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적(動的)인 문학 정적(靜的)인 문학
김광한
문학과 인생이란 판이하게 다른 분야같지만 사실은 문학과 인생이란
한 범주 안에 공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문학이란 글을 통해
서 인생을 조명하고 그 안에서 삶의 희비애락 등을 표현하며 진정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이 아닌가.그런 의미에서 문학이란 인생의 동의어
이면서 공존의 가치를 사람마다의 가슴에 각인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생각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남 출신의 시인 남천 송병완은 좀더 특별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그는 여느 시인처럼 현란한 수식어나 현학적인
수사를 동원해서 다소 인문학에 무지한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그런 시인은 아니다.그것은 우선 그의 지난날들이 그것들을 증명해
준다.
전라남도 담양이란 소유보다 마음들이 따뜻한 마을에서 공무원 생활을
평생을 해서 문학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진 그에게 인생의 황혼기에
천사처럼그에게 손을 내민 문학이란 손님과 친구가 되고부터 그는
문학이란 친구를 더 가슴에 보듬기 위해서 정성을 다하는 그런
수신(修身)의 길을 걷고 있기에 그는 생각하는 시인이라기 보다 움직
이는 시인으로서의 역할을 지금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글 한줄을 쓰기 위해서 여행이란 독특한 방법을 동원한다.
여행을 통해서 그 현장 직접 본 사물과 사람을 모두 그의 광범위하
고도 꼼꼼한 필치에 담는것이다. 때로는 오래동안 활약한 전문 문학인
과는 격에 맞지 않는 문장 구성이 있기도 하지만 그의 글은 그래서
구수하고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정직한 문장, 그리고 정직함을
무기로 삼아서 대하는 세상의 모든 것이 그에게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까히 다가오는 것이다.
필자가 남천이란 생소한, 다소 어눌하고 어수룩한 시인을 만나게 된
것은 작년 2000년 7월 30일 모문학 사이트에서 주최한 대전의 동학사
야유회때의 일이다.그는 문학인이라기 보다 시골의 농군타입으로 모임
에 참석, 첫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내게 자신이 쓴 한권의 시집을
내밀었는데 산에 관한 내용으로 쓴 시들이었다.그는 외양 그대로 평생
을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과 그 아름다움을
익히 아는 시인이었고 땅에 대한 애정을 남달리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후 한두차례 더 만나면서 그는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무조건
적인 애정이 각별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세, 즉 가톨릭 신자로서
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몇 안되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을때 나는
인간이 이렇게 악의가 없고 순박한 사람이 아직도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무한한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그는 문학지에서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시보다 사람이 더 좋은 인물, 그리고 사람 가운데 마음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란 것을 느겼던 것이다. 얼마후 광주문학회의 늘푸레
문학(회장 김영관교수)에서 시화전을 했을때 다시 조우를 했는데
그때 나는 필자가 몇년전에 쓴 김구 선생의 일대기인 백두대간을 보낸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호형호제하는 시이가 되었고 서울과 광주에서
몇차례 조우하면서 그는 내 생애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커다란
비중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길 정도가 되었다.
대저 한 생애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데 반해 남천 시인과는 이런 관계를 벗어나 인간적인 마음에
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니라 그와 인간관계가 설정
된 많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이다.담양이란 한적한 농촌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그는 가난하고 한많은 사람들 모두를 애정과
사랑을 갖고 대한 것 자체가 이미 인간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의 활동은 지금부터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서야 문학이란 길을 발견했고 그 문학에
모든 생애를 형상화하는데 전력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정직하고 능동적인 삶의 자세
그는 환갑이 내일 모레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장소를 바꾸어 그의
문학 수업을 계속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그는 정렬적으로 쏟아내는
많은 언어가 우리를 숨가쁘게 한다.아래의 시들은 그가 지난 8월에
몽골에가서 보고 느낀 기행시인데 여기서 우리는그이 정확한 관찰과
역사지식에 대해 놀라움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몽골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타향 아닌 고향에
송병완
살고있는 타향에서
옥수수 잠자리 달랑달랑 춤추고
장독대 맨드라미 붉게 물들어
울타리에 기대서 있는 봉숭아 터질 듯
황소타고 피리부는 농촌
그리운 내 고향 절라도
바람 바람 하늘 나른다
푸른 하늘 뭉개 뭉개 구름타고 날아간다
옛날 옛적에
우리 민족 고향 찾아
아름다운(대한민국)항해 바다 건너서
천진,대련 지나
말굽소리 요란했던
쪽빛 하늘아래 펼 처진 대 초원
몽골에 갔네
형상도 같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울란바트르
타향도 아닌 고향에
2003,7.17(제헌절) 항공 기내에서
한국산학협동연구회 산업시찰 박성수 원장외 41명
청운의 꿈
송병완
하늘 아래 피어 오른 하얀 구름
두둥실 떠 다닌다
하늘 구름아!
내 마음도 푸른 꿈이 되어
두리 둥실 떠 있구나
아 ! 그리워라
하늘도 내 마음도 가슴 벅찬
청운의 꿈
푸른 하늘에 몽실 몽실 피어 올라라
아름답게 피어 올라
가고픈 하늘로 가거라
하얀 꿈 이루고서
2003,7,17 중국 몽골 울란바트르 상공에서
자연의 미로에 서서
송병완
자연의 미로에 서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태고의 신비가 이루진 날
진화와 진화를 거듭하면서
먹고 먹히며
자연으로 살아왔구나
우주 공간에서 자연스런 혜성들
폭발하고 암흑으로
빙하시대를 거쳐
조상마다 새 길 찾아
변화와 변화를 하면서 살아 갔구나
수억만 생명력이 갈래 갈래
자연의 미로에
자연스럽게 번영하여
삼라만상이 공존하면서
지고 이기고
삶도 절로 절로 형상도 절로 절로
2003..7.17 몽골 울란바트르 자연박물관에서...
남천은 지난 7월에 몽골에 가서 우리민족의 뿌리를 직접 보고 느끼고
적어왔다.그냥 적어 온 것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과 만나서 호흡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가운데 우리 민족의 근원과 그들의 자연관에 대해
깊은 애정을 확인하고 온 것이다.그래서 그는 몽골에 관한 수십편의
시를 썼는데 한결같이 그들에 대한 애정, 더 크게 말하면 인간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깊은 사랑을 그의 투박하고 토속적인 언어를 빌어 표현
한 것이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몽골인들의 생활관습과 사고방식 모두를 마치 현미
경으로 들여다 본듯이 정확히 묘사했다는 것이다. 주마간산격으로
그냥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만큼 그는 자신의 시어를 사랑과
평화에 투자했다는 점이다.
그의 시들은 한결같이 현학적이고도 전문적인 기교와 표현에 조금
어긋나 잇지만 그의 문장을 다루는 성실성과 정직함은 기교와 공허한
현학적 수사를 즐겨 쓰는 전문 시인들을 자처하는 이 땅의 모든 시인
들에게 침묵을 하게끔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시를 사랑하고 시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고 인간의 내면 깊숙히 자리
잡고 잇는 사랑을 무기로 삼아 쓰는 그의 한줄 한줄의 시는 그대로
금과 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아롱져 남는다. 혹자는
그의 다소 빈약한 시어와 어휘에 대한 세련되지 못한 구성에 시비를
걸지 모르나 그것은 그의 성실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 하리라 믿는다.
정확한 기록, 그리고 기억력
남천은 시를 쓰지 않았다면 다큐멘터리 작가로 나왔어도
큰 출세를 할 사람이다.그는 메모지 한장 갖고 다니지 않아도
그날 만났던 사람과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이를 글에 담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졌어도
그의 눈은 정확하게 들어맞아 한치의 오차도 없다. 아마도
그것은 오랜 공무원 생활을 한데서 배인 습성때문이라기 보다
생활의 자세가 그래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그는 그날
만났던 사람들과의 우의를 생각하고 반드시 그의시 말미에 이를
기록하곤한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덕담을 후하게 늘어놓는
선천적으로 악인이 되지 못하는 체질을 갖고 있다.
그가 고향에 갖고 있는 애정은 남다르다 못해서 가히 광적이다
시피 정렬적이다.고향인 담양에 누가 살고 누구의 집에 밥숫
가락이 몇개나 되는 것 까지 알정도로 그는 향리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타향에 대한 배타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속에서 자신을 낮춤으로서
섬김의 삶을 살고 있는 몇 안되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또한 고향에 살던 선인들의 업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발분의 노력
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자신의 선조인 송씨 문중뿐만아니라 타성받이까
지도 함게 우리 시대를 살고 잇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들
의 좋은 점들을 후세에 알려서 좋은 나라, 좋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남은 생애동안 그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남들이 보면 다소 구시대적인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나 오늘의 잘못
된 역사는 바로 남천 같은 사람이 있기에 이를 바로 잡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담양과 화순, 순천, 담양 등지에 흩어져 있는 민족의 유산을 많
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자신에
게 경제적으로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이런 얄
팍한 경제적 이득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
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물염정(勿染亭)
송병완
적벽도 아름답고 물염정도 아름답다
선대의 아름다운 모습 알만하구나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풍경 이라
천리 타향 의형 불러 자랑 하고 싶어
다친 발 질질 끌고서 찾아왔더니
자미 활짝 웃고 해오라기 춤 추네
백두 대간 백범 선생 일대기 그려놓고
친구 따라 여인 따라 왔다 하네
아름다운 물염 다시 보고 싶어서
물염정에 기대선 삿갓에게 물어봐
아름다운 무릉도원 또 따로 있나
신선으로 가는 길은 적벽 이라네
2003.9.16 화순 동복댐 물염적벽에서
송병완 송병훈 김광한 김명선 김길용 백숙자
화순의 적벽,티 한점없이 맑은 가을 하늘아래 붉은 바위가
마치 병풍처럼 사방으로 둘러쳐진 이곳이 세인들의 입에 방랑
시인 김삿갓으로 불리면서 회자되던 조선조 시대의 유명한
시인 김병연의 임종 장소이기도 한데 그날따라 몇 안되는
먼데서 온 나그네들의 발걸음이 멎었고,나그네들은 물염정이
라 일컫는 정자에서 오늘도 무심히 흐르는 강물은을 내려다
본다.
강물위에는 움직일듯 움직이지 않는 해오라기 한마리만이 묵상
을 하듯 비상을 하려 하고 있고 거기 남천의 옛 생각이 멎어있
다. 김병연이 세상 살면서 모진 사람들에게 당했던 수모와 그리고 비록
가난하지만 인정있었던 사람들과 교류했던 흔적이 한줄의 시로 남아서
과거를 회상케 하는데 그 가운데 남천이 서있다.
그를 보러 내려온 사람들에게 그는 담양의 인심을 전하고 세상사의
허망함에서 찾아야 할 것들을 그 특유의 어눌하고 약간 촌스런 말투
로 꼬리를 트고 있다.
그는 현재의 삶보다도 과거의 의리와 협객들이 있었던 시대를 사랑하
는 전형적인 구시대 사람이지만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있으므로서
물질의 곰팡이 냄새나는 공간에서 모처럼의 사람 냄새를 맡을 수가
있다는데 안도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학력과 재산과 배경이 우선되는 이 살기 힘든 세상에서 이렇게 유유자
적해도 충분히 한세상을 넉넉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는 교훈을 그에게
서 발견 할 수 있다는데 큰 다행함을 가져야할 것 같다.
남천은 혼자하는 여행은 결코 하지 않는다.그는 여럿이서 하는 곳이
라면 어디든지 간다. 그리고 자신을 내색하지 않으면서 한사람과의 만
남에도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는 여럿 가운데 나도 포함된다는 가장
겸손한 자세로 한세상을 살아온 착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에게 문장이
어떻고 시가 잘됐느니 못됐다느니 어떻다드니 하는 말들은 그의 세상
을 살아가는 성실과 정직성 앞에서 침묵을 지켜야만 한다.
어쩌면 그는 전 시대에 태어나야 잘 살고 멋도 부릴수 잇는 사람같이
도 보이지만 그는 오늘을 살면서도 결코 누구 한사람을 내세워서 탓하
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광주를 중심으로 화순과 담양, 그리고 순천
등 그 고장 사람들만이 아는 정서를 전하기 위해 그는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이 그가 그 지방에서 태어나서 살아온 동안 해야
할 빚이라 생각하고 또 그것이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찌기 이탈리아의 아시시란 마을에서 태어난 성인(聖人) 프린치스코
를 존경하고 그의 삶을 닮는 것이 최선의 삶의 방법이라는 그에게서
물씬 풍기는 사람 냄새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주
기에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다. 남자도 있고 여자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여자라지만 그는 어떤 불충스런 목적을 대하고 대하지
않기에 그를 믿고 따르는 여류 시인들이 그녀들이다.호남 일대에서 내
노라 하는 여류시인들, 일테면 이명란(경당), 일죽 김명선 김재란 등
그를 오빠처럼 믿으면서 속내를 털어놓는 유일한 중년의 시인 남천,
그는 오늘도 여간 바쁜 하루가 아니다.
潭陽의 숨소리-
글/송병훈(島松)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터널은 눈길을 잠시 뺏어보지만
산자락에 앉은 원(園), 헌(軒), 당(堂),정(亭)에 당도하면
누정(樓亭)의 돌계단은 때묻은 신발 벗으라 소리를 친다
면앙정(俛仰亭),송강정(松江亭),명옥헌(鳴玉軒),식영정(息影亭),
환벽당(環碧堂)을 뒤로하고 소쇄원(瀟灑園)의 光風閣에 멎으니
세상의 추함 그대로 찾아온 것들아 죽림(竹林)이슬에 손을 씻으렴
가사문화(歌辭文化)의 보물로 송순(宋純)의 면앙정가(俛仰亭歌)
정철(鄭澈)의 星山別曲, 關東別曲, 思美人曲. 續美人曲등 18편에는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의 숨결이 절름발이 후손들 종아리를 때리네
,
죽향(竹鄕)의 선현(先賢)들이 대(竹)가 뜻하는 忠, 孝, 禮, 德, 藝와
義와信을 함께한 淸白, 節約, 배움(學), 道의 숭고한 얼의 유산을
靑竹골의 기백을 살찌울 후손에게 정성 다해 물려주라 외치고 있다
<2003. 9.15-16담양문화유적방문>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서울에서 한 선비가 남천을 만나러 가서
한 수 읊으니 그것이 담양을 잘 나타내는 한 정경이라,시도 좋고 만나
는 사람도 괜찮으나 다만 그 선비가 예수의 제자라 술한잔 없는 것이
그것이 흠인지라,그래도 술한 잔 마음에 담아 두고 추억꺼리 마련해주
고 길을 재촉하고 시간은 덧없이 또 흐르고 있다.
도송 송병훈은 얼마전에 서울에서 필자의 소개로 호형호제가 된 사람
이라 연배가 조금 위라서 서슴없이 형님으로 호칭이되는 그런 사람,
10년을 알고 지내도 흉금을 털어 놓지 못하는 야박한 인심 속에 단 1
0분을 만나 속내를 털어놓을뿐만 아니라 인생의 자초지종을 마음 열고
풀이하는 그런 형님으로 모신 것을 남천은 늘 자랑으로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다.
끝없이 펼쳐진 메타 세콰이어의 곧은 줄기 숲 아래에서 자동차는
달리고 그 안에서 바깥을 내다 보면서 새삼 세상인심의 흐뭇함을 느끼
게 해준 남천의 넉넉한 마음이 시간이 지날 수록 후덕해지는 것은 웬일
일까.
그것은 소쇄원을 비롯한 송강정, 식영정,면앙정,명옥헌, 환벽당 등
우리보다 일찍 살다간 분들의 체취가 아려서일까.남천은 바로 그 냄새
를 맡고 그 생명력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남도의 선비임에 틀림이
없다고 도송 송병훈이 형님으로 한마디 한 것이 그냥 굳어져 그의
가슴 속에 각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천이 아마도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분명히 송강정이나 환벽당,
식영정, 명옥헌 어느 곳이든지 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을 그림이 눈에
들어오는 것같아 남천의 얼굴을 다시 보니 그는 구름이 흐르는 하늘을
응시한 채 말이 없고 하늘에는 빈구름만이 얼씬거리고 있을뿐이었다.
도송 송병훈은 남천에게 "앞으로는 남천(南泉)이라고 하지 말고
담천(潭泉)이라고 호를 바꾸게"하면서 작명호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담양의 샘물이란 뜻인데 샘물이란 어디를 가도 샘물 그대로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것을 왜 모르겠는가.
아마도 남천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샘물은
치솟는 물이라서 독이 들어갈 수가 없고 샘물에 어떤 말을 붙여 놓아
도 샘은 샘이니 담천이라도 좋고 남천이면 또 어떠한가,호 많은 사람
제값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듯이 생각나는대로 부르고 그대로 받아드리
는 순수한 마음이 있기에 그는 때로는 담천이 되기도 하고 남천이
되기도 한다.송병훈의 말은 계속된다.세상에 이런 순수한 사람 만나기
여간 힘들지 않다고, 신문사 생활 30년 했지만 이렇게 질그릇처럼
투박하면서 인간미 물씬 풍기는 사람 만나 이야기 하고 여행 다니는
것도 늘그막에 여간한 행복이 아니라고,그렇다. 이해관계가 대추나무
에 연걸리듯 매달려있는 수첩 안의 그 많은 이름 가운데 아무런 직책
없이 만나도 계산하지 않는 사람 하나 가져 보는 것도 여간 좋은 것은
아닐테니까...
시인은 시로서 말을 한다. 정치인이 웅변으로 대중을 설득한다면
시인은 그의 마음이 시가 되어서 세상에 나온다. 그 시속에 담긴
어휘들이 곧 시인의 마음이라면 남천의 마음은 남의 빛이 되어
타들어가는 하나의 정성이다.그는 가톨릭 신자 이전에 이미 사랑과
평화를 몸으로 터득한 사람 가운데의 하나이다.그가 쓰는 시에는
분렬과 증오가 존재하지 않는다.누구를 헐뜯고 비방하고 비판하지
않는다.아늑한 평화가 깃들어 있는 그의 시는 그의 인생관과 맥을
같이 한다.
빛이 되어
송병완
빛은 어둠 속 바라는 소망
영원한 말씀에 생명의 빛이
정쟁과 뇌물이 판치는 세상
테러와 보복 전쟁
밀레니엄 사생결단이라
세상의 빛보다는
이웃에 빛이
자기 몸 태우는 촛불의 삶
정성껏 찾고
기쁘게 붙잡고 사랑으로 껴안아
추악한 정복일까
유혹일까
하늘에 별빛보다 작은 빛
촛불이라면
항상 당신 곁에 서 있을 거야
2001.12.24 광주 두암동 성당에서
남천은 소위 일류 시인이라는 글쟁이들이 거의 상투적으로 달고 다니
는 그럴듯한 가방끈이 그리 화려하지 않다.그리고 가방끈이 보잘것
없다고 거기에 누구처럼 무슨 최고경영자 코스 수료라든지 돈주고
얻은 것이 거의 확실한 이름 모를 외국의 어떤 대학의 박사라든가
하는 허위가 엿보이지 않는 그저 우리들의 어려운 시절에 고을에서
한두명 있을까 말까한 고등교육 출신이고 그걸 평생의 학업으로 인정 하고
있다.그러나 일찍이 서당(書堂) 생활을 하여서인지 인간에 대한 기본
적인 예의와 경우를 터득한 역시 우리 시대에 몇 안되는 경험을 갖고
있다.그 서당의 짧고 엄격하고 구시대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그는 인간
의 선과 악,
그리고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예의를 알았고 이것이 평생의 좌우명이
되는 몇자의 글귀를 선사받았다." 克我省愛가 그것이다.
<자신을 이기고 항상 성찰을 게을리 하지말며 이웃을 사랑하라>"
그는 자신의 꾸밈이 전혀없고 소박한 이력을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나는 1947년 2월 5일 전남 담양군 대덕면 문학리 184번지에서
출생했습니다.
6.25 당시 아버님은 한국청년단원이고 중부(仲父)님은 국군 사병
그리고 숙부님은 장교로 집안이 뿔뿔이 피난생활하였으나 인명
피해 한명없었습니다.
학교는 초등학교 6학년 중등교육 그리고 고등교육은 3학년 편입
졸업 하였으며
2002년도 전남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자과정 수료와 중등교육후
서당(書堂)에서
3개월에 천자문 배우고 명심보감 15페이지 읽은 경험으로 독학으로
1966년 공개경쟁시험에서 합격하여 19세에 동년 10월1일 담양군
남면사무소에 지방행정서기보 시보로 발령되어 대덕면사무소의
각 계장 그리고 1988년 담양읍사무소 산업계장 3년
1990년 담양군청으로 청소계장으로 승진하여 주민 반대를 설득하여
전국 유일한 쓰레기 매립장을 설치하였으며 분뇨처리장을 확대
시설하였습니다.
그후 관행적인 썩은 운수행정에 주민편익의 운수행정에 과감히
개혁하였습니다. 1999년 4월 양정업무 수행중 국가의 구조조정
시책에 호응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고 명예퇴직을 하였으며
동년 6월 헌법이 정한 녹조 근정포장을 수여 받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아픈 추억은 과거 관행적인 부정으로 설치된 추월산
케이블카에 의해 관리소홀로 구속위기에 처했으나
대법원에서 무죄로 입증 받았습니다.
명예를 재산으로 삼아 살아가는 깨끗한 공직을
지켰다는 것이 자랑이라면 자랑일 수도 있습니다.
18세 청소년 시기에 소매치기를 취직시켜 주어 바른길로
가도록 하였으며 존경하는 여수출신 삼은 형이 죽어 조문간바
여천 나병환자촌으로
그들과 고통을 같이 한바 있으며 소록도 나환자 방문 위로 한 사실이
있습니다, 공직당시 KBS 사랑의 삼각끈에 어머니
(어머니가 계셨지만) 한분과 소년가장 형제와 결연하여
돕다가 어머님은 새로운 남편을 만나 가셨고 소년가장은
큰아버지에게 돌아갔습니다
최근 2002년 9월 다방에 있는 고아를 몸값 500여만을 주고
빼와 데리고 살았는데 지난 7월 16일 죽을 죄를 지고 떠난다는
편지 한통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항상 "나의 생각이 삶이다" 생활 자세와
가훈은 " 克我省愛"로 자신을 이기고 항상 성찰을 게을리
하지말며 이웃을 사랑하라"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도록했습니다.
저의 자녀는 아들 셋이고 큰아들은 지금 학원에 다니며
둘째는 공인 회계사에 합격하여 국민은행에 취직하였고
막내아이는 육군 장교로 최전방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집사람은 선배의 중매로 집사람의 사촌 오빠가 전남대 총장을 역임한
최한선 교수였습니다
저는 본관이 홍주 송씨이며 시조는 고려 별시위 송계이며 2대
송문중은(고려사 공양왕편) 나주목사와 공양왕때 이색의 수제자로
이성계와 함께 조정에 벼슬하였으며 대사성에 올랐고.
12 군수 현감 등을 지낸 송구와 그 아들 물염 송정순 손자이고
선조 임금에게 올린 " 만언소"로 유명한 송제민(외종 동생 김덕령장군
사위 권필 문인)이 손자이고 송제민의 아들 송타 (임진왜란에 함평
사포나루에서 왜적과 싸우다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가다 바다에서
자진(自盡))의 손자입니다.
조선조 유미암 선생의 부인 송덕봉 할머니는 여류 시인이며
송타 할아버지 시 "강호 한정은 " 대학에서 출제 시로 유명합니다
저의 아버님은 지방자치 실현으로 60년대 초대 2대 지방 면의원을
하셨으며 숙부님은 장교로 제대하여 면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집안은 대체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청백전가(淸白傳家)
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리고 " 마로니에 샘가" 인터넷에 들어가 "시 세상 동인회" 클릭하면
송병완 창작 노트에 자료가 있습니다.
저는 2000년 8월 대한겨레문학 시부문으로 등단하여 2002년 5월 3일
"천지에서 백록담까지" 시집의 출판시 강원도 강릉 관동대학 엄창섭
문학박사 님이 시평(詩評)을하였고 책에는 최산추 선생이 시평
하였습니다.
이것이 저의 간단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의 이력입니다.>
그렇다. 그의 이력은 남들보다 화려하거나 뻑적지근한 요란함이 없는
한국의 시골 출신아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었다.그러나
그의 이력에는 인간다운 성실과 정직이 있다.그리고 눈믈이 있다.
글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의형제를 맺었다든가, 다방에 고용당해 돈이
없으면 평생 남의 노예 노릇이나 할 레지 아가씨를 5백만원을 선뜻
내어주고 빼와 데리고 있었다는것은 말로만 사랑과 자비를 뇌까리는
자칭 휴머니스트들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가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
천지(天池)에서 백록담(白鹿潭)까지
송강정이나 물염정 등 정(亭)자가 붙은 언덕위의 옛 선비들의 모임터
를 찾아가노라면 어김없이 길 양편으로 외지에서는 웬만해서 볼 수 없
는 식물이 도열이나 하듯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봄에서 부터 가을까
지 이 나무에서는 붉은 꽃이 쉴새없이 피고 한번 핀 꽃은 적어도 백일
이상 견딘다 해서 백일홍, 또는 자미(紫微)란 이름이 붙여졌다.
자미꽃이 만발한 이 아름다운 시골길, 그것은 일찌기 남천이 면에서
공무원 생활을 할때 손수 심어놓은 유적과 같은 나무요, 그 꽃이다.
그의 첫 시집인 "천지에서 백록담까지'에는 많은 산 이름이 나오고 그
산 이름에 모두 의미를 붙여 놓았다. 산을 그냥 흙과 나무로 덮힌 산이
아니라 숨을 쉬고 생각을 하는 산, 그리하여 인간의 영혼의 숨결이
박혀있는 그런 산으로 그렸고 그것이 바로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으로
서의 남천의 마음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가 가는 곳마다 뿌려 놓은 자미
나무에서 백일홍이란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듯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고 거기에서 자신의 모자
라는 영혼과 시어(詩語)를 찾고 수많은 나름대로의 어휘(語彙)를 발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미에서 백일홍이 백일동안 아름다운 꽃을 피우
듯이 그의 시를 꽃 피우려고 하는 것이다.
내연산
송병완
견훤과 놀다가 발병이 난 삿갓
무거운 몸 질질 끌고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천리길 마다하고 돌아다니다가
쌍생폭포에 선녀들과
옴 마니 반메훔 염불하네
내연산 12 폭포에서 이리 저리 뛰며
海阿縣 내연산아래 팔면보경 찾아 들고
당나라 孟浩然 시인과 어울리네
동해 바닷길 따라 돌고 돌아
푸른 파도에 끌려 갈메기와 춤춘다
지평선 넘어 쌍끌이로 오징어 몰아
만선에 불 밝히며 돌아오네
파도야 파도야 이 아름다운 추억을
내연산 보경사에 새겨놓고서
언제 다시 한번 향로봉에 올라볼까 하노라
2003년 9월 25일 내연사 보경사에서
그는 산과 들에서 시를 줍고 사람들이 모인곳에서 사랑과 평화를 줍는
시인이다.그래서 그가 눈으로 보는 모든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바닷
가에서 어부를 만나면 어부와 친구가 되고 그들의 설움과 아픔을 함께
하고 산에서 이름모를 꽃을 보면 그 꽃에다가 아름다운 의미를 선사하
는 사람,그가 남천이다.
발걸음에 시를 수놓는 사람
뒤늦게 문학이란 동네에 발을 들여 놓은 남천은 그 발걸음이 가장
바쁜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의 삶을 기뻐한다.그의 시는 그래서 삶의
기록이자 여행이면서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사랑의 교류라고 할
수 있다.
가깝고 먼곳을 가리지 않고 어디든지 문학회의 행사가 있으면 찾아다
니는 그 열성에 사람들은 놀란다.그는 문학회에서 시낭송을 하는 것도
즐겁지만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술한잔을 더 사랑하는 사람기도
하다.그의 시를 읽어보면 우선 그 장소가 매번 바뀌고 장소뿐만이
아니라 만난 사람들의 이름도 매번 바뀌고 그들과의 만남속에서 일치
를 이루려는 노력의 흔적을 언제나 흘려 놓는다.
담양의 메타 세콰이어의 곧은 길을 걷다가 불쑥 서울의 한복판에 나타
나는 그의 순박하고 어수룩한 얼굴의 모습에서 우리는 현대인의 계산
된 세련된 센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한사
람의 오래된 친구의 모습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며칠 전에 그는 한달에 한번꼴로 예정된 서울의 금천구에서 시행하는
문학회에 참석해서 또 다른 회포를 풀기도 하고 목청껏 시를 낭송하기
도 했다.
국화향기에 슬픈 추억 따라서
하나의 그림자 뿐
송병완
머물지 못하는 내 그리움이
안개아침 찬 이슬 받고
속세의 분분함이 묻어나오고
홀로 남은 허수아비
보이는 것은 허상일 뿐
함박눈이 내리는 날에는
공산만이 남는 법
아직도 늘 아픈 상처가
말로 표현치 않이 했을 쁜
어찌 홀로 서 있을 거나
댓잎에 바람타고 떨어진 이슬
떠나야 할 때를 아는
멈추어야 했던 기억들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늙은 가지 끝을 지난
세상 밖으로 밀려나 있는 곳
하나의 그림자 쁜
2003.10.11 금천 시낭송회에서
남천의 시의 특징은 자신의 시에 많은 지기(知己)를 등장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한 시대를 사는 모습을 함께 해보고 허망하기조차한
삶의 한 순간을 나눠보자는 마음이 기저에 숨어있는 것이리라.
따라서 그의 시 한편은 오늘의 기록이고 자신의 삶의 연속이고 또
그가 이웃에게 내민 손길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그것은 아래의 시를
읽어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어제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에게 재 신임과
오늘 내각 총사퇴 충격적인 발언에 대하여 일파 만파…
발목잡기의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대통령 주변의 비리와
기업체에서 한나라당 100억 민주당 그리고 대통령 보좌관에
뇌물을 주었다 한다.
주말사극 "무인시대" 에서 정중부 일당이 고려 명종에게
뇌물로 황실과 혼인하여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정치판이라..
태풍 매미가 활키고간 들판을 바라보며 가슴 아픈 수해 민들!
산천에 붉게 물들려 진 단풍으로 감추고
다가오는 15일 원주 치악산 행 준비로 일죽과 초막에 주고 받은 통화
가을 바람은 차창에서 부대끼고 있다.
시흥역에서 만난 친구 동제는 " 친구야 반갑다! 이런 모임이 없다면
언제 볼까 나?"
금천 시흥3동 동사무소 복지센터 3층에 만난 시인들!
아름다운 미소로 반겨주어 감회가 새로웠다.
제21회 금천.호암 문인협회 ,금천 시 낭송회날 머나먼 광주서 왔다고
안춘자 정은기 시인의 따뜻한 영접! 배명식 목사의 미소와
오늘 낭송 시화 그려 실내장식하고 있어 보기 좋았다.
이봉래 시인 사회로 안춘자 회장의 인사로 시작한 시 낭송은
구구 절절 인생 역정의 모습 그려냈고 사랑의 시어가 감미로웠다
이경해 한겨래문학회장, 송향섭, 이창수,최종일, 이주철, 송병완,
박연복 고문, 정연칠,남순대, 김영심, 진정해,이봉래,최지은, 배명식,
김성룡, 최미경,정은기,안춘자 순서로 시 낭송하였다.
이주철 시인은 시 낭송에 앞서 아송 윤종혁 박사의 죽음의
사연을 들려 주었다
아송 윤종혁 선생은 금년 봄 4월 20일 아침 일찍 이주철 시인을 불러
"영국에 있는 긴 여로" "어느 안내양의 A학점"
두 권의 책을 주어 받았다
그리고 오후에 3.1 빌딩에서 투신자살하였다고 한다. 사연은
알길 없으나 신문에 보도 되었다고 한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루였으며
충주 장지 가서 보니 석곽에 가묘로 써있는데 파보니
물이 콸콸 쏟아 저 왜 선생님 가는 길마저 험 란 한 인생인지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선생님은 원래 당뇨병 지병이 있어 고생하며 지금까지 살아 왔다 한다.
약력은 충북 중원군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문학과, 동교 대학원을
졸업, 한국문인협회 번영분과회장을 역임하고, 고등고시 영어
시험 위원이며, 홍익대학교 문과대학장 역임, 국민 포장 수상과
세계시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셨다.
필자 본인 등단 시에 대한 심사위원으로
호주에서 시인대회에 참석하자
하였으나 경비관계로 본인은 참여하지 못하였으나, 2002년 비안도
문학기행에 추억을 함께 하였다.
나는 " 기억에 사라질 밀짚모자" 시 낭송하면서 고인을 추모하였다
선생님의 시를 올려 놓으면
산 촌
아송 윤종혁
산딸기 머루 다래
마음껏 따먹고 뛰어 놀던
한 나절의 산마을
천둥산 박달재 아랫마을
지붕 위 빨간 고추 위로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
이제야 생각하니
늙어 가는 이 마당에
세상 사 허무 느껴
되돌아가고픈 시골 마을
느긋한 말뚜 느긋한 걸음 느긋한 마음
지금도 그 곳 산촌
물가엔 자갈 모래 여전하리니
모래무지 틩바귀 피라미
불거지 송사리 쏘가리 메기
물고기 노니는 물속
탐방구질하며
놀던 그 때 어린시절
그립구나
눈앞에 아롱거리네
잊지 못할 그리운 당신
송병완
들국화가 몸부림 치는 날
하얀 갈대 헤치며 간다
손짓하는 단풍에 미쳐
상사화가 시들어 가는 날
하얀 갈대 춤추며 간다
보고싶은 사람에 미처
하얀 구름 두리둥실 뜬 날
하얀 갈대 보듬 고 간다
아름다운 당신에 미쳐
정든 사람 보고파 가는 날
하얀 마음 안겨 주고 간다
잊지 못할 그리운 당신
2003년 10월 11일 제21회 호암 금천문인협회 시 낭송회 참석
마무리의 장(章)에서...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다.대저 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을
사는 동안 계속 이어지는 만남과 헤어짐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대략 1천 5백여명이라고 한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겠지만 우리같은 범인(凡人)
들로서는 이것도 다소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가운데서 여러경조사
에 참석할 수 잇는 사람들이 10분지 1을 잡으면 1백 50여명, 그리고
마지막 마침내 이 세상을 떠날때 영안실이나 묘소까지 찾아와서 그
친구 아깝고 아까운 사람이라면서 눈시울을 흘리는 친구가 두어명되면
아주 잘 산 인생이라고 한다는데 남천은 필자가 보기에는 그리 이 범주
에서 벗어날 것 같지가 않다.
이미 인생의 후반기에서 아직도 많은 애정을 갖고 발걸음마다에 사랑
과 정을 담아 나르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가 떠난 세상에서의 허전함
을 못참는 사람들이 이보다는 더 많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동적(動的)인 문학 정적(靜的)인 문학
문학과 인생이란 판이하게 다른 분야같지만 사실은 문학과 인생이란
한 범주 안에 공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문학이란 글을 통해
서 인생을 조명하고 그 안에서 삶의 희비애락 등을 표현하며 진정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이 아닌가.그런 의미에서 문학이란 인생의 동의어
이면서 공존의 가치를 사람마다의 가슴에 각인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생각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남 출신의 시인 남천 송병완은 좀더 특별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그는 여느 시인처럼 현란한 수식어나 현학적인
수사를 동원해서 다소 인문학에 무지한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그런 시인은 아니다.그것은 우선 그의 지난날들이 그것들을 증명해
준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다.대저 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을
사는 동안 계속 이어지는 만남과 헤어짐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대략 1천 5백여명이라고 한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겠지만 우리같은 범인(凡人)
들로서는 이것도 다소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가운데서 여러경조사
에 참석할 수 잇는 사람들이 10분지 1을 잡으면 1백 50여명, 그리고
마지막 마침내 이 세상을 떠날때 영안실이나 묘소까지 찾아와서 그
친구 아깝고 아까운 사람이라면서 눈시울을 흘리는 친구가 두어명되면
아주 잘 산 인생이라고 한다는데 남천은 필자가 보기에는 그리 이 범주
에서 벗어날 것 같지가 않다.
이미 인생의 후반기에서 아직도 많은 애정을 갖고 발걸음마다에 사랑
과 정을 담아 나르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가 떠난 세상에서의 허전함
을 못참는 사람들이 이보다는 더 많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일찌기 수많은 사람과
호형호제를 해왔으나
이해관계의 한계를 못벗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던 중
서산마루에 삿갓쓰고 휘적휘적
바쁜듯이 걷는
황혼의 나그네를 보았으니
그가 떨어뜨린 그많은 꽃잎들은
우정과 사랑과 평화의 불길로
이 세상에 다시 남겨지리니
그가 남천 송병완,
그의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평범하지만 평범치 않은
진정 사람냄새 풍기면서
한 세상을 살았노라...
끝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다 .대저 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을
사는 동안 계속 이어지는 만남과 헤어짐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대략 1천 5백여명이라고 한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겠지만 우리같은 범인(凡人)
들로서는 이것도 다소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가운데서 여러경조사
에 참석할 수 잇는 사람들이 10분지 1을 잡으면 1백 50여명, 그리고
마지막 마침내 이 세상을 떠날때 영안실이나 묘소까지 찾아와서 그
친구 아깝고 아까운 사람이라면서 눈시울을 흘리는 친구가 두어명되면
아주 잘 산 인생이라고 한다는데 남천은 필자가 보기에는 그리 이 범주
에서 벗어날 것 같지가 않다.
이미 인생의 후반기에서 아직도 많은 애정을 갖고 발걸음마다에 사랑
과 정을 담아 나르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가 떠난 세상에서의 허전함
을 못참는 사람들이 이보다는 더 많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갖는 친교의 세계를 모두 적어 넣는다는 것은 어쩌면 지면의
낭비같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조명하는 의미로 받아두는 넉넉함 또한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그가 사랑하는 지기(지己)의 명단을
올려본다.
교우 미카엘 박영묵
그레고리오 이기형
빅토리노 이영언
베드,로 김치봉
다비오 위승량
가를로 이문헌
토마스모어 마영춘
안드레아 김광한
배복순
대건안드레아 홍종권
대건안드레아 이강식
스태파노 박신규
비오 김영남
기독교 이 번 목사 시인
배명식 목사 시인
이훈식 목사 시인
심성섭 목사
스님 태원 이정모 스님 서울 정동 보국사 주지
김복님 불교 신자 서울서 부동산
신광덕 " " 자주 등산
서울 동창 전길동 유경수 김판만 김선경 이진두 김종용 이상용 이창수 시인
오완식 대령 (대전 군부 골프장 관리고장), 김종덕 댐 관리소장
장만진 이병례 박종성
광주 동창 박찬수(반부패 사무총장) 박연규, 이병규, 최정진 , 김왕수, 김경수.
이영기 선생, 천안 김원동 전교조 교사, 유진창 레미콘 전남 회장,
박종율 소방경
시골 이주하 박정현 김판호 박판주 김옥중 김길용 송증효 정병현 이재웅
문성열 이교삼 김한식 김정춘 김복중 등
예술인 향토문화 이해섭 이현석 송종묵 한영호 김학근 조상열(대동문화 회장)
이재홍,김정진,문승이,박명석,양광식,양기수
전민욱(경북)조남식 등
서예 김은향 나병옥
동양화 이화자 김용관 김원용
서양화 한삼채 저은주 찬찬욱 허천석 이혜숙
사진 송창근 라규채
도예 송일근 정이석 남태윤
문인 (아는 순서) 최병권, 이종석, 이종봉,고 고서창, 고 윤종혁, 이경혜회장, 이정님
진정해, 김재란,강진규, 정공량, 대만 조용순, 안계복, 손종구, 박흥진,\
김정수, 김선희, 봉윤숙 ,김주옥, 김현진, 연인자, 곽양숙,서경애
안춘자, 이봉래,박연복, 정은기, 곽덕순,이정봉, 조윤주, 이양우, 홍천안,
전석환, 차경섭, 윤고영, 최지윤,안중원, 이창년, 진의하,권중정
김홍일, 최종일, 손옥경, 전윤칠, 최미경 남순대 등
광주 예술인 협회,김기정 김점숙, 김영관교수, 노진곤 교수, 나춘아, 백수인
신인숙, 심홍섭, 이남근, 이명란, 이인우, 이종인, 전정자, 정철웅 교수
조동열교수, 최점순, 한해련, 정양순, 유숙경, 김숙희 유미자등
산악회 이종연 (교우) 임병휘 장영환, 김인석, 김판수등 200여명
산학협동 박성수박사 박옥식 이사장 유영식 정중부교우 김채옥 교수등
저은주-정은주로 산악회에서 신현석 국이주 이기형 김청수 지차남 김종남
박종신 강태열 김용 문경규(전 담양군수) 최형식 (현 군수) 이태섭 신진호
담양향토문화연구회원 김평택 남영광 이종섭 정회원 박주환 정금연(현 군의원)
이정옥 신팔만 (남천으로 호 지어준분) 최재풍 송희자 김광훈(목사)
유영군 김정숙 송병숙 김정아 노종남 고 장용원 정승(송강 후예)
향토에 보완 경남 이도재 충북 박종대 대전 임선빈 전북 임병태 강원 유재춘
공주 이해준 교수 장성 차재호 장흥 강수의 무안 김정섭 보성 김용환
동창에 보완 거제도 김용범 춘천 정종표
후배중에서 제주 장홍환 김용 김상태 이고미 이원철 조광윤 박석주 김상종
"내 일찌기 수많은 사람과
호형호제를 해왔으나
이해관계의 한계를 못벗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던 중
서산마루에 삿갓쓰고 휘적휘적
바쁜듯이 걷는
황혼의 나그네를 보았으니
그가 떨어뜨린 그많은 꽃잎들은
우정과 사랑과 평화의 불길로
이 세상에 다시 남겨지리니
그가 남천 송병완,
그의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바램
평범하지만 평범치 않은
진정 사람냄새 풍기면서
한 세상을 살았노라...
안개 속에 찾아간 그리운 사랑
송병완
“아버지! 저는 아버지처럼 어른이 되어 죽을 때 까지 일하지 않을래요.”
만덕 초등학교 6학년 때(1959년) 고사리 손으로 호롱 등불을 들고 아버님을 부축하여 집에 모시면서 동내 앞 중보를 건너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1966년 19살 나이로 공개경쟁 지방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남면에서 신규 공무원으로 발령받아 담양군청에서 32년 7개월 봉직하여 지방행정 사무관으로 명예퇴직 하였다. 남의 집 행랑채로 네 번이나 이사하면서 전전 살아왔다.
1978년 국가에서 취락개선 마을 사업 추진에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갖게 된 것이다. 살고 있는 집은 집사람 명의로 등기하여주었다. 이이들 교육 관계로 광주 두암 동으로 두 번 들랑날랑하였으나 공무원 봉급으로 땅을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학비에 아이들이 아빠의 심정을 알았는지 독서실에 전전하며 휴학과 휴학을 거듭하면서 큰아이는 광주대학교 환경 공학과 둘째는 서울 경희대 경제통상학과 막내는 경북 구미 금호공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삶이란 생존경쟁에 둘째 아이는 공인회계사에 합격하여 취직하였으나 큰아이와 막내 아이는 전공학과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지금까지 숱한 사연을 안고 오면서도 사랑과 행복 속에 살아왔다.
올해 인생 60에 노후에 가게안정은 부동산 밖에 없음을 다부자에 출근하면서 깨달았다. 적금통장 2천만 원과 보험 대출 일천만원으로 땅 50평에 내 인생에 마지막 도박을 한 것이다.
“여보! 나 3천만 원 도박해서 잃었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려 잘 다녀올게.”
동백나무를 쳐다보고 돌아서는 산천에 깔린 짙은 안개가 앞을 가렸다. 광주역전에서 출발한 다부자 회사 L실장과 Ch이사 그리고 Y과장은 회사차로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안개비는 세상을 바라보지 말라고 하는지 새로운 꿈속을 달렸다. 중부고속도로와 3번 국도를 타면서 신탄진 휴게소 거처 신행정 타운을 겹 눈질로 보면서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고척리 산 으로 갔다.
“지가 상승은 거리개념이 아니라 시간개념에서 이뤄집니다”
매일 반복으로 교육한 회사 Y실장의 이야기와 Ch 이사의 설명이 귓전을 적셨다. 신 이천 경찰서가 보이자 신행정 타운 으로 인식케 하였고 신 이천 IC 들어서면 좌우로 물류쎈터가 들어서고 있으며, 전원주택이 물건 주변에 배치되고 있었다. 물건 지는 일부 벌목되고 임야 주변에 임도가 둘러 있어 곳곳에 공사현장이라 개발지역임은 틀림이 없었다.
이날 나의 소개로 내려온 친구 K여사는 초, 중등학교 동창으로 오랜만에 해후한 사이였다. 그녀는 서울에서 부동산 중개사로 일명 복부인으로 나는 광주에서 부동산 탤래 마켓 회사원으로 만났다. 2005년 서울에서 실버국악제에 종합 우수상을 받은 김복님 필자는 광주이야기로 광주문화예술진흥위원회에서 아카이브 우수상을 받아 예술에는 공통점이 같아 2006년 2월 7일 그녀에게 보낸 축시를 떠 올린다.
“북한산 푸른 별로 가슴에 안기던 날
만덕의 산자락에 휘감기는 벗에 자취
당신은 박수 소리에 취해버린 꽃입니다.
하늘에 닿을 만큼 빼어난 인수봉에
월봉의 고운 숨결 꽃에 담아 받치오니
품에서 떠나지 않는 행복 가득 안으소서.
댕기 딴 산촌처녀, 어엿한 여인으로
청운에 실은 꿈을 한양천리 피우시고
제4회 실버 국악 제 종합대상 빛납니다. “
- 송병완. 제4회 실버 국악제 종합대상(자운, 김복임에게) 시 전문, 다부자에서)
안개 속에 찾아간 그리움일까
송병완
지나간 세월도
다가온 세월도 피어난 안개로다
피어오른 사랑 속에 태어나서
한줌의 흙으로 가는
만고의 진리인데
누구를 좋아했기에
안개 속에 찾아간 그리움일까
실버에
고사리 꿈속에
황혼의 꿈에도 사랑과 행복위해
가슴으로 안고 싶어 살아 왔어
흐르는 물처럼 사는
인생의 여정에서
당신을 그리워하며
사랑 속에 한줌의 흙이 되고파라.
영원히
2006년 2월 14일 경기도 이천에서
황혼의 땅 구경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