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비 산악회 2017, 해파랑길 2,000리-GO
지난해인 2016년 11월 16일 수요일의 일이다.
새벽 4시에 잠을 깼다.
밤새 켜놨던 TV에서 일본영화 한 편이 상영되고 있었다.
이왕 깬 김에 그 영화를 볼 작정을 했다.
가네시로 가즈키 원작으로 ‘고’(GO)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그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자에게 자랑삼아 이 말 저 말 한 말 중에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말이 있었다.
요즈음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그 책 제목이 ‘말테의 수기’라고 하는 그 말이었다.
깜짝 놀랐다.
이날은 우리들 독서클럽 ‘Book Tour’ 모임이 있는 날이었고, 이날의 발제자는 전세경 변호사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라는 책으로 독후감 발표를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아침 ‘Book Tour’ 모임에서 만나게 되어 있는 책을 그 새벽의 영화에서 만나고 있으니, 그 희한한 인연에 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 변호사는 이날 발표에서 ‘말테의 수기’ 그 독후감을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했다.
‘우리는 늘 불안과 지난 과거에 대한 생각에 휩싸여 우리 주변의 사물을 온전히 관찰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테의 수기에서 말테는, 사물과 사람에 대한 온전한 관찰을 통해 많은 의미를 발견해 냅니다. 그가 관찰을 통해 발견해낸 느낌에 대한 표현이 이 책의 묘미인 듯합니다.’
이날 모임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책 한 권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이날 새벽에 본 영화의 원작으로 재일동포 3세인 가네시로 가즈키가 짓고 김난주가 옮긴 현대문학북스 출판의 ‘GO’라는 책이었다.
Daum사이트에서 책에 대한 자료를 챙겨봤다.
다음은 책 소개의 글이다
프로복서 출신이자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전향으로 조총련계에서 민단계로 옮긴 재일동포 3세 고등학생이 일본인 소녀와의 연애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일본사회에 내재한 민족차별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성장소설. 재일동포 최초의 <나오키문학상> 수상자인 가네시로 카즈키의 작품으로 경쾌하고 유쾌한 소설이다.
저자 소개의 글은 이랬다.
작가 가네시로 카즈키는 재일동포 3세의 신인으로 1968년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났다. 조총련계 초·중학교와 일본 고교, 게이오대학 법대를 졸업했다. 일본인의 차별과 정체성의 위기를 느끼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현실로부터의 탈피를 꿈꾸며 독서에 탐닉했다. 특히 소설을 좋아해 대학 1학년 때 작가가 되기로 결심,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에 임했다. 1998년《리벌루션 No. 3》로 '쇼세 쓰겐다이'상을 수상해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책에 대한 평론들도 있었다.
그 중 두 편을 골랐다.
“청춘소설의 계보를 잇는 소설로 읽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레지스탕스 소설의 탄생으로 읽을 것인지는 당신의 자유이다! 아무튼 유쾌하고 통쾌한 이 소설의 주인공 때문에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야마다 에이미(문학평론가)
"마치 '재일문학' 속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같다. 샐린저가 그린 소년 호딘이 어른들의 위선을 고발한 것에 반해 [GO]의 화자는 차별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을 가볍게 대상화하고 있다."―아사히 신문
다음은 출판사 서평의 발췌다.
"내 또래 재일 한국인 젊은이에게 중요한 문제는 국적도, 민족도 아닌 연애입니다"라고 말한 그의 명제처럼 주인공과 일본인 소녀와의 연애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여러 문제들이 표출된다. 도쿄 대학을 졸업하고 전 학생운동의 투사였으며, 일류 기업의 회사원으로서 재즈를 좋아하는 지식인인 여주인공의 아버지조차도 한국인의 '피가 더럽다'는 황국일본의 순혈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이렇게 전일본인의 심층에 자리 잡고 있는 민족차별의 문제를 작가는 [GO]에서 '민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관점에서 해결을 모색한다.
이 소설은 구세대를 대표하는 아버지와의 대립, 일본 조직폭력단 간부의 아들과의 우정, 재일 소년들간의 이데올로기적 갈등, 재일 외국인의 지문날인 등 자못 심각하고 진지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쾌하고 감성적인 문체와 유머 감각과 기지를 발휘함으로써 우리가 재일문학에 대해 갖고 있었던 천편일률적인 암울한 인상과 재일문학이라면 이래야 한다고 은밀히 강요당했던 고정관념을 가차 없이 깨부순다.
역시 사이트에서 이 책 독후감 한 편을 골라냈다.
다음은 2009년 2월 9일 청양신문에 ‘가네시로 가즈키의 ’고‘(GO)를 읽고’라는 제목으로 실린 청양농업고 이상미 선생님의 독후감 그 전문이다.
5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한 친구가 ‘고(GO)’라는 영화를 소개했다. 자신은 벌써 8번을 봤다며 꼭 한번 보라고 강력히 추천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원작 ‘고’를 토대로 한 동명의 영화였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우리 출판계에 일본도서가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던 어느 날, 서점에서 다시 가네시로 가즈키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놓여있는 ‘고’를 보았다. 표지는 물론 판형 전체를 달리한 채였고, 여느 일본 도서들과 마찬가지로 작고 트렌디 하고 가벼워 보여서 이번에도 역시 흘려버리고 말았다.
다시 시간이 흘러 2년 전 여름, 청양군 참실여름학교에 일일 담임으로 참여했던 나는 영화 한 편을 보게 된다. 김명준 감독의 다큐 ‘우리 학교’였다. 홋카이도 조선학교 아이들 이야기이다. 일본 땅에서 살아가는 조선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웃다 분노하다 부끄러워하다 결국엔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고 말았다. 그네들의 역사를 알게 됐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정체성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그리고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일본사회의 차별과 위협은 결국 우리의 무관심이 불러온 결과라는 생각에 마음 아팠다.
알고 싶어졌고 알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드디어 가네시로 가즈키의 ‘고’를 펼치게 되는 순간이었다. 한 작품과 만나기까지의 인연이 이렇게 지난할 수도 있다.
책이 내게로 와서 내가 책의 손을 잡기까지를 보건대, 독서도 연애와 같은 것이어서 결국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되더라는 것이다.
어렵게 만나 깊은 애착을 갖게 된 작품이기 때문에 사실 글을 쓰기가 더 어려웠다. 어수룩한 글로 인해 작품에 대한 오해를 살까봐, 그리고 결국은 내가 받은 감동을 다 전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꼭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과 함께 작가와 주인공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대신한다.
재일 한국인의 정체성은무엇인가
가네시로 가즈키, 알고 보니 재일 한국인이었다. 아니,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코리언 재패니즈(한국계 일본인)라고 정의하고 있다.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들은 언제나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 사이에서, 북한이냐 남한이냐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해 왔다. 폭력적이라 할 만큼 좁은 선택지는 대체로 1세대 부모에 의해 결정돼 2세, 3세들의 탄생 순간 유전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선택지에 답을 했든 결과적으로 그들은 외부인으로 취급받으며 일본사회의 차별을 감당해야 한다.
‘재일 한국인’과 ‘코리언 재패니즈’ 사이의 고민과 방황을 한국에서 나고 자라 ‘당연히’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큼이나 이해하고 공감 할 수 있을지. 다만 이 작품의 주인공 스기하라의 삶으로부터 그 빙산의 일각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주인공 스기하라는 말한다. “언젠가는 국경을 지워버리겠어”라고. 일본 사회에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민족간, 이데올로기간의 갈등에 대한 선언이다.
그렇다고 우리 주인공이 시종일관 어둡고 무겁고 슬퍼하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다. ‘고’는 주제의 무게에 휘둘리는 그런 소설이 결코 아니다. 스기하라는 첫 장에서부터 이 문제를 확실히 해 두고 있다.
‘이 소설은 나의 연애를 다룬 것이다. 그 연애는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자본주의니 평화주의니 귀족주의니 채식주의니 하는 모든주의에 연연하지 않는다’라고.
공산주의, 민족주의가 결국은 채식주의로까지 이어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모든 ‘주의’란 것들의 무게가 한 순간에 증발하는 느낌이다.
작가의 말에도 한 번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
“내 또래 재일 한국인 젊은이에게 중요한 문제는 국적도, 민족도 아닌 연애입니다.”
누가 감히 이것을 가볍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되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뿌리라는 것이 더 이상 족쇄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럴 권리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둘러싼 원 밖으로 발을 내딛는 주인공을 따라 나 또한 ‘저 넓은 세계’로 눈을 돌려 본다.
‘고’라는 소설 제목이 새로이 읽히는 순간이다.
‘의미 찾기’에 대한 강박과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숨 막혀 했던 나 자신에게서도 한층 놓여나는 느낌이다.
그래도 뿌리와 이념과 모든 ‘주의’란 것들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결국 이 소설을 이념이나 민족주의에 관한 소설로 오해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셰익스피어 선생에게 도움을 구해야겠다.
이 소설 첫 장에서도 인용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명대사를 다시 한 번 인용해 본다.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이 모두 여기에 있다.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고’는 이름에 상관없이 그저 자신들의 향기로 서로를 사랑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재미있다.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더불어 영화 ‘고’, ‘우리 학교’도 강력 추천한다.//
참 희한하다.
나도 이 선생님과 같은 길을 걸어, ‘GO’라는 책을 읽었다.
2017년 2월 18일 토요일에서 그 다음날인 19일 일요일에 이르는, 해파랑길 걷기 이틀 동안에 다 읽었다.
책을 내 손에 받아든 지 딱 석 달만의 일이다.
느낌 또한 같았다.
책을 덮으며 내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해파랑길 2,000리가 됐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클래식트레킹이 됐건, 그 어떤 어려움도 헤치며 그 끝까지 가기로 했다.
내 인생길도 마찬가지로 부딪쳐 극복하며 가기로 했다.
그래야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마음에 구호 하나 새겨 담았다.
이 구호였다.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