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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삶의 이야기 상고 출신 수재들, 그리고 야구 명문고
유현덕 추천 0 조회 1,250 23.07.26 12:52 댓글 2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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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7.26 13:24

    첫댓글 그렇지요 상고를 나와 은행에
    들어간 사람들이 많았지요
    그 시절이 그래도 좋았던 것
    같네요 글 잘 보고 갑니다

  • 작성자 23.07.26 18:11

    예전에는 상고가 참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컴퓨터 나오기 전까지 주산, 부기, 타자 등 자격증이 취업을 결정하는 스펙이기도 했다지요.

    어릴 적 제 고향에도
    어느 집 누나가 여상을 나와 도시에 취직했다는 소문이 동네방네 쫙 퍼진 적 있었답니다.ㅎ

  • 23.07.26 13:47

    네 그래요

  • 작성자 23.07.26 18:12

    네, 그런가 봅니다.^^

  • 23.07.26 14:02

    김동연 경기지사도 덕수상고 출신이지요

  • 작성자 23.07.26 18:13

    맞습니다.
    이 분도 흙수저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정치인이라 이곳에서 논하기가 좀 그렇기는 하지만서도,,^^

  • 23.07.26 14:16

    시대적 부름에 철저한 사회적 응답으로 해석하긴 너무 낭만적인가요
    목포상고출신
    부산상고 출신
    동지상고 출신으로 정상의 자리를?
    또한분의 동지상고 출신은 노동계의 거물 따님은 검사?
    현 경기지사도 그렇고요?
    셀수없이 많을겁니다

    폭염과 소나기가 부창부수인듯 한가한 오후에
    시류에 적절한글 잘읽었습니다

  • 작성자 23.07.26 18:15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처럼
    옛날에는 흙수저도 노력으로 계단 상승을 할 수 있던 시절이었지요.

    요즘엔 학벌이 곧 계층으로 굳어져서 개천 자체가 사라졌다더군요.
    어쨌거나 개천을 발판 삼아 등용문을 통과한 분들의 삶에 경의를 표합니다.
    모쪼록 여묵님도 삶도 풍요롭기를,,

  • 23.07.26 17:18

    상고중에
    1위 덕수상고
    2위 경기상고
    3위 선린상고
    여자
    1서울여상
    2 동구여상

  • 작성자 23.07.26 18:17

    암튼 지존 형은 모르는 게 없어요.
    경기상고가 명문이었군요.
    경복궁 주변에 있던 숱한 명문고들이 전부 이사를 갔으나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기상고만이 독야청청이랍니다.ㅎ

  • 23.07.26 19:32


    대구는 대구상고
    제일여상이
    일뜽인 상고였어요
    여상나와서 은행가면
    최고 코스였지요
    은행권은 대구상고가 꽉 잡고 있었지만
    이제는 많이 물러나고
    대졸자들로 채워지고 그렇다네요
    그시절에는 산업체고등학교도 있었어요
    낮에는 일터 밤에는 공부
    가난때문에 아팠던 청춘들이었네요

  • 작성자 23.07.26 20:05

    저는 대구상고를 야구 명문고로 아주 잘 알고 있답니다.^^
    예전엔 웬만한 도시 곳곳에 여상이 참 많기도 했었지요.

    저도 가리봉동에서 공장 다닐 때 산업체 학교에 다니는 누이들을 많이 봤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일이 고단할 텐데도 열심히 산 누이들이였지요.
    정아님 평화로운 밤 되세요.ㅎ

  • 23.07.27 08:27

    울정아 님의 아팠던 청춘에 깊이깊이
    공감 합니다.ㅎ ^^♡

  • 23.07.26 20:34

    특히 기억나는것은 1980 봉황기 결승으로 기억하는데 중앙고 우승일때 KBS중계 아나운서가 중앙고 출신이라 그런지 윤몽룡투수( 30에 사망) 5번타자 김승수(부친 농협야구감독 김영조)를 가르키며
    함박웃음, 특히 기억납니다
    10년후 김봉연 오리궁둥이?도 기억나고요,
    즐거운 추억입니다

  • 작성자 23.07.26 20:52

    호반청솔 선배도 고교 야구 팬이셨군요.
    저보다 청솔 선배가 훨씬 고교야구의 열기를 더 경험했을 걸로 봅니다.

    제가 야구에 눈을 뜰 때쯤 프로야구 생기면서 점점 고교야구 인기가 내려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저도 김봉연과 김성한을 프로야구에서 좋아했답니다.

    고교 야구 때는 장효조, 최동원, 양상문, 박노준, 김건우 등을 좋아했었네요.
    암튼 그 시절을 청솔님과 공유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ㅎ

  • 23.07.26 22:28

    흘러간 것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군요 이렇게 누가 도입부만 꺼내도 호응도가 높으니 지나간 것은 내것이 아니라도 아름다운 것과 귀한 것은 누구나 공감하군요 프로 야구전에 고교야구 박노준 좋아 했지요 꽃미남이라서 그때는

  • 작성자 23.07.26 23:15

    운선님이 야구 좋아하시는 것 보면 신기합니다.
    아내는 제가 야구 중계를 볼 때면 저딴 걸 무슨 재미로 보냐고 한답니다.

    당시 박노준의 인기는 요즘 임영웅 저리 가라 정도로 쟁쟁했지요.
    야구까지 좋아하시는 운선님 참 마음에 들면서 폭 넓은 감성이 부럽습니다.ㅎ

  • 23.07.27 00:28

    상고는 선린상고가 최고 아닌가요? 그담 덕수상고 부산상고 여상은 서울여상 동구여상

  • 작성자 23.07.27 12:07

    ㅎㅎ
    장앵란 님께서 명문 상고 서열을 잘 알고 계시나 봅니다.
    선린상고가 유명한 상고였지요.
    저는 경기고가 명문고라는 건 익히 알았지만 경기상고가 명문인 줄은 몰랐답니다.
    어쨌든 서울여상이 여상 명문고였음은 이견이 없는 듯하네요.ㅎ

  • 23.07.27 07:48

    옛날에는
    상고 출신들 은행에 취직도 잘됫죠
    주판으로 일할때엿죠

  • 작성자 23.07.27 12:09

    예전에 선린상고, 덕수상고 나오면 3학년 때 대부분 취업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공장 다닐 때 사무실 경리 아가씨가 투닥투닥 주판으로 계산하던 모습이 생각나네요.ㅎ

  • 23.07.27 11:50

    저역시 여상출신 입니다
    세무소에 취직해서 결혼전까지 다녔답니다
    지금은 상고가 없어져서 안타깝지요
    주산1급
    부기1급
    영 한 타자1급
    서예 1급
    지금은 소용없지만
    그때는 필수였답니다

  • 작성자 23.07.27 12:11

    아! 그러시군요.
    당시에는 상고 출신이 엘리트였다던데 꽃잎님도 그러셨을 걸로 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쓸모없어진 것이 어디 한두 개던가요.

    그래도 이런 추억이 있어서 아름다웠던 시절을 돌아볼 수 있으니 좀 좋아요.
    잘 살아오셨으니 앞으로는 늘 좋은 날 되셨으면 합니다.ㅎ

  • 23.08.29 11:23

    추억의 글을 너무나
    생생하게 써주셔서
    예전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요,
    부암동,기상,고교야구 이야기며
    저에게는 뭉클할정도로 가슴에 와닿는 글이였습니다,
    댓글중에 중앙고 윤몽룡투수 결승경기는1972년 인것
    같습니다,
    그당시 일본 고교야구 갑자원대회
    최우수선수로
    왔던 투수 에가와를
    한방에 보낸 중앙고의 유대성선수가 있었지요,
    고교야구의 전성기는 1966년경부터
    라고 생각됩니다,
    저의 개인생각입니다만,
    처음선수생활이
    시작되는 중학1학년입니다만,
    야구선수증이 발행되어 선수증만 보이면 빠빡머리 추스려주며 열심히해 하고등을 밀어주시던아버지같은 수문자ㅇ아저씨,
    허나 전국대회
    준결승,결승은
    유료 하지만
    머리 디밀고 들어간다,
    동기인 뺑코
    남우식은 정말
    대단했다
    고1년때부터3,최동원도
    있었지만,두루두루
    많은 선후배님들
    동기들이 생각난다,
    군대 동기로 입대한
    종도형등 많은분들이
    이런경우가 있을까 회사 처음 입시하여
    미국 노스캐롤라이ㅈ나 그린스보로라는 곳으로 직업연수를가서 지역 교민들의
    초청모임에 갔는데
    골프장이었다,
    골프채라곤 잡아보지도 못 했는데
    재미로 한번
    처보란다,
    처음 몇번 삑사리?
    가 나더니 잘 날라간다,그러더니
    어느한분이 오시더니
    당신 야구했구먼
    하시더니

  • 23.08.29 08:31

    옆에 계시던분이
    이분이
    예전 야구국가대표
    하**선수시란다,
    내가 제일 본받고
    싶었던 기량의 선수셨는데 여기에서
    뵙다니
    연수기간동안
    많은 도움을 받고
    귀국했답니다,
    이렇게 두서없는글
    올려 올려보았습니다

  • 23.08.29 08:44

  • 23.08.29 08:54

    방망이로 타이어를
    때리던 모습,
    참 저때의 모습을
    기억하면 삼라만상이 머리속을 스쳐 가는듯하다,
    요즘 중고 야구선수들은 고급이다,
    부모들이 고생이지,
    선수 학부형들
    돈없으면 못시켜요,
    고생하는것은
    같겠지만
    뒷바라지에
    온식구들이 올인이다

  • 작성자 23.08.29 12:24

    댓글이 4개나 한꺼번에 달렸군요.
    대표로 맨 마지막 댓글에다 기쁘게 답글을 답니다.^^

    산타루님께서 야구에 대한 추억도 많고 하실 말씀도 많고 그러는가 봅니다.
    저도 야구 이야기라면 며칠 밤이 모자랄 만큼 추억이 많지요.
    커다란 타이어를 방망이로 두드리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시설도 처우도 열악했지만 열정 만큼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을 겁니다.
    한참 전의 글임에도 뒤늦게 읽은 산타루님과 공감할 수 좋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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