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7: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그냥교회 출첵합니다.
전능하신 ~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수요 예배로
은혜 충만한 좋은 날을 주시고
<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 ~ 라는
복된 말씀을 내려주시니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의 찬양을 올립니다.
10월 25일 ~ 즐거운 수요일입니다.
1881년 10월 25일 오늘은
스페인에서 파블로 피카소가 태어났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스페인 입체파 화가로
주요 작품은
<아비뇽의 처녀들>과 <게르니카>와 <납골당>.
스페인에서 태어나 소묘를 가르치던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일찍이 뛰어난 소묘 실력을 발휘했다.
이후 마드리드에서 미술을 배우며 염증을 느끼다가 카페와 사창가를 배회하고
프라도 미술관을 찾아가 그림을 감상했는데, 이 시기가 평생 작품의 원동력이 됐다.
파리를 여행하며 색채에 관해 눈을 떴고,
파리로의 영구 이주를 결심하며 급진적인 화풍의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끊임없는 새로움을 추구했다.
스페인의 시골청년 피카소는 19세기 사실주의적 내지는 인상주의적 평면회화를 해체시키고,
20세기 새로운 입체파회화를 창시하였다.
그리고 이전까지 금기시되던 성의 환희와 광기를 그의 회화에 주제로 삼아
인류의 영원한 수수께끼인 성의 신비를 표현하기도했다.
당시 전설적인물이 된 피카소는 개인을 떠나 국가적차원에서 거대하게 상징화 되었고,
모든 예술에서 새롭게 변형되어 '낯설게 보이는 것은 다 피카소적'이다 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렇게 피카소는 위대한 화가 일뿐 아니라 20세기 최대의 조각가 중 한명이 되었다.
그는 말년에 고전회화를 재정리하면서 자기 스타일로 대가들의 작품을 하나씩 하나씩 재해석해 나갔다.
이전에 대가들을 모방하려는 무의식은
19세기나 20세기에 모든 예술가들의 머릿속에 한 순간도 떠나지 않았다.
마네 나 세잔느 같은 화가들, 스트라빈스키같은 음악가들, 그리고 장콕도 와 같은 시인들도 다 그랬다.
옛 거장들의 작품을 풍자하고 모방하는 궁극적 목표는 어느 장르건 마찬가지로
고전적 규율 그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모방하는 것이고
그 결과 그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피카소는 이 어려운 난제를 풀어나갔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들라크루아 14점,
이나 벨라스케스 44점 그리고 마네의 27점 등
과거 대가들의 그림을 해체하고 재조립 함으로서 과거와 대화를 나누었고
진정한 피카소식의 '큐비즘'의 핵심을 정리해 나갔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미술인 되었다.
1956년 (75세) 독일 뮌헨에서 피카소 회고전을 시작으로
1962년 (81세) 미국 뉴욕에서 피카소 80세 기념 회고전.
1964년 (83세) 일본 동경에서 피카소전.
1970년 (89세) 스페인 아비뇽 법황궁 고딕식 성당에서 피카소전.
1971년(90세)프랑스 파리에서 '피카소탄생 90년' 대 회고전 등.
그는 미술사에서 드물게 보는 성공한 예술가가 되었다.
그는 말년에 자신의 죽음과 싸우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그의 자화상에 솔직하게 담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렘브란트 당신은 죽음을 냉소했지만 난 죽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싶소."
1973년 4월 8일 92세의 나이로 남프랑스 별장에서 사망했다.
눈 내리는 4월 10일 생 빅투아르 산기슭 보방 오그리 라는 산비탈에 묻혔다.
그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진실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유언처럼...
피카소는 현대사회에서
아인슈타인, 다윈, 프로이드, 칼 마르크스와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되었다.
평면회화 해체와 신 미술의 창조와 지각변동을 준 엄청난 혁명이었다.
음악에서 쇤베르크, 바르톡, 문학에서 베케트, 카프카의 업적을 넘어서는
미술에서의 업적을 남겼다.
🍁
건강 관리 잘 하시고...
내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
즐겁고 행복한 날 보내세요.
그냥교회와 성도님들을 위하여
강건과 풍성을 ~
기도합니다.
첫댓글
할렐루야~~
감사하며,
수요예배를 기도 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 감사합니다.^^
감사와 기쁨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
강건과 풍성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