족 구성원 간의 진정한 사랑의 결여는 서로 간의 이해 부족, 나아가서는 가정불화 및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청소년 탈선도 이러한 가족 개념의 혼돈과 무관하지 않다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에서 나는 오늘날의 만혼은 퇴조 되고 조혼이 다시 광범위하게 성행되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리 청소년들의 건전한 미래와 전통적인 가족 관념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 하다. 물론 현재의 만혼 사상을 일순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의식의 전환은 많은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조혼 사상에 뜻을 동감하는 사람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혼 운동을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저출산 문제와 관련한 고령화사회 위원회 출범에 즈음하여 박봉환 문집 전자책 "태풍 불던 날 나는" 중에서)
2006년 10월 朴鳳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