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특하게 일그러진 한편의 괴기스러운 유화, 국카스텐
일시 : 2010.4.1 17:00~19:30 장소 : 상상공장
사진촬영 : 1시간 인터뷰 : 1시간 반
녹취타이핑&정리 :
인터뷰&에디팅 : 김기자
인터뷰 참가자 : 국카스텐, 김기자
◎ 국카스텐:
1. 최근 근황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현우(V): 요즘에는 스튜디오에서 사는 중입니다. 국가에서 지원을 받아 일본판 앨범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어요. 일본판 앨범을 만드는 김에 1집 앨범도 함께 리레코딩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저희 1집 앨범의 사운드 질이 많이 떨어졌던 부분을 보완하자는 차원에서요. 이번 리레코딩 앨범은 저희가 평가를 해도 명반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김기자: 그럼 현재 두 개의 음반 작업을 진행하고 계신 건가요?
현우(V): 네, 어차피 저희 1집 앨범의 가사만 일본어로 바꾸면 되는 것이니까요. 일본판 앨범에는 아마도 11곡이 수록될 것 같아요. 아, 이번 리레코딩을 한 1집 앨범에는 기존의 1집 앨범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던 히든 트랙도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겠네요.
* 국카스텐의 네 멤버. 왼쪽부터 김기범, 하현우, 전규호, 이정길
2. 이번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상과 신인상을 수상했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현우(V): 우선 이번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상을 받아야 할 뮤지션들이 모두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상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김기자: 음반상을 타지 못해서 아쉽지는 않았나요?
현우(V): 그렇지 않아요. 1집 사운드가 정말 별로인데 저희가 음반상을 받는다는 건 말이 안되죠. 한편 시상식장에 가보니 정권의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어요. 작년부터 한국대중음악상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이 끊겼는데 그래서인지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진행 부분에 있어서도 미숙한 점들이 보였습니다. 사실 한국대중음악상이라는 것이 대중 음악에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순수하게 음악적 부분만을 평가하는 상을 만들어보자는 좋은 취지에서 생긴 것인데 그런 현장을 보니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의 이런 음악적 환경 속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를 고민해보기도 했어요.
김기자: 정치,사회적인 주제로 음악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고려도 있었나요?
현우(V): 우리나라의 정치적 측면과 관련해서 음악을 만들면 수천, 수만 곡이 나와도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밴드마다 방향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저희는 정치,사회적 측면보다는 개인 내면과 관련된 음악을 만들어내는 쪽이죠. 차후에 정치사회적 내용을 담은 음악을 만들지는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김기자: 아까 1집 음반의 사운드가 안좋다고 했는데 국카스텐은 사운드가 중요한 팀 아닌가요? 뭔가 사정이 있지 않고서는 그런 상태로 앨범을 내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현우(V): 우선 소속사에 속해있던 것이 아니라서 저희가 직접 작업을 하면서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게 된 것이 문제의 시작이죠. 돈이 부족한 것도 그렇고 멤버 모두 녹음을 처음 하는 것이라 어설픈 점도 많았어요. 하드가 불타기도 하는 등 작업한 결과물을 여러 번 날려먹었고, 용케 한장 구워둔 소스로 앨범을 찍었으나 트랙 순서와 앨범 자켓에 문제가 있어 1500장이 순식간에 휴지통으로 버려지기도 했어요. 미숙해서 낭비가 많기도 했죠.
김기자: 그럼 그런 상황속에서 부족한 1집 앨범을 발매한 이유가 뭔가요?
현우(V): 저희가 그 동안 활동량이 많았던 만큼 앨범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어떻게해서든 앨범을 발매해야 했습니다.
* 국카스텐 1집 [Guckkasten]
(Before Regular Album) (2009)
3. 1집 리마스터링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현우(V): 기존 이미지와는 크게 벗어나지 않게 편곡을 하고 다듬었습니다. 기범이는 앨범작업을 하지 못했는데 베이스가 합류하게 되면서 라인이 더욱 다이나믹해졌어요. 기존 1집과는 차별화된 부분이죠. 같은 노래인데도 다른 노래를 듣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노래의 분위기가 더 살아났어요. 기존 1집의 드럼도 저희가 직접 친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작업한 것이거든요. 재발매 앨범에서는 직접 쳤어요. 이번에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면서 사람들이 왜 돈을 더 많이 들여가면서 더 좋은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려는지 그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김기자: 믹싱 마스터링은 어떻게 했나요?
현우(V): 저희가 녹음을 한 스튜디오 대표님이 해주셨어요. 락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하신 분이더라고요. 저희가 잘 맞추어 가지 못할 때도 다시 화합할 수 있게 도와주시기도 했고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길(D): 스튜디오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예전에 1집 앨범을 들으면서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에 사람들도 꽉 차 있었는데도 크게 웃은 것이 있어요. 1집 앨범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을 느끼고는 어이가 없었고 어서 그랬어요. 이번에 스튜디오의 위대함을 저 또한 느꼈죠.
기범(B): 저는 사실 1집 앨범을 같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이번에 리마스터링을 하는 것에 욕심이 났었어요. 좋은 환경에서 할 수 있게 되어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규호(V): 실험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었어요. 녹음에 대한 노하우도 부족하고 장비도 한정적이어서요. 예를 들면 엠프가 3,4대 있으면 다 꽂아보면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찾으면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으니까요.
김기자: 홈레코딩으로도 좋은 앨범을 만드는 팀도 있지 않나요?
현우(V): 네. 기술력이 있으면 크게 문제될 거 없죠. 저희는 기술력도 없고 어디서 들은 것 가지고 하려는 수준이니 잘 안됐던 거고요. 능력 있는 사람들은 홈레코딩으로도 좋은 음반 만들어요. 그래서 보통 홈레코딩에 대해 공부를 할지 노래를 만드는데 주력할지 고민을 하게 되죠. 저희는 후자에 힘쓰는 쪽이고요.
4. 최근에 카라와 조인트를 해 엠카운트다운 무대에 섰던데 어떠셨나요?
현우(V): 저희가 그 무대를 수락한 이유는 그 무대가 진보적인 입장에서 시도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저희를 필두로해서 다른 인디 밴드들도 계속 대중 매체에 노출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는데 솔직히 카라 측에 많이 아쉬웠어요. 카라 측이 이번 무대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준비했는지 모르겠어요. 저희는 편곡도 준비를 많이 했거든요. 거두절미하고 메인 스트림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도 카라 분들 몸매는 좋더라고요.(웃음)
김기자: 다시 말해 국카스텐은 편곡이나 라이브와 관련된 준비를 많이 하고 무대에 섰는데 생각만큼 공연이 원활히 되지 않았다는 말씀인가요?
현우(V): 그렇죠. 그리고 클럽 공연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환경 조절을 할 수 있는데 엠카운트다운 무대는 댄스 가수들을 위한 무대로 만들어지고 환경도 그 쪽에 맞추어져 있어서 라이브 하는데 많이 힘들었어요. 방송용 공연은 카메라 앵글, 오디오 데이터를 중심으로 해야 하고, 노래하는 당사자는 이어폰을 끼기도 해야 되서 다른 점을 많이 느꼈죠.
5. 국카스텐이 만들어지기까지 여정을 간단히 얘기해 주세요.
김기자: 처음에는 더 컴으로 활동을 하다 해체를 한 것인가요?
현우(V): 네, 쌈싸페에 나가기 전에 해체를 하긴 했었어요. 그런데 쌈싸페에 최종 진출이 확정 되니까 그 무대만 서고 그 뒤에는 다들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시 흩어졌어요. 정리하면 2000년에 만나서 활동을 하다가 2004년에 군대 등의 이유로 모두 흩어지고 2006년에 다시 모여서 강원도에서 밴드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강원도에서 실내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음악을 하다가 2007년 5월경에는 서울과 강원도를 왔다갔다하면서 공연을 지속해 나갔었죠. 공연을 하기 위해 두 지역을 왕래하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아예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계속 서울에 살고 있고요.
김기자: 실제로 멤버들이 같이 작업한 시간은 다 합쳐도 3~4년 정도로 길지 않은데 그 사이에 국카스텐만의 음악을 어떻게 만들수 있었던 건가요?
현우(V): 우선 보컬이 뛰어나야죠.(웃음) 리더가 중요해요~ 저는 밴드내에서 통장관리도 하고, 멘트도 제가 하고요. 우선 곡을 처음 만들때 이미지 만드는게 중요하고, 보컬이 무대에서 얼마만큼 표현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죠. 제 역할이 중요하다는 거고 그만큼 제가 뛰어납니다.
6. 각 멤버들의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어볼께요.
김기자: 현우씨. 노래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태어났을 때부터 노래를 잘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현우(V): 저는 사실 태어날 때부터 잘했습니다. 어머니가 노래를 잘시는데 (웃음) 제가 유아기 때 엄청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때 목청이 트인 것 같습니다.
김기자: 소문을 듣자하니 고등학생 때 동네에서 노래 배틀을 하곤 했다던데요.
현우(V): 네. 제가 어릴 때 대한민국에서 저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정길(D): 잘하긴 잘했어요. 옛날에 'she's gone'을 들었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였거든요.
현우(V): 고등학교 때 그림을 그려서 미대를 갔어요. 원래 노래부르는 건 좋아했고요. 학교 앞 슈퍼마켓에서 정길와 마주쳤는데 밴드 보컬 구한다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알고보니까 같은 대학교 학우였죠. 처음에는 무슨 거지인줄 알았어요. 그렇게 스쿨 밴드를 하게 됐는데 밴드에는 마력이란 게 있었던 거죠. 학교에 자퇴서 내고 와서 밴드를 했어요. 맨 처음 들은 노래가 스키드로우였죠. 처음 뮤직비디오를 보는데 야한 것도 아닌데 가슴이 뛰었어요. 키도 크고 잘생긴 애가 샤우팅으로 노래를 하니까 카리스마 있고 멋있었어요.
김기자: 악기를 처음 잡은 시기는 언제고, 작곡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요?
현우(V): 20대 초반에 코드를 치려고 기타를 잡았고 곡을 처음 만든 것은 아마 21살 때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랩을 만들었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노래라기보단 '발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무언가 특이한 소리를 내고 싶었어요. 대학은 미대로 진학을 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스쿨 밴드로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되니 음악의 매력에 빠져서 학교를 더 다닐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 길로 학교를 자퇴하고 밴드 생활로 나갔습니다.
정길(D): 어릴 때 철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방황도 많이 했는데 형이 독실한 크리스찬이어서 영향을 좀 받았죠. 성경공부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날, 락 음악의 감성과 철학이 맞물리는 부분이 많다고 느끼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문학가들 중에서는 특히 헤르만헤세, 카뮈, 카프카의 정신이 락의 정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악기는 어릴때부터 배웠어요. 피아노는 초등학생 때, 기타는 중2 때. 고2 때는 락 음악을 듣다 드럼의 매력에 빠졌어요. 그래서 혼자 튀김 젓가락 들고 쟁반 놓고 드럼 치는 흉내를 내곤 했었죠. 대학에 진학하고는 학교 밴드 동아리에 가입을 했는데 제대로 배울 수 없어서 실용음악학원에 다녔어요.
김기자: 고등학생 때 들었던 락음악은 어떤 거였나요?
정길(D): 메탈리카요. 독실한 크리스찬인 저희 형이 친구에게 선물로 메탈리카의 음반을 받았는데, 메탈리카가 악마의 음악이라며 듣지 않고 음반을 방치해 두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방황하는 시기에 방 한 구석에 있는 메탈리카가 눈에 들어온 겁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두근거리며 CD를 재생시키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제 몸에는 전율이 흘렀던 기억, 절대 잊지 못할 거에요.
규호(G): 제가 기타를 처음 배운 계기는 어떤 노래 하나를 쳐보고 싶어서 였어요. 그래서 동네 형에게 찾아가서 "이 곡은 기타로 어떻게 쳐요?"라고 물었는데 이정선 기타교본을 던지면서 "이거 보면 돼" 이러는 겁니다. 그 순간, 기분이 아주 나빴죠. 주위에 기타 잘치는 형들이 많았는데 저를 완전 무시했어요. 그래서 "저 형을 기타로서 이겨보겠어"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쭉 계속 음악을 한 것은 아니고 중간에 방황을 많이 했었습니다.
대학을 가야 기타칠 수 있다고 담임선생님이 얘기해서 대학을 갔는데 공대라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군대에 갔을 때는 직업군인을 하라고 권유가 많아서 그럴까 생각했는데 친형이 막 화를 내면서 그럴거면 기타는 왜 쳤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고 제대하고 기타 사려고 일을 했고 서울에 와서는 이런저런 방황을 많이 했어요. 2002~ 2003년도 쯤이었을 거에요. 그러다 강원도 다시 내려갔고 서른살 되기 전에는 뭔가 해봐야 겠다 싶었어요. 음악을 아직 제대로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결심했죠. 가게하는 도중에 애들이랑 합숙하면서 곡작업하고 그러다가 가게는 강원도에 버리고 서울로 왔어요. 후회는 안해요. 마음 속에 있던 걸 하고 있으니까요. 친형이 음악을 많이 좋아했고, 제가 음악하는데 많은 자극을 줬어요.
김기자: 형이 음악을 하시나요?
규호(G): 뮤지션은 아닌데 형이 기타를 잘 쳐요. 부모님을 모셔야 되고 하니 음악을 직접 하진 못하고 사업을 하고 있죠.
정길(D): 저희가 강원도에서 생활할 때도 그 형이 도움을 많이 줘서 저희가 굉장히 감사해하는 분들 중 한 사람이에요.
김기자: 규호 씨는 음악을 마음 속으로 깊이 좋아한 것 같은데 그런데도 음악을 하기 위해 이렇게 긴 여정이 필요했나요?
규호(G):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생활고에 대한 걱정도 있고 같이 음악할 제대로 된 파트너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요. 아무튼 돈이 문제에요.
정길(D): 밴드가 헤어지는 이유는 두가지인데 주로 돈과 음악성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볼때 이유는 다 개인적인 사정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다 돈이에요.
기범(B): 저는 음악을 좋아하는 친누나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노래를 부른 것은 중1 때부터이고 베이스는 누나가 듣던 음악에 베이스가 휘황찬란해서 그 매력에 빠져서 시작하게 됐어요, 나중에 보니 베이스는 그런 악기가 아니더라고요. 형들은 제가 실용음악학원 다니면서 만나게 됐어요.
정길(D): 우리가 23살 때였죠. 가끔 막노동도 하고 그랬는데 그때 나름대로 생각한게 음악을 하면서 돈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입시를 준비해보자 해서 학원에 갔어요. 멤버중에 그것을 필두삼아 열심히 한 애도 있고, 학원에서 배우기도 하고 누구는 차량운전도 하고.
현우(V): 서울예대 보컬 시험을 봤는데 가져간 곡이 강산에의 "할아버지와 수박" 이었어요. 이걸 부르는데 심사위원들이 심사표 종이를 놓고 갑자기 박수를 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이 사람들이 내 노래에 '삘' 받았구나 했는데 결국 떨어졌죠. 얼마 전에 한국 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강산에씨가 그 노래를 부르는데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러더라고요. 기분도 오묘하고 ㅋㅋ
7. 국카스텐의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죠.
김기자: 강원도에서 멤버들끼리 지낼 때 분위기는 어땠어요?
정길(D): 아주 짜증나는 분위기였어요. 그때가 아마 저희 밴드의 가장 거칠었던 시기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새벽까지 일하고 잠깐 나와서 같이 합주하고 바로 일하러 나가고. 남자들끼리만 시골에 있으니까 딱히 할 일도 없었죠.
김기자: 그럼 그 시간동안 합주하고, 작업을 하서 국카스텐의 기초가 되는 곡들이 나온 것인가요?
정길(D): 저희 음악의 기초가 되는 것들은 현우가 군대 생활을 하면서 스케치를 해놓은 것에 대부분 바탕을 두고 있어요.
현우(V): 군대에서 남자들이 대부분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저는 운동은 귀찮고 대신에 책을 닥치는 대로 많이 읽었어요.
김기자: 군대 가기 전에 인문학적인 부문에 관심 많았나요?
현우(V): 아니요. 군대에 가서야 책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시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책도 많이 읽고, 머릿 속에 떠로으는 생각들을 공책에 끄적였죠. 1집 노래 대부분이 군대에 있을 당시에 제가 쓴 글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김기자: 글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었나요?
현우(V):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통해서요. 사람들도 보고, 나무도 보고, 책 읽다가도 생각나는 내용이 있으면 그냥 적어 내려가는 거에요. 꿈을 꾸고 나서 떠오르는 잔상들도 적었죠.
김기자: 그런 글들을 간추린 것이 1집의 가사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현우(V): 그렇죠. 생각나는 것을 공책에 두서없이 적고 나중에 그것들을 한 페이지에 요약해요. 한 번의 요약에 그치지 않고 계속 추리고, 또 추려서 응집된 가사를 만들어 냈어요.
김기자: 전에 시를 쓰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시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한 건가요?
현우(V): 고등학생 때요. 시는 또 다른 언어라고 생각해요.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우리가 평상시에 알던 단어들의 배열을 희안하게 배치하면 같은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낯설게 다가오잖아요.
김기자: 상징적인 가사 쓰기 트레이닝은 시를 쓰는 작업을 통해서 가능했다는 말이 되겠군요. 국카스텐의 노래는 가사가 인상적인데, 가사가 음악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현우(V): 곡에서 음악 다음으로는 무조건 가사가 중요하다고 봐요. 다른 것이야 어쨌건 내가 이러한 음악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가사 선택을 제대로 해야 드러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가사 속의 특정 단어를 들은 후에 머릿 속에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게 중요해요. 저희 노래의 가사들은 일반적으로는 잘 안 쓰는 낯선 단어들이 많지만 왠지 모를 중독성이 있죠.
김기자: 가사들이 괴기스럽고 그로테스크한데 그것이 국카스텐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런데 노래를 듣다보면 어떤 스토리가 떠오르는 곡들도 있어요. 그런 반면 어떤 곡들은 도무지 내용을 해석할 수가 없기도 하는데요. 가사의 그로테스크함과 압축이 듣는 이의 입장에서 '이 곡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들게 할 수도 있지 않나요?
현우(V):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많이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저희 곡의 가사가 시집보다 읽기 편하고 더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해요. 가사를 이해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노래를 한 번 듣고서 우리가 무슨 의미를 전달하려는지 알아듣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어요.
정길(D): 음악은 자기 해석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이죠.
김기자: 상징적인 내용이 많은 가사에서 듣는 이는 직관으로 느끼면 되는거고, 곡에 대한 해석은 자유다. 전체적으로 분석보다 직관의 작용이 더 큰 가사라는 얘기가 되겠네요.
김기자: 국카스텐의 음악에서 사운드 적인 부분을 규호씨가 많이 담당하잖아요. 연주나 사운드와 관련해 기타가 할일이 많지 않나요?
규호(G): 저는 음악을 들으면 소리에 대한 집착이 좀 있어요. '메탈리카에서는 저런 소리가 나는데 왜 나는 이상한 소리가 날까?' 하면서 짜증이 나니까 연구를 하게 되는 거죠. 한 번은 일본어로 된 메뉴얼 때문에 산전수전 다 겪고 번역을 부탁해서 사용법을 익힌 경우도 있고요. 좀 집요한 구석이 있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돼요.
현우(V): 사운드 적으로는 우리가 가진 장비에서 특이한 소리를 낼 수 있는게 뭘까 고민을 많이해요. 왜냐면 말이나 행동 모든 것이 익숙한 것은 저희에게 감정의 요동을 일으키지는 못하거든요. 일상적인 것으로는 '나'를 깨우기 힘들어요. 처음 들었을때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것을 원하죠. 최대한 괴기스럽고 본성에서 틀어지게 하려고 노력해요. 그 안에서 테크닉 보다는 멀티적인 소리를 찾기 위한 실험을 많이 합니다.
김기자: 그럼 실제로 그런 특이한 소리들이 어떻게 구현되는 건가요?
규호(G): 곡이 나오면 전체적인 이미지가 있고 거기에 맞는 특이한 소리들을 만들어서 무식하게 갖다 붙여보는 거에요. 어울릴 때까지 계속 만들어서 붙여봐요. 몇 백 개든 몇 천 개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맞는 게 있어요. 제가 가진 장비가 많지 않아요. 장비가 좀 더 있었으면...좋으련만 어쨌든 그 안에서 어떻게 소리를 특이하게 낼까 고민을 많이 하죠.
- 1집 Guckkasten (Before Regular Album)의 7번 트랙, '만드레이크'
김기자: 앨범을 살펴보죠. 1집의 7번 트랙 '만드레이크'는 무슨 뜻인가요?
현우(V):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전설에 나오는 식물의 하나인데, 굉장히 이야기가 많은 식물이에요. 공통된 것은 '만드레이크'는 불완전함의 초상이라는 것이에요. 즉, 완벽하고 싶은데 완벽하지 못한 '나'의 모습을 말해요. '만드레이크'는 아직도 너무나 많은 것이 결핍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노래입니다.
김기자: 음악을 들으면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데요. 현우씨가 원래 회화 전공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공이 노래를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나요?
현우(V): 그럼요. 노래를 만들 때 뿐만 아니라 국카스텐이라는 밴드를 만들기 전에도 이미지를 형상화해 두었어요.
김기자: 전체적으로 국카스텐은 어떤 이미지 인가요?
현우(V): 가을의 이미지입니다.
김기자: 앞서서 회화 전공이 음악 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셨는데 혹시 미술 작가 중에선 누구를 좋아하시는지요?
현우(V): 고흐를 좋아합니다. 사실 저는 작가의 작품보다는 작가의 삶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 작가의 생을 알고 작품을 보면 더 감동적이에요. 고흐의 그림을 보면 대중에 많이 노출이 되어서 익숙하다 느끼지만 자세히 보면 굉장히 싸이키델릭합니다. 실루엣과 비율도 불안정하고... 그런데도 매력적이에요. 이상스러운데 매력적이다, 이런 점 또한 국카스텐을 만든 토대가 아닌가 싶어요.
김기자: 사운드에 대한 영감은 어떻게 얻나요?
규호(G): 그런 건 없어요. 보통 멜로디가 먼저 만들어지니까. 뭔가 생각나면 해보는 식이에요.
현우(V): 제가 노래의 멜로디, 구성, 리듬의 틀을 가져다주면 색이 보여요. 이미지를 가져다주면 서로 질문하면서 맞추어나가면서 만들어가요.
김기자: 초반에는 시행착오가 많았을것 같은데요?
규호(G):
그렇죠. 지금은 멜로디에 자기 색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런 게 없었으니까요.
정길(D): 예를 들어 '거울'을 둘이 기타를 치면 처음에 어떤 이미지가 없는데서 이미지를 찾는 게 힘들죠. 그런데 하다보면 되거든요. 주위 사람들이 음악을 어떻게 만드냐고 해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만들기만 했지 어떻게 했는지는 설명을 잘 못하겠어요.
- 1집 Guckkasten (Before Regular Album)의 6번 트랙, '가비알'
김기자: 국카스텐은 멜로디가 아름답다기 보다는 괴기스럽다는 느낌이 더 강해요. 잘못쓰면 촌스러울 수도 있는, 잘 안 쓰는 멜로디 라인이랄까. 그런데 6번 트랙 '가비알' 같은 경우는 처음 듣고 아름답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어요.
현우(V): 사실, 아름다움에 대해 말을 하자면 저는 저희만의 괴기스러움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음악이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끌린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아름다움이 하나로 정의되어 있지만은 않다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가비알' 같은 경우는 저희 곡 중에서 그나마 그로테스크함이 적은 곡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계속 들어보면 그나마도 틀어져있고 깨져 있어요. 저희 밴드가 추구하는 것이 괴기스럽고 이상스러운 것이기 때문이에요.
김기자: 그런 부분에서 남다른 것을 추구하시는 거군요. 그럼 '가비알'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나요?
현우(V): 주 테마는 규호형이 기타를 치고 있는데 멜로디를 치더라고요. 제가 따라부르다가 완성이 됐지요. 가사는 곡이 70%정도 만들어 졌을 때부터 생각하는데 이 곡은 군대에서 쓴 내용이고요. 제가 꿈에서 작은 악어 3마리를 보았는데 그 악어를 외할머니 앞마당에 울타리를 쳐서 길렀어요. 먹다 남은 쓰레기를 던져줬는데 갑자기 작은 악어들이 제가 던진 쓰레기를 먹고는 몸집이 커져서 울타리를 넘어 저를 잡아먹더라고요. 그러다 잠에서 깨었는데 인상 깊어서 바로 펜을 들고 내용을 적어 나갔죠. 그렇게 해서 '가비알'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8. 인터뷰를 읽다보니 현우 씨가 상상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어떤 방식으로 하는 건가요?
현우(V): 그 역시 제가 군대에 있을 때 하던 건데 '이미지 놀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이미지 놀이'는 단어 그대로 특정 사물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놀이에요. 제가 무심코 지나간 것들을 자세히 바라본 적이 있는데 그것들이 마치 저에게 이야기를 하는 듯 했어요. 예를 들면 바람이 지나가는데 바람이 저에게 이야기를 하는거죠. '스산하다' 이러면서 지나갔어요. 집 밖에 고양이가 무지 많은데 고양이가 '야옹' 하는 소리가 한국말로 '배고파' 이러는 것 같았어요. 사물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니까 제가 알고 있던 것들이 전혀 다른 것이 되는 느낌이더라고요. 마치 내가 익숙하다 생각한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나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당시에는 그것에 미쳤었어요. 까치가 검은 색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파란색이었고 그러면서 이 종이컵이 종이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들로 시작된 거죠.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사실은 본질이 아니더라. 이 죽어있는 종이컵에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하는 거죠. 그게 병적인 정도까지 되었어요. 죽어있는 모든 이야기들 단어, 말, 물체 등을 내 나름대로 되살리게 됐고 그게 이미지 놀이에요.
김기자: 그런 이미지 놀이 통해서 생긴 모티브들이 가사에 반영되는 건가요?
현우(V): 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제가 굉장히 생산적이에요. 노래 만들다 가끔 미치죠. 그냥 한 방에 노래가 쭉 나와요.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있고 그 생각들 중 하나를 꺼내죠. 분명한 건 이미지 놀이가 도움이 많이 된다는 거에요. 머릿속에 습작이 많은데 제가 쓰면 그게 당첨되는 거에요. 김기자: 그건 일반적인 의미의 습작은 아닌데요. 현우(V): 1집은 일반적인 의미의 습작으로 나왔고요. 2집이 즉흥 생산적으로 나왔어요. 이미지가 하나하나 다 다른데 전체적인 이미지로 보면 벗어나는게 없이 잘 맞아요. 1집은 노래들이 백치미가 있는 것도 있고, 성숙한 것도 있고, 과감한 것도 있는데 2집은 작업의 방식이 달라서 인지 굉장히 일관성이 있어요.
9. 국카스텐의 넘치는 자신감은 어디서 기인하는 건가요?
현우(V):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전반적으로 다들 자신감이 넘치죠. 저 같은 경우는 원래 겸손했는데 주변에서 겸손할 필요 없다고 해서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는 편입니다.(웃음) 격식같은 게 필요한가요. 그냥 살다가 그냥 죽으면 되는 건데 많은 걸 꾸미면서 살 필요가 없어요.
정길(D): 그런 말이 있잖아요. '가장 강한 설득력은 진실한 모습이다' 라고... 저 같은 경우는 막연하긴 했지만, 뭔가를 해서 차후에는 '잘 살 것 같다'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김기자: 그게 근거가 있어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나요? 일반적으로는 연습을 통해서 생길 것 같기도 하는데요.
정길(D): 저는 전에 밴드할 때 제가 젤 문제였는데 그때도 자신감이 넘쳤어요.
규호(G): 연습을 통해서 자신감이 생기는 건 사실이에요. 남들이 안되는 게 나는 되면 기분도 좋고. 하지만 사실 다 부질없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사람들이 물어보니까 대답은 해야 되고 국카스텐이 잘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기범(B): 주위에 음악하는 사람들 보면 다들
저는 요즘에 그런 건 있어요. 제가 막내잖아요. 같이 2집 만드는데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요. 2집이 진짜 짱이거든요.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 좋아요. 그런데 내가 혼자였다면 이런 것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많이 배우죠. 멤버들 보면서 한편으로는 질투도 나요.
10. 국카스텐 멤버분들 화합이 잘 되는 것 같아요. 밴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멤버간의 화합이죠. 각 캐릭터에 대해 말해주세요.
현우(V): 정길이는 밴드에서 저희에게 힘을 주는 원동력입니다. 술상무를 맡고 있고, 곡 만들 때는 토론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규호 형은 비난을 하는 역할. 나이가 제일 많아서 형으로서의 위엄이 있어요. 기계에 관한 지식이 많아서 밴드 내에서는 전체적 사운드 맡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귀찮은거 좋아하고. (웃음) 노래를 만들 때는 전체적인 틀을 보는 역할을 합니다. 국카스텐은 저 없으면 못하거든요. 제가 총감독이에요. 기범은 막내여서 저희가 화풀이용으로 많이 때리기도 해요. 그렇지만 기범이가 밴드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국카스텐이 100퍼센트가 되었다고 할 수 있죠. 베이스를 아주 잘 칩니다. 국카스텐에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요.
11. 국카스텐은 2009년 한 해 가장 주목을 받은 인디 뮤지션 중 한팀인데요. 지금의 인디씬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현우(V): 아직 부족한 점들이 많고 해야 할 것들이 많지 않나 싶어요. 물질적이나 환경적인 측면, 음악적인 면에서도 더욱 다양해지길 바래요. 인디 안에서 국한되는 것 보다 더욱 다양한 마인드를 가지고 음악을 했으면 좋겠어요. 더욱 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지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밴드들을 보면 진지하게 몰입해서 하는 팀을 많이 못 봤어요. 오래된 팀이나 되야 좀 그렇고. 저는 인디 뮤지션들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하는데 한심한 사람도 많고, 같이 락음악 해도 이해 못하겠는 사람도 많아요.
규호(G): 인디라는 분위기는 좋은데 인디를 흐름으로 치부하고 마치 유행처럼 따라가는 듯한 모습은 별로 좋지 않아 보여요.
기범(B): 지금은 발전해 가는 와중이잖아요. 멋있는 뮤지션들도 많아요. 특히 갤럭시익스프레스 멋있어요.
현우(V): 전 네스티요나 1집 좋아요
정길(D):
저는 못
규호(G): 앞에서
다 얘기했네요. 전 요즘 국세청에 관심이 많아요. ㅋㅋ
김기자: 음악 하면서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죠. 국카스텐은 지명도 높고 많은 분들이 앨범 산걸로 아는데요.
국카스텐: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들어요. 월세 걱정 안할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2010. 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