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독서클럽♥ 책으로 만나는 세상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책 읽고 올리기 스크랩 제주도 이청리시인,화가 이중섭을 노래하다 `낙원의 풍경! 이중섭`
꽃방글 추천 0 조회 37 10.07.22 03: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황소' '흰소'의 작가 이중섭. 그가 시집을 통해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제주도에서 작품 활동 중인 이청리 시인은 이중섭을 펜 끝으로 살려 내어 생생하게 그를 노래하고 있다. 제주도와 인연이 깊은 사람들, 사진 작가 김영갑과 의녀 김만덕에 이어 또 한 사람, 이번에는 바로 화가 이중섭이다.

 

이중섭은 가족과 함께 한 제주도에서의 피란살이가 어쩌면 그의 생애,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 제주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서귀포 섶섬이 보이는 풍경, 그 속의 이중섭 이야기가 한 권 시집에 그대로 담겨 있다.

 

작년 봄에 이중섭의 거주지였던 곳을 찾은 적이 있다. 겉모습은 제주의 전통적인 주거 형태였지만 안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신발장이 놓였던 곳인가 했으나 그 곳은 시 속에서 0.4평으로 표현되어 있는 그들 가족의 한 칸짜리 보금자리.

 

 방은 0.4평의 꿈의 동산이었지만/ 이어도에서 몇 곱으로 살 수 있었네/

살아서 영화가 그곳만 하랴/ 살아서 부요가 그곳만 하랴// [물고기들이 이사 오라 했네] 중에서

 

 

0.4평의 가난이 뭐 그리 심각하랴. 이중섭은 실제로 피란살이 중에 이 제주도에서의 생활이 가장 행복하던 때라고 한다. 아마도 온 가족이 함께 하는데서 오는 부요함!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은 그 자체로 그에게 에너지원이 되었으리라.

 

 

알몸의 아이들이 에덴 동산을/ 서귀포 앞바다에 펼쳐 놓았네/

나 그 에덴의 바닷가에서/ 한 철을 보냈네/ (생략) 그 알몸의 아이들이 바로 화가들이었네//

해변을 따라 걷고 있을 때/ 수 천장 아름다운 그림들이 걸려 있었네/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그림 한 장을/ 내가 훔쳐 온 것을 이제야 고백하겠네//(생략)

[에덴의 바닷가] 중에서

 

시를 읽음과 동시에 그 평화로운 장면이 그려진다. 아이들이 서귀포 에머랄드 빛 바다에서 물고기와 게들과 하나 되어 물장구 치는 모습. 그 모습을 도화지에 스케치하는 아버지, 이중섭의 빠른 손놀림과 흐뭇한 미소. 그것을 시인은 '에덴의 바닷가' 라고 표현하고 있다. 영원히 머물고 싶은 곳.

 

그러나 배고픔은 어쩌지 못하였으리라. 부부의 주림은 그렇다쳐도 아이들의 배고픔은 부모로서 얼마나 아팠을까. 전쟁통이라 해도 모두가 비슷한 처지라해도 애통했으리라.

 

 

(전략) 더 이상 마주 할 수 없어 집으로 향할 때/ 배 속에서는 들려오는 소리는 애끓어라/

한 끼를 끓일 쌀 한 톨 없는 이 저녁/ 저 죄없는 게들을 잡아 먹고 먹어도/

바로 눈앞 섶섬이 둘로 보였다/ 셋으로 보였다 하네// [영원한 식량] 중에서

 

쌀 한 톨이 없어서 물고기와 게를 잡아 먹으며 살아야 했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이중섭은 절망하지 않는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전쟁 중에 비교적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시인은 이중섭의 그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재미나게 표현한다.

 

 

배가 고픈 밤에는/ 가족들의 온몸이/ 밥 짓는 냄새를 맡고자/ 코끝으로 몰려드네//

파도 내음냄새가 진동하는/ 서귀포 앞바다라도/ 배가 부를 때까지 마시고 또 마시네//

저만치 두리둥실 떠 오른 달을/ 가족들의 손을 잡고 나가/ 깨끗하게 빗질을 하고 있을때/

저 달이 하얀 쌀알을 한 아름씩 안겨주네/ 아내가 그 하얀 쌀로 밥을 짓고 있을 때/

두 아이들이 더 신이 나서/ 이 섬을 들었다 놓았다 하네// 나도 아이들 곁에서/

이 섬을 들었다 놓았다 하네// 아! 우리 가족은 내일 밤도 저 달을 더 깨끗하게 빗질하러/갈 것이네//

[우리 가족의 행복] 전문

 

매우 찡!한 작품이다. 피란시절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마는 물 배 채우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명치끝이 찡!해 옴을, 눈물이 핑! 돔을.... 그리고 하얀 달을 빗질하여 떨어지는 하얀 쌀 알, 그것으로 밥을 지을 동안, 얼마나 신이 났으면 섬을 들었다 놓았다 했을까. 참으로 환상적이고 동화적이며 참신하다. 눈물이 찡했다가 헤헤 웃음이 나는 시, 나는 감히 많은 시들 중에서 이를 백미로 뽑고 싶다.

 

 

이중섭은 일제치하의 어린 시절부터 소 그리기를 좋아했다. '황소 한 마리 그리려고 내 가슴을 찢고 또 찢어...그림속으로 들어 온 황소가 소리내어 우렁차게 우는 소리를 들었네' [황소 울음 소리] 중에서

그에게 있어서 소는 일본에 빼앗긴 우리 나라의 힘이고 정신이었다. 조선의 얼을 살리기 위해 시종일관 소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소들은 그렇게 우렁찼나보다.

 

 일본으로 유학가서 만나 결혼까지 한 마사코 (남덕)에 대한 사랑 역시 시 속에서 절절하다. 가난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텐데. 왜 그는 따라가지 못했을까. 그녀는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이 시름의 날들 다 보내고 나면/ 그대 바다를 봄빛으로 물들려 놓으리라/ 물감 하나도 살 수 없는 이 슬픔의 날도 한 순간이리/ 거센 물살에 더 둥글게 더 둥글게/ 웃음짓고 있는 우리 조약돌이 되자/ 온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조약돌] 중에서

 

 

이러한 화가의 애틋한 마음이 일본으로 떠난 그녀에게 전달되었을까. 휴전이 되고 가족을 떠나보내고 외로움속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그림에 대한 집념. ..그림 그릴 곳이 캔버스가/ 아니면 어떠 하겠는가/ 버려진 은박지 위에 선하나만/ 그어도 한 폭의 그림이 아니겠는가//

 

캔버스 한 장 살 돈도 없을 만큼 여전히 가난했던 그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담배갑 은박지라도 좋았다.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예술인의 장인 정신이 아니겠는가.

 

시인은 제주도에 정착할 초기에 이중섭 거주지 가까이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 곳을 오가며 화가에 대한 상념으로 가득했을 시인과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살다간 이중섭을 따르는 발자취가 시인으로 하여금 이 시집을 완성하는데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