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 : 공동선 159호 |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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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
공동선 159호 2021년 7월+8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한 것은 2003년 봄이었습니다. 19년 전입니다. 가진 것이라곤 삼백만 원 뿐입니다. 예산도 없습니다. 운영비를 마련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겁도 없이 민들레국수집을 열면서 네 가지만은 꼭 지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기부금을 얻기 위한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다. 생색내는 돈은 받지 않는다. 조직을 만들지 않는다. 오직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면서 시작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간판이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습니다. 흰 바탕에 노란 글씨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무료급식소라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보내주신 분들을 위한 집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환대하는 집이고 싶어서입니다. 피터 모린은 "곤궁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대사들이다. 하느님의 대사로서 당신들은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옷과 음식과 안식처를 받아야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은 2003년 4월 1일 문을 열었습니다. 동인천 전철역에서 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큰 길에서 골목으로 한참 들어와야 합니다. 간판도 보일 듯 말 듯 있습니다. 식당 크기는 10제곱미터(3평) 정도로 겨우 식탁 하나 놓았을 뿐입니다. 누구도 식당이라고 눈치를 챌 수 없습니다.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입니다. 하루 일곱 시간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약한 사람 편에 서는 것은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닙니다. 희생자의 편에 서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됩니다. 민들레국수집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가난하게 다가서면 됩니다. 복음서의 오천 명을 배부르게 먹이신 기적도 소년이 내어놓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시작되었습니다.
꿈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첫 날과 둘째 날은 손님이 없었습니다. 사흘 째 되는 날에는 동인천 역전에 나가서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손님이 매일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그해 겨울이 올 때쯤에는 하루에 육칠십 명이나 오는 식당이 되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첫 손님이 박 아무개님입니다. 어느 날 노숙을 그만 하고 싶다고 합니다. 방을 하나 얻기로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손님들 식사 대접하기도 빠듯했지만 아끼고 아껴서 십만 원을 마련했습니다. 십만 원에 얻을 수 있는 방이라고는 부엌도 화장실도 없는 방 한 칸입니다. 보증금도 없이 선월세 10만원에 얻었습니다. (선월세는 한 달치 먼저 세를 내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민들레의 집 식구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는 따로 따로 삽니다. 그냥 떠나기도 합니다. 일곱 번을 떠났다가 여덟 번 돌아온 식구도 있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은 느슨하게 공동체를 이뤄서 살고 있습니다.
민들레 꿈 공부방은 2008년에 시작했습니다. 어른들 틈에 밥 먹으러 오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어느 날 민들레국수집 소식지에 지역아동센터에도 갈 수 없는 아이들 공부방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공부방을 얻을 수 있는 전세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만 원이 입금된 통장 계좌를 소식지에 올렸습니다. 석 달 만에 전세금을 마련했습니다. 국수집 근처에 조그만 집을 빌렸습니다. 바닥 면적이 20제곱미터 정도인 허름한 3층 건물의 꼭대기입니다. 저의 딸인 모니카가 공부방을 맡기로 했습니다. 공부방 비품은 마침 인천교구의 문을 닫는 복지시설의 물건을 기부 받았습니다. 그렇게 조그맣게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에 민들레 꿈 공부방이 있는 작은 건물의 1층을 세 얻어서 열었습니다. 이어서 2층을 세 얻어서 민들레 작은 도서관도 열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있는 동네의 아이들이면 누구나 부모님의 허락은 얻으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곳입니다. 간식이나 저녁만 먹고 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2009년에는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거들고 싶어서 민들레희망지원센터를 열었습니다. 어느 날 민들레국수집에 온 젊은 부부가 왔습니다. 첫아들 돌잔치로 손님들 대접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 손님들에게 불고기를 푸짐하게 대접했고, 젊은 부부는 설거지를 했습니다. 잠깐 쉴 때 아기 아빠가 제게 꿈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우리 손님들이 밥 먹은 다음에 편히 쉴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는 조그만 센터를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변하려면 평화스럽고 행복할 때라야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몇 달 후에 젊은 아빠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자신을 보건복지부 직원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노숙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중단된 것이 있는 데 그걸 민들레국수집에 지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하고 싶다고 한 문화센터를 조그맣게 만들어보라는 것입니다. 개인에게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교회 재단을 통해서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할 수 있으면 천주교 재단을 통해서 지원하면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인천교구 재단을 통해서 민들레희망지원센터를 열었습니다. 그렇게 마련한 건물은 노숙인을 위해서 사용하는 한 무상임대를 하기로 교구와 계약을 했습니다. 민들레희망지원센터 운영비는 민들레국수집이 자체부담을 하기로 했습니다.
2010년에 민들레 옷가게를 열었습니다.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에게는 옷도 필요합니다. 헌옷을 모아놓고 그냥 손님에게 나누면 어쩔 수 없이 줄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정해진 날에만 배급을 하듯 했더니 손님들이 쉽게 욕심을 부립니다. 옷가게를 국수집 근처에 마련했습니다. 월세로 얻어서 상품을 파는 매장처럼 꾸몄습니다. 언제든지 손님들이 필요한 것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놀랍게도 손님들이 욕심을 부리기는커녕 필요한 것만 가져갑니다. 다른 사람에게 양보도 합니다. 더 가져가라고 사정을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민들레진료소는 같은 해에 인하대 병원의 의사선생님의 전화로 시작되었습니다. 격주로 민들레희망센터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무료진료소를 열기 위해서는 먼저 보건소에 신고를 해야 합니다. 손님들에게 필요한 의약품도 모자란 적이 없었습니다. 의사에게 진료한 번 받아보는 것이 소원인 우리 손님들이 신이 났습니다. 친절한 진찰 한 번에, 파스 한 장에 만족해하는 손님들 덕분에 코로나19로 잠시 중단할 때까지 꾸준히 진료소를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파스가 필요한 손님들께 파스를 나눠드리는 정도입니다.
2013년에 상금을 이억 원이나 받으면서 절반은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노인들을 위한 민들레국수집을 하나 더 열었습니다. 어려운 노인들에게 잔치국수를 대접하는 진짜 국수집입니다. 상금의 나머지 절반은 필리핀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 쓰기로 했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2014년에 민들레국수집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교구의 박 모 신부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교구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시 인천교구 사회복지 시설 협의회에서 탈퇴를 했습니다. 민들레희망센터 건물은 교구로 돌려드리고, 교구와 함께 진행했던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은 모두 취소했습니다. 민들레희망센터는 다시 조그맣게 점포를 월세로 얻어서 명맥만 유지했습니다. 민들레진료소는 민들레국수집에서 격주로 열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은 작게라도 시작하려고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필리핀 요셉의원의 고 최영식 마티아 신부님의 도움으로 칼로오칸 교구에서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3월 13일이었습니다. 느닷없이 인천교구에서 인천주보 제2369호에 "민들레국수집에 대한 인천교구의 입장"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민들레국수집 홈페이지를 만들기 전에는 '민들레국수집 소식지'에 후원을 받은 것을 모두 공개했었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2006년부터는 매달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필리핀 민들레국수집도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이곳 칼로오칸 교구에서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습니다. 나보타스의 산 로꿰 성당 2층에 열었던 민들레국수집 무료급식소도 문을 닫았습니다. 말라본의 파라다이스 빌리지의 공소 이층에 열었던 무료급식도 중단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칼로오칸 공동묘지에 있는 민들레국수집도 문을 닫았습니다. 비품은 마을의 장학생들 가정에 나눠주었습니다. 아이들 문고에 있는 책은 인근의 초등학교에 전부 기부를 했습니다. 아이들 장학금을 주는 프로그램만 남겨두고 2017년 초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인천주보에 민들레국수집에 대한 글이 실린 후 몇 년간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하기도 빠듯할 정도였습니다. 거기다가 필리핀의 우리 아이들에게 장학금만 주어서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배를 곪지 않게 하는 것이 더 급했습니다. 장학금을 나누려 몇 달 후에 필리핀에 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 안에 작은 급식소라도 세우려고 했지만 성당과의 관계 때문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 변두리로 갔습니다. 마닐라 근교의 지엠에이 카비테에 민들레국수집을 마련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모았습니다. 곧이어 마닐라 나보타스에도 작은 집을 열어서 무료급식을 준비했습니다. 산위의 마을 박신 부님의 도움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 문을 연 두 곳의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엄마들도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조그만 아이들이 밥을 참 많이도 먹습니다. 그리고 잘 먹습니다.
길거리 민들레 카페를 엽니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중단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최소한이나마 손님들에게 도시락꾸러미라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국수집 앞에 천막을 치고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찾았습니다. 겨울에는 어묵을 대접했습니다. 언제든지 뜨거운 국물을 마실 수 있게 했습니다. 더운 날씨로 더는 어묵 대접이 어렵습니다. 이번에는 길거리 민들레 카페를 엽니다. 커피믹스, 아이스커피, 뜨거운 커피, 아이스크림 혹은 얼음과자, 수박, 떡, 빵 등 군것질 거리도 나눕니다. 우리 손님들이 떡을 좋아합니다. 우리 손님들이 수박을 좋아합니다. 우리 손님들이 삶은 감자를 좋아합니다. 우리 손님들이 얼음과자를 좋아합니다. 우리 손님들은 비빔국수를 좋아합니다. 겨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인데도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 대접하는 데 모자람이 없습니다.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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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랑스러우신 민들레 국수집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형제 자매님이 더욱더 강건한
몸과 마음으로 날마다 기쁨이 그치지 않기를 바램입니다
모두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