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애 관한 시모음 55)
여름이면 /이정은
난 니가 없으면 않 될것 같아
혼자 다닐때도 넌 내곁에 있어야 해
언제나 난 네가 필요해
하늘하늘 춤추고 내게 기쁨을 주고 있기에
너의 그친절함은 나와 하기 때문에 너는 춤을추고
나는 내얼굴을 너에게 맡기지
내손을 빌어서
너의 모습은 다양하게 여름을 나려고
팔색조 같이 여러 모습으로 여름을 함께하지
너와나는 여름이면 없어서는 안될것이야
여름 뜨락 /이원문
잠든 초가의 그리움인가
무너진 뜨락 시간의 돌 뒹굴고
기우는 담 나팔꽃 넝쿨 얹는다
몇 가닥의 담쟁이 누가 먼저 오를까
틈새로 돋아난 풀 봉숭아 외롭고
손길 없는 봉숭아 어떻게 자라났나
석삼년 전 심고 떠난 누나의 영혼인 듯
뜨거운 기다림에 빨간 꽃잎 떨어진다
여름향기 /채화 백설부
채송화가 돌담 밑에서
올망졸망 누굴 기다리며
곱게 피었을까
마당 안까지 개망초가
마실 왔다 가고
정오의 햇살 안고
오수를 즐기는
달맞이꽃의 늘어진
끄덕임이 정겹다.
보도블럭 위를
정겨운 비둘기 한쌍이
쫑쫑거리며 거닐고
쑥대머리 축축
늘어뜨리고 알알이
영글어가는 옥수수가
뙤약볕에도 우쭐하다.
담장 밖으로
임 그리는 맘
마지막까지 영원한
능소화가 애닯다.
여름 단풍 /최남균
남한산성
향락객은 벌봉 향해 오르고
나무는 남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형형색색
산악회 리본보다 화려한
여름이 한창인 6월
녹음으로 내달리는
누빗길
절벽 산성의 성벽을 기댄
노송의 눈시울이 붉다.
여름 /안영준
불그레 한
햇무리
누리를 비추려
힘차게 올랐다
종일 세운
핏발
붉은
한 덩이는
능선을 넘는다
그렇게
거드름 떨더니
야망의
계절 앞에서
꼼짝 못 하고
기죽어
꼬리 감추었다
여름 호수 /임재화
저 멀리 호수 너머서
먼 산의 모습 가물거리고
깊은 상념에 잠겨있는 듯
둥그런 섬 모래톱에서
외로운 백로 한 마리
시린 가슴이 너무 서럽다.
맑은 물 쉼 없이 흐르는
고즈넉한 여름 호숫가에서
수려한 풍경 가슴에 담는다.
냉국에 헤엄치는 여름 /윤관영
우려낸 다시마를 만지면
돌고래 등껍질을 만지는 듯하다
다시마튀각은 깨진다 찡긴다
미역만 보면 괜히 눈시울,
미역국만 보면 마음이 뿌예진다
밥알을 말아서 입술로 먹으면
왠지 미안하고 괜스레 고맙다
미역을 그냥 잘게 잘라서 맨물에
오이채에 맨 소금 간,
싱거우니, 그래서 식염식초
그거 좋다, 암것도 안 들어간 투명이 좋다
미역은 또 물과 어울려 노니, 맑아
이때는 업소용 레시피도 용서된다
바다 소식 바다 소식 바다 소식
미끌거리는 미역과 사각거리는 오이와
찡기는 밥알이면 소식도 좋다
다시마야 제 물을 다 뺐으니 불어 미끌거리는 것
입천장에 붙어도 이쁜 미역
신맛마저 맑은 냉국
미역만 보면 몸도 마음도, 멱 감듯
해산한 듯, 다, 풀린다
여름 서약 /임영준
녹아들어 가야지
땡볕도
소나기도
기대에 넘쳐 있으니
되살려 놓아야지
별들의 합창
해맑던
추억의 순간까지
열망의 길도
되새기라
재촉하고 있으니
비집고 들어가야지
어느 여름날의 산책 /박정재
접시꽃이 지고
또 장미꽃도 지고
메꽃이 얼굴 내미는
어느 여름날
고향이 그리워
해바리기꽃이 만개한
어느 마을에 갔다
들길을 따라 핀
야생화들이 반기고
길게 고개 내민 잡초가
고개 숙여 반긴다
그 옛날 어릴적
내가 자라던 고향의 맛
물씬 풍기는 그곳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소금장수 여름 나기 /藝香 도지현
길고도 긴 여름, 그리고 장마
고난의 세월
흐르는 땀 속에
시름과 함께 묻어나는 깊은 한숨
검은 구름이 밀려오면
까맣게
타 들어가는 가슴 가슴들
한 차례
비가 쏟아지면 암울해지는 현실
작렬하는 태양이 미소 지으면
새로운 희망으로
하루를 열고
흐르는 땀이 가슴을 타고 내려도
살아 있다는 희망이 즐겁게 한다.
환희와 절망이 교차하는
소금장수의 여름은
눈물도 있고
희망도 있는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는 계절
타향의 여름 /이원문
이리 부딪치고 저리 차여 앉은 몸
갈 곳 없는 골목 길 누가 나를 부를까
더워도 물 한 모금 얻어 먹을 곳 없고
벗자 하니 흉 되어 아랫도리만 올린다
인정 없는 차가운 세상 이것이 타향이고
그 인심이란 말인가 오가는 이 바라보면
다 웃는 표정이요 손잡은 남여 청춘
나는 저리 왜 못했나 보내진 집 작은 머슴
논 밭 일로 한평생 주인 집 막내 아가씨
혹시 나 좋아 하지 않았을까
그림으로 보는 하늘 그것 아닌 꿈이었고
손에 쥔 모래 한 줌 모두 새어 흐른다
잘 살겠다 나온 타향 글 모르고 쥔것 있나
종이 부채 부쳐대니 시원한 듯 더 뜨겁고
글 모르는 까막눈 이 종이에 무어라 써 있나
알면은 나의 갈 길 그 길도 있으렴만
양놈의 글씨까지 어질뜨려 졸음 온다
이제 일어서면 어디로 가야 하고
아는 이 없는 타향 누구의 집 찾아야 하나
물 끼얹을 곳 없는 곳 허기에 서롭구나
졸음 그만 자리를 떠야 하나
흐르던 구름 낮아지니 주인 집 마당 노을 같고
더 붉어라 바람까지 나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여름강가 /장수남
작은 언덕을 내려오면
강물이 흐르고
강가에 마른 숲에는
억새풀들이 꼿꼿이 서서
하얀 웃음으로 바람을
유혹한다.
조금멀리 바라보면
팔뚝만한 숭어무리들이
강물 아래서 지상으로
다이빙을 하고.
청둥오리 한 쌍이
갈대숲에서
머리만 올렸다가 내렸다
이 뜨거운 날씨에
짝짓기 사랑을 하는지.
온종일 같은 몸짓으로
파란색 하늘 예쁜 부리
천연의 몸짓으로 사랑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여름 안에서 /임영준
원두막에 걸린 실바람도
함께 노닐고 싶어 했지
매미들의 합창에
새털구름도
한참을 머물다 갔어
뙤약볕에
채송화 봉숭아 분꽃
삼동네 아이들도
활활 타올랐어
깔깔거리던 개울이
평생을 꿰뚫고 흐르다
넘실거리는 바다가 되어버렸어
여름날 산사의 오후 /김창화
매미가 우는 한낮엔 그 소리만으로도
두메 마을 절간은 시끌법적하다
밀물처럼 밀려와 좀체 빠지지 않은
대낮의 햇살
매미의 교향곡 따라 화염처럼 일렁이고
어선 가득히 채우고 항구로 들어온
만선의 깃발처럼
절 마당에 펄럭이는 청솔의 짙은 그늘
강림하는 칠성신 7월 7석의 불공
향내음 가득 찬 법당
부처상으로 몰리는 기원의 눈망울들
해탈하듯 촛불에 몸 사르는 불단의 황초
법당 문밖으로 흐르는 화엄과 금강경이
목탁소리에 버무려져
인기척 뜸한 절 마당 외로움 벗기는데
덤불 속 숨어 우는 풀벌레 소리
중생들 업을 삭히는 공양인 듯
산사의 오후는
기원의 염불로 휘감겨 조여지고 있다
여름 /이정애
톡 톡
내 잠을 깨우는 소리에
너인 줄 알았다
문을 열면 너는 없고
네 그림자 닮은 비만 내렸지
날이 저물어도
떠나지 못하는 연인들처럼
밤새 두리번거리다
선잠이 들었다가
아쉬운 듯 초초한 듯
그렇게 긴 밤을 보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네가
밤새 비를 타고 왔다는 걸
낭창한 바람과 햇살을 만나고서 알았다
나는 새색시처럼 웃다가
괜히 쑥스러웠다
내 맘을 들킨 거 같아서
여름날 싸리 꽃의 보랏빛 외출 /정세일
사랑하는 나의 당신이여
당신의 그리움은 다시 안녕하신가요.
당신의 동요와 동시에
다시 등장하는 여름날
한여름 밤에 달빛을 더욱 고요하도록
별들은 스스로 무지개를 만들어
서편 하늘에
붉은 한편의 그림을 만들고자 한다.
누군가의 이름이 쓰이지 않아도
언젠가는 풀잎들의 이름으로
보내질 것 같은
여름날 싸리 꽃의 보랏빛 외출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소낙비의 세찬 회초리
마음의 오선지에 쓰이고 있는
가는 비와
이슬비의 합창
사랑하는 당신이여
그래서 다시 당신에게 물어봅니다.
마음의 시작은 어대였는지
소낙비처럼
자신을 다스리고 절제된 모습의
세찬 비를 내리게 하는 것도
어쩌면 동요와 동시를 만들기 위한
한여름 밤의 달빛에게 물어보는
아침이 오는 곳
그리고 아침햇살이 엉금엉금 기어와
마치 음악의 동굴을 통과한 것처럼
표정을 짓는 것도
그래서 소낙비의 동요와 동시는
비를 피할 수 있는 키 큰 미루나무 아래서
아직도 구름을 가져와
풀잎들의 어영차
수초를 만들어
다시 웅덩이가 되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웅덩이를 만들어
산 아래에까지
다랭이 논이 마음이 잠기게 하고
칸칸마다 여름날의 깨어있음을 개구리의 울음소리로 가두어
멜랑꼴리 여름 /강재남
너를 펼치면 네가 사라지는 세상에서 너는 울고 너는 웃고 필기체로 휘갈겨 쓴 네 얼굴에 정오
의 햇빛이 쏟아진다
쏟아진다는 것은 수행성, 너의 뒷모습에 숨겨진 가장 습한 대답, 네가 펼쳐진 배경에서 네가 사
라지는 빌어먹을 역설,
장마는 길었고 가뭄은 길었고 네가 지나는 길목마다 장미가 붉었다 그리고 네 얼굴이 녹아내렸
다
고온다습한 날들이 네 몸을 복기하는 그런 너를 정열적인 계절이라 불러주고 너는 회화나무가
그림자를 흘리는 곳에 쪼그리고 있었다
앉은뱅이 꽃이 피었다 잠시의 소멸과 이윽고 재생되는 너는 견고한 죽음으로 너를 삼켰다
죽음의 밀도를 가늠하다가 너는 너를 위한 주문을 외웠다 너를 펼치면 너는 있고 너는 없고 앉
은뱅이 꽃은 앉아서 피어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