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던 나에게
어둠속의 빛처럼 그녀가 나타났습니다..
이젠 그녀를 버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해도..
나에겐 그녀는 심장과도 같은 나의 생명이니까..
그러니까..그녀없인 살수 없으니까..
난 그녀를 버릴 수 없습니다.
by.시혁】
#14
"서은아.갈려면 가..."-시혁
"그게 무슨 말이야!!"-은아
"이제 나도 모르는 척 하기 싫어.니 그 사람때문에 우는 거잖아"-시혁
한없이 슬픈 목소리로 말하는 시혁이를 버릴수는 없다.
"나 하품을 하다보니까 눈물이 난 거뿐이야"-은아
말도 안되는 변명이지만 이런 거라도 말하고 싶었다.
시혁이는 나의 어깨를 잡더니 말했다.
"이 바보야!!"-시혁
나에게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 시혁이라 나는 놀랐다.
시혁이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있었다.
나는 시혁이를 안았다.언제나 한결같은 시혁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 바보 아니야"-은아
"니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널 놓아줄 수 없잖아..
류신을 사랑한다고!!나에게 말한다면 널 놓아줄 수 있어!!"-시혁
시혁이의 슬프고도 고요한 고함이 들렸다.
가만히 날 안고 울고있는 시혁이가 느껴졌다.
민시혁...니가 이러니까 내가 널 못 떠나는 거야..
시혁이의 눈물이 나의 어깨에 계속 떨어졌다.
"민시혁.나한테 사랑이란 없어.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은아
"그만하자.서은아"-시혁
날 놔두고 약혼식장으로 들어가는 시혁이.
약혼식장에 있어봐야 좋을 건 없어..
약혼식장을 나와 거리를 걸어다녔다.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나라도 눈물이 흐르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바보는 시혁이가 아니라 나야.."-은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날보고 사람들은 한마디씩 해댔지만
그들을 대꾸해줄 힘마저 지금의 나에겐 없었다.
어쩔때는 미친 듯이 웃어대고 울어대며 다녔다.
이게 얼마만일까..이렇게 내가 감정의 기폭이 심한 날이..
시아의 죽었던 날 이후에는 없었던 일이다.
아니..시아의 죽었던 날 이후에 나는 감정이 없어졌다.
언제나 무표정으로 일관했고 어쩔때는 살벌한 기분까지 들었으니까..
그렇게 돌아다니다 한 호프점이 보였다.
그래..오늘 실컷 마시고 오늘을 잊어버리자..
소량의 술만 먹었던 나는 나의 주량을 몰랐다.
그래서 일단 많이 시켜보고 보자는 맘으로 주문을 했다.
"아저씨.맥주 20병.과일안주"-은아
종업원으로 보이는 사람을 불러 말했고 그 사람은 나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지금이 9시..시계를 들여다봤다.
내일 학교에 가야할텐데..빠질까..
한참의 고민끝에 빠지기로 했다.어차피 이런 심란한 마음으로 학교에 가는 것도 그러니까..
주문한 것이 탁자위에 놓여지고 한병씩 컵에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10병을 넘게 마시고도 정신만은 멀쩡했다.
"내가 이렇게 술에 강했나.."-은아
혀도 꼬이지 않는 발음으로 조용히 말했다.
마지막 병만을 남기고 서서히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 마시고 호프점에서 나왔다.
취한다는 게 이런거구나..라는게 새삼 느껴졌다.
늦은 밤 돌아다닐때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욕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도 그런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에 웃음만이 나올 뿐이다.
"하...웃기는군"-은아
뜨거운 입김이 내입에서 잔뜩 나왔고 정신은 몽롱했다.
집에 거의 다다를 무렵 누군가 날 번쩍 안아들었다.
"위험하게 이게 뭐야"-류신
침착한 류신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잠에서 깨자마자 느낀 건 두통이었다.
머리가 깨질듯이 통증이 느껴졌다.
옆에 있는 시계을 보니 시간은 9시.의자에 앉아 날 보고있던 류신은
날보더니 의자에서 일어난다.
"학교에는 내가 전화 해뒀어.걱정하지마.그리고...아니다"-류신
뭔가를 말하려다 나가는 류신을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 지금 사랑하는 사람 있어?"-은아
무작정 그를 붙잡자는 생각으로 나온 한마디..
류신은 어이 없는 듯 허탈한 미소를 짓더니 날 쳐다봤다.
제길..이 바보..약혼식 축하한다고 말했어야지..하지만 그 말은 나오지 않는다.
"있다면.."-류신
있다도 아니고 없다도 아니고 어중간한 대답이다.
"그냥 물어본거예요"-은아
류신은 갑자기 나에게 얼굴을 들이대더니 표정없이 말한다.
"있어"-류신
그의 익숙한 향내가 나의 코에 전해졌다.그가 좋아하는 사람이 궁금하지만 물어볼수는 없었다.
"근데 너 술을 왜 이렇게 과하게 마셨냐?"-류신
숙였던 몸을 일으켜 말하는 류신이 왜이리 눈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아...평소에는 조금만 마시지만 어제는 한번 내 주량을 알고 싶었거든"-은아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날 쳐다보며 류신은 혀를 찼다.
언제나 우리둘이 같이 있을 수 있을까..
어제 약혼식한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다.저 사람..
평소와 너무도 달라진게 없어..역시 지시원을 사랑하지 않는건가..
"근데 밖에는 왜 나와있었어요?"-은아
나의 말에 류신은 아무말도 안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대충 몸을 씻어 술냄새를 없앴다.상쾌한 마음으로 머리를 말리고 거실로 내려갔다.
"류신 어제 약혼 축하해"-은아
한참을 고민하다 꺼낸 말이다.
"어제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약혼식을 끝까지 볼수 없었어"-은아
"고맙다"-류신
쇼파에 누워 음악을 듣고 있는 류신은 나에게 대충 말을 했다.
그래...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사이가 아니니까..
오랜만에 시혁이한테 가볼까..
아니야..그냥 집에 있는게 나을수도..지금의 시혁이와는..
답답한 마음에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하..서은아 니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거냐"-은아
스트레스나 풀겸 쇼핑이나 하자..지금이 11시...
얼마전 현지가 준 하얀색 드레스셔츠를 입고 간단히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다.
"오늘 날씨는 어제보다 안 덥다고 했지.."-은아
어깨에 매는 검은색 가방을 걸치고 하얀색 폴로 모자를 옆으로 돌려 썼다.
1층으로 내려왔을때는 류신이 날 쳐다봤고 나는 가볍게 그 시선을 무시했다.
"어디 가"-류신
"답답해서 쇼핑이나 할려고"-은아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탔다.
혹시나 해서 들고 온 mp3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몇분이 지나고 도착한 곳은 백화점이었다.
월요일인데도 사람이 많구나..
운동화를 신고 오길 잘했어..
백화점을 돌아다니다 점심시간이라는 것을 깨달고 가까운 음식점으로 갔다.
더운데 냉면이나 먹을까..
"물냉면 하나 주세요"-은아
나는 물냉면을 좋아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거의 비빔냉면을 좋아하지만 나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멍하니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내 반대편 의자에 앉기전까지는...
처음에는 그냥 앉을 자리가 없어서 앉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좀 도와줄래?"-???
#15
"뭐야.."-은아
나는 무표정으로 말을 했고
그 사람은 내팔 옆에 있는 물을 가져가 원샷을 했다.
그러고보니 이 사람 쫓기는 듯 보인다.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깊숙이 쓴 거 같고..
선글라스도 썼다.유난히 빨간 입술을 가진 그 사람은 드디어 말을 했다.
"내가 누구인지는 나중에 가르쳐 줄게.."-???
"당신 쫓기고 있지"-은아
아까 어떤 남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준 음료수를 한모금 마시고 그 사람을 쳐다봤다.
수긍의 대답인지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 사람..
"그래서 나보고 도와달라는 거야?"-은아
"어"-???
내말이 맞는 듯 대답하는 이 사람..어떻게 도우라는 거야..
"숨겨달라는 거야?"-은아
"어"-???
아까부터 '어'만해대는 이 사람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기다려"-은아
한손을 들어 그 사람에게 보인 후 나는 냉면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냉면을 다 먹고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야.내 몸에 손대지마"-???
엘리베이터에서 그가 한말이다.나는 얼른 그의 손을 잡던 손을 놓고 말했다.
다행인지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신한테는 관심 없어.단지 난 재밌는 일은 꼭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서 당신을
도와주는 거야.오해는 하지말라구.언제까지 숨겨주면 되는 거지.."-은아
나의 말을 끝까지 듣던 그 사람은 내 모자를 벗기더니 한마디 한다.
"역시 어제 너군"-???
"무슨 말이야"-은아
"내 이름은 현지훈.어제 신이의 약혼식에서 널 봤어"-지훈
신이??류신?친한사인가..신이라고 부를 정도면..
"이래도 날 모르는 거야?"-지훈
"뭘.."-은아
나의 말에 어이가 없는 듯 한손으로 이마를 짚는 현지훈이라는 사람..
"나..꽤 유명한 가수야.."-지훈
"나는 뉴스만 봐"-은아
나의 말에 현지훈은 머리에 바위를 맞은 듯 쓰러지려고 했다.
백화점에서 나와 걷고 있는데,,뒤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 사람을 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얼른 택시를 잡아
도망쳤다.안도의 한숨을 쉬며 안심하고 있는 나와 현지훈
서로를 쳐다보며 웃고말았다.
"당신 내가 어제 거기 갔다는 거 어떻게 알았어?"-은아
"왜"-지훈
"아무리 그때 왔어도 사람들이 많아서 몰랐을텐데.."-은아
"니가 눈에 띄었거든"-지훈
창밖을 보며 턱을 괴고 있는 현지훈이 새삼 다른 사람 같았다.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뒤로 몸을 기댔다.
편안히 눈을 감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좌회전을 하며
내 머리가 현지훈의 어깨에 기대져 있었다.
내가 제대로 앉을려고 하자 현지훈은 손으로 내 머리를 다시 자신의 어깨에
갖다대더니 여전히 턱을 괸채 말했다.
"그대로 있어.피곤해보이는데.."-지훈
낮고 편안한 목소리가 몸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고마워"-은아
"나야말로"-지훈
집근처에 내려 현지훈과 함께 걸어갔다.
"왜 쫓기는 거야?"-은아
뒷짐을 지며 걷던 나는 현지훈을 쳐다보며 물었다.
"스케줄이 있는데 도망쳤어"-지훈
"왜?"-은아
"영화를 찍는데 상대배우가 맘에 안들었어"-지훈
"근데 왜 찍는다고 했어?"-은아
계속 물어보는 내가 귀찮지 않은 듯 그는 계속 대답해주었다.
"내가 정한 거 아니야.매니저가 그랬어"-지훈
"아..."-은아
이해가 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현지훈이 한손으로 내 머리를 흐트러 뜨려 놓았다.
"씹..왜 이래"-은아
"귀여워서..니가 그 상대배우였다면 좋았을텐데"-지훈
쓴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현지훈이 이상하게 보였다.
"류신이랑은 무슨 사이야?"-은아
"소꿉친구"-지훈
류신한테 이런 친구도 있었구나..
"류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던데 알아?"-은아
시선은 땅에 고정시킨 채 물어보았다.
"어..알아서 더 슬퍼"-지훈
슬프다니...무슨 말이지??
"누구야??'-은아
"그건 비밀"-지훈
하얗고 긴 자신의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짚더니 말한다.
집에 도착하고 나와 현지훈은 안으로 들어갔다.
"류신이 안에 없네.."-은아
안으로 들어오자 현지훈은 푹 눌러쓴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었다.
모자를 벗자 윤기있는 갈색 머리칼들이 드러났고 선글라스를 벗자
엷은 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나에게는 차갑게 굴지만 의외로 좋은 사람일지도..
"류신방은 저기예요.저기에서 기달려요"-은아
"니방에서 기다리면 안될까.."-지훈
"그러시던가요.따라와요"-은아
내말에 현지훈은 내 뒤를 따라왔다.
"들어가있어요.쥬스 가져올테니까요"-은아
현지훈을 침대에 앉히고 나는 부엌으로 갔다.
포도 쥬스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자 현지훈은 나의 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뭐하세요"-은아
쥬스를 내려놓으며 말하는 날 쳐다보더니 현지훈이 말한다.
"구경"-지훈
그러고보니까 이 사람이랑 처음 만났을때보다 더 가까워진 거 같다.
"구경할 것도 없는데.."-은아
현지훈은 다시 침대에 앉아 날 쳐다보았다.
"음..부탁할 게 있는데,,"-은아
"뭔데.."-지훈
이제는 아예 침대에 누워버리는 현지훈..
"당신 머리카락 한번 만져보면 안돼?"-은아
나의 말에 약간 놀란 듯 현지훈의 눈동자가 잠시 커졌다.
곧이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앉더니 자신의 머리를 넘긴다.
"이유는"-지훈
"그냥.촉감이 좋을 것 같아서,,"-은아
"그래.만져"-지훈
고개를 끄덕이는 현지훈을 보고 침대쪽으로 다가갔다.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인 현지훈의 모습이 햇빛에 비쳐 더욱 멋있었다.
손을 올려 살짝 그의 머리위에 올렸다.
"오와.."-은아
진짜 부드럽네..아~~기분 좋은데...
"부드럽다.."-은아
재밌는데..훗..남의 머리카락이라서 그런가..원래 이런 거 싫어하는데..
이제는 대담하게 두 손으로 마구 머리를 흐트러 놓는다.
계속 머리를 만지자 현지훈이 눈을 떴다.
현지훈이 눈을 뜨면서 햇빛에 비쳐 빛나는 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이제 그만 만져"-지훈
내 손을 한손으로 잡더니 귀찮다는 듯이 말한다.
"두 사람 뭐하는거야"-류신
이런...이런 어쩡쩡한 자세에 류신이 나타나다니..
"어..."-은아
앗..갑자기 왜 잡아당기는 거야..
갑자기 자신이 잡고 있던 나의 손을 잡아당기는 현지훈..
덕분에 나는 현지훈의 품에 안길 수 밖에 없었다.
"연애."-지훈
【사랑의 경계선..
난 지금 그곳에 서있다.
한 여자를 사랑할 것이냐.안 할 것이냐.
하나의 도전을 할 것인가.안 할것인가.
그리고 지금 나는 위험한 장난을 시작할려고 한다.
by.류신】
#16
뭐야..이 사람..갑자기..연애라니..
"오해하지마.이 사람이랑 아무 사이 아니야"-은아
왜 변명을 둘러대는 걸까..역시 사랑하는건가..류신을..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거지"-류신
"어..그게..그러니까..당신이...시혁이에게 말할 수도 있으니까.."-은아
바로 몸을 띄어내고 현지훈을 쳐다봤다.
"미안하다구.니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싶었을 뿐이야"-지훈
반쯤 감긴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하는 현지훈.
"그런데 너 이런 상황에서도 무표정이네"-지훈
"뭐..그 얘기는 됐어."-은아
"신.오랜만"-지훈
방금전까지 무표정이던 얼굴에 미소를 띄며 류신에게 다가가는 현지훈..
이 사람도 친한 사람에게는 감정적이군..
현지훈은 류신을 껴안으며 난리를 쳤고 류신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신아..보고싶었어"-지훈
"바로 어제 봤다구"-류신
참..어이없군..현지훈..재밌는 사람 같아..
"여긴 왜 온거야"-류신
몇분뒤 우리는 쇼파에 모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촬영하기 싫어서.."-지훈
"왜"-류신
나와 똑같은 질문이군..
"상대 배우가 별로,,이화란 얜데..싸가지도 없고..걸레야.."-지훈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현지훈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래..난 몰랐는데..역시..사람은.."-류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던 류신은 갑자기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까 일은 어떻게 된거야?"-류신
현지훈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말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그건 은아한테 들어봐"-지훈
언제 내 이름을 알았는지 무서워하며 말하는 현지훈
"야.어떻게 된 일이야!!"-류신
평소와 달리 흥분한 목소리가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저..그..그게.."-은아
왜 내가 말을 더듬지..미쳤군..
"현지훈씨의 머릿결이 좋아보여서.."-은아
"어..그래서!"-류신
"한번 만져봐도 되냐고 물어봤어.."-은아
손가락을 조물닥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된다고 하길래.만지다가 그 모습을 당신이 목격한거야.
그 다음부터는 현지훈의 장난이야."-은아
턱을 괸채 생각을 하던 류신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뭐야.저 녀석"-지훈
"그러게"-은아
탁자위에 올려진 신문이 보였고 마침 잘됐다는 생각으로 신문을 보았다.
"역시 요즘 경제는.."-은아
신문을 다 보고 방으로 들어가려하자 현지훈이 나의 손목을 잡아댕겼다.
"뭐야"-은아
"재미 없어"-지훈
여전히 무표정으로 말하는 현지훈의 모습은 정말 귀염성이 없었다.
"그냥 류신이랑 놀아"-은아
나는 현지훈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신이는 자"-지훈
"그럼 혼자놀아"-은아
계단으로 올라가는 순간 뒤에서는 현지훈의 울음소리 비슷한 것이 들렸다.
"후..하여간.."-은아
문득 눈에 보이는 건 핸드폰..
시혁이에게 전활 해야겠지..걱정할거야..
오랜 고민끝에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여보세요"-시혁
어제도 들은 목소린데 왜 이리 낯설을까..
"나야.은아"-은아
가슴이 뛴다..시혁이가 어떤 말을 할지..걱정도 된다.
"어..오늘 학교 안 갔다며"-시혁
역시 알고 있었어..
"어..그게 좀 몸이 안 좋아서..내일은 갈거야"-은아
"그래.."-시혁
"근데..아니다.."-은아
할말이 없잖아..역시 괜히 전화 한건가..
갑자기 끊을 수도 없고..어떡하지..
몇분동안 서로의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아..할말 없니..그럼 끊는다"-시혁
'뚜..뚜..뚜..'
냉정한 신호음만이 들렸다.시혁이가 변했다..
-화요일-
며칠밖에 안 간거지만 왠지 오랫동안 학교에 안 간거 같아..
어느때와 다름없이 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시혁아.."-은아
안 올줄 알았던 시혁이가 지금 내앞에 있다.
"안 가?"-시혁
나보다 앞서 걷던 시혁이가 뒤돌아보며 하는 말..
뭐야..아무 일 없듯이 지내자는 건가..
"어."-은아
급히 시혁이를 뒤쫓아갔다.
어쩌면 시혁이도 느끼는 걸거야..
자신이 어차피 그런 행동을 하더라도 바뀌는 건 없다는 걸..
"나 갈게"-은아
"어.잘 가.나중에 만나자"-시혁
교실에 들어오자 여자애 2명이 다가와 갑자기 내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뭐하는거야"-은아
"치수 재는거야"-여자1
"뭐?!"-은아
"줄리엣 의상 만들어야지"-여자1
"맞아.은아정도면 키도 되고 몸매도 되니까 어느 옷이든 잘 어울릴거야!!"-여자2
"오와..허리 되게 가늘어.."-여자1
완전 짜증나는 군..이 분위기..
"은아야.키는 몇?"-여자2
"176"-은아
얼떨결에 말해버렸다..제길..분위기에 이끌러..
"앗싸..새로운 정보!!이거 남자애들에게 팔면 짭짤하겠는데.."-여자2
"뭘 판다는 거야"-은아
나는 그냥 무표정으로 쳐다본 거 뿐인데 둘은 벌벌 떨기만 할뿐이다.
"얘네들이 왜 힘들게 의상을 맡았겠냐.다 니 신체 사이즈 알아내서
그걸 남자애들한테 알려주는 대신 돈을 받아내려는거겠지."-현지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현지가 대신 답했다.
언제 치수를 다 쟀는지 둘은 도망간지 오래..
"이래뵈도 너 우리학교에서 인기 많잖아.
글구 이 신문에 나온 니 모습보고 니 팬들이 더 많아졌어"-현지
어제 신문을 한손으로 내 얼굴에 들이댄다.
그 곳에는 내 사진이 찍혀있었다.
'M그룹 아들 류신 약혼식장에 미모의 여인 나타나..'
뭐야..이게 난 약혼식에서 그리 눈 띌만한 행동을 한적이 없는데..
기사를 대충 보니 나에 대한 정보들이 나와 있었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어..그런데 어떻게 인터뷰를 했지..부모님들은 지금 여행중이신데..
설마..제길..돌아오셨군..근데 왜 전화를 안 하셨지..
"이현지.큰일났다."-은아
"왜?"-현지
"돌아오셨다.부모님"-은아
"뭐?!"-현지
#17
나의 손에 쥐어진 신문이 점점 구겨지고 있었다.
주먹에 왜이리 힘이 들어가는걸까..
혹시 그 사람도..오는 건 아니겠지..
"서은아.지금 너 평소의 너답지 않아.무지 불안해 하고 있어.너"-현지
"그 정도는 나도 알아"-은아
"왜 이러는거야"-현지
"후..나도 모르겠다"-은아
그만 의자에 털썩 앉아버리고 말았다.이렇게 혼란스러운 건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현지야.이제 그만 가라"-은아
나의 말을 들은 현지는 자기 반으로 들어갔다.
복잡하군..이 일에 정민호일까지 겹치면 안되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으로 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오..너도 인터넷을 하네.이런 거 보지 말고 나에 대한 거나 알아봐라"-지훈
"방해나 하지마"-은아
처음에는 차갑고 조용한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닌거 같군..
"그나저나 기대해라.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길테니까"-지훈
뭐야.저 의미모를 말은..빨리 찾기나 하자..
겨우 찾아네..역시 여기에 있을 줄 알았어.
"역시 T그룹 소유의 레이 호텔이군."-은아
나의 입에는 어느새 미소가 떠올랐다.
근데 왜 나한테 전화를 안 했지..이상하군..
바로 방으로 올라가 옷장을 열었다.
그래도 오랜만인데 정장을 입어줘야 겠지..
왠지 의미모를 한숨이 나왔다.내가 왜 이러지..빨리 서두르자.
평소의 부모님은 별장을 자주 가시지..
하지만 뭔가를 숨기는 부모님은 자주 가는 별장보다는 잘 안가는 호텔에
계실거라는 내 예감이 맞았어.
분홍색 정장을 입고 머리를 틀어올렸다.
대충 분홍색 핸드백을 들고 레이 호텔로 향했다.
"저기 서민태씨가 묵으시는 방을 알고 싶은데요"-은아
"1205호입니다"-여자
제길.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부모님을 찾고 있다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닫힐려는 순간.누군가 뛰어오길래 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시혁
"시혁아.."-은아
시혁이는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뭐야..너?"-은아
"너야말로"-시혁
"나 부모님때문에"-은아
"ㅋ.난 누나때문에"-시혁
설마 같은 호텔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우연이네..
"나중에 전화할게"-시혁
시혁이가 먼저 내리고 나도 좀 있다 내렸다.
"겨우 도착했군"-은아
나는 1205호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두드렸다.
카드로 여는 문이라 열수도 없다.
"누구세요?"-어머니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로군..후..
"나야.문이나 열어"-은아
나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문을 열린다.
"은아야...니..니..가 어떻게.."-어머니
"이젠 말까지 더듬는군"-은아
"여보.무슨일..은아야"-아버지
"두 분 무슨 일때문에 집에 안 오신 거예요"-은아
뭐야..대체..왜 뭔가를 숨기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거야..왜..
"저..그..그게"-아버지
이젠 아버지까지..하여간 이상한 분들이야.
"됐어요.그건 그렇고 집에는 언제 오실거예요"-은아
"음..우리 내일 또 여행 갈거야"-어머니
"그런게 어디 있어"-은아
"여기 있지..그러니까 귀찮게 집까지 갈 필요는 없어"-어머니
갈수록 태산이군..되는 일도 없고..
"그럼 회사일은..안 그래도 일 많이 밀렸잖아"-은아
"당연히 생각해 뒀지"-아버지
"정말 대단하군요.아버진"-은아
"은아야.넌 가끔씩 남자 같단다"-아버지
갑자기 짜증나게 그런 말을 하고 그러는거야.
흘러내리는 머리를 넘기고 아버지를 쳐다봤다.
"혹시 걔가 온 건 아니지?"-은아
"네 생각의 걔가 민이라면 맞다"-아버지
사악한 미소를 띄며 말하는 아버지를 보고 살인 충동이 일어났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겠냐..부모님인데..
"회사 일도 걔한테 맡겨둔거야?"-은아
"그래.아..신이는 잘 있니?"-아버지
신이라..꽤 아는 사이인가 보지..
"어.약혼식때 왔으면 나보려 오지."-은아
"난 너무 아쉽단다.은아야.그때 신문기사에 실린 니사진을 보고 역시
내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너의 이쁜 모습을 못 보다니..너무 아쉬워"-어머니
눈을 빛내며 말하는 어머니..그러고보니 내가 사진을 언제 찍혔지..
나도 모르는 새에..찍혔어..
"그럼 난 이만 갈게"-은아
내가 방에서 나가자 어머니의 말..
"당분간 민이도 우리집에서 지낼거야!내일쯤 갈거야"-어머니
가만히 엘리베이터를 탔다.어차피 문을 열어줄 작자들도 아니니..
가만히 버튼을 눌렀다.길다란 한숨만 나온다.
괜히 치마정장을 입었어.불편하기만 하잖아.
"시혁아.."-은아
현관으로 나오자 시혁이가 보였다.처음에는 기쁘게 이름을 부르러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왜 너의 품에 여자가 안겨져 있는거야..그리고 넌 왜 웃고 있는거야.
이기적이다..난..류신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뒤로한채 이러는 내모습이..너무..
전에 본 시현 언니도 옆에서 밝게 웃고 있다..
"그래..시혁일..보내줘야 해.."-은아
조용히 속삭이며 밖으로 나왔다.
걷다보니 어느새 집이었다.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집에 문이 열려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때는 주머니에 손을 꽃은 채 벽에 기댄 민이가 보였다.
"너!"-은아
"들었지.나 돌아왔다."-민
#18
나를 갑자기 안는 민..그리고 갑자기 이마에 뽀뽀를 한다.
"너 뭐야!!"-은아
"미국에선 이게 인사잖아"-민
태연스럽게 말하는 민.
"여전히 예쁘구나.넌"-민
흘러내린 내 머리를 넘겨주며 말한다.
"그건 그렇고 왜 돌아온거야"-은아
"너보려"-민
3글자의 짧은 말이지만 민의 마음을 알수 있었다.
"따라와봐"-은아
"왜"-민
"그동안 지낼 방 안내해줄게"-은아
계단으로 올라가던 중 갑자기 민이가 내손을 잡고 잡아당긴다.
"정말 보고 싶었어..은아야.."-민
그리고 또 날 안더니 말한다.
"야.계단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위험하게.."-은아
하지만 나의 충고가 끝나기도 전에 우리둘은 그만 계단에서 떨어졌다.
다행이 난 민이가 감싸주어서 다친데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자세는 내가 민이를 덮치는 자세..
내가 일어나려 하자 내 허리에 있던 민이의 팔에 힘이 들어간다.
"손에 힘 좀 빼"-은아
"니 다친데 없지?없으면 다행이구..잠시동안 이렇게 있자.."-민
그러지..뭐..오랜만에 만났는데..
"여자의 품이 그리웠나보지..날갖고 이러는 걸 보니.."-은아
"당연하지..공부밖에 안했으니까.."-민
무슨 감상이라도 하듯이 민이는 편안히 눈을 감고 있었다.
"후..역시 넌 당해낼 수가 없어."-은아
포기 한채 누워서 안겨있는데..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오해할텐데..제길..민이도 들었는지 감던 눈을 떴다..
"시혁아.."-은아
"너.."-시혁
나는 일어섰고 옆에 있던 민이도 옷을 털며 일어섰다.
시혁이가 나가려하자 민이가 말했다.
"이봐.뭔가 오해를 한거 같은데.."-민
"이런 확실한 장면을 목격하고도 뭐가 오해라는거죠"-시혁
"ㅋ.웃기는 애군.나와 은아의 사이를 알고도 그런 말이 나올까."-민
쇼파에 여유롭게 앉아 TV를 보고 있는 민..
"나하고 은아..친남매야"-민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나와 시혁이는 가만히 서있는다.
"그게 사실이야"-시혁
몇분이 지나자 시혁이가 한말이다.
"은아한테 물어보지..그렇게 날 못 믿겠으면"-민
나와 사귀는 척을 할줄 알았던 민이가 왜 오해를 풀어주는걸까..
장난을 좋아하던 민이가 유학을 갔다오고 달라졌다.좀더 어른스러워졌달까..
"사실이야.민이는 내 오빠야..인정하기는 싫지만.."-은아
시혁이의 얼굴을 보자 불현듯 아까의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미안하다..오해해서.."-시혁
"아니야..근데 시혁아..오늘은 너보기 그렇거든..오늘은 그냥 가줄래"-은아
시혁이의 얼굴에는 약간의 슬픔과 외로움이 묻어있었다..
"그래.그럼 난 이만 갈게"-시혁
시혁이가 나가고 민이가 입을 열었다.
"보니깐 남자친구 같던데..보내도 돼?"-민
"어."-은아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자 민이가 서있었다.
전에 가지고 놀던 야구공을 만지작거리며...
"너 많이 변했어.."-민
나를 벽에 밀어붙이더니 민이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은아
"시아가 죽고난 뒤 넌 언제나 차가웠고 보고있는 사람까지도 견디기 힘들었어..
하지만 지금의 넌 전과달리..너무 슬퍼보여..그때는 차가운 얼굴로 슬픔을 감추었지만
지금은 니얼굴에 잘 나타난다.이 말이야.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민
불만적인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민이는 안 힘들까..이렇게 시아 얘기를 꺼내는거..
자신도 힘들텐데..다 잊은 건가..
민이는 시아의 남자친구였다..그래서 나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민이는 너무나 태평하다..
"니가 알 필요 없어.."-은아
"그래?그럼 상관없지만 이젠 오빠라고 좀 불러주라.."-민
"싫어"-은아
"그래도 3살이나 차이나는데.."-민
"후..그렇게 듣고 싶어?"-은아
전부터 민이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민이와 만나는 날도 적었고 민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왜 지금에서 와서 이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민
"알았어.민이오빠"-은아
오빠에 악센트를 주며 말했고 민이는 밝게 웃었다.
이 모습을 얼마만에 보는걸까..시아의 죽음이후 민이는 웃은 적이 없으니까..
나까지 웃게 되네..
"근데..오빠눈은 전부터 봐 왔는데 너무 예쁜 거 같아.."-은아
사실이다..혼혈아도 아닌데 민이의 눈동자는 파랑색 비스무리한 색이였다.
그 색깔이 난 너무 맘에 든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말을 하자 민이가 얼굴을 붉힌다.
"왜 그래?"-은아
"아니야.그냥 시아도 전에 그런 말 했거든.."-민
아...실수다..시아가 민이의 눈을 좋아한다는 걸..잊었어..
"미안"-은아
"아니야."-민
민이의 방을 안내해주고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보니까 민이랑 같이 사는 건 처음이야.."-은아
친남매라지만 우리는 같이 산 적이 없었다.
어렸을때는 민이가 할머니가 계신 캐나다에 갔었고 커서는 민이가 독립을 했으니까..
웃으며 고개를 돌리다 눈에 띈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본이었다.
"어차피 저건 얼마전에 다 외웠으니까.."-은아
나중에 외우기 싫어 미리 다 외워 버렸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민이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보니까 니 왜 이렇게 일찍 와?"-민
"뭐가?"-은아
"고3이니까 야자같은 거 할 거 아니야?"-민
"이 주변의 학교는 야자같은 거 안해"-은아
"아..그래..나가자"-민
"왜"-은아
"니 친구들한테 나 소개 좀 시켜주고..밥도 먹을 겸"-민
"그러지..뭐.."-은아
대충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19
"현지니?나야.은아.원후랑 같이 만나자."-은아
밖에 나오자 한 일은 현지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민이는 가만히 날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현지
"어.소개시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은아
"시혁인?"-현지
"시혁인 안 올거야"-은아
시혁이의 얘기가 나오자 나의 목소리는 극도로 낮아졌다.
"시혁이라...아까 그 남자애 이름인가.."-민
여전히 서서 날 쳐다보고 있는 민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범한 옷차림이였지만 민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알았어.이지스로 나와"-은아
긴 통화가 끝나고 나와 민이는 이지스로 향했다.
이지스로 도착하자 날 알아본 종업원이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오세요.근데 전에 같이 오신 남자분이랑 틀리시네요?"-종업원
"오빠야"-은아
"아..좀 닮은 거 같기도 하네요"-종업원
2층으로 올라가 창가에 앉았다.
"그 시혁이라는 애랑 여기에 자주 왔나보다."-민
무엇을 추궁하듯 턱으 괴고 말하는 민이의 이마를 손으로 밀어버렸다.
"많이 왔다고해도 고작 2번인걸.."-은아
주문한 아이스 커피와 쥬스가 나오고 민이는 아이스 커피.나는 쥬스를 마셨다.
현지와 원후를 찾기 위해 창가를 보다 시혁이가 보였다.
여기는 웬일로..호텔에서 본 여자와 이지스로 들어오는 시혁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시혁이는 보이지 않았다.
얼떨결에 옆에 있는 쥬스를 원샷해버렸다.
'탁'
쥬스잔을 내려놓는 순간 본의 아니게 커다란 소음이 일어났다.
"왜 열받는 일이라도 있냐"-민
아이스커피를 빨대로 먹고 있던 민이가 그 소리에 놀랐는지 날 쳐다본다.
"아니야"-은아
"아닌거 같은데.."-민
고개를 저으며 못 믿는 눈치이지만 결국은 가만히 아이스 커피를 마신다.
"근데 회사일 처음이지 않아?"-은아
"어.그동안 공부만 하고 놀았으니까.."-민
걱정없다는 듯이 여유롭게 밖을 내다보는 민이가 한심해보이기만 했다.
민이는 22살이지만 학교에 일찍 들어가 대학도 벌써 다 졸업한 사람이다.
"자랑이다"-은아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고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을때는 현지와 원후가 보였다.
"드디어 오는군.."-은아
"진짜?"-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민이가 날 쳐다본다.
맞아..민이가 유학을 가고나서 현지랑 만났으니까..
"어"-은아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현지와 원후가 이 곳으로 왔다.
"민이오빠.내옆으로 와"-은아
"왜?"-민
"빨리 오기나 해!"-은아
나의 말에 민이는 재빨리 내옆으로 온다.
옆에서 계속 이상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민이의 귀에 대고 말했다.
"친구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데 둘이 이어줘야지"-은아
이제서야 이해가 된듯 민이는 웃어댔다.
"누구?"-현지
현지는 궁금하다는 듯이 민이를 쳐다봤고 옆에 있던 원후는 무표정이었지만
무서운 표정처럼 보였다.
"잘생겼다...너 혹시 시혁일 놔두고.."-현지
나를 잠시 째려보다가 민이를 보며 밝게 웃는 현지의 모습이 우스웠다.
"풉..나하고 민이오빠 그런 사이 아니야"-은아
"사실이야?"-현지
"어.친오빠야.민이오빤.근데 원후는 말이 없네.."-은아
"아니에요!!선배!!"-원후
나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으며 말하는 원후..
손까지 저으며 말하는 원후의 모습이 그동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ㅋ.웃긴 애들이네..난 은아의 친오빠 서민이라고 해.
나이는 22살.니네보단 나이가 많을거야"-민
"아..저는 은아의 친구 이현지라고 해요"-현지
악수를 하고 있는 현지의 구리빛손과 민이의 하얀손이 대비를 이루었다.
"저는 은아선배의 후배 이원후입니다"-원후
민이는 또다시 원후와 악수를 하더니 원후에게 작게 말한다.
"하지만 너는 은아를 선배이상으로 생각하는 거 같은데..ㅋ"-민
그렇게 말해봤자 나는 다 들었다..근데 무슨 말이지..
선배이상..이라..서로의 소개가 끝나고 현지가 갑자기 말한다.
"나 잠깐 화장실 좀"-현지
현지가 가고 세사람이서 어색한 시간을 보낸다.
"서은아.너 신이랑은 잘 지내냐?"-민
"어??아는 사이야?"-은아
놀란 눈으로 민이를 쳐다봤다.원후는 관심없다는 듯 물만 마셔댄다.
"당연하지.나,지훈,신이는 소꿉친구였는걸.."-민
"친하지는 않아."-은아
"그래?그랬구나"-민
의미모를 미소를 띄는 민이다..
2층으로 올라오고 있는 현지가 보였고...
그 뒤에는 시혁이와 그 여자가 같이 보였다.
"바람피는 건가.."-민
재미있다는 식으로 흥미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민이다.
"마침 시혁이도 있더라고.."-현지
"안녕..."-시혁
옆의 여자는 기분이 좋다는 듯 시혁이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운 채 웃고 있었다.
"어.."-은아
서로의 어색한 인사가 오갔다.
현지는 대체 눈치가 있는거야..없는거야..대체..
시혁이와 그여자도 같이 앉았고 원후는 시혁이를 빤히 쳐다본다.
"안녕?나 아까 봤지?서민이라고 해.은아 친오빠"-민
먼저 민이가 인사했고 시혁이는 민이가 내민 손을 그저 쳐다보기만 한다.
"안녕하세요.저는 은아 남자친구 민시혁이라고 합니다"-시혁
머뭇거리던 시혁이는 민이와 악수를 했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흘렸다.
"근데 은아가 있는 앞에서 다른 여자랑 같이 있다니 좀 그런 거 아닌가.."-민
시아가 죽고난 뒤 생긴 민이의 버릇이 나왔다.
사람을 얼릴 만큼 차가운 무표정..
"아닙니다"-시혁
담담한 표정의 시혁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때 옆에 있던 여자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나는 시혁이 약혼녀 이화야.
이제 그만 시혁이한테서 떨어지는 게 어때?"-이화
#20
이화라..어디서 들은 이름인데..음..
"야!우리가 무슨 약혼이야!!우리 그냥 친구사이잖아!!!"-시혁
"훗..이화라고 했나..혼자만의 착각이 심한 거같군"-민
비웃음을 띄며 말하는 민이를 보고 이화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다.
통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속으로 함성을 질러댔다.
시혁이는 어느새 이화의 팔을 자신의 팔을 빼고 있었다.
"잘나가는 여배우가 이런 애인줄은 몰랐는데.."-민
또한번 심한 말을 하는 민이를 말리고 싶었지만 행동으로는 표현되지 않았다.
"제길.."-이화
이화의 목소리에서는 자그마한 욕설이 나왔고 민이는 상관없다는 듯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혁이는 민이와 자리를 바꿔 내옆에 앉았다.
지금까지의 나의 생각들이 오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화...아까 여배우라고...아!현지훈의 상대배우..
재미있다는 듯이 입에서는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여배우가 험한 말을 쓰면 안되지."-민
옆에서는 계속 이화를 괴롭히는 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쯤 이화의 머리속에는 참을 인(忍)자가 새겨져있을 것이다.
카페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옮겨졌다.
유명한 여배우에..미남미녀들이 모여있으니..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어.."-은아
나의 입에서는 저절로 생각들이 말로 나타났다.
"맞아.재밌지?"-시혁
"한가지 마음에 안드는 게 있다면..."-은아
"뭔데?"-시혁
"너의 그 부담스런 시선"-은아
나의 말에 시혁이는 얼굴을 붉혔다.
"그동안 미안했어.이제는 그 사람 잊을게"-은아
시선은 여전히 창밖에 두었고 목소리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시혁이의 얼굴을 보지도 않았지만 시혁이는 아무말도 없었다.
모두들 장소를 옮기자며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내옆에 있던 시혁이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말했다.
시선은 아까전의 나와 같이 다른 곳에 둔채..
"고맙고 미안하다..내 일방적인 감정을 받아줘서.."-시혁
오히려 미안하고 고마운 건 나일텐데..참 바보야..넌..
"난 이만 집에 갈게"-은아
"어??벌써??"-민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건 민이였다.
"어.갈게"-은아
뒤돌아 가려는데 시혁이가 내손을 잡았다.
"그럼 나도 가야겠지??"-시혁
한없이 밝은 미소를 보이며 아까전보다 더 세게 내 손을 잡았다.
"아우..저 닭살.."-현지
몸을 마구 비꼬는 현지를 보고 원후가 어깨를 잡아 가만히 있게 한다.
그리고 계속 닫혀있던 무거운 입을 연다..
뭔가 멋있는 말이 나올 줄 알았던 원후의 입에서는..
"선배 추해요"-원후
원후로서는 그냥 내뱉은 말이겠지만 현지는 그대로 굳은 채 서있었다.
"하여튼 웃긴 커플이야"-은아
그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에요!선배.저하고 현지선배 사귀는 사이 아니라고요!!"-원후
방금전까지 말없이 과묵하던 원후라고는 믿길 수 없을 정도로 원후는 크게 말했다.
아니..그건 고함을 지르는 듯 했다.
옆에 있던 현지는 멍하니 땅만 볼 뿐이다.
"이원후.그냥 농담으로 말한 거 같다가 왜 그래?"-은아
어두운 현지의 표정을 보게 된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죄송해요.현지선배..확김에.."-원후
그리고 갑자기 현지가 고개를 들더니 당당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원후.나 지금까지 너한테 내 고백에 대한 답 못 들어도 참았어.
하지만 이젠 못 기다리겠어.지금 이순간 확실히 해줘.나랑 사귀자"-현지
그 순간 현지는 강한 여자구나 라는 걸 느꼈다.
그동안 많이 강해졌구나..현지야..하..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쉬었고 긴장을 했다.
모두들 원후에게 시선을 옮겼고 원후는 자신의 턱을 만지며 고민하는 듯했다.
"선배.."-원후
원후의 낮은 저음이 들렸고 옆에 있던 시혁이도 내 손을 굳게 잡았다.
내손과 시혁이의 손에도 어느새 땀이 맺히고..
모두가 한결같이 긴장을 하고 있는데 입을 열려던 원후의 입에 한 손가락이 얹어졌다.
"현지야.."-은아
"아..씹..오래만에 좋은 구경하나 싶더니.."-이화
언제부터인지 이화가 우리 무리와 같이 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너한테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긴 했지만 더 줘야 할 것 같아.
그러니까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할때 대답해줘"-현지
이제 로미오와 줄리엣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원후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나와 시혁이는 예정대로 집으로 향했다.
"이원후..과연 어떻게 할까.."-은아
"글쎄.."-시혁
"아마도 아니...잘하면 현지가 차일 수도 있어.."-은아
시혁이는 아무말도 안하고 그저 날 쳐다봤다.
"얼마전 원후가 말했어..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은아
"하...이현지도 힘든 사랑을 하는군.."-시혁
은은한 달빛이 시혁이와 나를 비춰주었다.
"넌 은은한 달빛이 좋아?아님 밝고 환한 햇빛이 좋니?"-은아
"나는 달빛이 좋아.."-시혁
나와 똑같네...나도 달빛이 좋은데..
"사랑도 달빛같은 게 좋아.."-시혁
달을 바라보는 시혁이의 눈빛은 한없이 진지했다.
"달빛처럼...은은하고 천천히 스며드는 그런 사랑이 난 좋아.."-시혁
길다란 속눈썹이 시혁이의 눈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래"-은아
"서은아.너도 나에게 달빛 같은 존재야.."-시혁
원래 이런 느끼한 멘트는 싫어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왜 이리 또 듣고 싶은건지...한숨만 나온다.
시혁이를 만난후 난 많이 변했다.시아 생각을 해도 아무 생각이 없을 만큼..
얼마후면 시아의 기일...한가지 이상한 게 있다면 시아의 가족들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아나 그런 것도 아니라고 들었는데..왜 볼 수 없었던 것일까..
중학교때 일어난 그 사건은 이 일대에 크게 퍼질 정도로 유명했다.
그래서 시아에 대해 모르던 사람들도 이 사건으로 인해 시아를 잘 알게 되었다.
그 예로 현지이다.현지와 나는 그당시 친구사이가 아니었다.
언제나 나와 시아가 붙어다녔기때문에 친구를 사귈 시간 같은 건 나에겐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하자 나에게 접근한 건 현지였다.
"미리 말해두겠어.넌 나와 한달뒤에 친구가 될거야"-현지
그게 처음 현지가 나에게 던진 선전포고와도 같은 말이었다.
한달뒤 우리는 진짜 친구가 되었고 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아라는 애와 너한테 일어난 사건을 듣고 너에게 흥미를 느꼈어..
그래서 친구가 될려고 했고 어쩌면 나도 시아처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생겨서 그만 둘까..라는 생각도 들었어..
하지만 니가 정말 좋은 애라는 걸 알았어..누구나 좋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 줄 몰랐거든..그게 바로 너더라..
한번 널 보면 왠지 모를 매력이 풍겨나와서 날 잡았어..
앞으로 잘 지내자!!은아야!!"-현지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나도 현지와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내가 만약 친구를 사귀면 시아와 같이 되는 게 아닐까..라는 불안감..
그 이유로 친구도 사귀지 않았다.그런 늪에서 날 구해준 건 현지..
그리고...시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