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벤-예란 에릭손이 축구계의 낭만을 보여주다 – 리버풀 감독직은 그의 경력에 걸맞는 마무리였다.
에릭손은 여전히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는데, 이는 그의 따뜻함과 진솔함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브라질에 당한 미적지근한 패배를 감내하며 잉글랜드 팬들이 종이비행기나 날리며 즐거워했던 웸블리에는(Wembley), 축구의 정신(The soul of football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훨씬 큰 인간적 의미를 지닌 친선 경기의 장소였던 안필드에서는 그 정신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스벤-예란 에릭손(Sven-Goran Eriksson) 전 잉글랜드 감독이 리버풀 팀을 감독하고 싶은 그의 마지막 소원이 이뤄진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무수한 순간들을 통해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것이다(You’ll Never Walk Alone).’가 잿빛 3월 하늘 아래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제 살 날을 몇 달만 남기고 있는 76세의 에릭손의 눈에 비친 순수한 행복을 상상해보라. 또한 조 콜(Joe Cole), 폴 스콜스(Paul Scholes), 스티븐 제라드(Steven Gerrard)로부터 오웬 하그리브스(Owen Hargreaves)에 이르는 선수들이 그가 꿈을 이룬 것에 대한 헌사 영상을 바라보며 눈물을 닦아내는 그의 모습을 회상해보라. 에릭손이 직면하고 있는 것은 잔인한 현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너무 늦기 전에 그가 선수들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존재였는지를 들어볼 수 있는 특권을 허락받았다.
머지사이드의 모습은 경기 그 자체가 얼마나 감동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하나의 기관으로서 리버풀은, 이러한 유형의 장관을 연출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경기장에서 보인 에릭손의 미소, 기자회견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전설들의 건배는 안필드보다 더 사람을 도취시키는 곳은 없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러한 장면들은 클럽의 성격 그 이상의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었다. 그들은 또한 존중받는 한 남자의 성품을 보여주었다. 그는 잉글랜드 국가대표 최초의 외국인 감독으로 5년의 재임기간 동안 모든 이를 만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존중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 인물이다.
에릭손의 2000년대 초기 전성기를 되돌아보면 미덕의 모범을 떠올리기 어렵다. 소호 광장(Soho Square)에 스웨덴 감독이 도착했을 때, 축구협회는 몇 차례의 양극화된 임명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그의 생활 방식이 그의 이름만큼이나 헤드라인을 장식한 사람도 드물었다. 그의 여자친구 낸시 델올리오(Nancy Dell’Olio)가 소방차처럼 빨간 복장을 입고 다우닝가(Downing Street)에서 열린 칵테일 파티에 참석하는 모습부터, 그녀와 열애 중이었던 당시에 TV 진행자 울리카 존슨(Ulrika Jonsson)과 에릭손의 열애설이 제기되기까지. 언론들은 보도의 갈피를 잡을 수조차 없었다. 그의 에이전트 에트홀 스틸(Athole Still)이 데이비드 데인(David Dein)*에게 한 최초의 경고, 즉 그의 고객의 주요 약점은 여성이라는 것은 분명 농담이 아니었다.
(*역주 – 프리미어 리그 창립자로 유명한 영국의 사업가입니다. 아스날의 공동 소유주이기도 했습니다.)
에릭손은 이것들을 감추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이렇다. 당황한 스틸이 그에게 FA 최고 경영자인 데이비드 데이비스(David Davies)의 비서인 파리아 알람(Faria Alam)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뇨, 근데 그러고 싶긴 하네요.” 오늘날 그가 악당이나 불량배로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기를 거부하는 진솔한 습관 덕분일 것이다.
“저는 영국 축구에 대해서는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축구 외적인 것들, 제 사생활에 대해서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어요.”라고 그는 과거를 회상했다. “팬들이 제 여자친구들 중 세 명의 이름을 댈 수 있다는 것이 그다지 자랑스럽지는 않네요. 하지만 이것이 제 축구를 손상시켰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축구 외적인 제 이미지에는 타격을 주었네요.” 그의 자기 평가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조용히 응원해왔던 클럽인 리버풀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것은 그의 명성이 경기장 밖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살아남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영원히 과도한 비난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간주 될 것이다. 올 여름 잉글랜드가 독일에서 열리는 메이저 대회에 참여함에 따라 바덴-바덴(Baden-Baden)에 대한 기억이 촉발될 것이 확실하고, 2006년 월드컵에서의 WAG 서커스(WAG circus)도 언급될 것이다*. 에릭슨의 관대하고, 상냥하고, 이해심 깊은 인물이라는 이미지는 순전히 그의 공로이다. “페이스 셰이크(Fake Sheikh)”라는 비밀 기자의 말도 안되는 폭로에 속아 넘어간 악명 높은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가 만들어낸 진흙탕 속에서도 그는 꼼짝하지 않았다.
(*역주 – 2006년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 팀이 훈련지를 일종의 관광지인 바덴-바덴으로 잡고, 선수들이 훈련에 집중하기 보단, 소위 WAG라 불리는 자신들의 와이프 및 여자친구와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당시 8강에서 탈락한 원인이 이것이라 지적받으며, 많은 비난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궁극적으로 그 이유는 에릭손이 원한이나 분노에 굴복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달려 있다. 그는 타블로이드 치료 과정*에도 “이것 하나 때문에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이 치료에 대한 글을 쓰던 안 쓰던 그건 언론의 몫입니다. 결국 저는 신경쓰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습관적인 소식주의로 인해 암에 걸렸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그는 “긍정적인 면을 보라”고 촉구했다. “실패 속에 빠져들지 마십시오. 그것이 가장 큰 좌절입니다.” 지난 주말 안필드의 관중들이 환호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이런 점들 때문일 것이다. 그 환영이 압도적으로 따뜻했던 이유는, 그의 삶이 풍요로웠기 때문뿐만 아니라 항상 인생의 쓴맛을 막아내는 감독으로서의 우아함이 팬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역주 -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 과정이라고 합니다.)
https://www.telegraph.co.uk/football/2024/03/25/sven-goran-eriksson-true-football-romantic-manage-liverpool/
첫댓글 전혀 몰랐네요 ㅎㅎ 에릭손 감독님이 되게 고상하고 품격있으면서도 똘끼 가득한 분이셨군요..... ㅎㅎ 여튼 리버풀에서 소원도 성취하셨으니, 남은 생애가 고통 없이 평안하게 마무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그냥 막연히 잉글랜드 국대 폭망 감독이라는 이미지만 있었는데, 이번 레전드 매치를 통해 여러 모습을 알게 된 감독이었네요.
남은 여생 즐겁게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