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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2일 오늘의 역사
2018년 북한 미국 인도네시아에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2016년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게이나이트클럽에서 마틴(29세) 총기 난사 49명 사망
2015년 고리 원전1호기 폐쇄 결정, 2017년부터 폐로절차에 들어감
2014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세월호 참사로 도피 중 순천의 한 매실 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됨
2013년 방탄소년단 공식 데뷔
2011년 제14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소프라노 서선영 여자성악 부문 1위 손열음 피아노부문 2위 이지혜 바이올린 부문 3위, 서선영은 스승 최현수의 1990년 한국인 첫 1위 이후 21년 만에 두 번째 1위
2010년 진보연대 한상렬 목사 무단 방북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인 한상렬 목사가 6·15공동선언 기념행사에 참석한다며 2010년 6월 12일 무단 방북했다. 한상렬 상임고문은 당초 광복절인 8월 15일 귀환 예정이었으나 70일 만인 8월 20일 귀환했다.
무단방북 기간인 6월 22일 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은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천안함 사건과 관련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북한에 대한 찬양 발언이 확인되었다. 이에 귀환 즉시 공안당국은 북한 지령을 받고 반미시위를 주도하고, 무단 방북해 남한 정부를 비난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되어 수사를 받았다. 한편, 방북기간동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알려졌다.
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은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의 공동대표로 당시 불법·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고, 2004~2007년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시위, 2004~2005년 '맥아더 동상 철거'시위를 주도했으며,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대표를 맡는 등 반미 투쟁에 앞장섰다. 또한 그가 속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범민련과 한총련 출신으로 54명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일이 있다. 대학 시절 북한의 주체사상에 동조한 이른바 주사파(主思派)가 상당수라고 검찰은 밝혔다.
2010년 한국대표팀 남아공 월드컵에서 그리스에 2-0 승리, 내국인감독(허정무) 첫 1승
2009년 검찰 박연차 게이트 수사결과 발표, 고 노무현 대통령은 공소권 없음으로 내사종결 6명 구속기소 13명 불구속기소
2009년 유엔 안보리 북한핵실험 비난하고 징계하기 위한 대북제재결의안 1874호 만장일치 통과
2009년 이란 대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 재선
2009년 6월 12일 치뤄진 이란 대선에서 강경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이 62.63%(2453만표), 개혁파인 미르 호세인 무사비 후보가 33.75%(1322만표)를 득표해 두배 가까운 지지율로 압승을 거뒀다.
선거 결과가 발표된 13일 수도 테헤란에서는 정부의 선거 결과 발표에 불만을 품은 개혁파 무사비 후보 지지자 3000여명이 무사비 후보의 상징인 녹색깃발을 흔들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날 시위는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최대 규모였고, 테헤란 시내는 마치 전장(戰場)을 방불케 했다 시라즈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시위가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2005년 김대중 전 대통령, 독일정부로부터 대십자공로훈장 수여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12일 ‘독일연방공화국 대십자 공로훈장’(Grand Cross 1st Class of the Order of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을 받았다. 이 훈장은 독일연방대통령이 수여하는 최고 훈장이다. 미하엘 가이어(Michael Geier) 주한독일대사는 독일 대통령을 대신해 12일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대십자 공로훈장을 수여했다.
주한독일대사관측은 “독일인에게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 긴장 완화를 위한 노력의 상징으로 각인돼 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3월 베를린자유대학에서 햇볕정책에 관한 기본 구상과 방향을 밝히는 ‘베를린 선언’을 한 바 있다.
2004년 흑인음악인 솔뮤직의 대가 시각장애인 가수 레이 찰스 세상 떠남
2003년 16만년 전 최고(最古) 인류 유골 발견
미국·에티오피아 공동 연구팀은 2003년6월12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지난 1997년 아프리카 동부 에티오피아의 헤르토에서 발굴한 두개골 3점이 16만년 전의 것으로,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오래된 유골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의 팀 화이트(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생물학) 교수는 네이처에서 “에티오피아에서 발굴한 화석에서 어른 2명과 어린이 1명의 두개골을 복원했으며, 현대 인류의 직계 조상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유골은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시기를 5만년 가량 끌어올린 것으로, 에티오피아 현지어로 ‘조상’을 뜻하는 ‘이달투(idaltu)’를 붙여 ‘호모 사피엔스 이달투’라고 명명됐다.연구팀은 발굴장소와 추정연대, 외형으로 볼 때 이 두개골은 현생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인류의 기원에 대해 학계에서는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시작됐다는 단일 기원설과 유럽·아시아 등 여러 곳에서 발생했다는 다지역 기원설이 대립해왔다.연구팀은 1997년 유골을 발굴한 강변 계곡에서 유골과 함께 석기 등 유물 600여점도 함께 발굴했었다.
1997년 북한 지원 곡물 5만 톤 직접전달 착수, 한국적십자 요원 9명 첫 입북, 신의주와 만포에서 인도키로 함
1995년 북미 준고위급회담서 경수로 지원협상 타결
1994년 오스트리아 EU가입 결정
1992년 브라질에서 `지구환경정상회담` 개막
1990년 소련 언론자유법 제정
1989년 알폰신 아르헨티나 대통령 사임
198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분리돼 연구기관으로 독립
1986년 언론인 선우휘 선생 사망
192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잠시 교단에 섰으나 북한의 실상을 목격하고 월남, 1946년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언론계에 몸을 담았다.
1949년 정훈장교로 입대한 후 1957년 육군대령으로 예편했다
1961년 조선일보사에 재입사 한 후 논설위원, 편집국장, 주필, 논설고문 등을 역임한 선생은 1986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선우휘 칼럼’ 등 모두 1천여 편의 각종 글을 통해 격동의 현대사를 헤쳐나간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1955년 현역장교로 ‘신세계지’에 발표한 우화소설 ‘귀신’으로 등단한 선우 선생은 그 후 30여년 동안 단편 ‘불꽃’ ‘테러리스트’ ‘망향’ 등 64편, 중편 ‘깃발없는 기수’ ‘아아, 내고향’ 등 7편, 장편 ‘사도행전’ 등 10여편을 포함, 모두 81편의 작품을 남겼다.
1985년 스페인.포르투갈 유럽연합(EC) 가입
1984년 코메콘 정상회담 모스크바서 개막
1983년 한국, 제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에서 4위 기록
1983년 6월 12일. 한국 청소년 축구 대표팀은 멕시코 몬터레이에서 전대미문의 기록에 도전하고 있었다. 제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준준결승. 상대는 우루과이였다. 아시아에서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를 이기면 열광하던 때였던 만큼 세계대회 4강은 꿈이나 마찬가지였다.
예선때 스코틀랜드 멕시코 호주와 한조에 편성된 한국은 스코틀랜드 전에서 0대2로 완패했다. 이때 국민들은 `한국 축구의 한계`라며 관심이 시들해졌으나 멕시코와 호주를 잇달아 2대1로 제압, 예선을 통과하자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신화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우루과이와 운명의 일전에 들어간 한국은 후반 9분 신연호가 선제골을 넣어 기선을 제압했다. 한국은 동점골을 내줘 연장에 돌입했지만 연장전반 14분 신연호가 다시 천금의 결승골을 터뜨려 당당 4강. 한국 축구 역사상 첫 세계대회 4강이었다. 전국은 열광했고, 외신들은 빨간 유니폼을 입고 벌떼처럼 공을 향해 덤벼든 한국팀을 `붉은 악마`라 부르며 격찬했다.
이어 브라질과 준결승. 한국은 김종부의 선제골로 세계 최강을 벼랑 끝으로 몰았지만 아쉽게 1대2로 역전패해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결국 한국은 4위에 머무르고 말았지만, `멕시코 4강`으로 한국축구는 한단계 도약하게 됐다.
1983년 경상남도 양산군서 열차, 버스충돌, 6명사망 35명 부상
1983년 일본 아키타 현에 진도 7.7 지진 발생 104명 사망
1982년 5백원짜리 새주화 발행
1981년 한국언론연구원 발족, 초대 이사장에 조선일보사 방우영 사장 취임
1980년 오히라 일본 수상 과로로 사망
1979년 미국 영화배우 존 웨인 사망 ‘역마차’ ‘기병대’ ‘알라모’ ‘지상최대의 작전’
1975년 인도 고법, 간디수상 선거부정 유죄판결
1973년 제3차 남북조절위원회 서울서 개최
1972년 법률구조협회발족
1971년 유엔측, 비무장지대의 평화이용 제의
1969년 흑산도 무장공비사건
1968년 제22차 유엔총회에서 핵확산금지조약 가결
1966년 정기선 선수 100m 10초4로 27년 만에 기록경신(종전 10초5) 9월 24일 10초3 또 기록
1965년 메사돈 사건, 정치문제화
1965년 6월 12일 합성마약 메사돈을 넣어 진통제를 불법 제조, 판매해온 국도제약사의 박인선씨가 구속됐다. 보건사회부는 의약품에서 검출된 이물질의 정체를 밝히지 못해 고심하던 끝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 이 제3의 물질이 합성마약 메사돈임을 밝혀냈다. 보건당국이 이처럼 미처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동안 메사돈은 농어촌, 낙도, 사창가 등 도처에 파고들어 당국의 공식추계로도 1만 5천∼2만(전문가들의 견해로는 10만)의 중독자를 낳았다.
조사과정에서 마약제조범은 서울대 약대 출신의 임국선이었음이 밝혀졌고, 영남, 유니언, 백십자 등 10여 개의 회사가 관련되었음이 드러났으며, 충북 약무계장 이재욱 등 보사부 관리와 공화당 소속 국회의원 신관우가 수뢰혐의로 입건됐다.
1964년 소련,동독 20년 우호조약 조인
1962년 라오스 임시연합정부 수립
1962년 한국-칠레, 국교 수립
1958년 이원영경사 월북사건 발생
1955년 한국자유문학자협회 발족
1955년 대한법률구조협회 발족
1955년 사육신 묘에 육각묘비 건립
1950년 6·25 전쟁 13일 전… 한국은행 창립 (초대총재 구용서)
광복 후 혼란 속에서 통화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중앙은행을 설립하기 위해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창립됐다.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설립된 첫 중앙은행이었다. 초대 한은 총재는 구용서씨로 통화 정책 전문가가 부족했던 당시, 일제 시대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조선은행에서 한국인으로 가장 높은 지위인 지점장에 올랐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창립되자마자 수난의 길을 걸었다. 기존의 조선은행권 화폐를 대체할 새 한국은행권 화폐를 발행하기도 전, 창립 13일 만에 6·25를 맞았기 때문이다. 보유하고 있던 지금은(地金銀) 처리가 문제였다. 27일 오후 2시, 트럭 1대에 지금은 89상자(순금 1070kgㆍ순은2513kg)를 실어 진해 해군통제부로 보냈지만, 남겨진 순금 260kg과 순은 1만 5970kg은 고스란히 인민군 수중에 떨어졌다. 더구나 북한군이 경제를 교란할 목적으로 약탈한 조선은행권 화폐를 남발하는 바람에 전시상황과 맞물려 경제도 엉망이 됐다.
정부는 급히 일본 도쿄 지점에 새 한국은행권 발행을 지시했고, 7월 13일 100원·1000원권 화폐가 국내로 공수됐다. 첫 한국은행권 화폐였다. 정부는 전쟁 기간 중 다섯차례에 걸쳐 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해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조선은행권을 폐기시키며 경제를 안정시켜 나갔다.
1944년 독일 장거리로켓 V1, 런던 공격 시작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은지 6일이 지난 1944년 6월 12일 독일의 신병기 V1 로케트(V는 독일어로 보복을 의미하는 단어의 첫 글자)가 프랑스로부터 런던으로 발사됐다. 820Kg의 폭탄을 탑재한 V1 로케트는 제트추진의 비행폭탄으로 1000미터의 고도를 시속 500~600Km로 날았다. 발사된 10발중 영국까지 도달한 것은 4발이었고 그중 1발이 런던의 한 철교에 명중해 6명이 사망했다.
그후 7월 6일까지 런던을 향해 2754발을 발사해 2752명의 사망자와 8천명의 부상자를 냈다. 무차별로 날아오는 V1 로케트에 2차대전 초기 독일군의 공습에 질려있던 런던시민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급기야 영국정부는 7월20일 여성과 어린이 17만명을 런던으로부터 소개(疏開)시켰다. V1 로케트의 총 발사수는 8564발이었고 이중 런던 주변에까지 도달한 것은 2400여발이었다. 영국은 민간인 사망자 6184명, 중상자 1만7984명의 인명손실을 보았다.
1943년 암태도(岩泰島) 소작쟁의 지도자 서태석 사망
1942년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를 쓰기 시작
“당신과 내가 처음 만난 날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1942년 6월12일자 ‘안네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이 날은 안네의 열 세번째 생일. 그러나 안네는 12일자 내용을 이틀 뒤에 썼으므로 정확히 말하면 14일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셈이다.
극심한 불안과 갈등, 또래 소년에 대한 사랑과 꿈을 담아내던 어린 소녀의 일기는 2년이 조금 지난 1944년 8월1일자에서 갑자기 끝을 맺는다. 사흘 뒤 독일 비밀경찰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은신처에 들이닥쳐 안네와 가족을 아우슈비츠로 끌고갔기 때문이다. 아버지 오토는 다행히 병이 깊어 그곳에서 해방군을 만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안네와 언니는 독일의 베르겐 벨젠 강제수용소로 보내져 1945년 3월 발진티푸스로 죽음을 맞아야 했다.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한때 그의 무역회사에서 일했던 한 부인이 노트 한 권을 전해준다. 안네 가족이 체포된 다음날 그 방에서 발견한 일기장이었다. 아버지는 1947년에 일기를 출간하며 딸의 죽음을 아파했지만, 그가 전쟁 바로 전까지 독일군에 물품을 납품했던 사업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1941년 일본, 소련 통상무역협정체결
1935년 조선일보 태평로 신사옥 준공
1933년 세계공황대책을 협의키 위한 세계경제회의 런던서 개막
1929년 안네 프랑크 출생
「안네의 일기」의 저자 안네 프랑크는 1929년 6월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안네의 일기」에는 곡일 나치의유태인 말살정책으로 고통 받았던 사춘기 소녀의 간성이 녹아들어 있다
194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체포된 후 1945년 3월 베르겐 벨젠수용소에서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
안네의 일기는 전 세계 언어로 번역돼 5000만 부 이상 팔렸다
1926년 임시정부, 상해에서 광동으로 이전 결의
1925년 우리나라 두번째 민간 비행사 장덕창, 모국방문 비행
1924년 미국 제41대 대통령 조지 부시 출생
1912년 1901년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파시 사망
1901년 프랑스 물리학자 앙투안 앙리 베크렐 방사능 발견
1898년 아퀴날도 필리핀 장군 330년의 스페인 지배 벗어나 필리핀의 독립 선언
1878년 미국 시인 브라이언트 사망
1874년 근대 전통춤 명인 한성준 출생
1871년 대원군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게 함
1854년 미국 발명가 이스트만 출생(롤필름 발명)
1829년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작가 슈피리 출생
1780년 스위스의 초상화가 장 리오타르 사망
1494년 일본 침략군 인천 상륙
1494년 남아메리카 대륙 발견
1099년 고려 윤관(尹瓘), 송나라에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가져옴
770년 신라, 5월에 나타난 혜성 사라짐
756년 당나라 현종 안사의 난으로 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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