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년 6월 19일 새벽12시40분
허억허억ㅡ.
숨차다. 23시정각에 시작된 SBS8시뉴스는 코너이름만 8시뉴스일뿐, 역사적인 대한민국의 16강전앞에서는 그야말로 빈깡통차듯 세시간이나 늦게 방송을 타고 우리집 거실로 흘러들었다.
지금은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임오년6월18일(대한민국8강진출기념일)을 넘겨버린 새벽 12시40분경이지만, 전날 23시부터 시작된 뉴스인지 월드컵특집방송인지 애매모호한 방송은 아직도 힘찬 달리기를 계속 하고있는 실정이다.
오죽했으면 뉴스를 보다가 난생처음으로 지쳐버렸을까...!? -_-;;
자고로... "월드컵8강"이라는 도저히 믿을수 없는 경이적이고도 기념비적인 대사건이 터져버린 순간이었다. '열광의 도가니'란 표현따위론 절대 100%표현치못할 감동, 또 감동의 스펙타클이었으리라.
작년 12월경, 필자-_-는 본선조추첨을 숨죽여보면서 이내 한숨을 내쉴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공동개최국인 일본은 비교적 쉬운 상대인 러시아, 벨기에, 튀니지와 한조에 속해있던반면, 한국은 포르투갈, 폴란드, 미국이라는 다소 껄끄러운 상대와 한통속으로 묶여버렸기 때문인즉..
그로부터 수개월후. 필자의 그 좁은 소견은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되자 정말이지 찢어진 입을 다물기 바쁘게 눈시울이 붉어져 붉은빛 아드레날린이 용솟음친다 하겠다. -_-
거리응원의 인파가 사상최다인 4백만명에 육박했다한다.
말이 4백만이지.. 창공에서 내려다본 서울시청앞이나 한강고수부지, 대전한밭벌..심지어는 춘천공지천의 야외음악당까지 그야말로 시뻘건 개미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하루였다.
평생.. 죽을때까지 그런 기이하고도 해괴한 장면을 다시볼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발동될 정도로 기가차고도 또한 숨이멎은 광경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전파를 타고 줄줄 흘러들어오는 TV속의 언어들은 온통 축구와 태극전사들의 이야기보따리로 온집안을 초전박살내려는 태세이다.
부디 오늘의 황홀한 감격을 잊지말고 다시한번 진군, 진군해주기를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간절히 손모아 기도해본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의 축배는 다음으로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_-)
2002년 6월 4일 대폴란드전...
16년만의 본선진출이라고 얕잡아볼 상대가 아니었다.
물론 우리에게는 홈어드밴티지라는 강력한 (유리한)조건의 방패막이 버티고있었지만,
결과론적으로 항시 유럽의 벽에 번번히 막혀왔던터라 그리 여유로울틈이 있을리 만무했다.
더군다나 역대개최국들이 죄다 16강이상의 성적을 거뒀다는 징크스는 분명 우리에게 여유보다는 부담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도그럴것이 월드컵본선 역대성적이 말해주듯 14전 4무10패에 단1승도 거두지 못했던 터라 그마만큼 홈그라운드에서 열리는 조별리그 첫경기는 수많은 부담을 내포할수 밖에 없었다.
본선조추첨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각종 한국의 언론들은 상대국들의 전력을 파헤치느라 동분서주했었고, 심지어는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대결까지 추측. 한국의 목마른 첫승을 기원했었다.
첫상대 폴란드는 나이지리아에서 귀화한 올리사데베라는 걸출한 깜뎅이공격수가 경계대상1호였으며 예지두덱이란 이름의 골키퍼는 독일의 칸, 프랑스의 바르테즈등과 더불어 세계톱클래스의 골키퍼중 한명이라는 보도자료....는 충분히 나에게 혹은 히딩크에게 혹은 붉은악마들에게 조바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역시 기우였을까...!?
선취골이 드디어 그의 발끝에서 나왔다.
대표팀의 맏형-황선홍... 신문선은 당시 그가 골을 기록하자,
"황선홍!!, '황새'에서 '봉황'으로 거듭나다!!"..라는 기상천외한 불멸의 방송용멘트를 해댔다.
어시스트한 이을용또한 기가막힌 센터링이었지만, 무엇보다 황선홍의 산전수전겪은 14년간의 대표팀생활에 또다른 화려한 종지부를 찍는 골과... 이어지는 골세레모니.
입맞춤을 하며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한가득 미소를 짓는 그 모습은 가히 처절한 환상이요, 신선한 충격이었다.
예전의 하늘을 두쪽내버린 일명 '허공슛'의 망령은 온데간데없었고,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로써의 카리스마와 날카로움으로 무장되어버린 국가대표18번 황선홍을 보며 역시 차범근을 잇는 한국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찬사가 헛된말이 아니었음을 다시금 상기해버렸다.
그리고 아슬아슬한 리드를 지키던 후반..
'멀티플레이어'유상철의 유,상,통,명쾌-_-한 중거리슛.
두덱이라는 골키퍼는 적어도 그날 경기에서는 유럽최고의 수문장이 아니었다.
핫핫(->쫀쫀맨 웃음소리-_-)
그리고 48년만의 월드컵본선첫승...
48년전 얘길 자꾸 들춰낸다며 흑수선이냐고 비아냥되던 내자신을 되려 스스로 비아냥거렸다.
상상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찬란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어느누구도 감히 상상할수 없었던 일까지 모두 벌어져버린 오늘이기 때문에...
2002년 6월 10일 대미국전...
멍청이부쉬(훼커는 어디갔어? -_-;; 부쉬훼커스...)와 사기꾼오노땜시롱 천파만파로 커진 반미감정. 이 한판으로 쌈박하게 일단락되었음 하는 소망이 있었다.
미국은 조추첨당시 한국의 1승제물 우선순위로 도마에 오르락내리락하던 차였다.
축구불모지였으나 개최국의 이점을 살렸던 94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지만,
이내 98프랑스대회에서는 조별리그탈락이라는 쓴잔을 마셨다.
그로부터 4년뒤. 베일에 가려진 미국축구는 놀라웠지롱~ -_-
우승후보군이던 강호 포르투갈을 3:2로 격침시키는 깜짝이변을 연출했다.
그리고 1승씩 나눠가진 우리와 미국의 2차전.
양국은 서로 16강행을 확정짓기위한 심판대에 올라선 형국이었다.
전반20분경. 어느새 '봉황'이 되버린 황선홍의 부상.
머리에서는 선혈이 낭자한 붉은피가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사이 메시스란 얍쌉한-_- 선수가 한국의 골넷을 출렁였다.
1:0
황선홍은 머리를 붕대로 조이고 다시 그라운드에서 나섰다.
어느새 국민의 감정은, 일본 다음으로 앙숙이 되버린 미국.
그리고 대망의 16강진출을 위해선 절대 패해선 안되는 미국.
선수들은 사력을 다했고, 감독은 침을 튀겼다. -_-
괜한 자괴감때문이었을까...!?
눈물나는 붕대투혼의 황선홍이 전반종료직전, 천금의 페널티킥을 얻는다.
키커는 이을용.
그러나...
이을용은 아쉽게도 실축을 해버리고 말았다.
순간 맘속에서 울럴거렸던 이을용선수에 대한 심한 거부반응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타.
이윽고 후반종료직전...
이번엔 이을용의 자괴감이 미국의 자만심을 짓눌러버렸다.
이을용의 또하나의 어시스트.... 피버노바는 정확히 골대앞의 안정환의 머리에 튕겼고...
그대로 골문을 직선하강했다.
1:1
기적과도 같았던 동점골.
전의가 살아난 태극전사들은 마지막 힘을 쏟아부어 총공세를 펼쳤으나 아쉽게 무승부를 기록하고야 말았다.
막판 '독수리'최용수의 헛발슛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지만, 오늘에서야 비로소 모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일수 있게 되었다.
2002년 6월 14일 대포르투갈전...
91년과 93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를 연거푸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던 유럽의 전통강호 포르투갈.
그당시의 청소년대표들을 주축으로 한 이번 월드컵은, 분명 포르투갈에겐 우승컵이 근접했을것이라는 판단을 서게 했을것이다.
세계4대 미드필더중 하나라는 루이스피구를 비롯해,
누누고메스, 파울레타, 주앙 핀투, 콘세이상등 이름만으로도 상대를 압도하는 골든제너레이션들이 포진한 막강한 스타군단이었다.
각국의 도박사들은 66년 잉글랜드대회에서 '검은표범'에우제비오가 이끌었던 당시의 월드컵3위라는 기록을 뛰어넘어 우승까지도 넘볼 전력이라며 떠들어댔다.
역시 2:0이라는 스코어로 우리의 첫승제물이 되었던 폴란드를, 4점차로 대파했다는 점은 분명 긴장의 고삐를 한시라도 늦춰서는 안된다는 경계심을 갖게했다.
그러나 미국에 일격을 당한 포르투갈도 이번 경기에서 패하면 말짱꽝. 16강탈락이었다.
어차피 사력을 다해서 필승의지를 다지는 것은 피차일반이었다.
정신력의 우세일까, 체력의 승리일까...
후반전 '강호킬러' 박지성의 기습적인 호나우도슛!!
가히 한국의 이번 월드컵 골장면중에 가장 멋들어진 슛이었다.
어시스터는 이을용대신 기용된 '초롱이'이영표
개인적으론 이영표를 사모한다. -_-
야야... 이.사.춘만들어! (이영표를 사모하는 춘천인) -> 'ㄴ' -_-;;;
포르투갈은 주측선수2명이 퇴장당하는 악조건속에서도 끝까지 혈투를 벌였으나 4천7백만의 용광로속에 녹아드는건 시간문제였다.
경기끝. 1:0 한국승.
월드컵첫승에 이어 나머지이자 마지막 목표였던 16강진출까지 이뤄낸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히딩크감독은 어퍼컷펀치와 워리어갠-_-을 연신 날리며 포효했고, 선수들은 일렬횡대로 그라운드를 휘저었으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붉은색으로 도배한 붉은악마들은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그 한켠에는 쓸쓸히 주저앉은 루이스피구와 고개를 숙인채 발목을 절뚝이며 락커룸으로 향하는 올리베이라 포르투갈의 감독도 카메라앵글에 잡혔다.
90분이라는 시간동안 반드시 무너뜨려야 하는 적이었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가엾고 초라해보였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지만, 부디 '아름다운패자'포르투갈의 2006년 독일월드컵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난 같은조가 아니었다면 아르헨티나와 함께 열렬히 포르투갈편이 되었을테야...
마침내 월드컵첫승과 꿈에 그리던 16강...
그리고 대망의 임오년 6월 18일 대이탈리아전...
역사적인 16강전이었다.
오늘의 무대는 대전!
그동안 인기없는 경기만 한다고 썰렁함을 금치못하던 대전경기장은 오늘하룻동안.. 그간의 모든 썰렁함을 날려버린 뜨거움에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 -_-
경기당 1억9천만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공격수 델피에로가 후보로 있는 '아주리군단'이탈리아.
월드컵3회우승과 함께 세계최강의 수비력(일명:빗장수비)을 자랑하는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세계랭킹6위의 강팀이었다.
아직도 난 94년 미국월드컵에서 눈부신 원맨쑈를 선보이며 조국 이탈리아를 결승까지 끌어올렸던 '말총머리'로베르토 바조를 잊지 못한다.
그런 바조를 대표팀에서 밀어내고 포스트바조를 주창하던 델피에로..
역시 28살이라는 한창뛸 나이에 비에리, 인자기, 토티등에 가려져 벤치신세를 져야했을 정도로 예년의 수비력에 플러스알파로 공격력까지 배가되었다.
먼저 일본의 8강좌절을 지켜보면서, 아시아축구의 한계를 되뇌이기도 했었고..
전날 꿈에도 이탈리아에게 왕창 깨지는-_- 개꿈을 꾼 관계로 불안하기만 했다.
아뿔사.
경기시작 4분만에 얻은 결정적찬스인 페널티킥을 '해결사'안정환이 실축해버렸다.
페널티킥악몽이 되살아나는 순간,
그리고 공격, 또 공격... 가히 이탈리아의 '빗장수비'는 견고하다못해 촘촘했고,
오늘따라 한국은 조별리그에서의 딱딱 들어맞던 조직력이 이상하게 꼬여들고 있었던..
후반전 43분...
그간 무수한 득점기회를 날려버린 강릉상고출신 설기현이 바람을 갈랐다.
종료2분전의 미친-_-;; 동점골!!!
언빌리브 그 자체였다.
아무리 잔머리를 잘굴리는 작가라도 이처럼 숨막히는 막판반전의 각본을 쓸수있을까...!?
대전경기장의 붉은악마들은 용암을 토해내듯 꿈틀거렸고,
집에서 경기를 관전했던 나는(집=아파트) 도처해서 난무하는 비명과 탄성, 환호소리에 기겁을 해댔다.
져도 좋으니까 제발 한골만 넣어달라고 허벌나게 기도했건만,
역시 욕심은 끝이 없는것일까... 걍 연장전이고 뭐고 빨랑 역전꼴을 넣줬음했다.
후반종료직전, 차두리의 환상적인 오버헤드킥은 골과 관계없이 가장 화려한 슛이었다.
차두리... 외모만 강백호와 닮은꼴이 아니라 무한한 잠재력도 일맥상통한다.
그때 난 (차두리가 교체되고 난 후) 일부러 MBC중계를 보고있었는데, MBC차범근해설위원은 차두리에 대해서 "차두리, 좀더 뛰어야됩니다"란 멘트를 했던것으로 간주된다.
연장후반전...
전반초반 페널티킥을 실축한지 어언 일백십분 경과된 시각...
안정환의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헤딩골의 작렬이었다.
태초에 고조선건국이후, 한민족의 가장 불같은 투지를 보여준 쌈박,깔끔한 한판승이었다.
히딩크는 이번에는 킹콩을 연상시키듯 가슴을 두들겼고, 붉은악마들은 그대로 무아지경의 상태로 몰입되어 버렸다.
희동구...란 주민등록증까지 발급되고 명예국적을 받으며 부산에서는 흉상까지 만든다는 히딩크신드롬은 가히 초폭발-_-이었다.
이전의 서태지나 가을동화, 노무현따위의 신드롬과는 비교수준도 안맞는 최강의 신드롬...
그리고..
2002년 6월 22일 토요일 오후 3시30분..
94월드컵에서 맞붙었던 기억이 있는 스페인과 8강에서 격돌한다.
당시 홍명보와 '날쌘돌이'서정원의 추격골과 동점골로 극적인 2:2무승부로 승부를 가르지 못했던 터ㅡ.
홍명보와 이에로는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8강길목에서 맞닥트렸다.
이러다가 정말 대한민국이 월드컵을 차지하는건 아닌지...
터무니 없는 뻥을 찬란한 현실로 바꾸어논 히딩크감독의 마술에 경악하는 바이다.
92년 6월19일 아침..
박찬호의 선발중계가 있었다.
MBC의 허구연해설위원... 야구중계 잘하다가다 갑자기 축구얘기 나오자 계속 히딩크가 어떠니, 차두리가 어떠니, 붉은악마가 어떠니... 축구얘기만 한다. -_-;;;
김응룡삼성감독도 야구는 뒷전이고 월드컵경기만 보러다닌다니...-_-
자고로 월드컵의 6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