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수많은 전염병을 겪으며 발전했다. 역대급 파괴력을 보여주는 코로나19 또한 우리에게 큰 변화를 안길 것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간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염병이 창궐했던 세계사를 돌아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호엔 감염병 공포에 시달리는 현 상황에 꼭 필요한 내용으로 준비했다. ‘전염병이 바꾼 세계사’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실리콘밸리까지 101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산 위의 고급 주택들이 눈에 띈다. 왜 살기 불편한 높은 지역에 비싼 집을 짓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현지인에게 물었다.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부자들이 페스트를 피해 산 위에 고급 주택을 지었기 때문이란다. 전염병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인류의 역사도 바꾸었다.
미국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 교수는 저서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전염병은 한 사회의 인구구조와 노동조건, 정치적 역학관계를 바꿀 뿐 아니라 지구적인 차원에서 문명의 형성과 전파, 인간의 대규모 이주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적었다. 미시적, 거시적 양 측면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다는 것이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며 잉여 농산물이 생기고 도시가 형성됐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곳간에 비축한 식량·배설물·쓰레기는 쥐·벼룩·병원균과 바이러스의 아지트가 됐다. 위생 관념이 약했던 고대도시들은 전염병에 취약했고 그들은 전염병을 신의 징벌로 받아들였다. 고대에는 전염병이 돌면 마을 전체를 불질러버리기도 했다. 인간이 정착 생활을 하면서부터 전염병은 인간 역사의 일부분이 됐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인구가 줄거나 대규모 이주를 했고 노동력이 부족해지면 큰 기근을 맞았다. 인간의 역사를 뒤흔든 수많은 전쟁에서도 전염병이 승패를 좌우했다.
* 전염병과 제국의 멸망
예수가 구유에서 태어났던 2000년 전 가나안 땅의 마구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외양간과는 개념이 많이 다르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집 안에서 가축과 함께 살았다. 아마 마리아와 요셉은 여행 중에 여관의 주거 공간인 윗층에 자리가 없어 마구간으로 쓰였던 아래층에 가축과 묵다가 예수를 낳고 구유에 뉘었을 것이다.
기원전 8000년 무렵부터 인간은 가축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가축의 질병이 인간에게 전염됐고 비슷한 위도를 따라 이동했던 유라시아 사람들은 이 질병들에 내성이 생겼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혈액형이 모두 O형인 것은 가축화할 만한 대형 포유류가 없어 야생 짐승을 길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수천 년간 가축과 뒤엉켜 살아온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가축에서 전염되는 천연두, 독감, 홍역과 같은 전염병에 면역력이 생겼다.
1532년 피사로의 스페인 군대 168명이 8만 명에 달하는 잉카 군대를 이기고 황제를 인질로 사로잡아 방 하나가 가득 찰 만큼 황금을 뜯어낸 것은 쇠로 만든 칼과 대포, 말 덕분이기도 하지만 천연두라는 생물무기의 역할이 가장 컸다. 천연두에 면역력이 없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90% 이상 몰살당하고 찬란했던 아즈텍 제국과 잉카제국은 허무하게 멸망하고 말았다. 나중에 원주민들이 다 죽고 일을 시킬 사람이 모자라자 전염병에 강한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고 왔다.
유라시아 대륙의 사람들은 소에게서 천연두, 돼지에게서 독감, 개에게서는 홍역이 옮았다. 오랜 시간 세균과의 전투로 구세계 사람들은 면역력이 생겼지만 소·돼지·개·말 같은 대형 포유류가 없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이런 병원체에 면역력이 없었고 유럽인들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피사로보다 14년 먼저 스페인 군대 580명을 데리고 멕시코에 상륙한 코르테스는 3년 후 아즈텍 제국의 테노치티틀란이라는 도시를 공격했고 인구 30만 명 중 15만 명이 천연두로 사망했다.
천연두, 홍역, 페스트 등이 구세계 유럽에서 신세계로 퍼져나간 질병이라면 콜럼버스 일행이 갖고 돌아온 매독은 신세계가 구세계에 보답한 선물이었다. 게다가 매독은 다른 병과 달리 섹스를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유럽인에게 ‘하느님이 내린 벌’이라는 공포감까지 안겼다. 당시 유럽에서는 매춘이 크게 성행했기 때문에 매독균은 빠른 속도로 유럽 대륙을 흽쓸었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수많은 유럽인이 매독으로 쓰러졌으며 감염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날 때부터 매독 보균자가 됐다. 유럽 의사들은 수은요법으로 매독을 치료했는데, 이는 매독균뿐 아니라 환자까지 죽일 수 있는 위험한 치료법이었다.
로마의 멸망 원인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제국 말기의 전염병 창궐이 꼽힌다. 국제화되고 도시화된 로마제국도 전염병에는 취약했다. 역설적이지만 몽골제국과 마찬가지로 제국의 힘이 강해질수록 전염병에는 취약했다. 165~180년 유행한 안토니우스 역병은 아시아와의 무역, 훈족 등을 매개로 전파된 천연두로 보인다. 165년 메소포타미아로 출정을 갔던 로마 군인들이 전염병이 돌아 회군했다.
근동지역에 파견됐던 로마 군인들이 귀국하면서 천연두로 보이는 전염병이 창궐했던 15년간 로마 인구는 유럽에서만 500만 명이 줄어들었다. 이 전염병 때문에 사망한 로마 황제 두 명 중 한 사람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의 이름을 따서 병명을 ‘안토니우스병’이라 붙였다. 251~266년 성 키프리아누스 역병 때는 로마에서만 하루 5000명이 죽기도 했다. 이 같은 전염병의 유행은 로마제국의 사회체계를 무너뜨렸고 동서 로마 분리와 멸망에 영향을 미쳤다. 541~750년 유행했던 유스티아누스 역병은 이집트에서 수입하는 곡물을 통해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로 퍼져나가 하루에 1만 명이 죽고 비잔틴 도시인 40% 이상이 죽었다.
유럽에서는 유스티아누스 역병으로 인구의 절반이 줄었다고 전해진다.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유럽은 중앙집권적 제국의 시대가 끝나고 지방의 영주가 지방자치를 하는 중세 봉건시대로 바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