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년을 기약해야 할까?
갈색 나뭇가지에 엉겨 붙은 눈꽃, 흰색 하나만으로 세상을 담백하고 조화롭게, 칼칼하고 깔끔하게, 앙칼진 맛, 윤슬처럼 빛난 눈밭, 마침내 가슴속을 환장하게 만들었던 겨울산을. 여드레 전, 입춘은 소리 없이 지나갔다.
설 연휴 끝, 봉우리가 길인 산, 도봉산(道峯山)을 찾았다. 손끝이 시리다. 먼 하늘은 깔끔한데 두 뺨을 스치는 바람도 아직은 차다. 여린 봄을 기대했는데, 지금은 겨울 아닌 듯 겨울 같다. 혹여 계곡을 흐르는 물속에라도 봄 향기가 묻어있지 않을까. 햇살을 튕기는 나뭇가지 끝에 생의 환희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급한 가슴은 어느새 나뭇가지를 물어다 새집을 짓고 있는데. 아직 계곡은 얼음이 쨍쨍하고, 응달엔 흰 눈이 길게 누워있다.
오늘은 ‘도봉산탐방지원센터 – 도봉서원 – 마당바위 – 신선대 - 오봉전망대 – 여성봉 – 송추주차장’까지 약 10Km를 오르고 넘고 내린다.
옛 선인들은 도봉산을 ‘푸른 하늘에 깎아 세운 만 길 봉우리’ 라고 했다. 도봉은 암벽이 많고 고저 차이가 심하다. 오르다 보면 돌길이 팔 할을 넘는다. 하여 등산 난이도가 높다. 헐떡 숨을 가다듬으며 마당바위를 지났다. 이어서 급경사 길을 네발로 기듯 오른다. 스틱을 한 손으로 잡아 질질 끌고, 한 손으로는 보호용 쇠파이프를 잡고 올라야 한다. 마침내 신선대가 눈앞에 보인다. 발앞엔 얼음이 짱짱하고 반질하다. 스틱을 접었다. 네발로 기어서 조심조심 올랐다. 급경사 외길, 발을 디딜 돌이 미끄럽다. 보호용 쇠파이프를 힘주어 바짝 움켜쥐었다. 가슴 조이며 두 손은 당기고 밀면서 어렵게 신선대에 올랐다. 신선대는 절세미인이다. 사계절 어느 때나.
자운봉이 발아래 있다. ‘자주빛 구름(紫雲)이 걸린다’는 봉(峰)이다. 쏟아지는 볕이 자운봉 품고 있다. 바위에 흰 눈이 슬쩍 덧칠하듯 덮여있다. 마치 바위가 도화지가 된 것처럼. 바위 아래 푸른 소나무들이 햇살을 밭아 더욱 짙고 투명하다. 남쪽으로 만장봉과 선인봉, 서쪽으로 오봉의 자태가 그림 같다. 사패산 쪽 포대능선 바위 살결이 더욱 희고 곱다. 길고 높게 뻗은 바위와 작은 소나무들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도봉산 능선을 만들고 가꾼다. 틈틈이 높고 낮게, 간간이 거칠고 곱게, 때로는 여유롭게 공간을 비워 두면서. 그리하여 도봉산 겨울은 품격있고 우아하고 담백하다.
산 아래로 천만인 도시가 보인다.
630년 전, 조선의 신하들은 태조에게 보고했다. “백악이 진산이요. 인왕산은 백호, 낙산은 청룡, 관악산을 안산”으로 삼는 ‘한양 천도 계획안’을. 1394년 10월 25일 조선은 저 산 품에 안기고, 저 한강을 품은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겼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조선, 1910년 8월 29일 오백 년 왕국은 패망했다.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이완용은 “동양의 평화를 위해 조선이 일본과 병합”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순종은 “모두 동의한다니 이의없다”라며 굴복했다. 역사는 이날을 “경술국치일”이라 기록했다. 저 위정자들이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었는데, 처참한 모욕과 고통은 오로지 백성들의 몫으로 돌아왔다.
지금 저 서울 땅에도 시절의 봄은 오고 있지만, 국민들 삶의 봄은 아득히 멀어 보인다. 꽃피는 춘 사월, 위정자들은 총선에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질에 한반도는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서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새벽 찬바람이 휘도는 골목길을 헤매고 다닌다. 위정자들 아가리로 지껄이는 “국민의 뜻”, “국가를 위하여”를 외치는 온갖 감언이설들, 나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면 길가에 ‘당선 사례’ 현수막을 덜렁 걸어놓고 도망치듯 사라질 것이다. 공약은 대부분 허공을 떠다닌다. 답답한 국정을 향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저들과 기레기들은 한패거리가 되어 철저히 왜곡하고 외면한다.
해방, 아니 이 땅에 역사가 시작된 이후 오늘날까지 권력을 이용해서 사욕을 채운 후 감옥, 사면, 복권, 벌금 감면, 그리고 다시 권력을 쟁취하려는 인간들.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의 가면을 쓰고 활개 치는 위정자들의 선동질에 넘어가지 마시라.
시인 신경림은 ‘위정자’ 같은 크고 잘 자라 반듯해 보이는 나무보다 못나고 볼품없는 ‘서민’ 같은 나무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보았다. 그의 글을 보자.
“... ... ...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이웃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
동무 나무가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는 것을
그래서 뽑거나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 ... ...”
오는 4월 10일 아침, 신경림의 시 ‘나무’를 다시 읽어 가슴에 새기고 투표장으로 가리라. “동무 나무가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하는 훤칠한 거짓나무를 뽑아내기 위해, 내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할 것을 다짐하면서 능선의 빙판 길을 조심조심 걷고 있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뜨고 저들을 지켜보리라. 우리의 후손에게 반만년 역사의 나라를 물려주기 위하여, 최소한 부끄러운 선배로 기억되지 않기 위하여.
신선대를 내려와 아이젠을 장착했다. 내리막길에 얼음은 단단하고 눈은 두텁다. 이 능선길도 거칠고 급하고 미끄럽다. 오봉산을 지나 오봉전망대에 다다랐다. 산봉 위에 자리잡은 오봉 바위들은 명품이다. 위태롭지만 당당하고, 아름답지만 조화롭고 품위가 절절하다. 바위틈, 절벽엔 작은 소나무들이 어렵사리 생을 지탱하고 있다. 저 바위와 소나무도 수 없는 시련의 세월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으리라. 때로는 폭풍을, 때로는 가뭄 속 갈증을, 때로는 혹독한 눈보라를 지나 마침내 산세와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매일 즐겁고 좋은 날만 있다면 어찌 영혼이 알차게 여물 수 있겠는가. 거친 파도가 유능한 사공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등산도 내 몸을 시련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 아닐까? 육신의 단련으로 영혼의 그릇에 작은 알맹이라도 조금씩 채워보려고.
여성봉 뒤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명품 오봉능선과 오봉을 감상했다.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북한산 인수봉과 백운대는 마음의 눈으로 감싸 안았다. 발길을 돌렸다.
하산길은 언제나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한 참을 내려오니 볕은 따사롭고, 바람엔 온기가 있다. 볕에 사랑이 숨 쉬고있다. 그 볕은 숲, 바람과 나무, 그리고 얼음을 녹여 땅을 적신다. 생명의 길을 닦는다. 풀어진 흙의 미로 속으로 빛과 수분과 공기가 스며든다. 그 빛을 받아 생명의 씨앗들은 헐거워진 봄 흙 속의 미로를 따라 땅 위로 올라올 준비에 밤낮이 없다. 생명을 위한 사랑에 어찌 밤과 낮이 있으랴. 잉태, 그리고 탄생을 준비하는 도봉의 봄은 이 얼마나 감사 일이던가.
2024. 2. 12
첫댓글
오랜만에
새돌님
방가 방가워요
오랜만ᆢ새돌님
10키로의 산행을 님의 글로 따라갑니다
어휴 힘들다ㅡㅎ
늣은밤 고운밤^^
글을 참 잘쓰시네요
잘 봤습니다^^
울림이 있는 글 잘읽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