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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1일 오늘의 역사
2022년 로또복권 사상 처음 1등당첨자 50명 발생
2021년 국민의힘 당대표 이준석(36세) 역사상 30대 당대표 당선
국민의힘 새 대표에 36세의 이준석 후보가 선출됐다.
헌정사에서 집권여당 또는 제1야당에서 30대가 '간판'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1일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서 이준석 대표는 일반국민 여론조사와 당원투표 결과를 합쳐 9만3천392표(전체 대비 43.8%)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2위 나경원 후보(7만9천151표, 37.1%)와의 득표율 차이는 6.7%포인트다.
이어 주호영(2만9천883표, 14.0%), 조경태(5천988표, 2.8%), 홍문표(4천721표, 2.2%) 후보가 3, 4, 5위를 기록했다.
2015년 위안부 피해자. 포항 김달선 할머니 90세로 별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달선(90·사진) 할머니가 지난 11일 오후 9시 15분 경북 포항의 한 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50명으로 줄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에만 벌써 5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1925년 경북 포항에서 3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난 김달선 할머니는 19세이던 1943년 포항 흥해시장 거리에서 일본 경찰에 의해 미얀마로 끌려갔다. 1945년 귀국 전까지 2년간 수술을 2차례 받을 정도로 고초를 겪었다. 주변인들의 권유로 1996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피해자로 신고한 김 할머니는 “죽기 전에 꼭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겠다”며 대구 지역에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함께 활발히 활동해왔다.
2015년 위안부 피해 김외한 할머니 별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해온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 할머니는 건강이 악화해 이날 오후 인근 참조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후 8시 40분쯤 숨졌다.
김 할머니는 지난달 나눔의 집에 사는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9명과 함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모욕한 일본의 극우 정치인 스즈키 노부유키(50)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으나 일본의 공식 사죄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 할머니의 고향인 안동에는 할머니의 남편이 살고 있다.
2013년 중국 유인우주선 선저우 10호 발사 성공
2013년 헌법재판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 재판관 9명 전원일치 합헌 결정
2011년 북한 주민 9명 서해 우도 해상으로 입국 귀순 의사 밝힘
2009년 세계보건기구(WHO) 신종 플루 대유행 선포
2009년 북한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임금과 토지임대료 인상 요구
근로자 임금은 4배인 월 300$, 임대료는 이미 납부한 금액의 31배인 5억$ 요구
2009년 한진중공업, 한국 첫 쇄빙선 ‘아라온호’ 진수
2009년 6월 11일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순수 국내 기술로 건조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진수식이 열렸다.
아라온호는 남극 대륙 주변이나 북극해처럼 얼어있는 바다에서 단독으로 항해할 수 있는 쇄빙선(6950t급)으로 길이 110m, 폭 19m 규모다. 국토해양부 산하 극지연구소의 발주로 1030억원이 투입돼 제작된 아라온호는 마무리 작업을 거쳐 9월 말 인천에 있는 극지연구소에 인도될 예정이다. 쇄빙 능력을 확인하는 시험 항해를 거쳐 내년부터 본격적인 탐사와 연구활동에 투입될 예정이다. 한국은 그동안 쇄빙선이 없어 다른 나라 배를 빌려 사용했다. 아라온호는 60여종의 최첨단 장비를 갖춰 연구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라온’이라는 이름은 순 우리말로 바다를 의미하는 ‘아라’에다 전부나 모두라는 뜻이 있는 관형사 ‘온’을 붙여 지었다. ‘전 세계 모든 바다를 누비라’는 의미와 ‘어떠한 상황에서도 역동적으로 활약하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2004년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현대 비자금 150억원 받은 혐의로 징역 12년 선고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2000년, 대북 불법송금에 개입하고 현대 비자금 15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항소심에서도 징역12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11일 박 전 장관의 범죄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 징역12년에 추징금 148억5200여만원을 선고했다. 박 전 장관은 이날 녹내장을 앓고 있는 오른쪽 눈에는 거즈를 댔지만, 한 달간의 구속집행정지 기간 허리디스크가 다소 호전된 듯 휠체어를 타지 않고 법정에 섰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씨가 현대로부터 카지노·면세점 허가 청탁과 함께 150억원을 받았다는 정몽헌(전 현대아산 회장), 김영완, 이익치(전 현대증권 회장)씨의 진술은 믿을 수 있고, 대북송금 과정에서 북한에 불법으로 송금하도록 지시한 혐의 등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항소심 진행 중 추가기소돼 1심에서 2년6월이 선고된 알선수재 혐의도 1심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3000만원을 포함해 모두 유죄를 인정했으나, 남북화해와 경제협력 확대에 기여한 공로와 녹내장 등 병세를 감안해 형량을 원심보다 무겁게 정하지는 않았다.
200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고속도로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인터체인지’ 표지판 헌정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에 도산 안창호 선생 이름을 딴 인터체인지가 생겼다.
지난 2002년 8월 도산 인터체인지 법안을 상정한 케빈 머레이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측은 9일 “도산 안창호 후손들을 초청한 가운데 오는 11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10번과 110번 고속도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표지판 제막식이 열린다.”고 밝혔다.
한국인의 이름이 미국 고속도로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인터체인지’로 불리게 된 이 길은 하루 평균 57만여 대의 차량이 통과해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혼잡한 도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미국 연방하원은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6가와 하버드 코너에 위치한 ‘6가 우체국’을 ‘도산 안창호 우체국’으로 바꾸는 법안을 이미 통과시켜 도산 이름을 딴 우체국도 곧 생길 전망이다.
2003년 프로 테니스선수 앤드리 애거시, 1000번째 경기 수립
‘강철의 사나이’ 앤드리 애거시(33·세계2위·미국)가 생애 1000번째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애거시는 11일 영국 런던에서 벌어진 퀸즈클럽 테니스 1회전에서 페테르 루사크를 2대0(7―6,6―4)으로 제압했다. 이 경기는 애거시가 지난 86년 프로 입문 18년 만에 맞은 통산 1000번째 경기였다. 애거시는 1000경기 이상을 출전한 8번째 선수가 됐으며 766승234패로 다승부문 6위를 기록하고 있다.
애거시는 96년 인기 여배우 브룩 실즈와 세기의 결혼을 해서 화제를 뿌렸고 이후 랭킹이 급전직하, 100위 밖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애거시는 브룩실즈와 이혼한 후에 2001년 ‘테니스 여제’ 슈테피그라프와 재혼해 다시 화제를 모았다. 한때 “애거시 시대는 끝났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지만 올해 초 호주오픈 정상을 차지하고 랭킹 1위에 재등극하는 등 최근 ‘제2의 전성기’를 열고 있다.
2003년 ‘영화 100년간 최고의 영웅’, 그레고리 펙 별세
‘로마의 휴일’과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의 배우 그레고리 펙이 12일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떴다. 그의 나이 87세.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배우들의 위엄있는 아버지”(스티븐 스필버그) “성실과 정직의 상징”(커크 더글러스) “완벽한 신사”(폴리 버건)로 그를 기리는 말들이 쏟아졌다.
그는 50년이 넘는 연기생활 동안 60여편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내내 관객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펙은 1940∼5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를 대표했던 스타였다. 그리고 그는 스크린 스타이기에 앞서 미국인의 영웅이었다. 그의 별세 1주일 전, 미국영화연구소(AFI)는 ‘미국 영화 속 최고의 영웅 50’을 선정해 발표했다.
1944년 ‘영광의 나날들’로 데뷔한 이후 두 번째 작품 ‘천국의 열쇠’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일찌감치 스타가 된 그는, 사실 나치 전범(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에서 서부영화 악당(듀얼 인 더 선) 같은 악역들도 연기한 배우였다. 그러나 팬들은 언제나 그를 과묵하고 성실하면서,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의인(義人)으로 기억했다. 링컨이나 맥아더 같은 실존 영웅이 그의 단골 배역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삶은 마지막까지 평온했다. 48년간 해로해온 아내 베로니크의 손을 잡은 채 그레고리 펙은 잠들 듯 숨을 거두었다.
2001년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 폭파범 멕베이 사형
168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 폭파사건의 범인 티노시 맥베이(33)가 2001년 6월 11일 오전 7시 인디애나주 테러호트 교도소에서 독극물 주입 방식으로 처형됐다.
당초 맥베이는 5월 16일 처형될 예정이었으나 연방수사국(FBI)이 일부 자료를 그의 변호인측에 넘겨주지 않아 사형 집행이 연기됐었다. 그는 1963년 이후 처음으로 연방정부에 의해 처형된 죄수로 기록됐다. 맥베이는 이에 앞서 6월 8일 사형 집행 연기를 위한 모든 법률적 노력을 포기했으며, 6월 9일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처음으로 용서를 구했다.
8분간의 독극물 주입에 의한 사형 집행장면은 처형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희생자 유족 10명, 취재진 10명, 친지·친구 등 맥베이의 초청인 10명 등 모두 30명이 지켜봤다.
1999년 월북작가 함세덕 희곡 ‘무의도 기행’ 국립극단서 처음 공연
국립극단이 1940년대를 풍미한 희곡작가 함세덕(1915∼1950)의 ‘무의도 기행’ 을 1999년 6월 11일부터 22일까지 국립중앙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했다. 우리 국립극단이 월북 작가의 희곡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창단 이후 처음이었다.
함세덕은 35세로 요절했기에 10여년 밖에 작품 활동을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일제 말 암흑기, 광복 전후 혼란기를 통해 희곡 20여 편을 써내며 연극계 중심에 섰다. 대부분 유치진 연출로 공연됐던 함세덕의 작품은 잘 짜인 드라마 속에 암울한 시기의 꿈을 담아, 조국 잃은 사람들 가슴에 큰 울림을 안겼다. 1988년 우리 정부의 해금 조치로 그의 희곡들이 햇빛을 봤으나, 이번 공연으로 그의 작품 세계가 본격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됐다.
‘무의도 기행’ 은 1930, 40년대 서해의 작은 섬 무의도가 배경.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한 시대를 암울하게 살 수 밖에 없던 어느 섬 소년의 고독한 성장기, 처참한 종말에 이르는 비극적 삶이 그려진다. 친딸까지 팔았던 비참한 가난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대사엔 우리말 특유의 맛이 배어 있다. 이번 공연은 월북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묻혔던 우리 연극사의 한 부분을 재발견하는 일에 국립극단이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98년 중-일 공산당, 문화대혁명 이후 단절되었던 상호관계 정상화하기로 합의
중국 공산당과 일본 공산당은 지난 60년대의 중국 문화대혁명 등으로 사실상 단절됐던 상호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양당은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다이빙궈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니시구치 히카루 일본 공산당 국제부장간의 회담에서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를 열어간다는 정신으로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1997년 제2차 북미 미사일 회담 (뉴욕. -13일)
1995년 설치미술가 전수천, 베니스비엔날레서 특별상 수상
1995년 6월 11일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 개관 원년행사에 출품한 전수천씨의 작품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 - 그 한국인의 정신`이 한국국적 작가로는 최초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번에 전씨가 한국관에 출품한 설치작업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 ― 그 한국인의 정신` 은 지난해 가을부터 경주에서 구운 토우 8천개와 비디오 모니터 8대,각종 산업폐기물을 함께 설치해 고대와 현대,삶과 죽음을 대비시키며 몽환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특히 손으로 직접 빚은 신라시대의 토우 형상들과 각종 산업폐기물, 첨단 비디오설비 등을 결합해 한국의 전통세계를 보편적 조형언어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한국관 개관 이후 국제미술계 인사들의 호평과 찬사를 받았다
199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북한 제재 결의안 채택
1993년 ‘쥐라기 공원’ 뉴욕에서 개봉
6개월 만에 8억$라는 영화사상 최대수익 올림, 마이클 크라이튼의 베스트셀러 소설 각색
실제 살아있는 공룡을 보는듯한 사실감 전해주는 특수촬영, 제작팀은 1년 가까이 생물학자 유전공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약 6m 길이의 공룡 ‘티라노사우르스’를 거의 완벽하게 재생, 섬유질 유리로 된 공룡 틀에다 140kg 정도의 진흙을 입혔고 표피는 라텍스 광택제 바름, 가장 작은 공룡인 T-렉스(일명 왈도)는 머리 팔 꼬리 등에 컴퓨터 칩 설치해 리모콘으로 작동, 다양한 공룡제작 위해 60명 이상의 미술가 엔지니어 인형모형제작자 동원, 제작비 1억$
일본인의 재원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미국은 멍석만 깔아주고 막대한 수익은 일본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는 비판도 있음
1993년 북-미 4차 고위급 회담 타결, 북한의 NPT 탈퇴 유보 등 공동성명 발표
1991년 남북 첫 야구대결, 제1회 환동해 친선야구대회(일본 니키타)에서 한양대학이 국제무대 첫 선보인 북한에게 16대 1 7회 콜드게임으로 이김
1990년 교통방송(TBS) 개국
1988년 사회정화위원회 폐지
1985년 소련의 금성탐사위성 베가1호의 착륙선이 금성에 착륙
1984년 이탈리아의 공산당 서기장 베를링구에르 사망
1983년 한국은행 5천원 권과 1만원 권 새 지폐 발행
1983년 여성의 전화 창립
1981년 이란의 켈만주에 대지진, 1500~3000명 사망
1981년 제1공영호(선원21명) 서해북방한계선서 납북
1980년 음주측정기를 이용한 음주운전 단속 시작
1980년 6월 11일 치안본부는 차주 운전자가 늘어나면서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급증하자 미국에서 음주감지기 4백대를 도입, 전국 경찰에 나누어주고 음주 운전자를 강력히 단속토록 했다.
이 음주 감지기는 소형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 정도의 크기로 상단에 붙어 있는 파이프에 운전자가 입김을 불어넣으면서 버튼을 누르면 알콜의 함량이 숫자로 표시되게 제작됐다. 이 감지기는 주로 교통경찰이 휴대, 지그재그 운전을 하는 운전자나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의 음주여부 및 호흡 1ℓ당 알콜흡인량을 알아내는데 쓰였다.
기준 이상을 마시고 운전하다가 적발되면 1년 이하의 징역과 30만원 이하의 벌금 이외에 30일간의 운전면허 정지기간이 길어지고 자동차 사용 정지처분이 병과되도록 했다.
치안본부가 음주감지기를 도입하게 된 것은 1979년 한해동안 전국에서 음주운전으로 인해 2006건의 사고가 발생, 1백50명이 사망하고 1천7백11명이 부상했기 때문인데, 이 사고 건수는 1978년에 비해 45.9%가 증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음주감지기를 이용한 음주운전자 적발-처벌은 개개인에 따라 다른 알콜반응도, 다시 말하면 술이 센 사람과 덜 센 사람, 맥주 한 병을 마시고도 운전할 수 없는 사람과 할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할 수 없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었으며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감지기보다는 운전자로 하여금 직선 위를 걷게하여 똑바로 걷는가의 여부로 판정했다.
1980년 알지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총회, 원유의 가격통일 실패
1979년 미국 민간대외원조협회(CARE) 한국서 철수
1979년 영화배우 존 웨인 사망
그는 1938년 ‘역마차’로 각광을 받은 이래 서부극의 카우보이 기병을 비롯, 각종 영화에 해병대, 파일럿, 선장 등으로 등장해 무뚝뚝하면서도 자상한 ‘정의의 투사’로 전세계 영화팬의 심금을 울렸으며 ‘미국인’의 이미지를 세계에 홍보한 대변인으로 군림했다.
1907년 5월 26일 아이오와주에서 태어난 그는 192cm의 거구를 이용 남가주대 시절 미식축구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깨 부상 후 영화계에 입문, 포드 감독에게 인정받아 배우가 됐다. 그후 10년 이상을 한결같이 값싼 B급 서부극에 출연하던 중 1939년 서부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역마차’의 주연을 맡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붉은 강’ ‘기병대’ ‘그린 베레’ 등에 출연, 강인한 미국인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어주었다. 또한 1970년 ‘진정한 용기’(1969)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5년에 걸친 암과의 끈질긴 투병 끝에 이날 오후 5시35분 캘리포니아주립대 메디컬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1979년 한국-쿠웨이트, 국교수립
1977년 네덜란드군, `몰루카` 테러범 습격 인질 51명 중 49명 구출
1977년 미국 북한과의 외교관계 수립 희망
1976년 김영삼 총재사퇴 선언
1974년 브라질의 대통령(1945-50) 두트라 사망 - 입헌민주주의 회복
1974년 안동 봉정사에서 조선초 벽화 ‘영산회도’ 발견
1971년 리비아, 대만과 단교 중국 승인
1971년은 `죽의 장막`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첫 해였다. 대표권 분쟁을 둘러싼 대만과의 외교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일이 첫 관문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대만을 지지했지만, 실리적으로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타진하고 있었다. 4월에는 탁구 선수단을 중국에 보내 이른바 `핑퐁 외교`의 물꼬를 터뜨렸고, 6월에는 대(對)중국 금수조치 해제를 단행, 화해 제스처를 내비쳤다.
이 와중에 6월 11일,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가 대만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중국을 승인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대만 63개국, 중국 62개국이었던 수교국가 수(數)가 하루 만에 역전됐다.
중국은 여세를 몰아 유엔가입을 추진했다. 10월 25일, 제26차 유엔총회에서 중국의 유엔가입과 대만의 유엔축출을 명시한 이른바 `알바니아안(案)`이 찬성 76, 반대 35, 기권 17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 중국이 건국 22년 만에 세계무대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순간이 보기 싫었던지 대만 대표는 표결에 앞서 유엔탈퇴를 선언하고 총총히 대회장을 떠났다.
1970년 러시아 총리, 알렉산드르 표도로비치 케렌스키 사망
1969년 캄보디아, 미국과의 국교재개를 통고
1969년 중-소 대립으로 무력충돌
1969년 영국 탐험대 첫 북극도보횡단 성공
1968년 프랑스, 반드골 학생데모 격화
1968년 을사늑약 원본 서울대 도서관서 발견
1965년 베트남 쿠데타(5차)로 웬반티우 장군, 웬까오끼 장군 공동 집권
1951년 한국전쟁 중 국군 철의 삼각지대 탈환
1950년 소설가 채만식 세상 떠남 『탁류』
1942년 미국-소련 상호원조조약 조인(워싱턴)
1930년 중국 중앙위, 이입삼노선 채택 (도시무장봉기 결의)
1925년 삼시협정(미쓰야협정)으로 재만(在滿)한인의 단속강화
1923년 경성무선전신국 설치
1908년 13도 창의군 의병장 허위 피체 (9월 28일 사형 당함)
1902년 배재학당 설립한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 세상 떠남
1901년 바이올린 연주자 채동선 출생
1899년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한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출생
1898년 청나라 황제 광서제 변법자강 선포
1895년 1955~1958년 소련총리로 재임한 불가닌 출생
1894년 동학군 전주성포기 동학혁명 종식 관군 전주성 점령
1880년 미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 랜킨 출생
1864년 20세기 초 대표적인 독일의 작곡가 슈트라우스 출생
1847년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지도자 포셋 출생
1815년 영국의 초상 사진작가 캐머런 출생
1565(조선 명종 20) 제주 목사 보우 스님 때려죽임
1475년 신숙주 사망
1455년 수양대군,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에 즉위
1455년 윤6월11일, 왕위에 올라 갓 3년을 보낸 단종이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수양대군이 2년 전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등과 친동생 안평대군을 죽이고 실권을 장악한 뒤부터 명목상의 임금으로 근근히 왕권을 유지해왔으나, 수양대군이 단종의 측근들을 유배시키며 압력을 조여오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왕위를 포기한 것이다.
단종은 태어난지 3일 만에 어머니가 숨지는 불운을 겪었지만 할아버지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8세 때 세손, 10세 때 세자로 책봉돼 나름대로 순탄한 길을 걸었다. 그러나 세종이 죽고 병약한 아버지 문종마저 즉위 2년 만에 죽자 단종은 1452년 5월,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기구한 운명 속으로 내몰렸다. 상왕으로 물러난 단종을 위해 사육신 등이 한때 복위를 시도했지만 그들의 목숨은 물론 단종의 수명까지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결국 단종도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1457년 6월 노산군으로 강봉당해 강원도 영월땅 청령포로 유배됐다. 그해 12월 사약을 받고 영월 장릉에 묻혀 조선 임금 중 유일하게 경기도 밖에 묻힌 왕이 됐다.
1294년 영국의 신학자 겸 철학자 로저 베이컨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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