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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8. 8:52 AM
거리 : 8.3 km
소요 시간 : 3h 32m 45s 이동 시간 : 3h 11m 42s 휴식 시간 : 21m 3s 평균 속도 : 2.6 km/h
훈춘역-D134 -장춘 북역 - 인민광장~어화원~길림대학~민주대가~문화광장~해방로~
길림대학제일의원종합병원~신민주대가~조양공원 장춘덕원~민주대가~남호공원북문~남호공원야경산책
훈춘역(珲春站); 훈춘방천풍경구 관광 후 훈춘에서 고속 기차로 장춘으로 직행가기로 하다.
제자도 고속기차 개통 후 훈춘역은 처음이라고 한다
2015년 9월에 개통한 장춘-훈춘 고속철도; 장춘까지 3시간20분 걸린다고 한다.옛날에는 침대기차로 10시간 전후 걸렸다
훈춘은 러시아국경도시이기 때문에 모든 간판(안내판)이 3개국어(한글-중국-러시아)로 표기된다.
훈춘역은 영어까지 모두 4개국어로 표기하였다
훈춘역광장; 새로 세운 고속기차역은 어디를 가나 모두 엄청나게 넓다
여권을 보여주고 장춘 한 사람이라고 말하니 두말 없이 발급해 준다.
여유롭게 16;06분 훈춘역 -D134호- 장춘역. 제2호차. 좌석 14C(145원)를 끊다
D134 시발점 훈춘 - 종도점(종착역) 가목사(佳木斯자무쓰)
D134열차는 훈춘 출발 -도문 - 연길 - 안도 -돈화 -교화 - 길림 - 장춘 - 하르빈을 경유하여 중러 국경도시 가목사까지 가는 장거리 열차였다.
가목사(자무쓰)는 부모님에게서 자주 들은지라 귀에 익은 도시고 장춘과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제자가 장춘이 종착역이니 내릴 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이 귀에 박힌 것이다
기차가 출발할 때마다 3분전에 개찰한다는 안내판이 뜬다.
생각 밖에 한산하였다. 코비드여파인가.
15;10. 큰 일(?)이 생겼다. 내가 타야할 기차를 놓친 것이다. 문제 발생의 원인
귀에는 내가 탈 기차의 종점이 장춘역이라고 한 제자의 말이 박히고,
눈은 종착역 장춘에 꽂혔다는 것이다.
뇌에는 11분 후에 출발하는 세 번째 기차가 내가 타야할 기차라고 새겨졌던 것이다.
열차번호와 출발 시각을 보면서도 장춘이 종착역이라는 표시만 보고 있었다. 허참
15;59분; 내가 타야 할 16;06분 출발 D134열차를 타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내 눈은 기차번호와 출발 시각이 아니라 종착역 '가목사'에 꽂혀있었다. 그리고 내가 탈 기차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타는 사람들을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장춘이 종점인 16;17분 기차가 개찰할 때 줄을 섰다. 개찰하는 직원이 내 표를 보더니 뭐라고 한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직원이 나를 표를 끊는 곳으로 안내하려 했다. 나는 표가 여기 있는데 왜 그리로 데려가느냐고 외 마디 중국어와 몸짓으로 의문을 표시하였다.
직원이 나를 개찰구로 데려가서 의논하더니 급히 3호차로 안내한다. 그 와중에도 나는 표를 보여주면 2호차에 타려고 하였다.
직원이 내 팔을 잡고 3호차에 태워준다. 그리고 먼저 탄 승객에게 큰 소리로 뭐라고 말한다. 곧 문이 닫히고 기차가 출발하였다. 30초 차이다.
사실은 장춘이 종점인 16;17 출발 C1030 기차를 탄 것이다. 내가 들어서자 제일 끝 좌석의 조선족 여자 청년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내가 타야 할 기차는 11분 전에 출발한 차다. 원칙적으로 다시 표를 끊고 다음 기차를 타야 한다.
그러나 내가 외국 노인이고 이 기차 3호차에 좌석 여유가 있어서 태워준 것이라고 설명해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직원이 배려해 주지 않았다면 다시 표를 끊고 2시간 20분 후에 출발하는 막차를 타야 했다.
중국은 노인이 되어 여행하기 좋은 나라 중에 제일이라는 나의 소신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16;19
16;31 이유는 몰라도 3호차에는 빈 좌석이 많았다.
16;54 연길역
17;02
17;27. 아마도 옥수수 밭일 것이다.처음 길림성을 방문했을 대 드넓은 목수수밭 들판에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17;41 돈화(敦化); 줌인하여 본 세계 최대의 석가모니 좌불상. 돈화의 한족 친구가 안내해 준 적이 있다
2011년 중국 종교국 주관으로 개관(开光)한 세계 최대 사찰 돈화 정각사(3만평)의 세계 최대(높이 48m)의 석가모니 좌불상 금정대불상
처음 보았을 때의 감상은 세계최대를 향한 칩착심에 부처님이 기가 막히셨겠다는 생각뿐이었다.
17;42 돈화 무단강(목단강);대조영이 발해를 세운 지역이라 천년고도, 청국 때 돈화현을 설치하였다 하여 백년현이라고 부른다
청말(淸末) 봉금(封禁)정책이 풀린 뒤 산둥(山東)의 한인(漢人) 입식자(入植者 이민자)가 많아, 밀·콩·옥수수·쌀 등의 농업이 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17;42. 돈화는 연변자치주의 도시 중에 조선족 비율이 가장 낮은 (4-5%) 도시다
17;48
18;16
18;14. 교하(蛟河)시 북대교; 뒤에 산은 유명한 납법산(拉法山)일 듯
18;40 길림시; 부모님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름이다
18;42 길림시 송화강(松花江) 철교를 지나고 있을 듯하다
18;46 길림역; 길림은 장춘에 비하면 작고 고풍스럽고 조용한 도시다
만주어로 ‘강가의 마을’을 의미하는 기린우라(吉林烏拉)에서 유래했다.
부여시대에는 관지고성(官地古城), 동단산성, 용담산성, 남성자성등의 도성을 쌓고 지린시를 수도로 삼았다.
이후에 말갈족이 거주하게 되었다. 6세기 고구려가 지배하면서 고구려의 영역으로 편입되었고 발해때는 속주(涑州)로 개편되었다.
명나라 때는 여진족이 지배하기 시작하여 1613년 이후 누르하치의 후금을 거쳐 청국의 성지가 되어 봉금정책으로 보존하였다.
중화민국시절 지린현으로 격하되었고, 1931년 소위 만주사변으로 일본 관동군이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우면서 지린성 관공서가 설치되었다.
만주국 붕괴 후는 국공내전의 전장이 되었고, 1948년 3월에 길림성 인민정부가 있다가 1954년 장춘으로 이전하였다..
19;31 장춘시를 남북으로 흐르는 이퉁하[伊通河)
19;38. 제자 모자와 장춘역 북역 출구4번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장춘역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구조가 복잡하여 만날 장소를 잘 정해야 한다
장춘시 북역 4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장춘은 부여의 수도였다. 고구려와 발해시대 부여부에 속했다. 1800년 청 시대, 이퉁 강의 동쪽 기슭 작은 마을 장춘보를 장춘청으로 승격시켰다.
1905년부터 1935년까지 일본의 남만주 철도와 러시아의 둥칭 철도의 교차점으로 성장.창춘을 시작으로 조선과 내몽고(內蒙古)로 뻗은 지선이 있었다.
만주국의 수도가 되면서 신경(新京)이라고 불렸다.잘 계획된 도시로 넓은 도로와 현대화된 공공 시설이 들어서면서 급격한 확장하였다.
청 12대 황제 푸이(溥儀)가 1931년부터 45년까지 일본에 의해 만주국 정부의 수장으로 취임 위만황궁(僞滿皇宮)에 살았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심각하게 파괴된 후 1945년에 소련군이 점령 1946년 중국 내전 때까지 계속 도시에 주둔하였다.
1946년에 국민당 군이 도시를 점령하였으나 중국 공산당 군이 12달 동안의 포위 공격 끝에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10만에서 30만에 이르는 아사자가 발생했다. 한국전쟁 때에 김일성이 일시적으로 피난하기도 했다
1954년에 창춘을 길림성의 성도로 정했고, 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기도 했다.
동북대학과 길림대학 등 유명 대학이 있는 교육도시. 기차와 자동차 공장이 있는 공업도시.이기도하다.
관광지로는 난후[南湖]공원, 위만황궁[僞滿皇宮], 창춘영화촬영소, 정월담[淨月潭] 등이 있다.
오늘의 도보여행 코스
7월8일 08;53 인민광장(장춘대가)
어젯밤 이젠 미망인이 된 제자 모자와 함께 자주 이용하는 모텔 여가(如家酒店)로 가다. 자기네 숙소는 외국인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예전부터 주위 환경이나 숙소 시설이 외국인 안전에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안전한 숙박시설(비싼 곳)로 안내해 주었다.
결국 인민광장 로타리에 있는 385원짜리 숙소로 안내 받았다. 그래서 다음 이틀은 제자의 집에서 자기로 하다.
퇴방 수속을 하고 남호공원까지 혼자 걷기로 하다. 3년 전 심장 마비로 사망한 셋 째 아들과 같은 제자와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장춘대가 719번지 숙소에서 출발하여 다운 받은 중국 바이두 지도의 방향과 파란 깜박이를 보고 출발하다.
램블러는 작동하는 데 지도는 보이지 않고 줄만 보인다
장춘대가; 1923년에 설립되었다는 호국 반야사(护国般若寺)
입구는 작았는데 들어가 보닌 엄청 넓다. 장춘시에서 제일 큰 사찰이며 국가의 중점 보호 사찰이란다
서쪽의 고루(북)
동쪽의 종루(종)
중국인의 종교심은 가히 세계제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민광장(人民广场)로타리(육거리) 동쪽 장춘대가
길림성빈관(吉林省宾馆); 1957년에 시작한 전통이 있는 숙소;
지금은 3성급 호텔이지만 한때는 중국의 고위층들이 많이 이용했던 최고의 호텔이었다.
민강로녹도(民康路绿道) 길 중앙에 있는 인도
인민광장 로타리(육거리)에서 남쪽 인민대가 방향(자전거길)
인민광장 로타리 육거리 중 가장 작은 도로. 장춘대가 맞은 편 건정로(建政路)로 들어서다. 장춘치안국
건정로에서 금수로(锦水路)동쪽으로; 그저 방향 감각에 의지하다
동지가(同志街)로 나와 남쪽으로. 허참
도로청소차
동중화로(东中华路) 동쪽으로 가다가 되돌아서 서쪽방향으로
동중화로 서쪽으로
그리고 동민주대가(东民主大街)의 길림대학 조양교구 도서관(吉林大学朝阳校区图书馆)
길림대학 조양교구 동1문(吉林大学 朝阳校区-东1门)
유화원(裕华园 ; 龙嘉国际机场青年林). 중국장기를 즐기는 사람들
카드게임을 하는 팀도 보이다
회계림
서민주대가로타리; 태양현대거(太阳现代居. Sun Modern Residence)
서민주대가( 西民主大街) 남향
길림대학 조양교구 서문(吉林大学(朝阳校区-西门)
길림대학교: 2022-2023년 세계대학순위에서 ARWU에서는 151-200위, CWTS에서는 50위, QS에서는 497위에 올랐다.
이공계열에서는 ARWU에서 기계공학 세계 5위, 나노과학 세계 18위, 재료공학 세계 24위, 화학 세계 32위, 생물공학 세계 48위를 기록했다.
중국 내 대학교 순위는 중국교우회망에서 발표한 2023년 중국대학순위에서 22위에 이름을 올렸다.
10개 분야 47개 대학 소속 6,600명이 넘는 교원이 7만 2,000명이 넘는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교훈은 '실질을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스스로 분발해 강건함을 도모한다'는 뜻의 '구실창신 려지도강(求实创新 励志图强)'이다.
현재 40개국 292개 대학 및 연구기관과 협약관계를 맺고 교류중이다.
길림대학교는 10년 전만 하여도 자유롭게 드날 수 있었다. 기숙사까지 둘러보려면 하루 도보여행 코스였다
길림대학 조양교구(吉林大学(朝阳校区)-동3문 지질박물관(地质博物馆);
길림 대학교 차오양 캠퍼스의 랜드 마크. 1952 년에 지어진 지질대학,
장춘시의 문화 유물 보호 단위 인 푸이 "황궁"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지어졌으며 현재는 지질박물관이 되었다
문화광장(文化广场) 원래는 일본이 만주국 수도의 광장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넓기만 하고(남북길 430m 넓아 3000m2) 휴식할 그늘이 없다. 대규모군중집회 하기에는 안성맞춤일 듯하다
문화광장의 상징 태양조(太阳鸟); 마지막 테양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희생했다는 불사조의 전설을 주제로 만든 탑
해방로; 길림대학병원(吉林大学白求恩第一医院)-北门
해방로:길림대학제일병원(吉林大学白求恩第一医院)
1949년 설립 당시에는 중국인민해방군제1군의대학이었다. 그 후 장춘의학원내과학원, 길림의과대학제1임상학원,
백구은(白求恩)의과대학제1임상학원이 였으며 200년 백구은의과대학과 길림대학이 합병하면서 길림대학제1병원으로 개명되었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이것저것 종합해 보면 전국적으로도 50위 안에 드는 병원인 듯하다
내일 오전 7시 도문에 사는 스무살 아래 여제자가 여기서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는다. 오가며 미리 기도하다
지하철역
신민대가 양쪽 차도 사이에 산책길. 정적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침침하다
위만주국 국무원 자리(길대백구은의학원)
관리하는 일군들이 낮잠에 빠졌다. 아침 일찍부터 작업을 했는지 모두 피곤해 보였다.
신민대가:길림대학제일의원동문
신민대가 장춘덕원 동문(长春德苑-东门) 1934년에 조성한 역사가 있는 공원
2015년에 우수한 중국 전통 문화와 사회주의의 핵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다시 조성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모든 공원은 국민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조성하는 듯하다.
故传诵之 동심삼자(同心三子)
장춘 중태 해양세계(长春中泰海洋世界)
신민대가 중앙 인도
신민대가 신민광장(新民广场)로타리; 欧亚新生活凯撒旅游
로터리 장식들
로타리; 인민해방군제461의원 응급실(人民解放军第四六一医院-急诊) 서문
남호(南湖)공원 북문(3호문) 장춘해방기념문(长春解放纪念碑) 높이 30.39m 문(门)자 모양
죽은 제자와는 북호를 한바퀴돌고 남문(5号门)으로 들어와서 한바퀴 돌고 북문(3호문)으로 나갔다.
그날도 오늘처럼 흐렸다가 부슬비가 내려서 걸음을 재촉하였다. 왜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은 엊그제 같이 뚜렷할까?
남호공원 야간 산책
2023. 7. 8. 7:32 PM
거리 : 2.4 km 소요 시간 : 1h 0m 51s 이동 시간 : 1h 0m 51s
남호공원
238만 6000m2. 호수 면적이 92만 m2. 록지 면적이 134만 6천m2
140여 수종.60만 그루.. 북경 이화원에 이어 전국 2위 크기의 공원
1935년에 건설을 시작해 ‘황룡(黄龙)공원’, ‘남교(南郊)공원’으로 불려오다가 해방후 정식 ‘남호(南湖)공원’으로 되였다난이도 : 쉬움
셋째 아들을 자처했던 제자가 3년전 심장마비로 떠났다. 코비드시절이라 장례식엔 동영상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남은 식구를 2017년 이후 6년만에 만나다. 오랜만에 완다에서 훠꿔를 먹고 지하철로 남호공원으로 가다
그리고 제자와 함께 걸었던 남호공원을 그 아내와 아들과 걸었다.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9월 고1 진학을 앞두고 있다. 연길애서 만나본 딸은 9월에 대학교 3학년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하는 아이. 키와 몸집. 생김새와 성격. 태도와 목소리까지 아비를 그대로 닮아 모자의 뒷모습을 보며 몰래 눈물을 훔쳤다
자기 도래가 좋아하는 음료라고 사 주었는데 내 입에 맞지 않았다
지하철타고 남호공원으로 가다. 3원이다
북문(3호문)으로 입장하여 하화지(荷花池) 둘레 산책길을 걸어 관하교(观荷桥)를 건너서 네 개의 정자를 이어주는 사정교(四亭桥)까지 걷다
나의 막내 손녀보다 한 살 위다. 덩치는 남산만하다.층계를 오르내릴 때면 내 어깨를 감싼다.
제 엄마가 어르신 어깨를 감싸는 것은 실례라고 하자 자기는 할아버지를 보호하여는 의도라고 해명한다.
지 아비가 그랬는데.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신기하다
낮에 보았던 해양세계
사정교가 보이다
관하교(观荷桥)를 건너서 네개의 정자를 이어주는 사정교(四亭桥) 를 거닐다
뒤돌아 본 관하교(观荷桥)
하화지(荷花池);장춘에서 가장 큰 연꽃 호수. 아쉽게도 7월 중하순부터 꽃이 핀다고 한다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녀석이 샛길을 찾아 앞장을 선다 동일문(东1门)으로 나오니 공농대로( 工农大路)다.
버스 타는게 재미있다고 타자고 하니 피곤하실 거라며 며 택시를 불러 세운다. 허참
공농대로( 工农大路)로 나오다. 버스를 타자고 하니 피곤하실 거라며 며 택시를 불러 세운다. 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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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성껏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불로그에 일기 형식으로 저장한 글을 그대로 옮기다 보니
그림도 글도 많은 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