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랑 형상시 2집 원고.hwp
서정랑 형상시 2집 원고
운명
나는 어릴 때 다리 절룩이는 앉은뱅이 이발사 뒷집에 살았다
손님이 오면 이발사는 높은 문턱을 넘어 면도거품을 만들러 샘가에 갔고
나는 넘어질까 조바심하며 보고 서있었다
이발소 유리창은 이미 깨져 있었고 꽃무늬 내어 문종이 오려 붙였지만
온전히 될 수는 없다는 걸 이미 안 나는 처절히 절망했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으며 이발사의 온전한 다리가 될 수도 없었다
어느 날 이발사는 늦장가를 갔고 나는 더 이상 높은 문턱과 깨진 유리창을 조바심으로 볼 필요가 없었다
이발소 흙담벼락 뾰족뾰족 튀어나온 볏짚이 날 무뎌진 칼날의 날을 좌우로 문질러 주었다
흙담이 서서히 갈라지는 순간에도 내 키는 쑥쑥 자라고 있었다
봄
동백꽃 봉오리에 발그레 내 발은 부었다
몇 달 전부터 뻣뻣이 피 몰린 정강이
제대로 뻗칠 수 없는 다리 탓에 밤새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하던 나무
수술 노란 동백꽃이 양말 속으로 숨어들어와 발가락을 꽉 깨문 것이다
잘 씻은 미나리에 삼겹살을 꾹 꾹 삼키는 밤에
더 이상 부을 수 없는 꽃봉오리는 두둑두둑 떨어졌다
봄은 그렇게 발끝부터 붉어 오는 것인가
겨울이 남긴 상처를 난 툭툭 걷어 차야한다
카카오톡
요람 걸린 화면에 별 하나 떴다
(어머니 금일 별세)
열 두 시간 야간근무 후 아침 퇴근한 오퍼레이터가 보낸 것
시립의료원 상주 누구누구 금일 별세 삼단 조의화환 주문하고
부의금 걷어 문상 가려는데
느닷없이 번쩍 카카오톡 다시 떴다
(문상사절)
사연인 즉
아침 별세가 아니라 며칠이 지나 오늘 발견된 고독사였다는 것
(주문 감사합니다)
요리조리 엉덩이 흔들어대는 꽃집 아줌마 이모티콘
누구나 몸뚱이 썩는다는 냄새로 돌아온 답례인 듯
귓속 고인돌 같은 이석으로 종일 나를 흔들었다
배달된 꽃이 몸의 고독을 닦는 소리가
카톡카톡 손톱 깎는 소리처럼 들렸다
항변
아이구야
아파트 공동 음식쓰레기통 열었더니
조기 한 마리 눈알 부라리며 쏘아 본다
구정 제사상祭祀床 올랐던 조기인 듯한데
냅다 처박혔다
어느 집 며느리가 버린 자존심일까
눈알 부라린다고 명문 가문 되나
처박혀 있어도 동그랗게 뜬 눈
그래 어쩌라고
첫댓글 배달된 꽃이 몸의 고독을 닦는 소리가 카톡카톡 손톱 깎는 소리처럼 들렸다
정말 잼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