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랫만에 DVD를 빌리러 갔습니다.
뭘 빌릴까 망설이다 변혁 감독님의 <주홍글씨>를 놓친 기억이 나더라구요.
개인적으로 김영하님의 소설을 무척 좋아하는지라
원작이 변혁 감독님(영화 <인터뷰>)의 손에서 어떻게 변주되었나를 확인하고 싶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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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에 쓰인 김영하의 원작 소설은
「거울에 대한 명상」과 「사진관 살인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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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뒤 든 생각은 영화가 어느 정도 원작의 분위기를 나름대로 살렸고,
그러면서도 막연하기만 했던 소설 속 장면들을 화면에 담아냈다는 거였죠.
그리고 거기에 친구의 남편과(따지고 보면 그것도 아니지만) 불륜을 저지른 가희가
딸을 낳아 진주(펄,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에서 헤스터의 딸 이름)로 이름 짓겠다는 덧붙임은
군더더기 같기도 하고, 이 영화의 제목을 왜 <주홍글씨> 로 했느냐에 대한
이유 있는 항변 같기도 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로 넘어가볼까요.
기훈 역할의 한석규님 연기는 꽤나 리얼했습니다.
특히 후반부에 트렁크 속에서 꿈틀거리던 기훈의 모습과 '라빠 라빠' 하고 중얼대던 모습은
섬칫하면서도 삶 속에서 인간의 욕망은 마지막 순간에도 저렇게 뒤틀리는구나 싶더군요.
그 다음으로 이은주님의 연기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노출신이 많은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그녀는 정말 가희를 닮았더라구요.
과감한 노출 연기뿐만 아니라, 감정 표현도 탁월했다고 봅니다.
본인은 마지막 트렁크 씬이 가장 애착이 가면서도 힘들었다고 했는데.
저는 그 씬에 못지 않게 마음에 드는 씬이 있습니다.
바로 기훈이 가희의 임신 사실을 알고 "병원에 같이 갈까?" 하고 묻고 다투게 되는데요.
그 이후 그 일을 사과하기 위해 가희를 찾아온 기훈에게, 가희가 사랑을 절규하며 외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몸짓이 인상적으로 기억됩니다.
성현아님이나 엄지원님의 연기도 괜찮은 편이구요.
이 외에도 가희의 집으로 나오는 공간은 상당히 멋집니다.
공간 구성과 조명이 가희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것 같구요.
또 음악도 좋은데.
가희가 기훈에게 핸드폰으로 들려주던 [A Matter Of Time].
그리고 재즈바에서 가희가 부르던 [Only When I Sleep] 등의 음악도 좋습니다.
18세 이상 분들만 보실 수 있고, 또 이런 장르와 연출을 싫어하시는 분이라면
제 글이 별로 도움이 안 되겠지만... ^^
글쎄요, 저는 의외의 수확이었다고 되새겨보며 첫 글을 마칩니다.
첫댓글 파멸이었죠. 참, 저는 극중 공간이 너무 멋지게 꾸며졌던 점들이 오히려 맘에 들지 않았네요. 리얼리티를 반감시키는, 지나치게 멋을 부렸다고나 할까... 좀 그랬죠.
제 생각에는 리얼리티보다는 환상 같은 면을 두드러지게 할려고 만든 공간 같은 느낌이었어요. 특히 붉은 빛이 도는 조명은 욕망을 더 부각시켰다고나 할까요. 김영하 소설의 지향점 역시 리얼리티는 아니니까요. 어쨌든 파멸,,이라는 단어에는 공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