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계동 119
‘이게 우연일까? 아니면 혹! 어쩌면 인정님에 아니 진우씨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한 번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겠어.
나중에 서로가 함께 생활하게 된다 하더라도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은 아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
타이핑한 것을 다시 보니 정작 중요한 부분은 달랐다. 오빠에 대한 부분과 성격에 대한 부분이 그랬다. 그렇다면 자신이 찾는 명혜가 아닐 가능성이 더 짖다.
‘어쩌면 진우씨와 조금 더 가까이 지낼 필요는 있을 것 같아. 박양의 말처럼 진우씨 서른까지의 남은 기간은 이년 여, 지금부터 서로를 알아가다 보면 그 정도의 시간은 우리에게 필요할 것이고, 그렇다면 박양에게 내 생각을 확실하게 알려 줄 필요도 있겠는걸.’
진철은 이제 명혜를 찾는 일보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갖기로 한다. 그렇다고 명혜를 찾는 일을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진우와 가까이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진우는 일군들이 해 놓은 도배를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잘 해달라고 그렇게나 신신당부 했건만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실수투성이며 무성의한 작업 결과였다. 칼질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벽지의 끝 부분이 고르지 않은 가하면 풀칠을 제대로 하지 않아 곳곳에 접착이 잘 안되어 있었고, 벽지 겉에 칠해진 풀기를 제대로 닦지 않은 채 말라서 번들거렸다.
장판도 그랬다. 칼질을 어떻게 했는지 들쑥날쑥이다. 그나마 농을 들여놓을 곳은 가려지기라도 하겠지만 다른 면은 영 보기가 싫을 정도이다. 자를 대지 않고 장판의 줄 따라 칼질을 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도배 집에 전화를 넣었다. 그리고 한 동안 도배에 대해서 잔소리를 하자 결국 사람을 다시 보내서 잘못된 부분을 손보겠다는 말을 듣고서야 전화를 끝낸 것이다.
‘이 사람들이, 아무리 방 두 개 거실하나 큰 돈 들이지 않는 도배라고 이렇게 무성의하게 일을 하면 어떡해! 어쨌든 오늘 안에 끝내야 하는데, 그래야 내일 농하고 책상을 들여 올 텐데.’
그녀는 오늘 도배가 끝나면 내일은 싱글 침대와 책상, 그리고 농과 옷장을 들여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모래는 용산 가서 컴퓨터를 하나 구입하고, 그렇게 해서 명훈을 맞이할 준비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피시방을 돌보다가 저녁이나 해 먹고 잠시 쉬려고 집으로 온 그녀는 도배상태와 장판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비록 좋은 도배지와 장판을 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업자들이 그런 식으로 일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내일은 이 사람들 오면 내가 지켜봐야 하겠어.’
진우는 천정 밑에 대충 해 놓은 칼질을 보면서 계획보다 하루 더 늦어지는 것에 마음이 상해 버린다. 하지만 아직 명훈에게는 이 달 안에 내려가겠다고 했으니 그리 바쁠 것은 없다.
그녀는 저녁이나 해 먹으려고 쌀통에서 쌀을 한 줌 퍼내는데 박양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언니 나야!
-저녁 먹었니?
-아니, 지금 해 먹으려고.
-그럼 건너와라. 오랜만에 저녁이나 같이 먹자.
-뭐, 맛있는 거 했어?
-아니 그냥 있는 반찬에 먹으면 되지.
-그럼 내가 삼겹살 사갈까?
-그러든지, 그런데 삼겹살 사 올 거면 상치와 마늘도 좀 사와야 하는데, 다른 것은 있는데 마늘이 다 떨어졌어. 그리고 이왕이면 소주도 한 병 사와라. 삼겹살에는 그래도 소주 한 잔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니?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녀는 퍼내던 쌀을 다시 쌀통에 넣어놓고 집을 나섰다. 박양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마트에서 사면 될 것이다.
그녀가 삼겹살과 마늘 그리고 상치를 사가지고 박양 집에 들어갔을 때 벌써 박양은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렌지와 석쇠를 얹어 놓았으며 석쇠 밑에는 기름 받이 까지 놓았고, 기름장과 소주 잔 김치와 쌈장등도 거실 바닥에 놓여 있었다.
-어서 와라. 일부러 상 안 차렸다. 고기 궈 먹을 때는 맨바닥이 좋을 것 같아서.
-잘했어 언니.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상치와 마늘을 꺼내고 상치부터 씻기 시작하자 박양은 마늘을 씻어 칼로 쪼개기 시작한다.
-고기가 맛있어서 그런지 술도 맛있네.
-그런데 형부는?
-형부는 오늘 늦는다 그랬어. 뭐 회식이 있다나 그러던데.
-철민이는?
-걔도 너 오기 전에 배고프다 그래서 한 그릇 먹여놨더니 많이 피곤한지 일찍 자네.
-그래서 언니가 날 불렀구나.
-왜 불러서 기분 상했냐?
-언니는, 무슨 말을…….
-그래 그건 그렇고, 내가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야해.
술 몇 잔에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면 박양 언니도 그 동안 술에 많이 약해진 것 같아 보인다. 예전, 라벤다에 있을 적에는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도 얼굴색이 변하거나 흐트러지진 않았었는데, 결혼하고 가정에 충실하면서 알코올에 젖었던 몸도 회복이 되었는지, 목소리에서도 술 마신 티가 나고 있었다.
진우는 박양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을 느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너, 명보원님 어떻게 생각하고 있니?
-언니, 무슨 말이야? 어떻게 생각하냐니?
-그러니까 말야,
박양은 다음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를 생각하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네 남편감으로 생각해 본 적 있는가 하는 말이야.
진우는 화들짝 놀랐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직설적인 질문을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언니는, 남편감이라니 무슨 말을…….
-그냥, 솔직하게 말해봐. 이리저리 돌리지 말고, 너와 내가 속에 담아두고 하지 못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지금 솔직한 네 마음을 듣고 싶어서 그래.
-언니도, 내 마음 알잖아. 명보원님에 대한 내 생각이나, 그러면서도 선 듯 다가서지 못하는 내 마음을 말야.
진우도 술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가슴이 콩닥거리며 뛰고 있다. 지금 그녀는 박양 앞이 아니라 꼭 명보원 앞에서 이 말을 하는 기분이다.
-사실은, 명보원님이 너를 많이 생각하는 것 같더라. 너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묻길레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른다고 대답을 하였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서 명보원님이 너를 마음에 두고 있어 보였거든, 물론 네 입장을 말을 해 주었지. 오빠를 찾던가, 아님 서른이 되던가, 그 때가서 남자를 생각하겠다. 그러더라고 말해주었지. 하지만 내 생각인데, 네가 오해하지 말고 들었으면 해.
첫댓글 고정현님 잘 읽고 가네요 고마워요....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고맙지요.
오라버니 이밤 머물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에 다녀가주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