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유아기적 성욕성과 무의식은 정신분석의 세 주춧돌이다. 남자 아이가 반대의 성인 어머니를 좋아하는 것을 의미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그 반대로 여자 아이가 아버지를 좋아하는 것(칼 융의 엘렉트라 콤플렉스)도 지칭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거세콤플렉스와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는데, 남자 아이의 경우와 여자 아이의 경우가 각각의 콤플렉스가 발생되는 시기가 서로 비대칭적인 점이 특징적이다. 남자 아이의 경우는 어머니를 좋아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먼저 발달한 후, 그것에 대한 죄의식으로 거세콤플렉스를 가지게 되는 반면에, 여자 아이는 먼저 자신이 거세된 것을 인식한 순간에 거세 콤플렉스를 가진 이후, 남근을 위해 아버지를 추구하는 감정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지게 된다(Freud, "The Dissolution of the Oedipus Complex," SE 19(1923-25), 173). 남녀의 발달단계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처럼 서로 대칭적으로 발달되는 것의 예외는 이 두 콤플렉스의 발생시기에서뿐만 아니라, 오이디푸스 발달단계 이전인 전(前)오이디푸스단계의 남녀 아이의 성애대상에서도 발견된다.
전(前)오이디푸스단계에서 남자 아이의 최초의 성애대상이 어머니이라면, 여자 아이의 성애대상은 대칭적으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어머니가 된다. 프로이트는 초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서는 남녀아이의 대상관계적 발달이 완전히 대칭적이라고 생각하였으나 후기에 이르러 여성성에 대한 연구를 깊이 하면서, 여자 아이의 최초의 성애대상도 어머니임을 발견한다. 이런 발견에 자극받은 프로이트는 어머니를 원초적으로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된 여성의 성욕성은 표층화되어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보다 더 깊이 심연에 위치한 관계까지 파헤쳐야 한다는 점에서, 크레타 문명의 유적지를 더 파고 들어가 드러나게 되는 미케케 문명이라고 비유하면서 정신분석의 고고학적 접근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개념을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의 오이디푸스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빌려 사용하였다는 사실과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주인공, 햄릿은 이 개념과 불가분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개념은 문학비평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인류학자, 조르즈 드브뢰(George Devereux) 같은 사람은 소포클레스의 극에서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과 연관하여 "라이어스와 조카스타 콤플렉스"(Laius-and Jocasta-complexes)를 논하기도 하고, 가스통 바슐라르는 "지성적 삶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인 "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Spector, 82)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에 동조적인 그룹 외에 이 개념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앨버트 윌리암 레비(Albert William Levi) 같은 사람은 햄릿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으로 보는 어네스트 존스의 견해에 반대하여서, 햄릿이 삼촌을 죽이는 일을 연기하는 것은 햄릿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대신 누리는 삼촌과의 동일시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극의 플롯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Spector, 82).
라캉도 존스의 단순한 읽기에 반대하여서, 햄릿이 사람으로서의 어머니를 욕망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욕망의 '원인'인 "남근"(phallus)을 욕망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라캉은 이 문학 작품을 존스처럼 햄릿의 무의식적 욕망을 파헤치는 시각에서 접근하는 대신에, "무의 사물"(thing of nothing)인 남근(팰러스), 즉 세상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불가능의 기표로서 타자(어머니)가 절대적으로 욕망하는 남근(팰러스)을 햄릿의 죽은 아버지만이 구현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라캉은 햄릿의 욕망이 아버지 대신 왕이 된 삼촌을 택하여 끊임없이 팰러스를 추구하는 어머니의 욕망과 연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사실과, (팰러스에 대한) 이 욕망은 그 어떤 대상물에 의해 채워지지 않는 환유의 욕망임을 보여준다. 라캉의 햄릿에 대한 이런 새로운 읽기는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A. Gide)와 마가렛 듀라스(M. Duras),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 등의 프랑스 작가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문학작품의 주인공들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면, 문학작품의 창조행위 자체는 전(前)오이디푸스단계(preoedipal phase)와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인간의 정신 발달 단계에서 너(객체)와 나(주체), 사회(근친상간 금기)의 경계선이 명확히 확립되는 오이디푸스 단계에 고착되기보다 그 경계선이 모호한 구순기적 단계, 즉 전오이디푸스 단계에 고착되어 있다. 따라서 작가들의 창조적 행위는 다른 작중인물의 의식과 쉽게 융합하거나 감정이입 할 수 있는 전오이디푸스적 단계, 즉 상징계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와 융합된 혼연일체적 관계의 특징을 가진다는 점에서 "자궁으로의 퇴행"에 비유되기도 한다. 쥴리아 크리스테바의 기호계(the semiotic)는 바로 전오이디푸스적 모성적 단계를 대표해주는 세계로서 상징계적 언어로 고착되기 이전인 어머니의 몸과 어머니와의 대상관계에 유착된 기호계의 의미체계를 의미한다. 엘렌 식수스의 "여성적 글쓰기"도 또한 전오이디푸스적 단계와 친화적인 글쓰기의 유형으로서,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창조적 작가가 언어 요소들 중에서 울혈적 고착성(stasis)이 아니라 전이적 변형(metastasis)을 수용할 수 있는, 기호계와 몸의 리듬에 가까운 언어요소들을 기초로 열린 글쓰기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신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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