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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d-J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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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Music 스크랩 김의철
free 추천 0 조회 58 07.12.09 13: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독한 방랑자의 염세적 노래들

1973년 경 '포크' 진영이 양극화되었다는 점은 여러 번 지적된 바 있다. 일부는 대중매체를 통해 새로운 대중연예(이 말은 결코 '나쁜' 뜻이 아니다!)로 정착해 가고 있었고, 다른 일부는 '언더그라운드'를 고집하고 있었다.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이 당시에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TV 쇼나 생음악 살롱 등 주류 음악인들의 무대를 거부하는 지향을 가진 '아웃사이더'형의 인물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명동의 무대를 예로 들어보면 오비스 캐빈과 쉘부르 등이 이미 스타가 된 포크 가수들의 무대였다면 내쉬빌과 디쉐네 등은 이들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무대였다. 이런 현상은 단지 음악인들의 '마음'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연주하는 사운드에서도 드러난다. 대중매체를 통해 자주 등장한 포크가 '일렉트릭'해지고 '리드믹'해졌던 반면, 언더그라운드 포크는 '통기타 순수주의'를 고수하면서 서정성과 '메시지'를 중시했다.

김의철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비타협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와 비슷한 인맥을 형성했던 오세은과 이정선이 통기타 중심의 음악을 선보이면서도 이런저런 음악적 실험을 시도한 반면, 김의철은 마치 목숨을 걸듯 기타의 플러킹(plucking)에 승부를 건다. 통기타의 리듬 스트러밍(strummimg)은 "마지막 교정"의 후렴구에서만 잠깐 나올 뿐이고, 하나의 코드(화음)에 속하는 음들이 동시에 나오는 일도 그리 많지 않다. 리듬이 비교적 일정한 패턴으로 인식되는 곡은 쓰리 핑거 주법으로 연주하는 "마지막 교정", "저 하늘에 구름 따라", 그리고 컨트리 스타일의 "친구", 트레몰로 주법이 등장하는 "우리들의 꽃" 정도이다. 다른 곡들의 경우 리듬은 기타 아르페지오나 노래의 멜로디에 숨어 있을 뿐이다. 결과는 한 줄 한 줄 섬세하게 튕길 때마다 사색을 담은 기타 연주와 탁 트이지 않은 톤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들이고, 그 느낌은 내향적이고 우울하고 때로는 염세적이다. 기타와 노래 외에 편성된 다른 음이라곤 백킹 코러스와 클라리넷 정도일 뿐이다. "섬아이"에서 베이스 기타가, "연인"에서 피아노가 등장하지만 이런 느낌을 확 바꿔 버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를 연주한 인물들이 외부로부터 초빙된 직업적 음악인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조달된 가족이거나 동료라는 사실은 이 음반이 자급자족으로 녹음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참고로 클라리넷을 연주한 김의혜는 그의 셋째 누나이고, 베이스를 연주한 이정선과 객원 가수 박찬응은 그의 동료(혹은 선배)다.

수록곡 가운데 유일하게 자작곡이 아닌 "연인들의 자장가"의 원곡이 우디 거쓰리(Woody Guthrie)의 "Hobo's Lullaby"라는 점은 김의철의 음악적 지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이 음반의 화자의 정서(혹은 정체성)가 있다면 '고통받고 소외된 떠돌이'일 것이다. 떠돌이의 절망감은 객원 가수 박찬응의 그로테스크한 목소리를 빌린 단조의 곡 "섬아이"와 "평화로운 강물"에서 극한적으로 표현되는 듯하다. "섬아이"는 3박자 리듬 위에서 A-A-B'-A 형식이 두 절 반복되는 형식인데, 감기라도 걸려서 목이 잠긴 듯한 박찬응의 노래는 처절한 슬픔을 담고 있고 특히 클라리넷과 어우러질 때 슬픔은 더욱 증폭된다. 베이스 기타는 섬의 분위기를 표현하듯 슬며시 꿈틀댄다(참고로 이 곡을 이정선의 "섬아이"와 비교해서 들으면 여러 모로 흥미롭다. 아웃사이더들의 고독에 대한 상이한 표현방식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한편 "평화로운 강물"의 경우는 16마디 형식의 노래가 여섯 번 반복되는데 리듬이 세 박자와 네 박자가 교대되는 특이한 진행을 보인다. 기타 주법도 리듬의 변화에 따라 가변적으로 변화하는데, 유심히 들으면 이런 변화가 가사의 스토리텔링과 연관됨을 알 수 있다. 그 점에서 이 곡은 '아메리칸 포크'를 듣는 기분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전주와 간주에서 감화음(diminished chord)을 동반한 기타 주법은 '클래식 기타'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고통받고 소외된 정서는 증정본 표지에 그가 친필로 적은 "젊음은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재 되어 흙으로 변할 뿐이다"라는 문구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런 정서의 원인을 한국전쟁 때 월남해 온 김의철의 가족사, 그리고 사춘기 시절 부모 형제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개인사로만 돌려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음반이 발매된 1974년(녹음은 1973년)이 '긴급조치의 시기'라는 시대사로만 설명을 대신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음반은 '판금'이라는 조치를 당했고 그 결과 김민기, 한대수, 양병집의 음반과 더불어 시장에서 사라진 뒤 컬트가 된 음반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는 "섬아이"가 '창법 미숙'이라는 것이었다. '저속'이 아니라 '미숙'이라는 점에 유의하라.

그런데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음반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앞에서 운을 띄웠지만 이 음반에 담긴 음악은 '연예'로부터 가장 거리가 먼 경우에 속한다. 김의철이 추구한 방향은 포크 음악이든, 클래식 음악이든 대중음악 '이전'의 서양 음악의 뿌리를 찾는 것이었고, 실제로 그의 이후의 경력은 이런 방향을 보여준다. 그 점에서 그는 한대수, 이정선, 조동진, 김민기, 오세은 등과도 상이해 보인다. 이를 '또 하나의 서양 콤플렉스'라고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지만 그 결과가 '의미는 있지만 재미는 없는 음악'이라는 점은 조심스럽게 지적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음반은 일부로부터는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가진 품격 있는 음악으로 숭앙 받고 있지만, 다른 일부로부터는 '그 시절 그 노래'이며 소문에 비해 흥미롭지 않은 음악이라는 상이한 평을 받고 있다. 아무렴 어떤가. 품격 있는 음악에 대한 수요는 언제든 존재하는 것이니까... 20021222

P.S. 1
이 음반의 판금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확인해야 할 대목이 남아 있다. 하나는 이 음반 수록곡들이 금지곡의 공식적 리스트에는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 음반이 오리엔트(당시 음반사는 성음)의 나현구 사장이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나현구 사장이 "곡 제목과 가사를 상의도 없이 수정하여" 발매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김의철은 이 음반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음반들을 회수하여 스스로 폐기했다고 한다.
P.S. 2
이 음반에 수록된 김의철의 곡 "저 하늘에 구름 따라"(원제: 불행아!)는 1980년대 이후에도 대학가의 애창곡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노래운동' 진영에서 이 곡은 '금지곡'이었다. 물론 농담이지만 '이런 노래는 가급적 부르지 말자'는 내부적 금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노래'란 패배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말한다. '가열차게 투쟁'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왠지 부르고 나면 맥빠지고 의욕이 떨어지는 이 노래의 효과가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한편 김의철의 또 한 곡인 "군중의 함성"은 1980년대 중반까지 대학가에서 널리 불렸다.
P.S. 3
1979년 유학을 떠난 그는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공부를 하면서 [그 산하, 김의철](킹, 1992), [김의철 2: 연가집](킹, 1993) 등을 제작했지만 정식으로 배급하지는 않았다. 이 음반에서 보컬은 성악가 양경숙이 맡았다. 귀국 후 김의철은 1997년부터 양희은의 음악감독을 맡아 공연과 음반을 도와주고 있고, 앞으로는 방의경, 현경과 영애 등 당시 그의 주위에서 활동했던 포크 가수들이 활동을 재개하는 것을 돕고 싶다고 한다.


수록곡
Side A
1. 마지막 교정
2. 연인들의 자장가
3. 섬아이
4. 눈길
5. 잘 가오
Side B
1. 저 하늘에 구름 따라
2. 친구
3. 평화로운 강물
4. 연인
5. 우리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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