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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보다 향기에, 메시지보다 형식미에/임영조
나의 시쓰기는 한 그루의 꽃나무를 가꾸는(또는 묘사하는) 작업에 비유된다. 내게 있어서 시란 나의 현실적 삶과 사물에 대한 감응을 뿌리로 하되, 골격은 언어에 있고, 시의 향기는 복잡한 유추과정을 거쳐 정제된 이미지에서 우러난다는 아주 보편적인 상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한 그루의 꽃나무를 심고 가꾸는 행위는 개인의 주관적 구도행위에 불과하지만 그 나무를 가꿔 꽃을 피워내면 그것은 주인의 손을 떠나 객관화된다. 바꾸어 말하면 시를 쓰는 행위는 시인의 자발적인 몫이지만 완성된 한 편의 시는 독자의 몫이 된다. 따라서 한 편의 시가 독자의 심금을 울리려면 우선 꽃이 아름다와야 하고 향기는 그윽해야 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감칠맛 나는 열매도 맺어야 한다. 향기가 없고 꿀이 없는 꽃에는 벌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 편의 시쓰기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꽃나무를 가꾸듯 혼신을 다해 꽃을 피워내고 독특한 향기로 미지의 세계를 향해 진한 감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러기에 나의 시쓰기는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품게 하는'데 주력한다. 즉 이미지(꽃)와 상상력(향기)에 역점을 둔다는 말로 환언할 수 있겠다.
시란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느낌만을 표백해 내거나 현실적 삶을 단순히 스케치해 내는 것이 아니라 '조화된 아름다움'을 제공해야 한다. 자신의 오감에 감지되는 모든 사물과 현실을 소재로 하되 관념과 형이상학의 세계가 아닌 일상생활과 정서생활이 어우러져 창조성을 높이는 재현에 있다 하겠다.
그래서 나는 흔히 내가 처한 일상의 매듭이나 자연현상을 매개로 직설적 구조와 비유적 구조로 오버랩시켜 양자의 동일성을 발견하거나 파괴하는 형식을 취해 왔다.
다시 말하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소재에서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인식내용을 판독해 내는 시가 가장 바람직한 시라는 소신을 견지하면서 그러한 시쓰기를 실행에 옮겨 보고자 노력해 왔다.
흔히 접하는 자연현상, 즉 식물·동물·물건 등에서 얻어지는 직관이 시의 소재를 이루는 가운데 비유·연상·유추를 통해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를 거듭 반문하고 성찰하는 내면탐구도 병행해 왔다. 나의 존재와 더불어 타자인 사물에 감춰진 비의와 우주적 신비를 새로운 눈으로 읽어냄으로써 내가 속한 현실과 대결하기 위한 구도행위로 승화되기를 갈구하였다.
나는 우리 시의 맥을 이어온 전통적 시를 서구 모더니즘의 난해성을 빙자하여 고의로 파괴하거나 비약이 지나친 메타포의 잦은 남용과 우회적 진술방법으로 독자를 무시하고 더 나아가 결국엔 자신까지 기만하는 투의 시쓰기를 기피해 왔다. 평이한 언어와 간결한 구문으로 시의 전달 기능과 공감효과를 높이기 위한 화법 구사에 치중해 왔다.
시를 쓰는 일은 곧 세상을 살면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 사물을 시인만이 갖고 있는 프리즘을 통하여 언어적 구조물로 형상화시키는 작업이라는 정의 아래 시는 내용보다 아름다움이, 메시지보다는 형식미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삶과 늘 접하게 되는 사물에 대한 직관과 치열한 언어미학 탐구를 통해 그것이 나의 시 속에서 어떤 현상으로 전이되고, 어떤 빛을 발하는지 시험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나의 시는 생성되었다. 그러기에 내가 쓴 한 편의 시는 내 현실적 삶의 직설적인 기술이 아니라 그 진동에 의해 증폭되는 내 영혼의 고조된 고백이며,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이웃에게 삼투하기 위한 표현 욕구라 하겠다.
때문에 나는 내 시가 진솔한 고백 자체로서 공명되길 소망할 뿐 현실 참여로 사회개혁에 이바지할 수 있다거나 우리네 삶의 방향을 거창하게 제시해 주는 교시난 사상 같은 독선을 의도적으로 도입하지 않는다. 하나의 조화된 질서와 미학적 세계가 응축된 한 편의 시에서 음미할 수 있는 철학이나 사상은 독자 스스로 읽어낼 몫이고 즐거움이지, 시인의 의도된 계산으로 전달되는 메시지가 아니라는 자의에서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칠팔십년대에 민중의 이름으로 만연시킨 상투적 외침과 허위의식으로 포장된 목소리가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던가를, 서구 모더니즘의 아류들이 실험시라는 미명 아래 구가해 온 허장성세가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던가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독자의 감수성을 일깨우기보다 목적의식이 강한 시, 인생론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알량한 지식으로 위장된 시, 경악과 충격적인 언어로 모자이크된 난해시들이 얼마나 많은 독자를 어리둥절케 했고, 외면하게 했는가를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 시가 위상을 잃고 사회 일각의 문화적 장식품으로 치부된 채 관심권 밖으로 자꾸만 소외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지켜보면서 시인 스스로의 책임 또한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시인이라고 해서 현실적인 상황이나 사태, 시대적 조류나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도 없지만 둔감할 필요도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인 자신의 현실적 삶과 시의 소재나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그 존재를 수용하고 또 한편 대결하면서 언어에 대한 애착과 함께 보다 신선한 감동으로 미지의 세계로 삼투하려는 화법을 구사하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시란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웃과 함께 나누는 감흥이며, 아픔이며, 열정과 정서이며, 언어의 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의 효용을 전제로 하고 내 시쓰기에 대한 시론을 정리하자면, 이웃과 대화를 트는 데 있고, 그 화법은 보편적인 소재로 친숙감을 느끼게 하고, 개성적인 발성법으로 감흥을 이끌어내려는 소망에 있다.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화법은 무엇일까? 이는 누구나 알아듣기 쉽고, 독특한 언어구사에 있다. 물론 시의 언어와 일상적인 대화의 언어는 다르다. 일상적인 언어는 단순히 전달기능만 수행하고 소멸하지만, 시의 언어는 전달기능과 함께 계속 존재하는 언어다. 시인을 일컬어 '언어의 연금술사'라 하지 않던가. 이 말이 과연 유효하다면 시인은 언어를 골라 쓰는 솜씨가 누구보다 탁월해야 한다. 아무한테서나 들을 수 있고,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이면서 애정과 진실성이 돋보이는 언어, 전혀 대체할 말이 없을 만큼 용도가 분명하고 필연적인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왜냐면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되 일상적이 아닌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시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시쓰기는 일상어를 시어로 환치하는 작업과 함께 사물의 속뜻을 새로 읽어내는 일, 그리고 복잡하고 미묘한 내부의 경험을 외부로 전달하려는 표현욕구로 요약할 수 있겠다.
앞서 말한 내부의 경험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시를 쓰면서 재생해 내는 제2의 경험이다. 이 경험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시인 누구나 겪어 내야 할 법칙일 것이다. 한 편의 시를 쓰면서 서서히 전이되는 제2의 경험은 이미 나의 내부에 잠재된 또 다른 경험과 인식이 충돌하고 혹은 융합하여 새로운 창조물로 진화되는 것을 발견하는 쾌감을 맛보게 된다. 그 쾌감 때문에 나는 아직도 이 고통스런 시쓰기를 거듭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다음으로 비중을 두는 것이 사물의 속뜻 읽기다. 다시 말해서 사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자유로운 연상작용으로 넓은 이미지의 세계로 이끌어가기다. 시인은 늘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물 안에서 여러 가지 특이한 것, 복잡한 것,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다. 만물은 타자에 의한 관념과 인식의 허물을 쓰고 있다. 이를테면 '민들레꽃', '제비꽃'이라 지칭되는 꽃이름과 '까마귀', '소쩍새'라고 지칭되는 새이름은 그 존재의 의향과 상관없이 타자에 의해 입혀진 허울들이다. 그 허울을 벗겨내고 직관과 연상·유추·비유를 통해 상상의 공간을 넓혀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입혀 주는 것이 시인의 의무일 것이다. 왜냐면 시의 독자는 단순한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체험이나 감정을 통해 새로운 존재의 의미를 찾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고,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 하는 참으로 구구하고 까탈스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늘 시의 향기에 주력하는 시쓰기를 이십여 년 동안 계속해 왔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내 시를 통해 시의 향기를 스스로 맡아 본 적이 없다. 그런 불만과 욕구 때문에 나는 쓰고 또 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임영조 시론
형은 말의 톤을 높인다, 문창과의 시는 창작하는 시인이 가르쳐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작품에 서정을 기본으로 한 서사적 구조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라티우스의 ‘(독자에게) 깨어쳐 주는 일/즐거움을 주는 일/또는 그 둘을 겸비하는 일’이 시인의 몫이라는 그의 시론은 더욱 간명하다. ‘좋은 시인이 되려면 좋은 시 300편을 암송하고 200편을 쓰고 100편을 퇴고하라’는 절대 주문을 한다. 요즘 문청들의 잘못은 시류에 편승하기에만 급급하지 다른 시인의 훌륭한 시를 깊이 읽지 않음에 있다며 흥분한다. 그러고도 어찌 ‘언어미학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겠는가. ‘시란 무엇인가’와 ‘생은 무엇인가’는 동격이란다. 나는 술을 기피하고 형의 낯은 열이 뜨기 시작한다. 그는 거듭 시 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갈파한다. 시집 4권을 내고 이미 유명해진 영조 형을 보면 나는 부끄럽다. (그치만 푸른 공기를 나의 폐에 심자! 심장에 팍, 팍, 꽂는 일부터 하자꾸나.) 형은 문학적 알레르기가 하나 있다. 1)종교적 엄숙성, 2)철학적 심각성이 주는 폐해가 못마땅해서 못 살겠단다. 시란 보편적인 삶터에 있다, 시란 발성·발화법이 특이해야 한다! (이건 형식주의자들의 자기 목소리요 낯설게 하기 아닌가.) 이게 영조 형의 구호다. 평범하나 비범하다. 형은 오직 혼자 쓰고 혼자 읽고 혼자 생각하며 터득하려고 애쓴다. ‘지식의 과시’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이성으로 독자를 설득하려 들지 말고 진솔과 정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힘쓰라, 임영조 형의 역설이다. 구닥다리지만 공자의 ‘思無邪’를 아직도 건드려대는 임 시인이다. 시인은 발표하기 전에 <시의 효용론>을 생각하잔다. 아하, 그래서 형이 ‘욕망의 분출이 곧 시는 아니다’고 했구먼. 효용이란 곧 가치일 텐데, 모든 시에 반드시 가치를 부여하라는 주문은 조금 생각할 점이 있지 않을까. 혼자 술에 익은(?) 형이 깨면 좀 물어봐야겠네.
‘문학은 진실로 진실해야 한다.’ 형의 말이다. 소월시문학상 수상식에서 낭송한 소감에서 ‘내가 이제까지 본 나는 이미 녹슬고 고장난, 그래서 작동이 뻑뻑하고 불편한 로버트’ 같았다고 형은 실토했다. 일상이라는 ‘마음의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을 생각한 데서 형의 새로운 시작詩作은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詩作을 하고 명상하는 동안 어느덧 종교심이 생겼다. 비록 미사에 잘 참여하지 못하지만, 현재 카톨릭 문우회원이기도 하다. 시업이 종교보다 앞선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앞으로 형은 시 쓰다가 힘이 부치면 삶의 중심축을 신앙생활에도 충실하겠단다. 그는 이렇게 말을 접었다. ‘시인 임영조’란 명함이 매우 좋다고, 진정한 프로가 되고 싶다고. 그렇지요, 내 경우도 평소에 ‘시를 쓴다’가 아니라 ‘시를 한다’는 믿음을 확연히 갖고 있는데. 그렇다, 시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 그 자체다. (김강태 커버스토리에서 발췌)
이 글을 쓴 김강태 시인과 임영조 시인은 2003년 5월 28일 같은 날 별세했다
새해를 향하여 / 임영조
다시 받는다
서설처럼 차고 빛부신
희망의 백지 한 장
누구나 공평하게 새로 받는다
이 순백의 반듯한 여백 위에
무엇이든 시작하면 잘될 것 같아
가슴 설레는 시험지 한 장
절대로 여벌은 없다
나는 또 무엇부터 적을까?
소학교 운동회날 억지로
스타트 라인에 선 아이처럼
도무지 난감하고 두렵다
이번만은 기필코......
인생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물 / 임영조
무조건 섞이고 싶다
섞여서 흘러가고 싶다
가다가 거대한 山이라도 만나면
감쪽같이 통정하듯 스미고 싶다
더 깊게
더 낮게 흐르고 흘러
그대 잠든 마을을 지나 간혹
맹물 같은 女子라도 만나면
아무런 부담 없이 맨살로 섞여
짜디짠 바다에 닿고 싶다
온갖 잡념을 풀고
맛도 색깔도 냄새도 풀고
참 밍밍하게 살아온 生을 지우고
찝찔한 양수 속에 씨를 키우듯
외로운 섬 하나 키우고 싶다
그후 햇빛 좋은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증발했다가
문득 그대 잠깬 마을에
비가 되어 만날까
눈이 되어 만날까
돌아온 탕자의 눈물이 될까.
고도(孤島)를 위하여 / 임영조
면벽 100일!
이제 알겠다, 내가 벽임을
들어올 문 없으니
나갈 문도 없는 벽
기대지 마라!
누구나 돌아서면 등이 벽이니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마음 속 집도 절도 버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귀양 떠나듯
그 섬에 닿고 싶다
간 사람이 없으니
올 사람도 없는 섬
뜬구름 밀고 가는 바람이
혹시나 제 이름 부를까 싶어
가슴 늘 두근대는 절해고도(絶海孤島)여!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가서 동서남북 십리허에
해골표지 그려진 금표비(禁標碑) 꽂고
한 십 년 나를 씻어 말리고 싶다
옷 벗고 마음 벗고
다시 한 십 년
볕으로 소금으로 절이고 나면
나도 사람 냄새 싹 가신 등신(等神)
눈으로 말하고
귀로 웃는 달마(達磨)가 될까?
그 뒤 어느 해일 높은 밤
슬쩍 체위(體位) 바꾸듯 그 섬 내쫓고
내가 대신 엎드려 용서를 빌고 나면
나도 세상과 먼 절벽섬 될까?
한평생 모로 서서
웃음 참 묘하게 짓는 마애불(磨崖佛) 같은.
산나리꽃 / 임영조
지난 사월 초파일
산사(山寺)에 갔다가 해탈교를 건너며
나는 문득 해탈하고 싶어서
함께 간 여자를 버리고 왔다
그런데 웬지 자꾸만
그 여자가 가엾은 생각이 들어
잠시 돌아다보니 그 여자는 어느새
얼굴에 주근깨 핀 산나리가 되어
고개를 떨군 채 울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또
내가 사는 마을까지 따라와
가장 슬픈 한 마리 새가 되어
밤낮으로 소쩍소쩍
비워둔 내 가슴에 점을 찍었다
아무리 지워도 지울 수 없는
검붉은 문신(文身)처럼 서러운 점을.
임영조(1943~2003)-충남 보령 출생. 서울 대동상고에 입학했으나 중퇴하여 서울전신전화국 토목공사장 급사로 일하며 5년만에 고등학교 졸업.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고향 주산중학교 때 지리교사인 신동엽 시인을 만나 시작 수업하였고, 1970년<<월간문학>> 신인상에 '출항'이 1971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목수의 노래'가 당선되어 등단. 서라벌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시집 <바람이 남긴 은어> <그림자를 지우며><갈대는 배후가 있다><흔들리는 보리밭>
추모시집 <귀로 웃는 시인 임영조>
* 얼마나 후회했으리.
남자나 여자나 사람을 함부로 버릴 일이 아니다.
산나리꽃으로 피고 소쩍새로 울며 따라다니는 것을.
지워도 지울 수 없는 검붉은 문신처럼 서러운 점이 가슴에 찍히는 것을.
시인은 갔다.
그도 어쩌면 소쩍새가 되어 골골마다 다니며 서러운 점을 누군가의 가슴에 찍으며 울고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니 그도 산나리꽃이 되어 먼저 핀 산나리꽃과 나란히 서 있으리라.
갈대는 배후가 없다
(임영조)
청량한 가을볕에
피를 말린다
소슬한 바람으로
살을 말린다
비천한 습지에 뿌리를 박고
푸른 날을 세우고 가슴 설레던
고뇌와 욕정과 분노에 떨던
젊은 날의 속된 꿈을 말린다
비로소 철이 들어 禪門에 들 듯
젖은 몸을 말리고 속을 비운다
말리면 말린 만큼 편하고
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
<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
성성한 백발이 더욱 빛나는
저 꼿꼿한 老後여!
갈대는 갈대가 배경일 뿐
배후가 없다, 다만
끼리끼리 시린 몸을 기댄 채
집단으로 항거하다 따로따로 흩어질
反骨의 同志가 있을 뿐
갈대는 갈 데도 없다
그리하여 이 가을
볕으로 바람으로
피를 말린다
몸을 말린다
홀가분한 존재의 탈속을 위해
<문학사상사, 『1993년도 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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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욕정과 분노에 떨던
우리들 젊은 날의 꿈은
언제쯤에나 마르게 될까요.
말리면 말린 만큼 편하고
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
<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의 경지는
과연 얼마만큼이나 나이 들어야 다다르게 될까요.
바람과 외로움을 이겨낸
그 꼿꼿한 노후가
더 없이 우러러 보이는,
갈대의 계절입니다.
끼리끼리 몸을 기댄 채 스스로가 배경일 뿐
배후가 없다는 갈대가
왠지 남의 말 같지가 않은,
가을입니다.
동백꽃 패설 / 임영조
법당 앞 돌계단 사이에 두고
어린 동백 두 그루 마주 서 있다
새파람 잎들이 공양 받은 햇살을
키질하듯 살랑살랑 까분다, 금새
분분한 소문 같은 금빛가루 부시다
그 무슨 法問법문을 주고 받길래
온통 벌개진 낯으로 키들거릴까
얼마나 솔깃하고 귓맛이 나면
노란 목젖까지 다 보이도록
꽃술을 활짝 열고 자지러질까
용맹 정진하라, 땡그렁!
아니면 파계하라, 땡그렁!
부연 끝 풍경이 수시로 경을 쳐도
동백꽃은 한사코 입 다물 줄 모른다
참 농후하고 불경스런 수작을
불당에서 내내 내려다보는
부처님도 손들고 조용하시다
저 철없이 고운 沙彌사미들 돌연
옷 벗고 정말 파계하면 어쩌나
절 버리고 혹 내게 오면 어쩌나
걱정이 앞서고 가슴 설레는
볼수록 낯뜨겁고 황홀한
동백꽃 패설
<시와 사람> 2000.가을
느티나무타불-임영조
임영조시인(1943- 2003)
충남 보령 출신인 임영조 시인은 중학교 시절 지리교사로 부임한 신동엽 시인을 만나 문학공부를 시작해 서라벌예대를 거쳐 1970년 「월간 문학」 신인상과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잇따라 당선되며 등단했다.
1985 제1시집 [바람이 남긴 은어](고려원)
1988 제2시집 [그림자를 지우며](현대문학사)
1992 제3시집 [갈대는 배후가 없다](세계사)
1997 제4시집 [귀로 웃는 집](창비)
2000 제5시집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민음사)
2003 제6시집 [시인의 모자](창비)
시선집 [흔들리는 보리밭](문학사상사,1996)
1989 제23회 잡지언론상(기업 사보 부문) 수상
1991 제1회 서라벌문학상 수상(시 <환절기>)
제3시집으로 제38회 현대문학상 수상
1995년도 제9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고도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