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 위험한 비밀
"내 병은 치과에서 옮았다" 치과 감염을 주장하는 사람들
충주의 김모씨는 간단한 치과 치료 후 ‘감염성 심내막염’이라는 병으로 쓰러져 대수
술을 받았다. 심장 수술을 담당한 의사는 치과 진료 중 세균이 혈류를 타고 들어가
심장 판막에 들어갈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급기야 인공 판막 수술을 받고 평생 약
을 복용해야한다는 김씨는 치과 진료를 의심하고 있다.
인천의 최모씨 역시 치과 치료 직후, 녹농균이라는 병원성 세균에 의한 감염으로 갑
자기 패혈증을 일으켜 사망했다. 당시 환자를 오랫동안 담당한 내과 전문의는 당시
증상에 미루어 병원성 세균에 대한 감염임을 시인했지만 정작 치과 담당의는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환자의 면역력 탓이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취재진이 만난 또다른 제보자인 부산의 김모씨 또한 치과에서 이를 뽑은 뒤 C형 간
염에 걸렸다고 주장한다. C형 간염은 피를 통해 감염되는 데, 그는 단 한번의 수혈
도, 외도도, 가족 가운데 C형 간염 보균자도 없다는 것이다. 피를 흘리는 유일한 시
술은 치과 발치 진료였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 99% 치과에서 원인을 찾는 김씨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치과 감염 사고의 경우 명확한 인과관계
추정이 불가능해 입증이 매우 힘들다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미국 전역을 흔든 사건, 치과 진료후 에이즈 감염으로 5명 사망!
1993년 미국에서는 치과 내 진료로 5명의 환자가 에이즈에 감염되었다. 에이즈 환자
였던 의사 에커가 멸균 소독되지 않은 치과기구로 환자를 진료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 가운데에는 20살의 킴벌리 버갈리스 양도 있었다. 법정 소송까지 불사한 그녀는
“의사 에커는 소독되지 않은 기구를 환자들에게 사용했다”는 간호사의 증언과 유전
자 일치 등으로 치과 진료 후 에이즈에 감염이 사실로 밝혀졌다. 미국 전역은 일대
혼란에 휩싸였고 미국내 치과 위생에 대한 지적과 자성이 잇따랐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의 치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환자들
취재진은 한달동안 전국의 치과를 순회하며 치과들의 위생과 소독 실태를 취재했
다. 상당수의 치과 의사들이 맨손으로 이 환자 저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고, 글러브
나 마스크를 착용한 의사 역시 일회용품이 아니라 하루 내내 똑같은 장비를 계속 쓰
고 있었다. 치과의 한 종사자는 “환자는 모른다. 눈 가리고 누워있으니 어떻게 알겠
냐”며 일부 치과의 몰지각한 행태에 대해 귀띔했다. 침과 혈액을 빨아들이는 석션 팁
을 교체하지 않고 쓰는 의원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최고급 시설을 갖춘 치과도 예
외는 아니었다. 구강을 촬영하는 치과용 카메라의 경우 한번도 소독하지 않고 환자
들 입속을 오가는 모습도 관찰됐다. 치아를 절삭하는 핸드피스 버(bur) 역시 멸균을
하지 않고 알콜솜으로만 닦거나 심지어 침이 묻은 의료기기를 휴지로 닦는 진풍경마
저 포착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신경치료를 하기 위해 치아속 신경관에 삽입하
는 침모양의 파일 역시 소독을 하지 않은 채 재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염증을 제거
하기 위해 사용하는 파일을 소독하지 않으면, 신경관 속의 혈류를 타고 균이 심장,뇌
등 신체 각 부분으로 퍼질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이 때문에 한 학자는 “파일을 소독
하지 않는 것은 범죄행위”라며 분개했다.
세균과 바이러스의 온상- 핸드피스(Handpiece)
치과 진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치아를 절삭하는 핸드피스다. 그런데 윙윙
소리를 내는 핸드피스를 순간적으로 멈추면 피와 침이 핸드피스 내부의 관으로 쏠려
들어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핸드피스 내부에 들어가 있는 피와 침은 다음 환자의
입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앞의 환자가 에이즈, B형 간염, C형 간염 보균
자라면, 다음 환자에게 심각한 감염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취재진은 치과에서 사용 중인 핸드피스를 수거해 내부를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했다.
그 결과 핸드피스 내부는 인체에 유해한 박테리아, 적혈구, 치아 파편 등 갖가지 이
물질과 균들의 온상이었다. 그리고 핸드피스를 솜으로 닦은 뒤, 내부를 관찰한 간단
한 실험에서도 핸드피스 내부에서 여전히 많은 피가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결
국 철저한 멸균만이 핸드피스로 인한 에이즈, 간염, 결핵 감염으로부터 방지할 수 있
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에이즈 환자의 고백 “에이즈 환자임을 숨기고 치료받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에이즈나 간염, 결핵 환자가 자신의 병력을 숨기고 진료를 받는다
는 것이다. 한 에이즈 환자는 자신의 병력을 공개하면 대부분의 치과에서 진료를 거
부하기 때문에 숨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B형, C형 간염, 결핵 환자들도 마
찬가지였다. 이러한 세균들은 소독이나 알콜솜으로 닦는 정도로는 없어지지 않고,
열에 의한 멸균을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지금처
럼 알콤 솜으로만 치과 기구들을 닦는 현실에선 치과 진료가 오히려 감염의 주요한
통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측에서도 기구들의 멸균소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인정했다. 다만, 멸균,소독을 철저히 하려면 환자 1명당 1만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하
는데, 지금은 이 비용을 치과의사들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
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감염으로 인해 환자의 목숨까지 잃는 사고 생기고 있는 만큼,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멸균 소독이 돈 문제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감염 방지 소흘은 치과 계의 성수대교 붕괴에 준하는 문제”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이미 법률적으로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매 환자마다
멸균 소독을 철저히 시행하고 있고 심지어 중국 역시 우리 나라보다 훨씬 엄격한 멸
균소독을 시행하고 있다. 가까운 나라 중국의 경우 2003년 사스(SARS)의 촉발로 멸
균 소독에 대한 지침이 엄격해졌다. ‘환자마다 각 기구를 멸균,소독할 것’이라는 강력
한 법적 규정과 함께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이나 치과의사 면허를 취소하는 제
도도 정립되어 있었다. 1년에 4번 수시 점검으로 멸균소독 상태를 점검하는 시스템
도 엄격히 지켜지고 있었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각종 질병과 세균이 넘치는 한국 역시 더 이상 감염 사고의 무풍
지대가 아니다. 특히 모든 세균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입안을 다루는 치과 지료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C형 간염, 결핵의 급격한 증가 등으로 대형 감염 사고가 일
어날 개연성을 언제든지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한 치과 학자는 현재의 치
과 상태를 “성수대교가 붕괴하기 직전의 상태”로 비유했다. 아직 대형 사고가 난 것
은 아니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성수대교가 붕괴하듯이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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