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온 편지/ 한연교
"엄마... 교토에 가고 싶다."
"엄마에게 편지가 왔었지, 근데 십 년이 지나니까 끊겼어."
"근데 엄마는 일본 사람은 아니제?“
"엄마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한국 사람이고 엄마는 일본 사람이야.“
둘째 딸 혜영이가 갑작스럽게 집으로 오면서 엄마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을 담백하게 풀어가는 영화이다. 어느 날 엄마의 방에서 일본으로 쓰인 편지 한 통이 발견된다. 교토에 사는 '화자'의 어머니로부터 온 편지였다. 사실 엄마, 화자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국민학교 사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다. 이유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화자는 자신의 엄마와 생이별한 것 같다. 그렇게 오십 년간 화자는 자신의 고향인 일본에 한 번도 돌아가지 못했다. 일본어도 거의 잊어버리고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었다.
화자는 일찍 선원이었던 남편을 잃고, 도시락 공장에서 일하면서 세 딸을 남보란 듯이 키워왔다.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 딸 혜영과 혜진은 외할머니의 흔적을 좇으려고 한다. 유전병인 치매를 앓고 있었던 엄마의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엄마와 교토를 가야 했다. 세 딸과 함께 화자는 엄마가 입원했던 일본 '타카미야 병원'에 도착했다. 고향에 온 화자의 얼굴은 꽃처럼 환해졌다. 일본 말을 거의 잊었지만 천천히 간호사에게 말했다.
"저의 엄마 이름은 '야마모토 마사코'입니다."
"너무 오래돼서 환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엄마가 오래전에 보냈던 사진에는 이 병원 나무 벤치에 앉아있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의 기록을 찾지 못한 하나코(화자)와 세 딸들은 실망하면서 병원을 나왔다. 하지만 하나코는 병원을 향하여 엄마를 큰 소리로 불러본다.
"오까상, 오까상, 오까상..."
화자의 엄마, 마사코는 어린 딸과 생이별하고 얼나마 그리워하며 살았을까. 그 절절한 마음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딸을 보지 못하고 외롭고 쓸쓸하게 병원에서 죽어간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했던 타카미야 병원 의사가 마사코가 죽기 전에 화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하나코 양,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간 밤에 하나코 양을 찾겠다고 병원을 나갔지만 다행히 타카미야 경찰이 병원 앞 숲길에서 발견했습니다."
<교토에서 온 편지>는 부산의 섬, 영도가 배경이다. 부산에서도 다리로만 갈 수 있는 특이한 위치에 있는 지역이다.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지만 묘한 외로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 지역의 정서를 감독(김민주)는 잘 활용한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다. 부산 사람인 나는 그녀의 연출력이 잘 이해되었다. 부산이 고향이고, 영도는 대학 졸업 후 처음 직장을 가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학교가 영도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었고, 지역 특성상 아버지가 선원인 아이들이 많았다. 자연히 사연이 많은 부모를 가진 탓인지 학생들의 감수성이 특별했었던 것 같다.
이 영화 각본을 쓰고 감독했던 '김민주 감독'도 영도에서 나고 자랐다. 고향 부산에 대한 향수를 담은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특히 감독은 부산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배우들을 모았다. 그래서인지 배우들의 고향말이 너무 자연스러워 좋았고, 영화 보는 내내 즐거웠다. 영화는 영도에서 모두 촬영되었다. 특히 영도다리가 나오는 장면은 매우 아름다워서 눈길을 끌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누군가의 딸이다. 우리는 엄마를 당연히 우리만의 엄마라고 생각한다. 엄마에게도 그리운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엄마는 그녀의 부모에게는 귀하고 사랑스러운 딸이었을 것이다. 엄마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애태웠을 부모님이 있었다. 엄마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애잔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교토에서 온 편지>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고 묘한 죄책감까지 들었다.
나의 엄마는 노래를 잘 하는 참 아름다운 여자였다. 선생님이 엄마를 보면 시골에 있기는 아까운 학생이라고 늘 말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특히 사랑했던 것 같다. 엄마는 일도 잘해 정미소를 운영했던 할아버지는 여러 가지 일을 엄마에게 맡겼다고 한다. 미인이었던 엄마는 동네 총각들의 짝사랑 대상이었다고 이모들이 말하곤 했다. 어떤 남자는 결혼한 후에도 엄마 소식을 외삼촌에게 물었다고 한다. 자신의 외모를 닮지 않은 딸 때문에 속상해했지만 나를 사랑으로 키워준 엄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엄마'였다. 엄마를 천천히 여러 번 부르고 영면하셨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부산에 가고 싶었다. 많이 변했겠지만 영도다리는 그대로 있을 것 같다. 바람 따라 묻어오는 찝찝한 바다 냄새, 밤에 들려오는 구슬픈 뱃고동 소리, 거칠지만 정감 있는 억센 사투리, 밤이 되면 멀리서 보이는 반짝이던 꿈같은 불빛, 이상 야릇한 여자들과 외국인이 넘치는 초량 텍사스촌, 활기 넘치는 자갈치 시장, 맑은 날 산 위에서만 보이는 대마도 섬, 항구도시에만 있는 산복 도로, 등등. 시간 내어 부산을 한 번 다녀와야겠다.
퇴고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