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10시경에는 도심의 거리는 한산했다.
저녁 한일전 축구경기가 열려 TV 앞에 모여 열광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 더 깊이 국민들의 얼굴에 시름을 안기게 하는 경제지표의 하락
속에 열리는 한일전 축구는 분명 국민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 시간임
에는 틀림이 없으리라.
내가 산악회에 회원이 되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3년전 제주도에서 잠시 머물면서 한라산 겨울 산행을 하고 있을 때,
백록담을 오르고 관음사 코스로 접어들어 용진각에 이르렀을 때,
20명이 되는 회원들이 도시락을 먹고 있어 서울에서 온 자연인이라
나이차이를 넘어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산행을 같이하여 제주시 탑동에서 뒷풀이까지 합류하여 회원이
되었고, 꾸준히 산행을 하였었다.
최근에는 소설을 쓰느냐, 여행사 일을 하느냐 바뻐서 자주 회원들과
산행을 하지 못하고 지난주 연인산에 참석하지 못하고 이번 소백산에
산행하게 되었다.
소백산 겨울산행의 즐거움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자연의 산천초목은
산새들과 나무들이 인고의 시간을 기다려 왔던 소망대로 봄 속에 펼쳐
지는 대자연의 장엄함을 연출했던 것이다.
눈이 소복히 쌓였던 지난 겨울, 어둠을 헤치면서 전등이 필요없을
만큼, 달이 우리의 갈길을 환하게 비추었을 때, 우리는 자연의 변화에
두려움을 느꼈다.
하늘을 보면 세찬 바람에 밀려 지나가는 검은 구름이 이따금 달을
감추었고, 산허리를 타고 불어오는 강풍은 산행하는 우리들이 몸을
옆으로 밀고 있었던 지난 겨울.
매서운 추위와 강풍 속에서 이마에 흐른 땀을 닦자 마자 추위가 바로
스며들어 한기를 느껴 바로 배낭을 매고 비로봉으로 향했던 그 스릴
있었던 겨울산행.
세찬 바람을 막아 주는 비로봉 아래에서 커피를 끓이고 나무가지들이
솜으로 감싼듯 주위를 온통 하얀 세상을 연출함에 즐거워하면서 시려오
는손을 호호 불면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술을 따라 돌려가며 마셨다.
몸에 열기를 불어 넣으며 눈썹과 모자에 달라붙은 눈을 보고 화장했다
고 자신의 모습은 모르고, 서로를 가리키고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해
깔깔거리며 즐거웠던 겨울 소백산 산행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후미의 도착을 기다려 비로봉에 오르자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의
강풍과 눈바람에 일출을 보지 못하고 연화봉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몸의 중심 잡기에 안간힘을 쓰던 그토록 사납던 소백산이었던 것이다.
푹푹 빠지는 백설을 걸으며 가파른 희방사로 내려왔던 그 소백산이
지금은 초록색으로 온 산을 덮었고, 마치 페르시아 카페트를 깔아
놓은듯 했다.
죽령으로 산행을 시작하려다 엊그제 비가 와서 희방폭포를 보기 위해
희방사 산행으로 변경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하늘에는 이루셀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내려다 보며 반겼고, 우리는 별들이 이렇게 초롱초롱하게 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 그토록 많은 별들이 이곳으로 다 모인것
같아 더욱 놀랐던 것이다.
희방사를 향해 깨끗이 포장된 길을 오르며 언제였던가 이길은 비포장
도로 였는데... 생각하면서 올랐다.
이윽고 희방사 앞에 이르자 웅장하게 내리쏟는 희방사 폭포 줄기를
보면서 그 굉음이 나로 하여금 생각하게 했다.
우리의 국력이 저처럼 그칠줄 모르게 왕성했으면 하고, 모든 분야가
저처럼 다이내믹하게 용솟음 쳤으면 얼마나 좋을까?
몇개 안되는 수출상품에 의존하는 우리의 능력, 아주 민감하게 미국
경제의 지표에 희비를 하여야 하는 우리의 경제의 한계가 생각났다.
어쩌면 희방사의 스님들은 부처님에게 우리의 부국강병을 기원하며
부처님 앞에서 목탁을 두르리며 기나긴 세월동안 기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여겨졌다.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굉음과 물보라를 받으며 철계단을 올라 희방사
앞에서 잠시 멈춰 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나는 후배의 부름에
사색에서 깨어나 능선을 향하여 갔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하늘은 밝아져왔고 별들은 내일 밤을 기약하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능선에 오르자, 해가 떠오르고 저멀리 산능선에서 빨갛게 타오르며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해가 다 떠오를 때까지 감동과 신기함 속에서
바라 보았다.
천문대에서 이르자 천동리 방향의 산자락에 펼쳐져있는 운해를 보며
다시 대자연 만이 연출할 수 있는 장엄함을 가슴에 담으며 연화봉으로
향했다.
산능선에 있는 천문대는 마치 요술나라를 보는듯 했다.
싱그러운 초원에 세워져 있는 천문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건물이 되었던 것이다.
연화봉에서 내려다 본 소백산은 다른 산과는 달리 바위도 보이지 않고
어쩌면 그렇게 모든 봉우리를 초원으로 변할 수 있는지 새삼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능선을 따라 비로봉을 향하여 능선을 걸으며 기암괴석이 없는 소백산
산은 마치 여자의 몸처럼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였다.
비로봉 아래 헬기장 옆에는 철쭉군락이 펼쳐져 있었고, 초원 위에
우리는 모여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산허리를 감싸앉고 얕은 산봉우리만을 남긴채 퍼져있는 운해와 피어
있는 철쭉의 향기를 맡으며 즐거운 식사를 하고 정상주?를 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저앞에 국망봉이 우리를 손짓하며 부르고 있었고, 사방에 펼쳐진 초원
은 다른 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그토록 세차게 불던 겨울 바람은 어디로 갔는지 없었고, 내리쬐는 태양
만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나무그늘로 이어지는 능선을 걸으며 왼쪽과 오른쪽에 펼쳐진 초원으로
덮은 산세를 감상하면서 걷는 즐거움은 아마 소백산이 갖는 특성이리라
국망봉에 이르러 시들어 가는 철쭉군락을 보면서 내년을 기약하는
자연의 약속을 우리는 생각해야 했다.
초암사로 내려가는 푯말을 보고 잔디 위에 앉아 통나무로 지어진 산불
감시초소는 더욱 운치가 있는것은 아마 초원 위에 세워져 있기에 더욱
그랬으리라.
구인사로 내려가 우람한 절을 봐야 했지만, 폭우로 산사태가 나서 길을
덮어 공사중이라 아쉬움을 남기며 초암사로 향했다.
내년 이맘 때에 철쭉이 피기 까지는 초원으로 만들었던 나무잎들은
형형색색 울긋불긋하게 단풍이 되어 또 다른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며, 다시 낙엽이 되어 떨어져버린 나무들은 앙상한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하자, 슬픔이 밀려오는 것은 왜일까?
모진 추위와 바람 속에서 하얗게 내리는 눈을 받으며 가지에 내려 얼어
설화를 만들고 봄을 기다리며 인고의 시간을 갖는 나무의 일생을 생각
하자, 우리의 삶도 어쩌면 나무의 숙명과 같은 슬픔을 갖고 있다고
여기며 계곡이 아름다워 퇴계 이황선생이 죽계구곡이라고 이름을 지웠던
우렁찬 계곡의 물소리와 커다란 바위들을 보고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