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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자료 스크랩 안동 양반 가옥 답사기
이장희 추천 0 조회 116 14.07.30 17: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번엔 우리 나라 유교의 중심지를 따라 답사하기로 했다.

늘 6월 5일이 후X님이 나온 학교의 개교기념일인데
(왜 학교의 개교기념일은 3월1일이 아닐까요?) ㅎㅎㅎ

올해는 토욜 오후부터 화욜까지 3박 4일 황금 연휴이다.

멀리 갈까하다가 가까이 안동을 가기로 했다.



조선이 유교를 국시로 삼았지만

실제로 불교를 물리치고 유교를 하나의 종교로까지 승화시킨 사람은 퇴계 이황 선생이다.

세종 때도 궁궐 안에 사찰이 있었으니

신라 천 년을 이어온 불교가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는 않았을 게다.

여하튼 당시에 국가의 근본 질서를 유교(특히 성리학)로 마무리한 사람은 분명 퇴계였다.



그 유명한 기대승과의 4단 7정론의 토론은 당시 동양의 큰 이슈였다.

조선에서 사신이 오면 중국의 유학자들은

이번에 기대승의 반론에 퇴계가 어떻게 답했는가를 제일 먼저 물어보았다고 한다.

근데 재밌는 것은 그 당시 퇴계라고 하면 최고의 유학자이요,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권위의 상징인데,

새파란(26살 아래) 기대승이라는 신인이자 논적을 철저히도 인정하고 논쟁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인품이 오히려 더 높게 평가되고 있다.

물론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고.



또 더 재밌는 것은 유학자인 그가 문학자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2,000수가 넘는 시를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게다.

시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으니 소개는 생략.



우리의 답사는 퇴계로부터 시작했다.

처음 너무도 유명한 ‘도산서원’

-15년 전만 해도 여학생은 들어가지도 못했던 곳

인제는 반바지 차림도 들어갈 수 있으니 이건 발전일까?

여하튼 도산서원을 거쳐 퇴계 종택과 퇴계 태실을 찾아갔다.

이번 답사의 주테마는 종가집이었다.

그것도 퇴계를 중심으로.





퇴계의 많은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제자 2명은 학봉 김성일과 서애 유성룡이다.

학봉은 임진왜란 전 일본으로 사신으로 갔다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고한 인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때 그 사건을 단순히 당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직도 식민사관의 잔재라고 생각한다.

그는 바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전쟁 중 자신의 아내에게 언문으로 편지를 쓸 정도로 다정 다감한 사람이었다.



때마침 학봉 종택을 찾은 다음날이 학봉의 제사였다.

불천위 제사라 구경할 만하다 생각하여 참관하려 하였으나 밤 12시 반이 지나서 지낸다고 하니 포기할 수밖에......그래도 그때까지 안 자면 가기로 맘 먹고......

그렇게 첫날 밤은 임하댐 근처의 덴마크호텔에서 잤다.

상당히 깨끗한 잠자리였다.


(학봉 종택에서 제사 때 할 일을 적은 것이다.)


(학봉 종택도 구경하세요)



둘째날 아침 임하댐에서 일어나는 물안개를 보았다.

그런 묘한 기분으로

이곳까지 왔으니 최고령 목조건물이 있는 봉정사를 지나칠 수가 없어 들렀다.

동승과 달막가 동쪽으로 간 까닭의 촬영지이자

영국 여왕의 방문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유교와 불교의 건축물을 잠시 비교하자.

사찰은 뒷산을 중요시 여긴다.

따라서 대웅전 뒤는 거의 산이 있다.

절 이름도 산을 반드시 끼운다.

당연히 이곳도 천등산 봉정사이다.



근데 서원은 반대로 앞쪽을 중요시 여긴다.

그리고 앞쪽은 거의 물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 유명한 두 사원인 호계서원과 병산서원 모두 앞에 물이 흐른다.

그냥 참고해라고.....



봉정사의 극락전(국보)과 절 앞의 웅장한 소나무 하나 구경하세요.







그 근처에 있는 보물 제115호인 이천동 석불상을 봤다.

제비원 불상으로 유명한 석불이다.

또 구경하세요.





이제 주테마로 경로를 바꾸겠슴돠.

이곳의 도산서원만큼 유명한 곳이 옛날에는 호계 서원이었다.

이곳도 퇴계를 모셨던 곳이다. 근데 학봉과 서애를 함께 모시면서 그 위패의 자리 땜에 의성 김씨와 풍산 유씨의 싸움이 시작된다.

여하튼 지금은 학봉은 임천서원에, 서애는 병산서원에 모심으로 이곳 호계서원은 완전히 거의 폐허가 되었다.

당시 서애와 학봉은 사이가 상당히 좋아 학봉의 위기 때 서애가 편들어 줄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근데 그노무 자리와 순서 때문에 엄청난 기간 동안 그 후손들은 싸움을 하고 있다.

요즈음은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더라.

참고로 돌아가신 분은 중앙 좌측이 우측보다 높은 자리입니다.

물론 짝수일 경우는 제일 왼쪽이 제일 높은 사람의 자리,

홀수일 경우는 중앙이 제일 높고 우측1 다음 좌측1 또 우측2 다음 좌측2 그렇게 정해진다.

이거 아직도 유효한 것 같더라.

국가의 중요 행사 보면 지키는 것 같더라고....

고럼 우리 모일 때 내 자리는 어디지?

당연히 누구 옆이제!



호계서원 폐허를 구경하세요.

개망초에 비친 호계서원이다.





담 코스는 ‘수애당’으로 유명한 전주 류씨 종택을 찾았다.

안동에서 전통가옥 민박이 가능한 곳이

1. 임하댐 근처의 지례예술촌

2. 보물 제182호인 임청각

3. 농암 이현보 종택인 긍구당

4. 전주 류씨 종택인 수애당 4곳이 유명하다.

2곳은 직접 하룻밤이라도 지내봤다.



경험해보지 않은 수애당의 안주인은 인천 사람이었는데

이젠 종부의 역할이 몸에 완전히 익은 듯하더구나

설명도 잘 하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참 편하게 해주더구나.

한번은 오고 싶게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내가 제일 추천하고 싶은 곳은 농암종택의 긍구당이다.

코스를 안동에서 예안으로 꺽어 청량산을 돌아 예안 쪽으로 가면 농암종택이 보인다.

고등학교 때 배운 이현보의 어부가의 주인이다.

앞에는 적벽이 따로 없고

흐르는 하천은 온갖 고기가 있다고 한다.

한 일주일만 있다보면 저절로 도를 깨우칠 만한 곳이었다.

종부의 수더분함은 수애당과 비교되는 또 다른 맛이었다.

이번 여름에 꼭 애들 데리고 오기로 마음 먹었다.





오천문화재 단지를 잠시 보고 또 안동으로 향해

국보인 신세동 7층전탑을 보고



드디어 숙소인 임천각으로 들어섰다.

종가집은 어디가 달라도 달랐다.

비록 예약을 했었지만 그래도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들어서면

당황하게 마련인데 전혀 서두르지 않고 그러면서도 일사분란하게 저녁을 차려내 놓았다.

그것도 그 집에 없었던 돼지고기 숯불구이를.....

임청각은 본래 그 집 정식만 먹어야 하는데

우리팀이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쐬주 한잔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짜증 한 마디 없이 야채며, 기름장이며, 겉절이며 불평없이 달라는 대로 다 줬다.

보통 사람들은 정말 종부하기가 어렵겠구나 또 한번 느꼈다.

떡메도 쳐서 인절미도 직접 만들어 먹고

그날은 또 그렇게 호텔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셋째날 여러 곳을 들렀지만 오늘의 주테마는 하회마을과 병산 서원이다.

하회마을을 일반적으로 가는 코스 말고 강 건너 부용대에서 배 타고 하회로 건너기로 했다.

주차장 문제도 쉽고 배를 타보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도 장관은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하회의 전경이다.

아! 저게 하회이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막상 하회로 들어가면 사람들에게 치여 제대로 감상할 기분이 사라진다.

한 십 년전쯤만 해도 호젓하게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국어선생인지라 하회별신굿 공연을 놓칠 수야 없지 않겠니?

탈이 국보로 지정되었다는 것, 최고의 화백들이 잃어버린 탈을 복구할 능력이 자신에겐 없다는 그 오묘함, 탈이 연기할 때마다 표정이 살아있다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몰라보고 외국에서 먼저 알았다는 것, 다 놀랄 일이지만

그것보다는 애들에게 가르쳐 주는 하회 별신굿의 해학성, 즉흥성을 좀더 현장감 있게 느끼기 위함이었다.

한 마디로 웃음의 도가니였다.

그 내용을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을 웃기기에 충분했다.

근데 왜 T.V에선 이런 것만 나오면 채널을 돌릴까?

이렇게 재미있어 하면서.....







병산서원은 이야기하지 않겠다.

휴일이라 안동 사람들이 다 나온 것 같더구나.

세상에 서원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 것은

그렇게 답사를 다녔지만 처음이다.

물론 병산서원의 빼어난 풍경도 한몫을 했겠지만

그날 날씨가 더워 시원한 풍경과 쉴 곳을 이곳으로 찾은 까닭 같았다.

물론 요즘 우리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도 한 이유겠지.



아무튼 그렇게 2박 3일의 답사를 마치고 부산에 왔을 때는 12시가 넘어서였다.

물론 가슴엔 양반의 긍정적 여유와

반일 운동을 한 임청각 주인과 양반 가문의 의기

자연과 더불어 살려는 옛 선인들의 무위와 소박함

그래서 더 여유로웠던 이번 답사였다.



많이 뺐는데도 장문이 되어버렸습니다.

혹 이까지 읽었다면 읽느라 정말 고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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