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 치하의 강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카포 Kapo라는 신분이 있습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수용소 내의 유대인들이 집결했을 때 그들 앞에서 점호하는 사람들이 카포입니다. 그들은 다른 수감자와 같은 수감자 신분이지만 약간의 특혜를 받는 대신 SS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다른 수감자들을 직접적으로 통솔하고 행정 사무를 처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들은 수감자들의 동태를 파악해 일일이 나치들에게 보고합니다. 수용소 내의 유대인 경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치들은 노랑머리의 백인들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아담의 후손들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아누나키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아담의 후손들보다 훨씬 우월한 종족이므로 그들이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을 비롯한 수감자들을 ‘말을 할 줄 아는 가축’과 다름없는 존재로 인식해서 수감자들을 직접 통솔하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므로 다른 수감자들을 이용해 그들을 통솔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 그런 제도를 두었답니다. 빅토르 프랑클 박사의 체험수기에도 등장하는데 그들은 급식을 담당하며 몇 알의 강낭콩을 더 먹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립니다. 일제강점기 때의 일제 앞잡이와는 다릅니다.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극한의 상황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안에는 이런 카포의 자리를 탐내는 심리가 늘 도사리고 있지요. 몇 알의 강낭콩을 더 먹기 위해 곁엣사람을 감시하고 배신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공동체 안에서 윤리와 도덕을 지키지 않으면 모두에게서 외면당했지만, 도시 유목민 사회인 오늘날에는 공동체라는 개념조차 의식하지 않고 살기에 그런가 봅니다. 허긴 가족공동체조차 깨지고 있으니 더 뭐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