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골목 (외 1편)
장정희
작은아버지 바지가 걸린 바지랑대 사이로 푸석한 골목이 보였다.
구암댁 할아버지 이끼 낀 돌담을 짚으며 모퉁이를 돌아가고
양철대문이 덜컹, 삽살개가 기다림의 목덜미를 물었다.
입대한 큰아들 주검으로 돌아오던 그날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작은아버지는 좀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발가락이 오그라든 대문은 문패를 버리고
밤새 신작로 쪽으로 귀를 던져 놓고 있었다.
낮은 지붕을 내려온 거미가 먼저 발을 내딛는 골목,
목줄을 잡아맬 수 없는 굴뚝으로 연기는 담쟁이 넝쿨같이 기어 나왔다.
뼈마디 드러난 상처를 덮듯 배추는 또 자라나고
햇살은 어두운 골목에 도둑고양이의 눈빛을 씨앗처럼 심어주었다.
다섯 살배기 손자가 작은아버지 팔을 당기며 대문을 나서고
나는 빨랫줄 문 집게처럼 뻣뻣한 골목의 시간을 만지고.
바람이 골목에 발을 담글 때마다, 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수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네를 타다가
그는 모르고
내겐 생생한 기억으로 살아
둥근 발판이 되어 주었다
운동장에서 그가 애청한다는
춤추는 용*이 들리고 나는 덜미 잡힌
도둑처럼 겁을 먹고 있는데
오늘따라 칸나는 왜 저리도 붉어서
헐렁한 양심에 불을 지르는지
목도리가 돼 준 것도
뜨거운 밥상 내밀어 준 것도
박수를 묶어 꽃다발로 보내준 것도
그는 까마득히 모르고
오롯이 나만 아는
돈 떼어먹은 것보다
놀이터 같은 그 아량 삼킨 것 같아
찝찝한 기분은 소금을 뿌려도 숨이 죽지 않는다
모래바람이 나를 허공으로 밀고 있다
마음의 빚이란
숨길 수 없는 딸꾹질 같은 것
그네에서
그만 내려야 해
미끄럼틀 뒤에서
누가 손전등을 켜고 다가온다
*노무라 소지로의 오카리나 연주곡.
⸺시집 『불기소처분』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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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희將貞姬 / 1965년 대구 출생. 201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불기소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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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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